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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46화 (46/298)

46화. 세자의 일시귀국

본래는 다른 유생들과 함께 서대문 밖 홍제원까지 세자를 영접하러 나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관원들 틈에 섞여 창덕궁 앞에 서서 세자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금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내려준다던 세자시강원의 관직에 맞게 미리 대접해주는 것이었을까.

어쨌든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 성균관이 쉰다며 좋아하던 충신과 좌명은 도성 밖까지 나갔다가 세자 행차를 뒤따라오느라 먼 길을 걸어야 할 터였다.

“정신 똑바로 차리게. 실수해서는 아니 되네.”

“알고 있습니다. 나리.”

정신 놓을 틈도 없이 옆구리를 푹 찔러오는 성 영감이었다. 그가 마치 내 목줄이라도 잡고 있는 듯이 옆에서 전담마크 중인 이유가 있었다.

죄다 사모에 관복 차림인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유건에 심의를 입은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했다가는 평소보다 열 배는 눈에 띌 것이 분명했으니까. 차라리 영감님이 옆에 붙어있어서 다행일지도.

그때였다. 멀리서 누군가가 단체로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아이고오.”

자진해서 나온 백성들로 이미 서대문에서 창덕궁까지 뻗어있는 가도가 메워졌다는 이야기는 이미 대사간에게 들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점점 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하!”

“세자 저하!”

저 멀리 가마 모양을 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울음소리 역시 그들이 접근할수록 점점 커져가는 중이었다.

백성들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망국에 준하는 치욕을 볼모로 대신 겪으며 고생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행차가 다가오는 모습을 본 관원들도 엎드리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이제 그들 사이에서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임금이 앓아누워 세자를 돌려줄 것을 청했음에도 원손과 다른 대군 한 명을 볼모로 받고 겨우 얻어낸 일시귀국이었다. 볼모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세자가 그런 방식으로밖에 돌아오지 못한 것은 한이 맺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통곡 소리는 이제 주위를 울리는 중이었다. 엎드려 곡하는 관원들의 등허리로 계절과 맞지 않는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난 조선 사람이 아니니 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다행인가.

“입술 그만 깨물게. 그러다 상하겠네.”

“하지만…….”

“두 눈 뜨고 똑바로 보게. 이게 이 나라의 현실이니까.”

옆에 있던 대사간이 어깨를 두드리며 오히려 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성 영감의 눈에도 핏발이 여러 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눈은 나와 같은 곳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얼핏 보면 가마를 탄 세자와 나란히 있는 것 같았으나, 청의 장수 복식을 한 자가 반걸음 앞서 행차의 선두를 걷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도 일국의 세자였다. 그 앞을 고작 호종하는 청나라 장수 놈이 앞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병자호란이 어떤 치욕인지는 수백 줄의 글로 배웠지만 지금 보고 있는 상황으로 느껴지는 것이 수백 줄의 글보다 더했다. 조선에 고작 반년 남짓 살았다고 그 모습에 이빨이 바드득 갈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러한 시국에 북방군 대접을 소홀히 한 자는 누구란 말인가. 근왕군을 맡은 도원수란 자는 어째서 남한산성이 떨어지는데 틀어박혀만 있었던 것인가. 세자가 분조한 강화도의 수비를 맡은 자는 어째서 홍이포 포격을 맞자마자 도망친 것인가.

X팔. 오랜만에 입에 담는 욕이었다.

그들의 허물이 그것뿐이었다면 내 어금니를 작살내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놈들이 여전히 높은 자리와 실권을 틀어쥐고 국고를 파먹는데 임금은 막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 꼬라지냐.

“저하!”

평정을 겨우 유지하던 성 영감도 결국 무너져 내렸다. 그럴 만했다.

가마의 지붕 아래로 엿보이는 세자는 눈썹이 짙었으나 전반적으로 유약한 인상이었다. 그런 세자가 남의 나라 사람 뒤를 따라 궁으로 다가오면서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괴로워 보였다.

금의환향 아닌 볼모의 일시귀국만큼 처량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마저 적국의 장수에 묶인 신세라니. 길가를 가득 메운 백성들과 관원들도 세자에게 위로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

울음은 창덕궁 안까지 전염되어 있었다. 왕과 고관대작이 모여 있던 양화당 안은 이미 눈물바다였다. 다른 백관들이 엎드려있는 양화당 앞마당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싸늘하던 능양군마저 옥좌 위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니 그 정도를 미루어 짐작 가능할 것이었다.

“아바마마, 기체후 일향 만강하셨사옵나이까……. 소자, 이 조선 땅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사온데…….”

말끝을 미처 잇지 못하는 세자였다. 그 모습에 중신들도 덩달아 눈시울을 붉혔다. 울음을 삼키는 꺽꺽 소리가 양화당을 몇 번이고 울렸다.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은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던 왕이 손짓으로 엎드린 세자를 옥좌로 불러 어루만지는 모습에 중신들 사이에서 통곡이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굳이 비극적인 역사의 한복판이 아니더라도 생이별한 부자의 상봉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것이었다. 현대인인 나조차도 감동에 젖어 눈가가 촉촉해져 오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에 초를 치는 놈이 하나 있었다.

“나 참, 임금이란 자는 왜 저런대.”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두 사람만 알아들었을 것이다. 청나라 말이었으니까.

아까 세자 앞을 걷던 청 장수 오목도가 뱉은 싸가지 반 토막 난 말이었다. 어차피 역관이 커버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말한 것이 분명했다.

“세자 저하께서 귀국하신 기쁜 날에 눈물로 몸을 상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나이다.”

“다시 볼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 저절로 슬퍼져 눈물이 나오는 것이라 전하라.”

말을 중간에 전하는 역관의 얼굴만 새하얗게 떠 있었다. 역관은 무슨 죄람.

그러나 표정이 변한 것은 역관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옆에 서 있던 대사간이 다시 팔꿈치로 내 갈비를 슬며시 눌러왔다. 고관대작들이 모인 자리였다.

“황제폐하께서 준비한 용포를 거절한 것이 고작 저런 자를 위해서라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것인가. 황제라면 청태종 홍타이지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고, 그 자가 소현세자에게 용포를 내렸다? 잠깐, 청국어로 용포랑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가 있었나?

“길이 험해 세자께서 황제께 내려받은 선물을 전부 지참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였나이다.”

“지참하지 못할 정도의 선물이라, 세자가 청국에서 예쁨이라도 받는 것이 아닌가.”

한참 혼란에 빠져있던 사이 역관이 어떻게든 훌륭한 통역을 해냈지 싶었으나 상대가 나빴다. 눈치 빠른 임금은 청국어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도 그 비꼬는 말투만은 알아듣고 있었다.

“참으로 전하의 홍복이옵나이다!”

“그렇사옵나이다, 전하!”

영의정 홍서봉이 뒤늦게 수습하려 애쓰는 모양새였으나 어느새 옥좌 위에는 방금까지 눈물 흘리던 임금은 실종되고 없었다. 평소의 의심병 많은 능양군이 세자에게 차가운 눈초리를 향하고 있었을 뿐.

세자가 험한 길을 넘어오는데 내의원의 주청에도 불구하고 어의조차 보내지 않은 왕이었다. 지금 치러지는 행사를 제외하면 세자를 맞이하는 모든 의식들마저 폐지했다. 종묘에도 세자의 귀환을 고하지 않았다.

햇수로 사 년 만에 돌아오는 세자를 이렇게 푸대접하면 안 된다는 대간들의 상소가 있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성 영감도 그 일로 야밤에 궁궐로 불려가 꽤나 고생을 한 것을 옆에서 본 터였다.

어째서 저렇게 훌륭한 눈치 스킬을 외교에 쓰지 않은 건지. 그랬으면 이런 치욕도 겪지 않았을 텐데.

“시강원 빈객 신득연, 앞으로 나오라.”

“예, 전하.”

“이전에 송별연 자리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한양으로 치계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대로 고하라.”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해진 신하 한 명이 나와 부복해 있는 세자 옆에 나란히 엎드렸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보니 예삿일을 고하려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전하…… 그것은…….”

“빈객은 어명을 듣지 못하였는가? 속히 입을 열지 못할까!”

엎드린 늙은이의 등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보고서를 한양으로 올렸길래 그 내용을 말하는 것도 저리 두려워하고 있는지.

“소신이 올린 장계에는 청 황제가 연 송별연에서 세자저하가 받은 안장과 명마에 대해 적혀있사온데…….”

“그것이 끝이 아니지 않느냐! 감히 나를 우롱하려는 것이냐?”

임금이 옥좌를 쾅 하고 내리쳤다. 어느새 양화당에 가득 차 있던 울음소리는 간데없고 팽팽한 긴장감만이 가득 차 있었다. 대소신료들이 눈알 굴리는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때, 옆에서 성 영감이 나직이 욕설 비슷한 것을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처음 듣는 이 양반의 욕지거리였다.

“청황제가 세자저하로 하여금 대홍망룡의(大紅蟒龍衣)를 입게 하였나이다. 전하. 하오나 저하께서는…….”

임금이 그의 말을 자르고 들어간 것이 확실했으나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았다. 홍타이지가 세자에게 왕의 상징인 붉은 곤룡포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 말에 놀란 것은 나와 일부뿐인 듯했다. 공식적인 장계의 형태로 보고했으니 그 문서가 거쳐 간 신하들은 알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왕이 이 정도로 대놓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공공연한 비밀이었을지도.

“세자.”

“아바마마. 그것은 국왕만이 입을 수 있는 장복임을 소자가 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단호히 거절하였사온데, 소자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시는 이유는 어인 이유이시옵니까.”

“거짓말하지 마라! 네가 정말로 그리 생각했다면 나를 보자마자 죄부터 빌어야 했을 것이다! 내 말이 틀렸단 말이냐?”

순 억지였다. 세자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남들이 다 보는 자리에서 왕의 곤룡포를 받아 입겠는가.

신득연의 발언에서 유추해보면 세자가 거절했다는 말도 장계에 올라가 있을 것이 뻔했다. 아무리 정변으로 세워진 왕이라지만 의심병이 도가 지나쳤다. 임금이 입고 있는 곤룡포의 색은 피로 물든 빛깔이기 때문인가.

“억울하옵나이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하! 소자는 그저 고향 땅을 밟을 생각에 바삐 걸음을 움직였을 뿐…….”

“시끄럽다! 네놈이 돌아오기 위해 원손과 인평대군이 대신 심양으로 가야 했지 않느냐! 그걸 알면서도 즐거워해? 이 고연 놈!”

아까까지 울며 세자를 어루만지던 사람과는 아예 딴판이었다.

더 괘씸한 것은, 대소신료 중 임금을 말리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성 영감이 염려하던 조정의 상태라는 것이 이것이지 싶었다. 왕과 세자의 사이를 갈라놓아 이득을 볼 자들은 누구인가.

내 옆에서 인기척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은 그때였다.

“전하! 신 대사간 성이성, 실례를 무릅쓰고 아뢰옵나이다!”

“대사간! 사간원의 상소로도 부족해서 또 할 말이 있는 것이냐?”

어느새 성 영감은 세자 옆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엎드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자를 그의 힘 있는 목소리가 보듬어 안는 것 같았다.

“지금의 자리는 나라의 경사를 논하는 자리이옵니다. 더구나 청국에서 온 귀빈도 있는 자리에서 이미 치계한 일을 다시 문제 삼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일이옵나이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지금 내가 끝난 일을 다시 꺼낸다는 소리인가, 대사간?”

“역적을 국문할 때에도 전후사정과 증거를 확실히 하고 죄를 물어야 온당하옵니다. 누구보다 전하께옵서도 문제를 삼으려거든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대사간!”

능양군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본인이 녹봉 비리 건을 같은 논리로 뭉갰으니 성 영감에게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일 것이다.

어느새 양화당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약 세자저하에게 죄가 있다면 천천히 논해도 될 것이옵나이다. 더욱이 만 삼 년 만에 귀국하는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다루기 적절한 주제도 아닌 것으로 사료되나이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자리의 흥이 다 깨져버린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대사간의 목숨 건 개입으로 그날의 자리는 겨우 끝맺어졌다. 참다못한 능양군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것이다. 그의 빈 옥좌 앞에는 웅성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나라의 두 기둥 사이가 갈라져 버린 것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라면 왕과 세자가 한 몸 한 마음처럼 움직여도 모자랄 것이었다. 그런데 도리어 임금이 세자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었다. 아무리 왕의 위치가 불안정해졌다고는 하나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날 본 광경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나았던 것은, 성 영감이 세자를 변호하러 임금 앞에 몸을 던졌던 덕분에 세자에게 끈이 닿았다는 점이었다.

그 끈을 타고 세자와의 독대 찬스를 잡은 것은 얼마 후였다. 세자의 귀국이 결정되자마자 겨우내 열심히 해왔던 숙제의 결과를 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작가의 말

귀국하는 소현세자를 맞는 백성들과 임금의 의상을 받았다며 분노한 인조의 일화는 고증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실록과 심양일기의 1640년 2월 18일부터 3월 7일까지의 기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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