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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51화 (51/298)

51화. 조선 스트레인지

간신답게 눈치는 빠른 모양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안 위에 놓인 종이들을 움켜쥐고 촛대에 손을 뻗는 김자점이었다.

“이게 어딜!”

예상된 행동이었다. 김자점의 손이 막 황초에 닿으려하는 찰나, 나는 미리 방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정의봉을 그의 손목에 내려치고 있었다.

“아…… 안 돼!”

“돼!”

갑작스런 빠따질에 간신의 손에 잡혀있던 종잇장이 나풀거리며 공중을 날았다. 새어나오기 시작한 신음소리는 소매에서 나온 재갈에 의해 금세 막혔다.

“내가 증좌를 인멸하려는 것을 두고 볼 것 같았소?”

손목을 붙잡고 뒹구는 자를 새끼줄로 결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반항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빠따를 내리쳐 뜨거운 맛을 보여주자 금방 조용해졌다.

포박이 완료되자마자 턱짓으로 대기하던 벗에게 신호를 보냈다. 충신은 그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미리 다가와 애비와 자식을 묶은 줄을 한 데 이어서 다시 결박하고 있었다.

발밑에 흩뿌려진 종이들은 서찰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승평부원군 김류의 이름이 들어간 서찰이 여럿이었고, 내게 빠따질을 당했던 전 남원부사 김효성이 보낸 서찰도 있었다.

가설이 맞았다. 형틀에 묶인 두꺼비 자식이 자신의 뒤에 있는 사람이 두렵지 않냐며 일갈한 이유가 있었다.

“권력에서 멀고 만만한 하급 관리들 녹봉을 빨아먹는 것이 그리 달콤하더이까? 백성들의 조그마한 간을 내어먹으면서 천벌이 두렵지 않더이까?”

“읍…… 읍읍!”

“금과 은이 뚝딱 나오는 것을 바랐다면 아랫사람들을 쥐어짤 것이 아니라 도깨비방망이를 찾으셨어야 했소. 이 몽둥이는 당신이 쥐어짠 백성들이 보낸 몽둥이요!”

남원에서 흘렀던 피눈물들의 뿌리는 이놈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분을 못 이긴 몽둥이질에 농짝 문이 박살 나 내용물이 드러났다.

그 안에도 증거로 삼을만한 서찰이 여럿 있었다. 다만 세곡과 녹봉을 빼돌린 정황을 담은 서찰은 이미 발견했으나 과거 시험 시관을 포섭해 부정시험을 치르려 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김자점과 그의 아들은 충신에게 맡긴 채 한참 동안 서찰들의 내용을 분별하던 때였다.

“가만히 안 있어?”

충신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미 제압당한 지 오래인데, 간신은 발 아래 깔린 채로 여전히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흐릿한 촛불이 김자점의 비단옷자락 아래에 깔린 희끄무레한 종이 한 장을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몸부림쳤는데도 멀쩡한 것을 보니 고급 종이가 분명했다. 놈이 몸부림치는 것은 이것을 가리기 위함이 틀림없었다.

***

정의봉에 볼깃살이 터지는 소리가 사랑방을 몇 번 울린 후, 충신과 나는 긁어모은 편지를 가지고 김자점의 집 담장을 넘었다. 성균관 담을 처음으로 넘은 날과 달리 오늘은 힘을 제대로 주어 넘겨준 충신이었다.

“푸하. 속이 후련하구만.”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언제 순라군이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이미 멧돼지 가면을 벗어젖힌 충신이었다. 그 성질에 목소리도 죽이고 갑갑한 가면을 쓰고 있느라 오죽 답답했을까.

그때, 멀리서 익숙한 사람 그림자가 하나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에 잠복하며 망을 보고 있던 좌명이었다.

“이 물건을 쓸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네, 성근. 일은 잘 마쳤는가?”

“목표로 하던 것은 다 얻었네. 이제 계획한 대로 다음 일을 위해 흩어지지.”

“여긴 자네 홀로 괜찮겠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는 좌명이었으나, 오늘의 습격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바뀔 리도 없었다. 충신은 이미 검은 옷까지 벗어놓고 심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 집 노비들도 깊은 잠에 빠졌는지 침입자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순라군만 조심하면 별문제는 없을 걸세.”

“알았네. 자네가 지시한 대로 기름은 잘 먹여놨으니 기루에서 보세나. 매제.”

“누가 자네 매제인가?”

내 반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강탈해온 서찰을 나눠 받은 좌명이 멀어져갔다. 새처럼 생긴 호루라기를 흔들며 웃는 것이 얄미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어깨에 와닿는 손 하나가 있었다.

“좋겠다. 우리 한수, 곧 성혼하겠구만?”

“무슨 소리입니까, 사형. 그럴 시간에 빨리 돌아가시기나 하십시오.”

내 등짝을 팡 소리가 나게 친 후, 내 손에서 서찰을 한 줌 빼앗고는 좌명의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충신이었다. 으이구, 이 마당에도 농담인가.

둘이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등짐을 다시 주섬주섬 펼쳤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이대로 넘어가면 서찰이 털렸다는 사실을 집주인이 은폐할지도 몰랐다. 적어도 그자의 패거리와 배후에 있는 자들을 압박하려면, 너희가 한 짓의 증거를 틀어쥐고 있다는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연출은 눈에 띄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어쩌면 김자점을 탓하며 자기들끼리 갈등이 벌어질지도. 김자점의 집이 화려하게 털렸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 그사이에 김자점 패거리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소문을 끼워넣기도 좋을 것이었고.

딱. 딱.

정육면체 모양의 부싯돌을 몇 번 쳐 솟아난 불씨는 기름에 적신 가죽뭉치에 닿자마자 격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부싯돌은 박연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삐이익.

충신이 멀어져간 방향에서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났다. 그가 일부러 호루라기를 분 것이 분명했다. 순라군들은 저 반대편 방향으로 모조리 몰려가고 있겠지.

유사시에 본인이 순라군을 유인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충신은 일부러 순라군을 몰아가 내가 더 안심하고 일을 저지를 수 있게 배려한 것이 분명했다. 코끝이 찡해졌다.

‘말도 행동처럼 해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충신이 순라군들에게 잡힐 것이라고는 머리카락 한 올 만큼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복청 담을 박차던 몸놀림을 보면, 일지매 짓을 혼자 하며 온 장안의 순라군들을 몰고 다녀도 잡히지 않을 인간이었다.

불타는 투사체가 장전된 슬링을 손에 들었다. 이 땅에서 물매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공이 닿는 부분에 미리 물을 듬뿍 먹여놓은 탓에 끈까지 불탈 염려는 없었다.

‘선비님! 왜 궁시장에서 안 보이시는 겁니까요!’

‘오늘은 궁술 연습하는 날이 아니지 않은가?’

‘활솜씨가 요새 들어 정체 중인데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요!’

‘어허, 나도 따로 생각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이네.’

유 서리에게 외국어를 배우는 시간도 모자랐는데, 김 갑사는 매일같이 무예를 연마하라고 귀찮게 굴었다. 특히 왈패들에게 습격당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그의 입을 다물게 할 것이라면 뭐든 좋았다. 급한 마음에 기억나는 것 중에 만들 수 있을 만한 무기를 대충 종이에 휘갈겨 김 갑사에게 던져줬었다.

김 갑사 본인은 내가 활 대신 써먹을 만한 무기를 떠올린 줄 알고 기뻐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난 당신 같은 무술 덕후가 아니라고.

‘그 무술 바보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실물을 만들어오는 바람에 혼자 있을 시간도 별로 못 벌었는데,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김 갑사가 직접 꼬아준 물매줄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휙휙 돌기 시작했다. 선비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긴 했으나 활과 화살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괜찮은 무기였다.

그렇게 슬링에 휘감겨 빙빙 도는 불덩이는 마치 쥐불놀이를 연상케 했다. 호흡을 슬쩍 가다듬고 타이밍에 맞춰 한쪽 끈을 놓았다.

“이거나 먹어라!”

순식간에 구심력을 잃은 불덩이는 빠른 속도로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별똥별이 땅을 향해 내리꽂는 듯했다.

화르륵.

밤하늘을 거꾸로 가른 불덩이가 김자점의 집, 대문 한가운데를 정확히 직격했다.

미리 약속했던 대로 좌명이 기름을 잘 뿌려놓았는지 불길은 금방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대문을 베어 먹기 시작했다. 건조한 겨울 내내 말라있던 목제 대문은 그렇게 금방 불길에 휩싸였다.

‘됐다!’

물매를 소매에 집어넣고, 등짐에 들어있던 막대를 손에 들었다. 품에 달려있던 은장도를 뽑아 재빨리 끝을 날카롭게 다듬고는 준비해온 글이 적힌 종이를 꿰었다.

국고를 빼돌리고 백성의 고혈을 빤 탐관오리를 벌했다는 격문이었다. 활로 쏘아 보내기엔 활을 등짐에 몰래 소지하기도 어렵고 화살이 추적당할 염려가 있어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을 짜낸 결과가 이것이었다.

투창, 이미 호랑이를 잡을 때 써먹은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창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던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도구가 하나 더 내 손에 잡혀있으니까.

연천에서 군복무하던 시절에 들렀었던 전곡 선사박물관에서 이 물건을 미리 접해봤으니 망정이지. 떠올리지 못했으면 꼼짝없이 위험부담을 안고 활과 화살을 써야 했을지도.

현대에서는 아틀라틀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단단한 흙담에 촉 없는 투창을 먼 거리에서 날려 꽂으려면 이 물건이 필요했다.

김 갑사에게는 투창기(投槍機)라고 둘러댔으나 여진족 사냥꾼들이 쓰는 물건을 어디서 보았냐며 금방 납득해준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안 그랬으면 꽤나 귀찮게 굴었을 텐데.

어차피 슬링이나 아틀라틀을 쓰는 방법은 공 던지는 메커니즘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던지는 감각은 릴리즈 포인트를 옮겨주는 것으로 금방 해결되었으니까.

그 결과, 과녁을 겨우 반 남짓밖에 맞추지 못하던 활과 달리 물매와 투창은 겨냥하는 대로 목표물을 잘도 맞춰댔다. 제대로 운동한지 시간이 꽤 흐른 데다 시대까지 뛰어넘었는데도 감각이 남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김 갑사는 신묘하다는 말을 연발했지만 무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는데, 저 두 무기는 조선군의 제식무기가 아니라 무과에서 시험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깨는 괜찮으려나.’

후.

가슴 속에 있는 공기를 모두 빼냈다. 그리웠던 루틴의 시작이었다.

‘어찌 보면 조선 시대, 아니 인류 최초의 투수 데뷔인가. 던지는 건 야구공이 아니지만.’

뒷꿈치를 비비적대 발바닥 아래의 땅을 다지는 감각도 너무나 그리웠다.

이미 아틀라틀을 사용한 인류는 나 이전에도 무수히 많았겠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폼으로 창을 던지는 인류는 내가 최초일 것이었다.

‘튼튼한 몸에 깃든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네.’

고1 가을, 봉황대기 결승에서 어깨 회전근이 터지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캠퍼스가 아니라 프로의 마운드 위에 있었을 지도 모르는 몸이었다.

처음엔 금방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슬링과 아틀라틀에 쉽게 익숙해지게 만들어준 투구 메커니즘 지식은 어깨 재활 도중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공부한 결과였다.

그러나, 어깨가 어느 정도 나았음에도 다시 선수로 복귀하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었다. 그때는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 모든 울분을 몇 년 동안 공부에 쏟아부은 덕분에 입시에 성공하고 과외선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인야구 판에 취미로라도 복귀했지만 박살 난 어깨 탓에 마운드에는 올라가지 못했던 터였다.

조선 시대에 떨어지고 딱 하나 좋았던 것은 박살 났던 어깨를 튼튼한 것으로 다시 받았다는 점.

전라도 산골에서 호랑이에게 투창을 던져보고, 슬링과 아틀라틀을 연습하며 깨달았던 사실이었다.

‘하나…… 둘…….’

속으로 투구 폼의 타이밍을 재는 것은 숨 쉬듯 익숙했다. 왼손에 글러브는 끼워져 있지 않았지만 투구 폼, 아니 투창 폼의 시작은 가슴 앞에 모아 쥔 손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와인드업.

이어서 왼 다리가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갔다.

코리안 특급, 한국 역대 최고의 투수의 발자취 하나라도 닮고 싶어 따라한 폼이었다. 몸의 기억은 오래간다더니, 시대를 뛰어넘었음에도 간절했던 그 마음 때문인지 몸에 새겨놓았던 투구폼은 잊혀지지 않았다.

넉넉한 바짓단은 스트라이드를 넓게 벌리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리 송진을 잔뜩 발라놓은 가죽신은 흙바닥에서도 디딤발이 미끄러지는 것을 줄여주고 있었다.

‘간다, 씨X!’

이게 얼마만의 전력투구인가. 눈가에 무언가가 흐르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 돌아간 오른손이 휘둘러진 팔꿈치를 따라 앞으로 크게 채찍처럼 휘어졌다.

쇄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기념할 만한 공식적인 첫 투창은 투창기에서 해방되어 날아갔다.

창을 있는 힘껏 뿌려낸 탓에 피가 잔뜩 쏠린 오른손 중지 끝의 모세혈관이 찌르듯이 욱신거리는 것을 보면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쾅!

이미 화려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김자점의 집 대문이었다. 투창은 그 바로 옆 흙담에 모래먼지를 날리며 꽂혔다. 포수의 미트가 놓여있을 것이라 상상하고 겨냥한 자리였다.

그렇게 투창과 함께 꽂힌 격문은 나무가 불타오르며 생기는 열기류에 계속해서 펄럭거리며 이 사태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불이야! 불!”

화재가 일어난 것을 이제 감지한 것인지, 담 너머 화려한 기와집에서 사람들의 소음이 조금씩 들려오고 있었다. 곧 깨어난 사람들이 불을 밝히고 원인을 탐색하러 올 것이었다.

투창기를 허리춤에 찔러 넣고 골목 어귀 그늘 사이로 몸을 날려 뛰었다. 아마 대문 근처에서 불을 붙이고 격문을 붙였다가는 들켰을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투창을 꽂아야 할 곳이 더 남아있기도 했고.

“눈물은 갑자기 왜 나는 거야. 에이 씨.”

눈가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육조거리를 거쳐 충신의 기루까지 뛰는 내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기루 문을 박차고 들어서고서야 계속해서 눈가를 훔쳐낸 심의 소맷자락이 축축하게 젖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다음 날, 날이 밝은 한양 땅은 발칵 뒤집혔다.

육조거리는 조선의 심장부라 할 만한 공간이었다. 어둠이 물러간 길 한가운데에 격문이 꿰어진 깃대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을 순라군들이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그 일로 도성 바닥이 술렁거리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것과 함께 웬 뜬소문들이 대문에 붙었던 불길마냥 퍼져나가고 있었다.

‘불꽃이 빙빙 돌아 원을 그리더니, 그 한가운데서 불타는 창이 스스로 뛰쳐나왔다는구만.’

‘범과 멧돼지 한 마리가 김 모의 집 담벼락을 넘어갔다더라. 산신께서 보내신 것이 틀림없지.’

‘그날 밤, 김 모의 집 주변에서 새소리가 온통 울려 퍼졌다던데? 새들은 다 자고 있을 깊은 한밤중 아닌가?’

‘순라군들이 한참을 뒤졌는데도 근처에는 개미 새끼 하나 없었다는구만. 하늘께서 굽어살피시다가 천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겠는가?’

깊은 밤에 저지른 일이었는데, 변소라도 다녀오던 주민이 보기라도 한 것인가.

그저 우리의 거사를 널리 알리려는 목적이었을 뿐인데, 그 조그만 연출 하나가 백성들의 입을 건너다니면서 하나의 전설로 바뀌어 있었다.

설화는 본래 실화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도 한다. 영웅적인 일화가 생성되고, 거기에 민중의 바람과 소원이 살을 붙여 더 신비스럽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 자리의 중심에 내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나저나, 이러면 후대의 대한민국에서 코믹스 하나를 고소해도 되지 않을까 몰라.’

불꽃이 빙빙 돌아가는 포탈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온다? 잘나가던 외과의사 출신 마법사 양반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제 개변된 역사에서는 내가 원조다. 핫핫.

※ 작가의 말

─아틀라틀에 관해

아틀라틀은 여러 형태가 있지만 안 선생이 최종적으로 사용한 녀석은 위에 첨부한 형태와 매우 닮아있을 것입니다. 작중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투수 경력도 있는 사람이니 구멍에 손끝을 걸고 패스트볼 던지듯이 투창기를 사용했을 겁니다.

형태는 원시적이지만 효과는 끝내줍니다.

현대 국궁도 최대 사거리를 145m 정도로 보는데 이 녀석도 잘 만든 녀석은 사거리를 그 정도를 찍죠.

투사속도 역시 일반인의 경우 100km/h는 가뿐히 찍어주고, 최대 150km/h도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조선에서 편제화가 되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활에 비해 연사가 매우 불리하고, 밀집해 여러 명이 발사할 수 없으며, 화살의 부피 역시 크고 숙련도와 정밀도를 올리기 어려운 편이죠.

특히 활의 나라로 여겨지며 지나가던 선비들도 활 정도는 잘 쏘던 조선이면 이용할 가치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투창기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유물도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삼한, 즉 마한 진한 변한이 남도에 웅거하던 시기에는 뼈로 깎아 만든 투창기가 출토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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