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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4화 (4/298)

4화. 구름이 머문 봉우리, 운봉현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방금까지 꾸던 꿈이 아쉬워 괜스레 눈꺼풀을 내려 본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실이었던 세상은 이제 꿈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익숙한 자취방 천장이 보이면 좋을 텐데, 아무리 눈을 깜박거려 봐도 서까래 사이 얼기설기 황토와 볏짚이 엉겨 붙은 천장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이게 웬 팔자에도 없는 역사 답사냐.’

저학년 때 반쯤 알콜에 젖어서 다녔던 답사와는 차원이 다른 생생한 체험이긴 했다. 하지만 이번 답사는 며칠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것이 문제였지.

하긴, 비슷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깨어나 보면 낯선 천장이 보이고, 질이 한참 떨어지는 음식을 먹고, 육체적으로 고생하고,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던 적이 한 번 있기는 했다.

옆에서 얕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차라리 저 숨소리가 훈련소 동기의 것이었다면 정해진 기한이라도 있을 텐데, 고열에 들뜬 상태로 깊게 잠들어있는 어사 나리의 숨소리에서는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어찌 하겠냐고 물으신 것입니까.”

“상중(喪中)인 선비인 것 같으니 예의상 묻는 걸세.”

“그 무슨…….”

“날 좀 도와줘야겠네, 자네.”

대화 도중에 가슴에 손을 갖다 대고는 얼굴을 찌푸리던 중년이 말을 이었다.

갈비뼈가 몇 대 나간 모양이었다. 단 하나의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스쳤을 뿐인데 구리로 된 마패를 토막 낸 범의 일격이 남긴 흔적이었다.

“내 몸이 이렇게 된 것에 자네 탓을 하지는 않겠지마는…… 앞으로 해야 될 직무에 차질이 생길 것도 분명하네.”

“탓을 하지 않으셔도 분명 이 일에 소생(小生)의 책임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삼년상을 치르는 도중이었던 것 같은데, 정말로 협조할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 긴 여정이 될 지도 모르네.”

천으로 동여맨 어사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도 모르던 낯선 이를 위해 몸을 던진 사람이었다. 도와달라는 말을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양심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조선시대에 덜렁 떨어진 이상 좋은 선택지는 더 없었다. 암행어사들이 험한 지방에서 구르고 고생했다지만 그건 왕의 시선이고, 적어도 밥 굶을 일은 없고 아프면 한약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까짓 거 별 수 없지. 하고 입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우울한 감정이 나를 덮치고 입술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 몸의 원 주인 안한수, 그가 남긴 기억들의 영향이 아직 짙게 남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긴, 단시간에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아니겠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은 어느 정도 주겠네. 그러니…….”

“……맹자께서 이르시기를.”

간밤에 호랑이와 함께 그렇게 굴렀으니, 난리를 겪으며 내 안에서 잘 섞이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처음 받아들였을 때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토악질까지 우려내던 그 지식은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내 의도와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자 요순의 도리도 효제(孝悌)에 지나지 않다 하셨습니다.”

“…….”

“어찌 보면 나리가 성상의 명을 받들어 백성을 편안케 하려는 것도 요순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선친께 다하는 효일 것입니다.”

“요순지도 효제이이의(堯舜之道 孝弟而已矣)라…… 자네…….”

“그러니 돕겠습니다. 아니 제가 나리를 돕도록 허락해주십시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간 걸 깨달았다.

눈을 마주치기 두려워 중년의 찢어진 앞섶을 바라보던 시선도 놀란 가슴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우연의 일치인지 갓의 챙으로 시선을 가리고 있던 중년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날아오는 눈길이 불처럼 뜨거웠다.

“……그것이 정녕 본심이 맞는가.”

“예.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제 몸이 상할 것을 대신 상해주신 분을 돕는다고 해서 선친들께서 노하실 것 같진 않습니다. 제가 아는 그분들이라면…… 도리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셨겠지요.”

어사를 바라보는 눈가에 설핏 눈물이 고였다.

이 몸의 부모는 종가와의 갈등으로 분가해 나간 떨거지 지가(支家)에 불과했지만, 하나 있는 외아들만은 끔찍하게 아껴주었었다.

어려운 처지임에도 책을 어떻게든 구해 읽게 하고, 아들은 절에 부탁해 공부를 시키면서도 뒷바라지를 위해 양반의 지체(肢體)도 잊고 호미와 괭이를 들었다.

아들 역시 부모의 고생을 알아 부모를 공경하길 하늘같이 했고, 학문과 신체를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 부모자식을 갈라놓은 것은 안한수가 지학(志學)에 이른지 두 해 가량이 흘렀을 때 전라좌도를 덮친 염병이었다.

고였던 눈물이 방울지어 볼을 굴렀다. 이 몸의 기억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내게도 전염되고 있었다. 입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 것에 놀라기 전에 그 감정에 압도되고 말았다.

“고맙네. 자네의 효성이 이토록 지극한데, 탓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나리…….”

“자네를 보니 선친께서 얼마나 훌륭하신 분들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 자식을 가진 입장에서 솔직히 조금 부러우이.”

사정을 전해 들은 어사의 얼굴 역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나에게 자신의 자식을 투영해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방금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이르셨지요. 저는 안한수라 합니다. 본관은 죽산이고 아버님의 함자는 종 자 신 자 였습니다.”

“성이성일세. 본관은 창녕이고.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공경의 의미로 깊이 고개를 숙이자, 바위에 앉아있던 어사 역시 짧지만 정중하게 갓을 기울여 답례를 전해왔다.

호란 때, 성상을 호종했던 자 중에 아버님과 비슷한 이름을 들었다며 같은 집안사람이 맞는지 물어왔지만, 성과 돌림자가 같았을 뿐 이 몸에 남은 기억으로는 알 수 없었다.

***

‘그렇게 이 양반을 반쯤 들쳐 메고 도착한 곳이 이 운봉현(雲峰縣)인데, 어사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방자들에게 지시를 내리자마자 기절해 버렸으니 이제 어쩌지.’

깊은 산골을 지나 다시 산골이었지만 고을의 모양새는 갖추고 있는 동네였다. 허나 나그네가 묵어가야 할 주막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봐도 없었다.

이런 상황도 어사 일행에게는 익숙한 모양이었다. 고을에서 제일 그럴듯한 기와집을 찾아내더니 대문을 두드리는 덩치의 주먹에는 자신감이 넘쳐있었다. 오히려 대문을 연 종이 피 칠갑이 된 덩치의 모습을 보고 까무러칠 뻔했지.

호피를 짊어지고 피범벅이 되어 다친 사람까지 이끌고 나타난 길손을 푸대접하는 집은 드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납득할 수 있었다. 하긴, 나는 상복임이 분명한 삼베옷 차림새를 하고 있었으니 급박한 일을 당했다는 것은 다섯 살 먹은 꼬마애도 알 수 있었겠지.

‘……그렇게 해서 백부님과 이 운봉 땅까지 이른 것입니다. 어르신.’

‘참으로 고생이 많았겠구만. 마당쇠 있느냐!’

말을 미리 맞춘 대로 어사는 내 큰아버지인 것처럼 행세하기로 했다. 내 이름과 본관, 사는 곳을 듣더니 의심이 반쯤 풀린 듯한 주인양반은 범을 잡은 장소만 묻고는 마당쇠를 불러 별채에 있는 깨끗한 방 한 칸을 바로 내주었다.

씻을 물과 갈아입을 옷, 그리고 끼니때가 아니었음에도 김이 오르는 밥상까지 대령하는 것을 보며 호환(虎患)이 그만큼 심각한 건지, 시골 인심이 좋은 것인지는 조금 헷갈렸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보통은 이런 식이랑게요. 양반댁은 나그네들에게서 근처 고을의 정보를 듣고, 저희는 숙식을 제공받고.’

조선 후기까지 주막의 필요가 적었던 이유로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뭐, 어쨌건 온갖 일들을 겪고 피곤이 몰려오던 차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니 아무려면 어떤가.

헌데 어사 일행은 쉬기는커녕 달리는 말에 박차를 더 가하는 모양새였다. 배를 두드리며 밥을 푸지게 퍼먹던 덩치와 얌생이는 소문을 모아오라는 어사의 지시를 받고 소화는커녕 숨 돌릴 새도 없이 대문을 나선 지 오래였다.

밤새 산길을 달렸을 텐데도 피로하지도 않은지, 두 사람은 섬돌에 올린 짚신을 발에 꿰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한양부터 먼 길을 거쳤을 텐데, 도대체 저 체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잠시 쉬겠네. 자네도 이 김에 조금 쉬어 두게, 무리를 했을 텐데.”

그렇게 둘만 별채에 남은 상황에서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어사였다. 어사가 이불이 펼쳐진 자리에 길게 가로누운 것은 그 직후였다.

작은 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독하게 신음 하나 흘리지 않던 어사였다. 호랑이에게 당하고 정신을 차린 후에도 아픈 티를 내기는커녕 의관부터 정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초인과도 같은 인내심이었다.

‘이 시대 선비라는 사람들은 다 이랬나?’

생각해보니 잔반 나부랭이인 나에게도 말만 낮출 뿐, 방자 둘에게 지시를 내릴 때마저 함부로 대하기는커녕 양반을 대하듯 태도가 흐트러지지 않던 어사였다. 덩치와 얌생이 역시 그것을 아는지 어사를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걱정을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본인의 몸 상태였을 것이다. 코끝이 찡해져 왔다.

‘근데 이 아저씨 말대로 쉬자니, 아직 잠들기는 이르고…….’

몸에는 피로가 가득한데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해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드는 이 시대 사람의 생활 습관으로는 애초에 글렀던 일이었을지도.

시간을 가늠하려 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려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끄으응…….”

“에그머니!”

여태 들어보지 못한 큰 신음에 놀라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바로 몸을 돌리는데, 놀란 것은 나뿐이 아니었는지 마당가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젊은 여자의 소리였다.

“누구요!”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비명이 들린 방 밖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마루 아래에서 눈 두 개가 빼꼼히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계집종인 모양이었다.

“아니…… 그시기…… 저희 애기씨가 말씀 좀 전해달라고 하셨당께요…….”

“무슨 전언(傳言)이오?”

내 나이 또래쯤 되나, 수더분하게 생긴 여종은 머리를 몇 번 긁더니 얼굴을 살짝 붉혔다.

‘뭐야, 조선시대에 떨어지자마자 로맨스?’

지금 몸이 조선시대 기준으로 좋은 풍채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거울이 없으니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키는 김 갑사만큼 컸고, 아픈 곳 하나 없는 몸도 단단했으니까.

창 던지는 폼을 보고 꽂힌 모양인지, 김 갑사가 무과를 쳐 보라며 던져본 말은 공치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발을 다친 호랑이라지만 그놈에게서 꽤 오래 도망친 것을 보면 운동능력도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짐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호피를 혹시 구경할 수 있나 해서…….”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노릇이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뭔 싸구려 소설도 아니고 넘어오자마자 여자가 줄줄이 따르겠어.’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호피라, 생각해보면 이 여름에 혹시나 무두질도 안 한 생가죽에 벌레라도 꼬였을지도 모르겠다. 대강 대답을 남기고 상태를 확인하려 돌아서는데 어사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한 번 더 터져 나왔다.

“크윽…….”

“저 손님, 괜찮으신지라우? 상태가 안 좋아뵈는디…….”

재빨리 이불 위에 누운 중년의 이마를 짚었다. 몸이 불덩이였다.

삔 발목이든, 부러진 갈비뼈든 다친 부위에서 염증이 올라온 것이 분명했다.

사회인 야구에 용병으로 나갔다 어느 망할 아저씨가 스파이크를 들고 들어오는 바람에 부상을 입었을 때, 병원을 걸렀다가 한밤에 끓어오른 열에 자취방에서 뒹굴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네! 수건이든 뭐든 마른 천을 보이는 대로 가져오게!”

“오메, 알겠당게요. 찬물은 필요 없으신지라?”

“찬물…… 물은 어디서 길어다 쓰는가?”

“행랑채 뒤켠에 우물이 하나 있긴 한디야…… 직접 가실라꼬요?”

다른 여종을 부르며 수건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수더분한 여종이 물었다.

“지금 시간이면 사내종들은 밭일을 하러 나갔을 시간 아닌가, 급한 사람이 움직여야지.”

“참말로 희한한 양반님이시구마잉…… 저희가 해도 되는디.”

“그럴 시간에 어서 헝겊 쪼가리들이나 모아오게!”

“알았당게요.”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불러낸 어린 종에게 어사의 몸을 구석구석 주무르라고 시키는 여종의 지시를 귀로 듣고 흘리며 우물을 찾아 달렸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발열 정도는 웬만하면 참고 넘길 어사치고 반응이 격렬했다.

겨우 찾아낸 우물을 가득 채운 수면을 두레박이 때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불길함은 가시지 않았다. 우물 벽에 기대어 있던 나무 대야에 찬물을 가득 담아 어사가 누워있는 별채로 뛰는 발걸음만 점점 빨라졌다.

“아이고, 이 양반, 곽란(癨亂)이라도 얹히신 모양인가.”

목적지에 막 들어서자마자, 여종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사의 온몸을 주무르던 아이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갈색으로 얼룩진 천 뭉치를 들고 황급히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곽란, 설사.

그러고 보니 오는 길 내내 갈비뼈 쪽만이 아니라 아랫배도 무심히 쓸어내리곤 하던 어사였다.

그걸 본 얌생이는 아직도 속이 불편하냐고 여쭈었지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흘려보낸 것도 어사였다. 그런데.

문득 그 모습에서, 안한수의 몸이 기억하는 두 해 전의 일이 겹쳐졌다. 본인은 젊고 건장해 몇 주를 앓고 나았지만 결국 양친을 앗아간 역병의 모습이.

같은 증상을 보이는 병명이 몇 개고 머리를 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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