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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7화 (17/298)

17화. 소과 시험장에서

여름도 지나 더위는 한풀 꺾였다지만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자수원 마당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과유(科儒)들이 시험을 치르는 자리, 땀을 뻘뻘 흘리며 답안을 작성하는 선비들의 도포자락은 하나같이 땀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거기 수복(守僕)! 물 한 그릇 더 주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잘 통하는 재질로 된 옷을 입어봐야 소용이 없었다. 날이 덥든 말든 몇 겹이고 겹쳐 입어야 하는 옷차림이 문제였다.

땀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수능 시험을 치는 날에도 꼬박꼬박 때 이른 추위가 찾아오더니, 온도는 정반대지만 조선 시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소과 진사시 중, 최종시험인 복시를 치르고 있는 이 날, 날씨는 개같이 더웠다.

말없이 달려온 수복이 비어있는 그릇에 물을 가득 따랐다. 조선 유일의 국립대학인 성균관을 떠받치는 잡일꾼답게 일 처리가 능숙했다.

시험을 시작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은 찼다. 물이 식을 때마다 계속해서 새 우물물로 갈았던 것이 분명했다.

‘후…… 이제 좀 살겠네.’

한양의 내로라하는 영재들이 모인다기에 긴장했었지만 한성시까지는 수월했다. 소과의 초시를 담당하는 1차 시험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조흘강이라 부르는 예비구술시험부터 통과하지 못하는 자가 수두룩했으니까.

과거를 치려고 녹명(錄名)을 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제대로 된 답변을 조리 있게 구술해 과장(科場)에 설 수 있었던 사람은 일부에 불과했다.

공무원 시험에 허수 지원자가 몰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지도.

시험 내용도 일필휘지. 기본적인 사서오경의 내용 중 특정한 구절을 적고 해석하거나 간단한 시부를 짓는 것이 초시의 전부였다.

몸에 남아있는 선비의 기억이 훌륭했던 덕분이었을까.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시험지를 먼저 제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장바닥을 방불케하던 과장 문을 나섰었다. 중간에 약간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그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본, 예조 앞에 내걸린 한성시 통과자 명단에서도 내 이름 세 글자는 쉽게 윗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복시는 달랐다.

‘그 아저씨와의 지옥 강습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쉽진 않았을 거야.’

어사를 따라 한양으로 상경한 후에 바로 치러진 한성시였기에 사실 준비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한성시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리자마자 어사, 아니 성이성은 다시 한번 눈에서 불을 뿜었다.

‘마패 반납하고 장계 올리고 잠시 쉬라는 어명까지 받았으면 정말로 쉴 것이지. 왜 엄한 나를 굴려대? 망할 영감님 같으니라고.’

복시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마치 어사출두 전날의 기세로 경전에 대한 지식을 말 그대로 쑤셔 넣던 성이성을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했다.

‘세자 저하도 시강원(侍講院)에서 배우는 부분을 하루에 100회 독을 하는데, 과거에 붙겠다는 놈이 고작해야 20회 독으로 우는 소리를 내느냐? 10회 독 추가다!’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이 열다섯 글자가 왜 네놈 머릿속에서 빠져있는 것이냐! 엄한 법률만 세우면 백성들이 교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사질 하면서 배우고도 남원 땅에 놓고 온 것이냐?’

‘이 따위 답안을 제출하고도 내가 네놈 시권(試券)으로 쓸 종이 값을 내줘야 한단 말이냐? 종이가 될 나무가 울고 있겠다!’

‘어허! 신체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머리 또한 마찬가지지! 우는소리 하지 말고 한 글자라도 더 써라! 우는소리를 한 번 더 했다간 벌로 영(永)자 쓰기 일천 회를 추가하겠다!’

벌투, 아니 벌서(罰書)라는 말을 새로 창조해가며 나를 굴리는 성이성의 모습에서 문득 이글스 팀 출신 모 감독의 얼굴이 스쳐갔지만 그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부탁한 내 정의봉이 어느새 그 영감님의 손에 들려있었으니까. 성이성 역시 어사출두를 보고 그 몽둥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것이 틀림없었다.

“우욱…… 욱.”

물을 따라주고 멀어지던 수복의 발걸음이 도로 다가왔다. 손을 흔들어 별 일 아니라는 듯 내쳤다.

속이 안 좋아 나온 구역질이 아니었다. 기억이 끄집어낸 거북함이 목구멍을 넘어오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경전 내용을 답하고 해석하는 생원시 복시는 답안을 꽤 잘 꾸민 것 같았는데, 글짓기가 주제인 진사시는 막막하단 말이지.’

어떻게 답안지의 반 정도는 만족스럽게 채운 것 같았으나 무언가 애매했다. 그나마도 관리가 가져야할 청빈(淸貧)의 가치가 중요한 이유를 표현할 글을 짓는 것이라 그마저도 채울 수 있었다.

선비의 지식과 남원에서의 생생한 경험 덕분에 한계까지 끌어 쓴 것이 겨우 그 정도였다. 나머지는 분량을 맞춰 채우려면 채울 수 있었으나 그러면 고득점은 물 건너갈 것이 뻔했다.

‘생원시만 통과해도 괜찮지 않나? 이 정도면 유종의 미를 거뒀다 봐도…….’

그렇게 시험을 접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스며 나온 고통에 팔꿈치가 찌릿했다. 잠시 스쳐 간 것에 불과했지만 단기간의 혹사에서 비롯된 통증이 분명했다.

하숙방에 먹물로 시꺼멓게 물든 연습지들이 과장 조금 섞어 내 키만큼 쌓였을 터였다. 그렇게 통증과 함께 떠오른 악마의 얼굴은 시험을 그만두려는 생각을 오히려 반으로 접어버렸다.

‘이렇게 혹사당하다가 팔꿈치 터지는 거 아냐? 토미 존 수술도 없는 시절에…….’

훌륭한 목민관이 되려면 몸을 갈아 넣는 것은 미덕이라며 한시도 갈굼을 멈추지 않았던 악마였다.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어? 목민관?’

그 순간, 머릿속에서 시구 하나가 번개같이 떠올랐다. 김 교수에게 제출했던 소논문 맺음말에 인용했던 후대인의 시구였다.

***

덕분에 답안지 작성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듯했으니까.

끄트머리에 내 본관과 인적사항이 적혀있는 부분이 봉해진 시권을 시관(試官)에게 제출하고는 상쾌한 마음으로 성균관을 박차고 나오는 걸음이었다.

단기간에 하도 써댄 탓에 팔꿈치 아래는 얼얼하고 손끝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으나 이제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시험 끄읕! 합격이면 좋을 것이나 아니어도 아무래도 좋을 기분이었다.

“끄으으으…….”

체통 없이 손깍지를 끼고 팔을 쭈욱 올려 기지개를 펴면서 이상한 소리를 한껏 흘려내고 있을 때였다.

외부인 반촌으로 통하는 성균관 정문, 신삼문 앞은 시험을 치고 나오는 이들의 가족과 주인을 기다리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마중 나올 사람이 없네.’

목적지인 성이성의 집까지는 별로 멀지 않았다.

그는 관리들이 모여 거주하는 북촌에 살고 있었으니 현대로 쳐도 멀어봐야 성균관대에서 안국동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 길지 않은 거리를 걸어가야 할 일이 갑자기 막막해졌다.

우울한 얼굴이든 웃는 얼굴이든, 다른 사람들은 마중 나온 가족이나 노비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내 처지가 갑작스레 확 떠올라 버린 것이다.

갑자기 조선 시대에 덜렁 떨어진 처지가 실감이 났다. 괜히 눈가가 간질간질해 조 노인에게 받은 갓으로 눈가를 가리려 고개를 숙일 때였다.

“선비님! 여기입니다요! 여기!”

여기 있을 리 없는 사람이 마중 나와 있었다. 텁석부리 김 갑사였다.

그 모습을 보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힘이 실렸다.

“자네가 왜 여기…….”

“우리 나으리께서 이런 것까진 신경 못 쓰실 것 같았는데 딱 맞았습니다요. 일단 이것부터 드시고 말씀하시지요.”

입 안으로 무언가가 쑥 들어왔다. 끈적한 식감과 희미한 단맛이 났다. 엿이었다. 김 갑사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고맙네.”

“거 참, 선비님은 감정이 너무 풍부하셔서 탈입니다요. 저도 오랜만에 어사 나으리도 뵙고 쉬는 동안 있었던 일도 말씀 드릴 겸 같이 가려고 나왔습죠.”

다시 눈가가 간질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꾹 참고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예의를 차린답시고 반걸음 뒤를 따르며 걷는 김갑사였다.

한양까지 오는 길에 천민 출신이라는 비밀을 들었을 정도로 김 갑사와의 거리는 가까워져 있었다. 때문에 오늘은 김 갑사가 무과 타령을 해도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귀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선명했다.

“몇 달 만에 보는 가족일 텐데 왜 나 같은 사람 마중이나 나왔는가? 저번에 얘기를 들어보니 아내와 자식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어휴, 선비님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죠. 저는 그놈의 마누라가 범보다 더 무섭습니다요.”

“이해가 안 되는구만.”

아내의 얼굴이라도 떠올린 모양이었는지 김 갑사가 마치 말이 하는 것처럼 푸르르 소리를 내며 온 몸을 떨었다. 얼굴빛이 창백했다.

“어휴, 혼인 안 한 사람들은 모릅니다요. 생각만 해도…….”

“그럼 나더러 혼인을 하지 말란 말인가.”

“그런 마음이 굴뚝같지만 대는 이어야 합죠. 대를 이어도 되는 몸이 아니었다면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내뱉고는 홀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요.”

총각 시절에 이미 마누라가 있던 친구가 혼인하지 말라고 푸념하던 것을 들어야 했다고 한숨을 쉬며 김 갑사가 말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혼인하지 마라…… 진심이다…… 라고 중얼거리던 친구에게 이유를 물으니 그냥 하지 말라며 진한 욕설이 날아왔다고 했다.

“그 정도인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네.”

“선비님도 열아홉이면 혼기가 꽉 차셨는데, 곧 아시게 될 것입니다요. 어사 나으리께서 배필을 찾아주실지도 모를 일입죠.”

“한양에서 과거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나리 덕분인데, 이 이상 민폐를 끼칠 수는 없네.”

녹명소에 제출할 보단자(保單子), 그러니까 신분 보증서를 써 준 사람이 귀찮은 일을 해준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 말은 둘러대기 위한 목적이었고,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현대적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 내 나이면 노총각의 범주에서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사실에 입이 딱 벌어져 있었다.

“유 서리가 그러던데, 어사 나으리 말씀으로는 선비님이 생원시를 아주 잘 보셨다고 했습죠. 어린 나이에 소과를 통과해서 백패(白牌)를 받아 놓으면 좋은 혼처는 알아서 굴러들어올 것입니다요.”

“생각도 못 했던 일일세. 아직 붙지도 못한 일이니 설레발은 그쯤 하게나.”

“끄응…… 제가 뵌 선비님은 양반님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신데, 그런 분이 소과 정도를 못 통과하시겠습니까요? 걱정 마십쇼.”

뒤를 따르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김 갑사의 말에 조선 시대에 홀로 떨어졌다고 느끼던 외로움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성균관을 둘러싸고 있는 반촌을 넘어 북촌과의 경계로 진입하고 있던 때였다.

“김 갑사. 저 꼬마 놈들, 무엇을 하고 있는 겐가?”

“잘 모르겠습니다요. 살펴보시겠습니까요?”

해거름이 지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늘진 형태에 불과했으나, 김 갑사와의 대화에 빠져있던 귓가를 비집고 들어온 소음은 그 사태를 명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개천가에서 어린아이 여럿이 다른 아이 둘을 둘러싸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아이 하나의 손에는 빨랫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무언가 놀림을 받고 있는 것도 같았다.

“저 상노무 시키들. 버릇없이 지들끼리 따돌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구만요.”

놀림 받고 있는 아이 중 하나는 보퉁이를 들고 검은 복건(幅巾)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남은 한 명의 옷차림은 아녀자의 장옷 차림이었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손목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보니 둘은 오누이 같았다.

“저놈들, 덩치는 큰 아이 둘이 반항도 못 하고 있으니 신이 나서 놀리는 모양인데, 어떻게 할 깝쇼? 제가…….”

“김 갑사가 나서지 말게. 내가 하겠네.”

“선비님께서 저런 놈들 혼내실 필요는 없는뎁쇼…….”

“자네가 힘을 잘못 줬다가는 어린 뼈가 버티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자네의 힘을 자각하게.”

덩치 큰 사람끼리 공감이라도 했는지 김 갑사는 이미 편들어 줄 생각부터 가득했다. 몸부터 앞서기 시작한 김 갑사를 막아서야 했다. 애들 싸움 말리려다 치료비 물어주는 수가 있었다.

“이놈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누가 시비 거는데?”

“아, 뭔데?”

등을 돌린 채 중얼거리는 말투를 보아하니 양반집 아이들은 아니었다. 하긴, 집 안에서 종아리 맞으며 갇혀 살 놈들은 저렇게 무리지어 다니지도 못 하지. 상놈 자식들, 어쨌든 잘 만났다.

현대에 살아갈 때는 골목에서 담배 피우는 중고딩들을 봐도 몰래 돌아가기 일쑤였다. 뭐라고 해도 들어먹을 것 같지도 않았고 시비가 붙으면 법적으로 봐도 나만 손해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연장자가 연소자를 혼내는 것은 참교육으로 통용되는 시대다. 그리고 내 옆에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전투력 덩어리 김 갑사도 있다.

“이놈들! 집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길래 양반 무서운지를 모르고!”

한 번 더 배에서 힘을 끌어모아 호령했다. 그제서야 이쪽을 돌아본 놈들의 눈에는 당혹감이 맺히기 시작했다.

“야, 야. 진짜 양반이다! 튀어!”

잠시 얼이라도 탔는지 멈춰있던 놈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내빼는 놈들을 잡아 올까 하고 김 갑사가 물었으나 말렸다.

“잡아와서 종아리라도 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요?”

“어차피 우리가 계속 이곳에 머물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종아리를 쳐 봐야 그 화는 괴롭힘 당하던 저 아이들에게 다시 향할 뿐일세.”

왜 학교폭력과 상담 수업에서 배우던 게 여기서 떠오르는지. 어쨌건 이론에 입각한 대처였으니 뜻을 꺾을 생각은 없었다. 김 갑사도 금방 뜻을 굽혔다.

“얘들아. 무슨 일이냐. 잠시 이리로 와 보거라.”

궁금한 점은 따로 있었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은 양반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감히 상놈들이 몰려다니며 괴롭힐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잔반이 생기고 있었던 시절이니 가능성은 있었으나 한양, 특히 북촌 땅에 관청에 근무하지 않은 잔반이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

‘이상하다. 관청에 근무하는 관리의 자녀를 함부로 괴롭힐 간이 튀어나온 놈들은 없을 것일 텐데. 여종이 있을 터인데 빨래를 하러 나온 것도 이상하고.’

그 의문은 두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고서야 풀렸다. 곧바로 다른 의문이 바로 뒤따라 붙었지만 말이다.

다른 것들은 평범한 조선인의 것이었으나 얼굴이 그렇지 않았다. 도령의 눈과 머리칼은 평범했으나 뒤에 따라 선 누이의 그것은 이 땅에 있을 리 없는 색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장옷 사이로 삐져나온 그녀의 머릿결은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호기심을 가득 담아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조선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새파란 바다색이었다.

‘뭐야? 이 시대에 웬?’

※ 작가의 말

1. 성이성이 주인공을 갈구는 부분 중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는 논어에 나오는 이 구절입니다.

子曰 道之以政하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법률 제도로써 백성을 지도하고 형벌로써 질서를 유지시키면,

백성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되 형벌을 피함을 수치로 여기지 아니한다.

2. 저 시기에 금발벽안을 실제로 가졌던 자가 기록상 조선 땅에 딱 한 명 있었습니다.

셋이 조선으로 들어왔으나 호란을 겪고 하나로 줄었죠.

기록으로도 일남 일녀를 남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3. 소과 초시를 한양에서 치면 한성시, 지방에서 치면 향시가 됩니다.

소과 복시는 한양에서 전부 모여서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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