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신래침학(新來侵虐)
성균관의 정문인 신삼문 앞에 도달한 시각은 햇살이 내리쬐는 이른 아침이었다. 진사시를 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박차고 나올 때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원래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 이 자리에 있었어야 했다. 지금 양어깨를 끌어내리는 무거운 짐을 들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성 영감 댁으로 날아온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성균관 재회? 학생회 같은 건가?’
편지 겉봉에는 장의(掌議)라는 낯선 직책이 적혀 있었다.
내용은 별것 없었다. 선진과 신참, 그러니 선배와 새내기의 친교를 다질 행사가 있을 예정이니 필히 참석하라는 것.
어차피 신입생 행사를 처음 겪어보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편지의 마지막 줄에 적힌 문장에서 풍기는 분위기였다. 반드시 필(必)자의 삐친 획에서 풍기는 묘한 오만함.
그것이 불길했다.
***
그 불길함은 정확히 맞아들어갔다.
대사간이 경고해준 말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었어야 했다. 해봐야 몇 살 위 선배들이 기나 죽이겠거니 생각하고 가볍게 들어간 자리는 생각보다 험악했다.
성균관 서재(西齋)에서 선후배끼리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는 상읍례(相揖禮)를 마친 직후였다. 아랫사람도 존중하는, 내가 아는 참된 선비의 자세에 알맞은 행사에 마음을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조선 시대의 신고식이 독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마 몽룡 시절의 성 영감도 이걸 겪었던 터라 나를 걱정했던 것이 아닐까. 성균관 유생들을 싸잡아 천둥벌거숭이라고 부를 만했다.
“이놈! 하늘 같은 선진(先進, 선배)들에게 바치는 물건이 고작해야 쇠고기 몇 근이란 말이냐!”
얼마나 평소에 좋은 걸 드시고 다녔으면 저 소고기를 싸구려라고 부를까.
슬슬 속에서 열이 끓고 있었다. 갑작스레 저놈들에게 소환된 탓에 과외 일정을 바꾸러 찾아간 날, 박연이 억지로 쥐여 보낸 소고기였다. 담긴 정성을 생각해보면 절대 저따위로 불릴 물건도 아니었고.
“네놈이 백정의 피라도 타고난 것이 아니냐! 고작 이런 싸구려로 신방례(新榜禮)를 면하려 들어?”
‘소고기가 뭐 어때서? 맛만 있겠구만. 저 혀가 돌아버린 새끼들.’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놈의 상판은 나와 나이 차도 별로 없어보였던 탓에 속이 더 펄펄 끓고 있었다. 아이 둘 셋은 낳은 것 같은 삭은 유생들도 흔히 볼 수 있던 자리였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놈은 딱 하나였고.
동쪽의 기숙사, 동재(東齋)의 장을 맡은 놈이라 했다. 그 오만한 필체의 주인공이 이놈이지 싶었다.
어느 권신의 아들이기에 연장자들을 다 제치고 동장의(東掌議) 자리에 올라있나 궁금했지만 그 호기심을 분노가 꾹 눌렀다.
“이놈들이 아직도 말이 없어? 집에다 혓바닥이라도 놓고 왔단 말이냐?”
어차피 대답할 생각도 없었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고 기름을 붓지 않으면 불길은 사그라들기 마련이었다. 옆에서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동기 역시 같은 생각인 듯했다.
퍽.
그때였다. 박연이 곱게 포장해서 들려 보낸 고리짝이 그놈의 발에 채여 하늘을 난 것은. 그 모습을 본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박연이 아는 백정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받아온 가장 좋은 부위였다. 보양식이니 선진들에게 먹이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라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와중에도 연신 당부하던 금발벽안 아저씨였다.
“이따위 것을 가져오고도 고개를 꼿꼿이 들다니, 버릇없는 놈이로구나! 소과 쌍장원을 했다고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어간 것이냐?”
나도 모르게 발에 채여 나동그라진 고리짝을 살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인 모양이었다. 동기가 서 있던 방향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저렇게 허세를 부리는 놈들에게 먹이를 주면 더 날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놈의 발에 차인 물건은 칭얼거리는 딸을 혼내면서까지 쥐여준 정성이었다. 소고기 먹고 싶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요안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갔다.
“쇠고기가 이따위 물건이라고 하셨습니까? 백성들은 특별한 날에도 먹기 힘든 물건이고, 주상 전하께서도 한 달에 한 번 유생들의 몸을 보하라고 특별히 내려주시는 귀한 음식입니다!”
“이제야 저 거만한 신참 놈이 입을 여는구나! 그러나 저런 우수마발(牛溲馬勃) 같은 잡육을 부엌에 들이는 자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쇠오줌과 말똥이 나을지도 모르지. 핫핫핫.”
건방진 새끼들, 누구보고 거만하다고 하는 건지.
다들 한 가닥 하는 가문의 아드님들이니 저런 쇠고기로는 성에 안 찬단 소린가.
성균관에 대해 품었던 이미지가 점점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하나는 문제 있는 인성 탓이었고 하나는…….
“우수마발이라 함은 쇠오줌과 말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균관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요?”
“뭣이?”
영감님, 코피 쏟으면서 공부하는 놈들이라더니 근성밖에 모르던 시골 선비보다도 아는 게 없잖아요.
“우수는 질경이를 가리키는 말이고, 마발은 말의 불알을 닮은 먼지버섯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둘 다 약재를 가리키는 말이고, 한유(韓愈)가 이것을 들어 비유한 까닭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 저 건방진…….”
“하찮지만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들이지요. 인재를 쓸 때 재주에 차등을 두어 적절한 자리에 등용해야 한다는 고사인데, 성균관씩이나 되는 곳에서도 이걸 지적하는 자가 하나 없는 것을 보니 나라 꼴이 이렇게 된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동장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말이 입 밖으로 쏘아지고 나서야 사고를 쳤다는 것을 직감했으나 속은 시원했다. 어차피 저런 놈들과 몸을 비비다 보면 언젠가 터졌을 일일 것이다.
“이놈! 야만적인 야인들이나 먹을 날고기를 가져와 놓고 아직도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저놈이 아직도 선진을 우롱하려는 마음을 먹은 것이 틀림없다!”
이젠 숫제 고기를 익혀오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고 있었다. 요리까지 해서 가져왔으면 식은 것을 먹으라고 하는 것이냐며 화를 냈겠지. 아랫사람 갈구는 레퍼토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뻔했다.
‘어디 대학 야구부 신고식도 이 정도는 아니었겠다.’
그렇게 카운터펀치를 세게 한 방 얻어맞더니 정신이 번쩍 들기라도 한 모양일까.
이제는 다대일로 기를 죽이기 시작하는 놈들이었다. 상대도 머리 좀 돌아가는 유생들이었으니 궤변과 날조는 한참을 끝도 없이 이어졌다. 자리를 함께하던 신입생도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였으니.
“자, 자. 이만 하십시다. 이 정도로 했으면 이번 신입생들도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서장의(西掌議)가 말하니 이쯤 하는 것이다! 성균관 재학 중에 또다시 오만방자함을 보였다가는 다음에는 이쯤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야!”
말빨이 안 되는 것을 깨닫자 이제는 이미 한참 동안 부모님 안부까지 현학적인 용어로 요리조리 물어본 새끼들이.
남원 부사의 생일잔치 자리에서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자취방 안에 얌전히 놓여있을 호피 복면과 정의봉이 너무나 그리웠다. 언젠가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 애써 다짐하며 화를 삭였다.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언젠가…… 언젠가 저놈들 뚝배기를 부숴 놓고 말 거다. 정의봉에 맹세코 반드시.’
***
신방례 자리는 어느새 진사 식당으로 옮겨가 있었다. 이제는 끓던 화도 정도를 넘었는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 난리를 피우고도 내가 손에 꼭 쥐고 있던 고리짝을 받아간 선배놈들이었다.
‘그 와중에 소고기는 챙겨? 하, 진짜 이게 사람새끼들인가.’
장작불 위에 석쇠와 솥뚜껑이 올라앉아 있는 마당에 서 있는 것은 나와 동기 단 둘뿐이었다. 그곳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싼 대청마루 위에 선진이란 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이쪽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어명이고 뭐고…… 아.’
임금이 내려준 밀지에 적혀있던 ‘다스릴 치’ 자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나.
개판인 성균관에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이 하나의 시험일지도. 그 생각을 하니 차가웠던 머릿속이 숫제 얼어붙기 시작했다.
기막힌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는 소고기는 어차피 안중에도 없었다. 그건 저놈들 입에 처넣어질 것들이고 우리 몫은 따로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문제는 신방례는 이것으로 끝이 아닌 모양이라는 것. 마당 한 가운데에는 큰 사발이 두 개 준비되어 있었다.
‘이건 해 봤는데…… 먹었던 게 조금 다르긴 하지만.’
소고기 냄새에 가려졌던 독한 소주냄새가 이제야 코를 찌르고 있었다. 비웃음을 입에 가득 문 동장의가 외치는 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신참 놈들은 들으라! 네놈들이 바깥에서 묻혀온 더러운 것들의 악취가 코를 찔러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다!”
썩은 구린내를 풍기는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일 테지만.
한층 더 동장의의 입술이 끌어올려지는 것을 보면서 속이 미리 뒤집히는 것이 느껴졌다.
“하늘같은 선진들이 자비롭게 그것들을 소독하고 씻어낼 약주를 내리니 성균관에 어울리는 깨끗한 속을 갖게 된 것을 모두 앞에서 증명하도록 해라!”
앞에 놓여있는 사발은 냉면그릇만 했다. 남원에서 마셔본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시대의 소주는 안동소주처럼 독하디 독한 증류식 소주일 것이 분명했다.
‘시X…… 그 때는 도수 낮은 막걸리였기라도 했지.’
동장의의 턱짓을 받고 섬돌 아래로 내려온 서장의가 사발에 넘치도록 투명한 액체를 따랐다. 봉인 해제된 독주에서 풍기는 독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머뭇거릴 수 없었다.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동장의 놈의 기분만 좋게 해 줄 것이 뻔했다.
단숨에 사발을 들었다. 엄지손가락에 찰랑거리는 소주가 느껴졌다.
“저 신참 놈! 기개 하나는 좋구나!”
“소주가 모자라겠다! 주모! 아니 비복에게 더 가져오라 일러라!”
“신진 분들께서 술이 부족하시단다!!”
“술이 쭉쭉 들어간다!”
‘개 같은 새끼들…… 아주 축제다. 그치? 조금 있으면 어깨춤도 추겠어?’
화끈한 액체가 연달아 목구멍을 넘어갔다. 잘 걸러낸 증류주라 그런지 부드럽게 넘어가고 있었으나, 그 술에 들어가 있는 알코올은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었다.
“우…… 우웩!”
옆에서 같이 사발을 비우던 동기가 쓰러졌다. 용케도 그릇을 놓치지 않아 술은 온전한 상태였다. 곁눈질로 남아있는 술의 양을 재보니 사발의 반 남짓을 겨우 비운 것이 분명했다.
“저 약해 빠진 놈을 봤나! 그러고도 풍류를 아는 성균관 유생이라 하겠는가!”
“당장 끌어다 신삼문 밖으로 던져라! 성균관 앞개울에 던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동장의의 눈초리는 한껏 표독해져 있었다. 성균관이 권신의 자제들로 가득 찼다 했으니 저 놈의 애비는 간신이려나. 여전히 독한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는데 옆에 쓰러진 유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괜…… 찮습니다. 소생은 아직…… 끅…… 멀쩡합니다.”
혀가 잔뜩 꼬여있었으나 기개 하나는 용감했다. 취해있었음에도 동굴같이 낮은 목소리가 훌륭했다.
아까는 조금 무시했으나 그래도 근성은 있는 자였다. 그러나 그렇게 용기를 보인 내 동기는 결국 남은 술을 반쯤 더 비우더니, 잠시 후 얌전히 사발을 내려놓고 모로 쓰러졌다.
콰당탕
고기를 굽기 위해 미리 옮겨놓았던 장작이 그의 몸을 받아내며 함께 무너졌다. 이러다 사람 잡으면 어쩌려고.
기억하기로 대학 OT에서 억지로 술 먹이다 어린 목숨 잡았던 적이 여럿이었다. 그러나 자칭 선진들이라 부르던 놈들은 염려는커녕 껄껄거리며 입술을 쪼개고 있을 뿐이었다.
“끄어억…….”
“저걸 다 비웠단 말인가?”
“저건 또 다른 미친놈일세.”
그와 동시에 내 사발도 전부 비워졌다. 눈앞이 살짝 흐릿했다. 아직 술기운이 완전히 몸에 돌기 전이었으나 경험상 곧 세상은 빙빙 돌기 시작할 것이었다.
문득 선비의 큰 체구에 감사했다.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같은 양을 마셔도 덜 취하고 빨리 깬다 했다.
“소생, 선진들께서 내리신 약주를 다 비웠습니다. 이제 또 무엇을 하면…… 딸꾹!”
“누구 마음대로 끊는단 말이냐? 네놈 동기가 못 비운 것을 마저 비워야 하지 않겠느냐? 속히 시행하라!”
저…… 새끼…… 꼭 죽인다. 고통스럽게 죽인다.
이제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는지 말끝에 딸꾹질이 묻어나고 있었으나 표독스러운 눈매를 한 동장의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신입생 하나는 밟아놓고 가겠다는 의지가 묻어나고 있었다.
동기가 남긴 사발을 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등에 핏줄이 돋아난 것이 보였다. 그대로 목구멍을 열었다.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사발에 있던 술이 실종된 것을 본 선배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일 숙취 확정이네. 썅.’
입대 직전 술자리에서나 느껴보던 취기였다. 흥분한 탓에 피는 혈관을 씽씽 돌았고 취기가 머리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흔들거리는 시야로 바라본 동장의 역시 아연실색해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이쯤이면 됐겠지 하고 마음이 풀린 순간 술병 하나를 들고 늙수그레한 비복이 진사식당을 들어섰던 것이다. 아까 정말로 술을 더 가져오라 한 것이 분명했다.
‘하아, 이건 꿈일 거야. 제발…… 더 마시면 내가 죽는다구요. 어허허…….’
더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근성을 쥐어짜낸 의지도 슬슬 한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투리를 신은 발이 균형을 잃어가는 몸 탓에 헛다리를 한 번 짚었다. 그래도 악으로 버텼다. 저 새끼들 앞에서 추한 꼴은 죽어도 보이기 싫었다.
“잘도 버티는구나, 이놈! 어서 술을 받으렷다!”
“소생…… 끅…… 다리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딸꾹.”
“그래? 그럼 내가 친히 왕림해 네놈 사발을 채워 주지.”
깜박거리는 시야 사이로 표독한 눈초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왜소한 놈이. 건들거리는 팔자걸음이 그놈을 더 역겹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어서 사발을 들지 못할까!”
사약도 이 정도로는 안 먹이겠다. 어릴 때 봤던 사극에서 입에 막대를 넣고 사약을 부어 넣는 장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장희빈의 입으로 흘러들어가던 사약의 양보다 지금 마신 소주가 훨씬 많을 것이 분명했다.
“이 신진 놈, 귀가 먹었나? 어서 사발을 들래도!”
‘아오 씨, 확…… 누구 아들 새끼인지 몰라도…… 학생회장이면 다인가.’
어느새 동장의는 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비열한 미소를 짓는 것이 얄밉다 못해 역겨웠다. 술병을 내 눈앞에서 천천히 흔들며 조롱하는 모습을 김 갑사가 이 자리에서 봤다면 저놈의 뼈와 살을 분리해 줬을 텐데.
신호가 온 것은 그때였다. 역겨운 얼굴이 눈앞에 바짝 들이대졌기 때문이 분명했다.
“이놈 얼굴이 왜 이래?”
목구멍을 넘어간 것이 용량을 초과하고 있었으니, 넘치는 것이 자연의 순리렷다.
“그…… 그만해! 미친놈아!”
그만하란다고 이게 멈춰지겠냐.
입에서 분수가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오늘 먹은 것이 없는 터라 그 액체의 색은 조금 노르스름했을 뿐 역겨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얼굴에 정면으로 받은 자의 기분은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었다.
끄억.
넘치는 내용물을 쏟아낸 위는 이제 내보낼 것이 없다는 듯이 괴상한 소리와 함께 공기를 뱉어냈다.
눈이 빙빙 도는 와중에도 보이는, 누렇게 물든 동장의의 얼굴이 우스웠다. 화를 내기는커녕 얼이 잔뜩 빠져 있었다. 간신배처럼 생긴 놈의 얼굴이 오늘 유일하게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저…… 저 미친놈 끌어내!”
재회, 그러니까 학생회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급한 지시가 터져 나왔다. 맞아. 네 놈들도 이 짓거리에 한 몫 단단히 끼었지? 다시 한번 치솟기 시작한 토 기운이 입안으로 올라왔다.
‘탄알 일발 장전이다. 시X 새끼들아!’
“어? 저 새끼, 이쪽으로 오는데요?”
“무엇이?”
한 번 토해내서 그런지 말을 듣지 않던 다리가 조금은 말을 듣기 시작했다. 왠지 남원에서 비틀거리던 어사의 다리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다리는 내 명령을 따라 천천히 목표물을 향했다.
참된 선비의 공격은 두 번 간다.
구웨에에에엑.
의식이 멀어지면서도 이름에 808이 들어가는 숙취해소음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레시피를 알고 있었으면 조선 시대에서도 떼돈을 벌었을 것이나 평범한 대학생인 내가 그걸 알 리는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 작가의 말
아마 시기가 인조 대이니 그 이후에 증축된 건물들, 예를 들면 탕평비각, 존경각, 육일각 등은 그 당시에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