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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1화 (21/298)

21화. 박 초관 댁 과외선생

“이렇게 대접까지 잘 해주셨는데 제가 어찌 듣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그때와는 사정이 달라졌긴 한데, 혹시 우리 요운이를 가르쳐 줄 수 없겠소?”

어쩐지 하오체와 존대가 이상하게 섞이고 있더라. 이 시간에 아이가 의관을 차려입고 집안을 다닐 이유도 없고.

“사정이요? 그리고 제가 감히…….”

“부탁드릴 분이 유생 양반밖에 없다오. 서당이나 사부학당을 보내려 해도 이놈에게 물려준 내 피 때문인지 놀림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기 일쑤니…….”

“아…….”

짐작이 갔다. 놀림 받는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도 보퉁이를 손에 든 채였다. 아마 책보퉁이였겠지.

“정말 소생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소리요, 그게? 양시도 드문데 생원시 진사시 모두에서 장원을 차지했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 했소. 솔직히 말해서 입격자 발표 전에 미리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지경이오.”

“예?”

“훈련도감에서 받는 녹봉만으로는 하사받은 이 낡은 집을 유지하고 애들 행색이나마 꾸며주는 것도 벅차다오. 그렇다고 내게 줄을 대는 자도 없으니 수입이 넉넉할 리가.”

하긴 집이 꽤 외진 곳에 있긴 했다. 노비를 두긴 한 건지, 이 작은 집은 박연의 왁자지껄함과는 다르게 조용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머무는 성 영감집도 당상관 집 치고는 굉장히 소박했다.

‘녹을 덜 주고 관리를 갈아 넣으니 그렇지. 망할 헬조선.’

“이런 상황이니 선생이 백패를 받기 전이었으면 모를까, 소과 쌍장원 출신에 곧 성균관에 들어갈 분을 글공부 선생으로 붙이면서 만족스러운 수업료를 지불할 수 있겠소?”

“그렇게 수업료가 비쌉니까?”

“아무것도 몰랐소, 선생? 성균관 유생 출신이면 부르는 게 값인데?”

어느새 내 호칭은 선생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긴, 조선 유일의 국립 대학생들인데 얼마나 그 몸값이 비쌌겠는가.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고 아무 초시 나부랭이 글선생을 붙여봤더니 요운이 얼굴을 보고 불쾌한 빛을 띠질 않나. 그런 자들에게 요운이를 맡길 생각은 없다오. 안 선생! 제발 부탁이오! 이렇게 부탁하겠소!”

박연은 아주 머리를 마루에 댈 기세였다. 괄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노란 상투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드십시오. 나리! 저 같은 말단 서생에게 관리가 함부로 머리를 숙이시면 아니 됩니다.”

“안 선생 말고는 우리 요운이가 제대로 배울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소. 내 씨를 타고 태어나 수난을 당한 것도 불쌍한데, 그 때문에 하고 싶은 글공부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요운이를 보는 내 속이 어떻겠소? 부탁이오!”

머리를 숙이고 있는 아비의 옆에 무릎을 꿇은 도령의 입술도 꽉 깨물려져 있었다. 눈가가 붉어진 요운을 보는 마음이 복잡했다.

“내 주상 전하께 입은 은혜만 아니었어도 홍이포를 몰고…….”

“이쯤이면 됐습니다. 초관 나리. 제가 맡겠습니다.”

“정말이오?”

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만 든 박연의 눈은 옅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희망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드님, 제가 가르쳐보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선생 같은 이가 가르친다면 우리 요운이도 일취월장할 것이 분명하오.”

“수업료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사람의 세 가지 기쁨 중 하나라 하였습니다.”

첫 과외는 비싸게 안 받는 게 룰이긴 하지.

지금 같은 시대에는 이름값만 가지고도 비싼 돈을 받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내가 숱하게 과외를 하며 세운 스탠다드는 그렇지 않았다. 돈값도 못하는 과외선생이라는 말은 자존심상 죽어도 듣기 싫었으니까.

“그래도 성균관 유생이 아니오. 하물며…….”

“다행히 제가 먹고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고, 성균관에서 필요한 물품 일속도 모두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적당히 사소한 성의만 보여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말로 그 정도면 되겠소? 생각해보니 드릴만 한 게 있긴 하오만…….”

“제가 잘 가르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입소문이나 내주시면 족합니다. 그거면 됩니다.”

어쩌다 보니 임금이 내려준 성은을 내리사랑으로 나눈 모양새가 되었네.

그 이야기를 듣고 상체를 벌떡 일으킨 박연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동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다짐해 둘 것은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제 수업은 꽤 혹독합니다. 그걸 버티지 못하면 이 일,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조건이었다.

현대에서도 내 과외 스타일은 상당히 빡세기로 유명했다. 아마 출신 때문일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외 의뢰가 계속해서 들어왔던 건 결국 성과를 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과정을 덮을 수 있다. 내 과외 지론이었다.

‘생각해보면 성 영감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네.’

관직이 정삼품을 찍었으니 마땅히 영감이라 불려야 할 분이었으나, 영감이라는 말만 들으면 질색하던 전 어사였다. 영감님이라는 호칭과 특유의 스파르타식 코칭이 내게는 자꾸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건 중요한건 아니고.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소. 이 녀석도 웬만한 각오를 하고 길거리에서 만난 선비님에게 글공부를 배우고 싶다고 떼 쓴 것은 아닐 것이오.”

그날 요운이 보인 태도가 완전히 이해됐다. 누이와 닮지 않은 줄 알았더니, 그런 부분은 또 닮은 것이 남매다웠다.

“제가 어찌 유생님께 토라도 달겠습니까. 스승으로 모실 테니 가르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좋네. 그런 마음가짐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진도는 어디까지 떼었는가?”

“소학을 다 읽었긴 한데, 제대로 배우지 못해 해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긴, 독학으로는 한문 경전에 담긴 뜻을 한 번에 제대로 해석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조선 시대 선비들에겐 뜻이 통할 때까지 읽고, 읽고 또 읽는 것이 유일한 자습법이었다. 그러다 다른 선비를 만나면 이해한 바를 서로 통해보고 그제서야 답을 맞춰볼 수 있었다.

‘무식하다, 무식해. 나라의 식자층이란 자들이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를 하면 어떡하나. 하긴 그랬으니 해석이 서로 갈려 모시는 스승마다 학파라는 것이 생기고 붕당의 원인이 되었겠지.’

남원에서 어사에게 테스트를 받을 때 어사가 가장 놀란 점도 그것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했을 것이 뻔한 시골 선비가 경전의 글귀를 해석하는 것이 청산유수와 같았으니. 물론 세세한 부분 중 모자란 점도 있어 한양에 올라오자 신이 나게 굴러야 했지만 큰 맥락은 잡혀 있었다.

이 몸의 원 주인 역시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근성 그 자체의 사나이였기 때문이었다.

떠오르는 경험마다 경전을 읽는 기억으로 가득했을 정도였다. 100회독이 안 되면 150회독을 하고, 그게 안 되면 200회독을 하는 근성가이였다.

‘현대에서 그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아니지 고시도 붙었겠다. 덕분에 소과는 쉽게 뚫었긴 한데,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그런 근성을 요구하는 건 무리지.’

“좋네. 소학은 모든 경전의 입문이며 인간교육의 절대적 원리이니 그것부터 확실하게 매듭짓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감사합니다, 스승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야. 벌써부터 기뻐하지는 말게.”

요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하지만 그걸 보는 내 마음은 그렇게 환하지만은 않았다. 녀석이 해야 할 고생이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정리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자네의 부친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내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 역시 한빈한 가계에서 태어나 선친께서 뼈를 갈아 뒷바라지해 주는 것을 받아먹고 이렇게 소과까지 통과할 수 있었지. 그 때문에 박 초관 어른이 더 고생하는 일을 보기가 마음에 짐이 된단 말일세.”

종9품 말단 무관인 박연의 녹봉이 얼마나 되겠는가?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해봐야 한 해에 쌀 열 섬 내외일 것이었고, 반대로 책값은 더럽게 비쌀 것이었다. 요운이 앞으로 무수히 배워야할 유교 경전들을 박연이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할 것인가? 구할 수 없으면 자급자족해야지. 영웅은 공부 따윈 안 한다는 말은 양산박에 틀어박힌 도적놈들의 자위에 불과했다.

“자네가 소중히 들고 다니는 소학 책, 박 초관께서 얼마에 구하셨는지 알고 있는가?”

“……부끄럽지만 모릅니다. 아버님께서 기뻐하시며 아무것도 묻지 않고 사다 주셨던 터라…….”

하……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느 시대든 아버지들은 똑같은 모양이었다. 하긴 처음 보는 선비에게 머리를 숙일 정도였으니 자식 사랑이 얼마나 지극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리, 얼마에 구하셨는지 요운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상면포 두 필이었소. 다른 책들은 그 가격의 배는 나갔지. 중용 같은 책을 구하려면 이번 분기에 광흥창에서 받을 쌀을 전부 털어 넣어도 모자를 것이오.”

말은 먼저 꺼냈으나 상상도 못 한 책값에 오히려 내 턱이 딱 벌어졌다. 부모가 빌려다 준 책을 베꼈던 이 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책값이었다. 현대식으로 생각해 봐도 공무원 연봉의 사 분의 일이면 여간 큰돈이 아니었다.

앞에 앉은 요운은 이미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책보퉁이를 부둥켜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알겠는가? 자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승님! 혹시 가지고 계신 것이 있다면 반드시 빌려주십시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다행히도 제자의 머리는 총명했고 눈치 또한 빠른 모양이었다. 남원에서 나를 보던 어사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요운에게 책을 필사시킬 생각이었다.

경전의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뿐만 아니라 한문 표현이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어 글을 짓는 실력을 올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작가 지망생들이 문장이 좋은 작가들의 글을 필사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내가 가르친 부분을 따로 정리한 것도 필사하게 시킬 것이었고. 한 권은 그대로 필사하고 한 권은 스스로 개념노트를 만들면 내용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겠지.

설명을 들은 요운의 얼굴이 밝아지고 있었다. 녀석이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솜씨가 좋다면 나중에 낼 참고서의 기본 틀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싼 값에 과외해주는 건데 조교로 자료정리 일이라도 시켜서 뽑아 먹어야지.

“지필묵이 모자라면 내가 따로 구해주겠네.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에게 지필묵을 아낀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으니.”

“감사합니다, 스승님. 이 은혜를 도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솔직히 말해서 과외를 받는 사람이 이렇게 열심이면 없는 것이라도 하나 더 쥐어주고 싶은 것이 선생 마음이었다. 거기에 박연의 지극한 마음까지 겪었으니, 반칙이었다.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단순히 그런 말랑말랑한 마음만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책값이 그렇게 비싸다는 얘기를 듣고 코에 돈 냄새가 확 풍겼다. 임금이 내려준 재물도 큰돈이었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도모해보기에는 한참 모자란 돈이었다.

아직은 머릿속의 망상에 불과한 계획들이 막연하게 부실한 청사진을 뽐내고 있었으나, 그 첫걸음에는 분명 상당한 양의 재물과 연줄, 인맥이 필요함이 분명했다.

장원이 적힌 백패 두 장은 꽤나 인지도 높은 브랜드가 되어줄 것이었다. 대과에 급제하면 그 브랜드의 가치가 더해질 테니 공부를 놓아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홍패와 어사화를 내려 받고 안 선생 브랜드가 최고점을 찍었을 때, 팔 수 있는 상품은 미리미리 준비해야 했다.

‘아니 그래도 입고 있는 속곳을 팔라니, 선비로서 할 짓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이만큼 더 드리겠습니다요!’

‘나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 겐가?’

‘안된다굽쇼? 마지막…… 마지막입니다요!’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유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데려온 상인에게, 이미 안 선생 브랜드는 일시적이지만 비싸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냄새나는 속옷 한 장을 사려 달려들던 장사치는 목숨이라도 건 듯했다. 냄새가 남아 있을수록 진품으로 여겨진다 했다.

비어있는 아랫도리가 휑한 것이 더 절실히 느껴졌다. 가지고 있던 속잠방이가 전부 쌍장원 입격의 특효랍시고 부적으로 비싸게 팔려나간 터라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몇 겹이나 속옷을 겹쳐 입는 한복 특성상 작은 속옷 하나 빠졌다고 겉으로는 티가 안 날 것이지만.

‘짭짤했으니 그걸로 됐지 뭐.’

기왕 요운에게 기본서와 개념노트를 만들게 할 계획이었으니 오답노트까지 만들게 할까. 그 생각이 마침 뇌리에 닿았을 무렵이었다.

“안 선생, 이렇게 큰 은혜를 입어도 되겠소? 이건 마치 선생이 우리에게 더 베푸는 것 같지 않소?”

“나리를 뵈니 선친께서 제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것이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감사하실 것이면 그 분들께 해주십시오.”

“내 평생 이 일을 잊지 않겠소. 선생을 가족과 같이 대할 것이오.”

“그러면 저도 감사하지요. 자제분의 근성을 보아하니 초관 나리의 정성도 전해졌을 것 같습니다.”

“고맙소. 헌데 그 근성이란 말은 무엇이오? 처음 듣는 말인데.”

아차, 생각에 심취하느라 엉뚱한 말이 튀어나가고 말았다. 일본어 곤조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 단어였으니 지금 시기에는 없을 말이었다.

“뿌리 근자에 성질 성자를 써서 보통은 부정적인 본성이나 마음가짐을 뜻합니다만, 저는 흙에 뿌리를 박고 끈질기게 버티는 나무가 떠올라 끈기나 의지가 강한 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곤 합니다.”

“호오. 처음 듣는 표현이지만 나도 마음에 드오. 훈련도감 군졸들한테는 안 선생이 말한 근성이 부족하지. 내일 등청하면 한 소리를 해야겠소.”

애써 둘러댄 말이었지만 박연은 그 단어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랫사람 굴리고 싶어하는 건 시대를 초월해 공통인가하고 쓴웃음을 짓던 차였다.

“아버지! 나도 그 근성! 할래요!”

생각도 못한 목소리가 방문 쪽에서 들려왔다.

이제 익숙해진 금발이 발랄한 소녀의 머릿가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잔뜩 흥이 오른 모양인지 투명한 피부가 발갛게 달아오르고, 몰아쉬고 있는 숨 탓에 눈가에 자리한 눈물점 하나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요안! 사내들끼리 할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저도 요운한테 배워서 오빠만큼은 한문 쓸 줄 알아요. 언문도 쓸 줄 알고요. 글씨는 제가 요운보다 더 예쁜걸요. 책 베껴서 파는 게 도움이 된다면 저도 할래요!”

“이 녀석, 네가 낄 자리가 아니래도!”

기억났다, 저 눈빛. 처음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날도 저렇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이 반대하는 일을 억지로 이길 수는 없을 일이었다.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하지만 내 입에서는 생각과 정반대의 말이 나가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한 명 가르치는 품이나, 두 명 가르치는 품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집 밖에 알려질 일도 아니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시지요.”

“아니, 안 선생.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 정말인가요? 저도 해도 되는 건가요?”

그룹과외의 평균 단가가 개인과외보다 싸긴 했다. 게다가 배우고 싶다는데 가르치지 않는 것도 무언가 양심에 걸리는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주둥이가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술을 익힐 때도 서로 합을 주고받을 경쟁자가 있어야 빠르게 늘지 않습니까. 끝까지 저 마음이 간다는 보장도 없는데 일단 시켜보시지요.”

“그건 그러하나…….”

“아버님, 요안이 옆에서 도우면 도움이 되긴 할 것 같습니다.”

“너는 가만히 있거라.”

오라비가 편들어주고 있음에도 박연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지는 중이었다. 고민이 깊은 것이 틀림없었다.

“저, 글공부 시켜주시면 집안일도 열심히 할게요. 몰래 빠져나가서 바깥구경도 안 할게요. 그러니 아버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한 번 믿어주시지요. 아드님이 베낀 책이건 따님이 베낀 책이건 가계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제가 책임지고 가르치겠습니다.”

“……방금 분명 안 선생이 책임진다고 했소? 그렇게까지 말하니 들으리다.”

박연은 미덥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떨떠름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날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한 마디가 평생 동안 나를 괴롭히게 되었으니.

※ 작가의 말

1. 이때보다 조금 후기인 현종 시절, 13과에 해당하는 9품 관원은 분기마다 쌀 2섬, 콩 2섬, 명주 1필, 포 1필을 지급받았습니다.

2. 중종실록에는 대학이나 중용 같은 책은 상면포 3~4필은 주어야 살 수 있다는 기록이 전해내려옵니다.

당시 면포 한 필의 시세는 쌀 7두, 즉 상면포 3~4필은 쌀 두 섬에서 세 섬 사이의 가치를 가졌는데

소학은 논어를 제외한 사서오경보다 필사 난이도도 비교적 쉬웠을 것이기에 호란 이후의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제 기준으로 합리적인 가격을 설정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비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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