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이야기의 뒤안길
노인의 눈가 역시 상심으로 가득 젖어있었다. 상처 입은 제자를 보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 그 아이를 만나고 천방지축이던 네 놈이 철이 들었었지.”
고개 숙인 어사의 뒷모습은 말이 없었다.
“한양으로 가면 끈이 떨어질 게 분명한 너희 집안에 그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노인의 목도 덩달아 메인 듯,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적막한 사랑채를 울렸다.
“적어도, 그래. 그 아이를 내 외가인 남원 양씨 댁에라도 부탁했으면 그런 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늘 네게 죄를 짓는 심정으로 살아왔느니라.”
“……왜.”
어사가 메마른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시뻘건 핏줄기가 몇 개나 서 있었다.
“왜 그런 말을 이제야 하시는 겁니까. 그 사람은 염병으로 죽었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나이가 들어 총기를 잃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늘 네 앞에서는 앞을 내다보는 척을 했었지만, 정작 몇 년 뒤도 내다보지 못한 소인배였다. 그걸 이해해줬으면 좋겠구나.”
“스승님이 그럴 리 없습니다. 스승님이…….”
“네 정인(情人)은 병사(病死)한 것이 아니다. 정절을 지키려다 후임 남원부사 아무개의 손에 맞아 죽었다.”
쾅 소리와 함께 앉아있던 어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생전의 아버님께서도 그 사람이 염병으로 죽었다 하였습니다. 아버님이 제게 거짓말을 하셨단 말씀입니까?”
“그래. 네가 충격을 받을까 염려해 그 소식을 네 부친께 먼저 알렸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네게 먼저 춘향이가 병사했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묻는 서신이 날아오더구나.”
어사의 말라붙은 볼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침이 튀었다.
“거짓입니다. 아무리 부민고소금지법이 존재한다 하나 스승님이 그런 자를 보고만 있으셨을 리 없습니다. 스승님이…….”
“내가 바로 그 사실을 알았다면 네 대신 최대한의 응분의 조치라도 취했을 것이다. 허나 한 가지 사실만은 알아두어라.”
현실을 부정하던 어사의 입은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노인의 눈은 꾹 감겨 있었다. 주름진 이마 사이로 무언가가 한 방울 굴러떨어졌다.
“내가 처음으로 그 사실을 죽은 월매가 남긴 서신을 통해 깨달았을 적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있었느니.”
“…….”
“그때는 이미 공납할 공상지(供上紙, 왕실에 상납하던 재질이 부드럽고 두터운 종이)를 마련할 재정을 빼돌린 죄로 그자가 파직된 후 저세상으로 간 지 오래였느니라.”
어사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불길한 기운이 어사를 휘감고 있었다.
“미안하다. 몽룡아. 그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막 헤어 나온 네가 다시 무너지는 걸 보기는 싫었다.”
견디다 못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 것은 어사의 단단한 몸뚱이었다.
아차, 낭패였다. 대화에 끼어들기는커녕 춘향전의 진짜 뒷이야기를 듣는 데 빠져있었던 탓이었다.
노인의 입을 진작에 틀어막았어야 했는데…… 멀쩡한 척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어서 잊고 있었지만, 어사는 병자였다.
***
“염병에 걸린 채로 이런 강행군을 했다고?”
자초지종을 들은 노인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내가 끓인 경구수액은 노인의 손에서 어사의 입으로 잘도 넘어갔다. 다행히도 어사는 의식이 끊겨가면서도 수분까지 거부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조금 게워내고 있는 모습이 상태가 전보다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저는 나리가 왜 이토록 몸을 혹사하시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임금의 명을 받든 신하의 공명심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막무가내인 것은 타고난 천성이었지. 아마도 염병이라는 병명을 들었을 때 무언가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정인(情人)을 떠나보낸 병과 같은 것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면, 게다가 그 병이 치명적인 병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죽어도 남원 땅에서 죽고 싶었을지도 모를 것이지.”
“아닙니다. 이 약만 꾸준히 복용하면…….”
말문이 턱 막혔다. 경구수액이 효력이 있다는 사실은 조선 땅에서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나마도 반신반의하면서 만든 물건이었지.
어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경구수액은 급성 탈수로 인한 사망만 막아줄 뿐이지 몸이 균과 싸우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양 진사나 조 노인이야 오행설을 적당히 버무린 감언이설을 듣기라도 했으니 이 정도 반응이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웬 꿀과 소금을 탄 물을 약이랍시고 먹은 어사가 정말로 병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는 미지수였다.
창자가 꼬이는 장티푸스의 아픔을 겪고 있던 어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단순히 효과 있는 현대 물품을 재현해낸 기쁨에 들떠 이 사람의 기분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맥은 안정되어 있구만, 이 탕약, 무엇이라고 했더라?”
“섞여 있던 의서의 낱장에서 읽어서 대강만 기억할 뿐, 정확한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럼 자네의 설명대로 수기(水氣)를 보하는 탕약이라 하여 보수탕(保水湯)이라 이름 짓는 것은 어떤가? 성 어사가 회생한다면 말일세.”
괜찮은 생각이었지만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평소였으면 탕의 이름을 듣고 온갖 쓸데없는 드립이 떠올랐을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 씨 노인은 목간(木簡) 하나를 꺼내더니 약의 배합을 적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노인이 짓고 있던 책에 이 레시피가 올라갈지도. 역사가 크게 요동칠지 모를 일이었지만 이것 역시 아무래도 좋았다.
온 신경은 어사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온통 쏠려 있었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방황했던 이 중년의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듯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심정 또한 절절히 이해될 것 같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좀 무뎌질 줄 알았건만 내 실책이었네. 그 아이 얘기만 나오면 소년 시절의 눈빛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멈췄어야 했는데.”
“어르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세상일 치고 복잡하게 얽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어사출두 전 기운을 북돋으라고 해 줄 말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만약 내가 성 어사였다면, 그런 소리를 들은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권한을 이용해 복수심에 불타올랐을 것이다.
‘만약 내가 어사였다면…… 마패와 몽둥이 하나를 들고 관아 문을 박차고 들어갔겠지.’
그렇게 남원부의 모든 적폐를 ‘물리’적으로 뿌리 뽑고서야 발걸음을 한양으로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사의 병은 노인의 생각 이상으로 깊었고 춘향에게 품었던 마음은 그 이상이었다.
“자네, 양반의 신분으로 어사의 정체를 알면서 같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이 사람과 예사 관계는 아닐 것일세. 그렇지 않은가?”
“제 판단으로 말씀드릴 수 없고, 말씀드릴만한 관계도 아닙니다만…….”
“부탁이네. 노인네 마지막 소원이니 이 사람을 부디 많이 도와주고 방금 들은 비밀은 숨겨 주게.”
“알겠습니다. 그것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어사의 손발이 되기로 약조한 바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
주모가 방금 우물에서 떠온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유 서리의 표정은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어사가 다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낙담할 만도 했다.
김 갑사는 아예 대놓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솜씨 좋게 엮인 초립의 챙이 자꾸 그의 이빨에 짓이겨지는 모습이 보였다.
“긍게 저희 나으리가 그 염…… 아니지, 거시기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 사실인지라?”
“그렇네. 손들이 없으니 그렇게까지 돌려 말할 필요는 없네. 목소리만 낮추게.”
도호부가 설치된 큰 고을치고는 주막에 영 사람이 없었다. 김 갑사가 비워낸 장국밥 그릇 여럿을 치워내는 주모의 얼굴이 수심에 가득 찬 것을 보아하니 어제오늘 일은 아닌 듯했다.
“그건 그렇고 선비님, 그럼 어쩌지라? 조만간 출두가 있을 거라고 역참(驛站)마다 신신당부를 하고 와부렀는디요.”
“동강 난 마패로 잘도 해냈구만. 유 서리.”
“김 갑사가 뽑아놓은 범의 발톱을 가져다 마패에 난 자국에 맞춰보니 다들 안 믿고는 못 배겨냈당께요.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라?”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미 카운트다운 버튼이 눌려져 있었던 것이다.
어사는 처음 염병으로 혼절하기 전까지는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본인은 앓아누운 상태였고 얌생이가 역참에 역졸을 동원할 것을 요청하고 다닌 바람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느 동화에, 뜬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던 고약한 입담꾼을 처벌하려고 가벼운 깃털을 한 줌 동네에 뿌린 다음 그것을 전부 모아오라고 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딱 그 꼴이었다.
“나리께서 언제 자리에서 일어나실 줄은 모르나 할 일은 해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 갑사는 나리께서 명하신 것을 어찌 수행했는가?”
“시간이 조금 모자랐지만, 일단 운봉현에서 모아온 뜬소문을 듣고 사실인지 탐문을 하고 다녔습죠. 관아에서 보관 중인 화약이 사냥꾼들에게 알음알음 팔려나가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요.”
“그 돈주머니는 관아에서 따로 차고 있었겠지. 맞는가?”
“예. 화약 값을 따로 셈해 받는 것이 사또의 끄나풀이라는 증언을 확보했습니다요.”
왜란 때 흘러나온 조총을 쓰는 사냥꾼들에게 화약이 팔려나가는 모양이었다. 병기고에서 엄중히 보관되고 있어야 할 물건이었다. 호란을 겪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 꼴이라니, 현대인의 시각에서 봐도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유 서리도 한 손을 들었다. 역졸을 동원하려 역참을 돌다 들은 소문이 있다고 했다.
“지는 역참의 말을 부사의 비호를 받는 방납인들이 사사로이 쓰고 있다는 역졸들의 증언을 들어븟어야.”
“역참의 말이면 나라의 재산 아닌가? 여산군에서 군수 노릇 할 때부터 버릇이 나빴던 것이 틀림없네.”
코 밑에 불쾌함이 모이고 있었다. 양 진사에게 들었던 소문 이상이었다. 조선이 천천히 붕괴하고 있다는 암시는 밑바닥 수령의 행태서부터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랑게요. 그 방납인들에게 물건을 인수했다는 증서를 허위로 받아서는 한양으로 보냈다는 증언도 있었지라.”
“혹시 그 물건이 공상지, 그러니까 종이를 가리키는 말인가?”
“아따, 선비님, 우째 아셨쇼잉? 공부만 한 샌님이신 줄 알았더니 김 갑사 말대로 천리(天理)에 통달하신 분이시어부렀네.”
“띄워주지 말게. 남들보다 조금 관심이 많았을 뿐이네.”
하긴, 한 고을에서 뽑아먹을 레파토리가 무궁무진할 리가 없지. 파직당하고 골로 간 전 남원부사가 했던 짓거리를 현 남원부사 역시 똑같이 하고 있었다. 영수증 위조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었다는 깨달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다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음에도 수고했네. 그게 전부인가?”
“나으리께서 영광에서도 이 정도 부정을 가져다 수령을 파출(罷黜)시켰으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요.”
“아니랑게요, 나리께서 아직 누워계시기도 허고, 아직 전해 들은 소문을 다 검증한 것도 아닌디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지라.”
“유 서리. 왜, 전번에 들은 귀신 이야기도 검증하자고 선비님께 말씀드리지 그러나?”
어느새 티격태격하고 있는 둘이었다. 둘의 능력과는 별개로 원래 사이가 이렇게 안 좋았나 싶었다.
일단 김 갑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내가 아는 어사출두 케이스에서도 화약을 빼돌린 정도의 죄면 파직시키기에 충분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유 서리의 주장에 마음이 조금 더 가고 있었다. 어차피 어사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무엇이라도 하는 게 맞았고, 무엇보다 상황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선비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겠습니다요. 직접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지만 마음가짐은 훌륭하십니다요.”
“고맙네. 김 갑사. 그런데 귀신 이야기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 겐가?”
“별것 아니랑게요. 운봉현에 저희가 지나온 산길에서 귀신을 보고 변(變)을 당한 상인이나 양반이 꾸준히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라.”
산길? 귀신?
문득 짙은 눈썹이 아름답던 여인이 생각났으나 그녀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일리는 없다고 믿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변을 당하기는커녕 그녀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까. 고개를 흔들어 애써 떠오르는 얼굴을 털어냈다.
“그럼 오늘 나온 이야기는 내가 정리해서 나리께 올리겠네. 아직 해가 남아있지만 자네들은 쉬어야 할 듯하이.”
두 명의 눈 주위가 퀭하다는 것은 주막을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쉬긴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그건 지가 해도…….”
“어허, 쉬래도. 자네들마저 쓰러지면 일이 틀어질 걸세. 내일 해야 할 일도 있지 않은가.”
밥값을 받으러 온 주모에게 유 서리가 엽전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고 결국 은편(銀片)을 꺼내 손에 쥐여주는 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붓을 써본 적도, 한문으로 글을 적어본 적도 없었으나 선비의 몸에 남은 기억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었다. 어차피 어사가 일어나기까지 그걸 시험해 볼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주막에서 숙소까지 돌아오는 길 내내 유 서리는 조 노인의 집으로 가 어사의 얼굴이라도 보고 쉬겠다고 우겼다.
그걸 말리는 것은 김 갑사였다. 어사 나리의 몸 상태가 심각하니 회복에 전념하셔도 모자란다며 유 서리를 한 대 치기라도 할 듯이 내내 으르렁거렸다.
내가 보기에 회복에 전념해야 하는 것은 어사뿐만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숙소인 양 별감의 집 대문에 막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종들이 어깨짐을 지고 옮기는 물건 탓인지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별감 어른이 요새 관아에 덜 오셔서 모르시나 본디, 이깟 콩 가마니 장만한답시고 별급(別給)이 모자랐다가는 사또 나으리께서 가만 안 있으실 지도 몰라유.”
“이깟? 이…… 이놈이!”
마당에 쌓여있는 가마니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였다. 그 자리에는 집주인이 거주하는 사랑채가 있을 터였다. 뻐드렁니가 툭 튀어나온 왜소한 사내가 그 사이로 튀어나와 내 옆을 휙 지나쳐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저놈, 머리에 평정건(平頂巾) 얹고 다니는 거 보니 아전인가 본디, 미쳐부렀나.”
“별감한테 대드는 아전이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만. 선비님도 본체만체하는 거 보니 뒷배가 여간 튼튼한 게 아닌 모양이야.”
유향소 소속인 별감이면 지역사회의 유력자일 터였다. 중인인 아전이 감히 함부로 대할 자가 아니었다. 같은 아전 출신인 유 서리가 씹어대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감이 왔다.
“선비님, 너무 심려치 마시지라. 사람들한티 들은 말로는 형방 놈이 위아래 못 가리고 날뛴다던데 저놈이 그놈인 모양이랑게요.”
“고을 꼴이 정상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네.”
“저놈이 사람 하나 죽은 일을 묻었다는 얘기도 있던디, 내일 확인해봐야겠어라.”
싸가지 없는 것으로 끝날 작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무시당한 것은 크게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으나 좋지 않은 예감이 들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아직도 못 박힌 듯 선 양 별감에게 귀가를 알리려 인사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듯, 굳은 얼굴을 흔들어 방에 돌아가 보라는 양 별감의 의사를 전해 받은 것이 끝이었다.
김 갑사가 코를 고는 손님방에서 어사에게 올릴 글을 작성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붓을 쥐자마자 손이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쓱쓱 움직여 생각한 것을 한문으로 옮겨 적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일지도.
그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보고서를 쓰는 일은 금방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잠자리에 들고 나서도 세 사람이 누운 좁아터진 방에서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사의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닌 마당이었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