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파인애플 피자
“수와얀이 또 폐를 끼친 모양이군요. 미안해요, 안 장긴. 일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저와 수와얀 때문에 헛걸음을 하게 되셨군요.”
“아닙니다. 황녀 자가.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쁠 뿐입니다.”
봉황루라 불리는 삼층 누각의 꼭대기였다. 오늘은 날씨가 풀린 탓에 뺨에 와닿는 고층의 바람도 그다지 차갑지 않았으나, 이 어색함만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황녀와 얼굴을 마주할 일이 당분간은 없을 줄 알았는데, 올라와 본 적이 없는 공간에 단둘이 있게 되고 만 것이다.
도르곤에게 홍삼을 전하러 가는 김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시녀에게라도 고양이를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오소리 같은 자가 금세 계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함께 가줄 테니 황녀에게 직접 고양이를 전하라는 도르곤의 말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황녀를 불러내자마자 바쁜 일이 있다며 집무실이 있는 좌익왕정으로 돌아가 버린 도르곤 때문에 지금 앉은 자리는 가시방석 그 자체였다.
황녀를 만나자마자 또다시 내 어깨 위에서 튀어 나간 산군 놈에 대한 얄미운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입이 바짝 말라왔으나 물을 청할 틈조차 없었다.
“그나저나 숙부께서 나랏일이 바쁘신가 보네요. 얼굴만 보시고는 바로 돌아가실 줄이야.”
“카간께서 급하게 회군하셨던 탓에 저번 전투에서 거둔 전리품이 이제야 심양으로 들어왔으니, 그것을 팔기와 그 수장들에게 분배하는 일이 닥쳐있다고 들었습니다.”
“언니가 황태자 일로 힘들어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줄 걸 그랬어요. 아버님과 숙부님이 괜한 고생을…….”
요절한 애첩, 보르지기트 씨는 촌수로 따지면 황녀의 사촌 언니라 했다. 카간이 같은 부족에서 고모와 조카를 함께 아내로 맞아들인 결과였다.
방금까진 가출한 산군 녀석이 돌아온 것을 보고 볼을 가볍게 물들였던 황녀였다. 그러나 지금, 생전의 사촌 언니를 회상하는 그녀의 표정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것을 본 탓인지 내 혀는 멋대로 움직여댔다.
“그분의 탓도, 자가의 탓도 아닙니다. 금주 땅에서 워낙에 큰 승리를 거둔 터라 전리품도, 포로도 넘칠 정도로 거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린 것 같아요.”
“기분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여전히 뺨을 붉힌 채로 가볍게 눈웃음을 짓는 황녀를 보며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착각하지 마라.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다.
나도 조선에 떨어졌을 때는 다른 외모가 되었으니,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마음 정리가 끝난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시선이 내게 꽂혀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잠시 후였다. 다른 생각에 빠져 황녀를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장긴께서는 다른 분들과 다르시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금주 땅에서 일어났던 전투에서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우셨다 들었어요. 보통 사내라면 그것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었을 텐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언급조차 하지 않으시다니.”
“아 그것은…….”
“아버님께 들은 바로는 야망에 가득 차 있는 분처럼 들렸는데, 직접 뵈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네요.”
황녀의 쌍꺼풀 없이 커다란 눈망울이 기억을 더듬느라 다른 곳을 헤매다 다시 나를 향했다. 곧 가볍게 찡그려진 눈가는 부드럽게 산군을 쓰다듬는 손길과는 다르게, 여전히 날카롭게 나를 겨누고 있었다.
“아니면, 앞에서 그 대단한 전공을 자랑할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제가 장긴에게 하찮은 사람이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제가 어찌 황녀 자가를 하찮게 여기겠습니까.”
“농담이에요, 후후. 어머, 날도 쌀쌀한데 땀은 왜 흘리실까?”
날카로워진 황녀의 눈초리 때문일까. 귓가에 흘러내린 땀은 분명 차갑게 식어있었다. 청 황가의 사람답게 만만히 상대할 여자는 분명 아니다.
“혹시나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은 아니시겠죠? 마치 무언가를 잊고 온 사람처럼 자꾸 몸을 들썩거리시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가. 오해십니다.”
“하긴, 누가 감히 제 앞에서 그런 결례를 저지르겠어요.”
황녀의 말투는 꿀이라도 바른 듯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분명 칼날이 숨어있었다. 돌아온 고양이를 반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내 또래 쯤 되어 보이는 여자인데, 온통 계략 투성이인 황궁에서 자라서 저렇게 된 것일까.
몸을 욕조에 푹 담근 것처럼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던 하연이 문득 그리워졌다. 소저, 이곳은 여인네마저도 검 하나씩은 가슴에 품은 모양입니다. 하하.
“안 장긴.”
“예, 황녀 자가.”
“그럼, 정말 내가 당신에게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어떤 부탁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있던 탓에 마음만 급해져 왔다. 원래는 고양이만 돌려주고 바로 사하보로 가 신병들을 굴릴 생각이었으나 이대로라면 글렀을지도.
그렇다고 지금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일국, 그것도 대륙을 주름잡는 청나라 황녀의 부탁이다.
“그렇게 어려워하실 이유는 없어요. 힘든 부탁은 아니니까요.”
“제 능력이 닿는 것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황녀 자가.”
“그럴 때는 ‘혹여나 제 능력이 닿지 않더라도’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후후.”
문득 차가웠던 분위기가 녹아내린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찡그려져 있던 황녀의 눈가도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아무튼,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는데, 그걸 도와주셔야겠어요.”
“하고 싶으신 것이라,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저…… 심양의 거리를 거닐고 싶어요.”
“예?”
심양성 거리를 거닐고 싶다니, 정말로 뜬금없는 부탁이었다. 조선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구해달라거나 하는 이야기일 줄만 알았는데.
갓난아이일 때 황궁에 들어왔던 터라, 황녀는 거의 평생을 황궁에서만 살았다고 했다. 오라비나 시녀들에게 전해 들은 여염의 이야기에 계속해서 흥미를 쌓아온 모양이었다.
“……나이가 차고 시집을 간 이후로는 바깥 구경도 잘 못했는데, 이번에 아버님이 기분전환을 하라며 불러주신 덕분에 오랜만에 구경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바깥 구경이 하고 싶어지신 것입니까?”
“조금은 부끄러운 일 같지만…… 그 말이 맞아요. 그리고 굳이 장긴께 부탁드리는 이유는 이번 일이 들키더라도 아버님께서 벌하지 않을 분이 안 장긴 뿐이어서 그렇고요.”
딸을 황궁 밖으로 빼돌린 남자를 벌하지 않는다고? 그 홍타이지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간께 들켰다가는 정말로 제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모릅니다.”
“어머, 생각보다 그릇은 조금 작으시군요. 저를 얻으시려면 그 정도 포부는 가지셔야 할 텐데요.”
“황녀 자가를 얻다니요? 그 무슨…….”
“아버님께서 안 장긴을 제 다음 남편감으로 점찍었다 하시던데요. 반응을 보니 아직 직접 전해 듣진 못하셨나 봐요?”
그야 속으로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그건 그저 착각일 뿐이라고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짐작이 확신으로 바뀐 충격은 내게 생각보다 큰 듯했다. 그 말을 듣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러나 정작 또 다른 당사자인 황녀는 그 정도 말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다음 용건을 꺼내놓을 뿐이었다.
황녀의 무릎 위에 있던 장갑이 탁자 위로 올라왔다. 산군 녀석을 쓰다듬으려 방금 벗어놓았던 장갑이었다.
“거리에서 향이 나는 신기한 장갑을 팔고 있다기에 시녀에게 명령해 사 온 물건이에요. 아주 마음에 들더라고요. 이게 장긴을 부른 다른 이유기도 하고요.”
“향피군요. 이것이 아국에서만 공급하는 물건인 걸 알아채셔서 저를 부르신 것입니까? 아니면 새 장갑이 필요하시기라도?”
“굳이 그 물건 때문이라면 나갈 이유가 있겠어요? 장긴은 남편감으로는 다 좋은데 단 하나, 눈치가 없으시군요.”
가볍게 타박을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나빠지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왜…….”
“심부름을 시켰던 한족 시녀가 심부름 다녀오는 길에 맛있는 걸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일라오꿔쿠이’ 라고 하던가? 식으면 맛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먹어보고 싶어요.”
처음 듣는 음식이었다. 헌데, 이 황녀는 고작 먹고 싶은 것이 있어서 나를 부른 건가?
괜히 그녀 앞에서 긴장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맥이 빠지는 결과였다.
‘뭐, 그래도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그렇게 안도인지 체념인지 의미 모를 한숨을 쉬고 있는데, 앞에 앉은 황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음 지을 뿐이었다. 묘하게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
나는 X됐다. 진짜 X된 것이 분명하다.
“안 장긴, 왜 이리 얼어 있어요? 무슨 나쁜 일이라도?”
“아닙니다. 그냥…… 후환이 조금 두려워졌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동그랗게 된 눈으로 거리를 신기한 듯이 둘러보던 황녀는 조금 흥분한 듯했다. 귀까지 은은하게 물든 황녀의 모습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허나, 황녀가 먹고 싶다던 음식이 이것일 줄은 몰랐다. 명국어 공부 좀 더 해 놓을걸.
덕분에 가게 안에는 온통 아는 사람 투성이다. 이곳에 여자를 데리고 왔다는 소문이 심양관에 퍼지는 날에는 어찌해야 할까나. 한양 땅에 남겨두고 온 정혼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자는 또 어쩌고.
“후환이라니요? 대청문을 지나올 때 위병 누구도 눈치를 못 챘잖아요?”
“위병들이 시녀와 옷을 바꿔 입은 정도로 속아 넘어간 것은 그렇다 치고, 제가 뒷일이 걱정되는 것은 다른 일 때문입니다.”
“설마 아버님의 진노를 사는 것 이상으로 문제가 되겠어요. 후후.”
하긴, 적어도 황녀를 데리고 나온 일에 대해 벌을 받을 일은 없어서 다행인가. 차라리 VIP를 접대했다는 식으로 변명하면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복잡한 심경과는 달리, 황녀는 가게 안을 가득 채운 고소한 냄새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면 후환 따위를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만 가득해질 뿐이었고.
그래, 될 대로 되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황녀 자가께서는 마음껏 즐기십시오. 소인은 그른 것 같으니.
“와아! 안 장긴, 이걸 봐요! 김이 모락모락 나요! 이게 나일라오를 얹은 꿔쿠이!”
우리가 앉은 탁자에 주문한 음식이 나온 것은 잠시 후였다. 접시에 올라가 있는 음식은 아주 익숙했다. 왜 익숙하긴, 내가 만든 음식이니 익숙하지.
접할 일이 없던 단어였던 데다 심양에 와서 명국어를 잘 쓰지 않았던 탓에, 황녀가 말한 ‘나일라오꿔쿠이’의 정체를 가게까지 오고 나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황녀의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내 말실수에서 나온 피자─뻬이즈라는 말보다 그들에게 익숙한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를 쓰는 것을 선호하는 한족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황녀에게 전해준 한족 시녀가 그렇게 부른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치즈를 얹은 납작한 빵’이라.
“자가, 체통을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어때요, 여기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 장긴만 입을 다물어 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앗, 뜨거! 이번 비밀을 지켜주는 대가로 나도 비밀을 하나 알려줄 테니 입을 다물어 줘요. 어차피 우린 점점 알아가야 하는 사이잖아요.”
김이 오르는 뚝배기에 성급히 손을 댔다가 울상이 된 황녀가 한쪽 눈가를 찡긋했다. 그 모습은 내가 원래 살던 시간대에서 하던 데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그와 더불어, 그 사람과 닮은 황녀의 외모가 내 기분을 한없이 묘하게 만들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어 묘한 감정을 털어내고는 뜨거운 뚝배기를 단숨에 들어냈다. 뚝배기를 감싼 채 구워진 밀가루 반죽 위로 붉은 소스와 녹은 치즈가 층을 이룬 채로 흘러내렸다.
황녀 자가, 침 흐르겠습니다. 제발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이걸 만든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든 걸까요? 질그릇을 들어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이 냄새…… 발상이 너무나 천재적이에요!”
“그 사람, 눈앞에 있으니 마음껏 물어보시지요. 황녀 자가.”
“네?”
품에서 장도를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음식을 써는 내내 황녀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유튜브에서 뚝배기로 시카고 피자를 굽는 법을 본 기억을 재현했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말이지.
먹는 사람의 입에 들어갈 때까지 식지 않게 하기 위해 뚝배기를 썼고, 배달하는 동안 음식이 뒤섞이지 않는 데도 유용할 것이라 생각해 떠올린 형태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황녀의 눈은 더 이상 반짝거릴 수 없을 정도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버님이 장긴을 점찍은 이유가 있으시네요. 정병을 양성하는 재주에, 홍삼과 향피처럼 쓸모 있는 물건을 새로 개발해 공급하는 재주에, 이런 소소한 것을 만드는 재주도 있으시군요.”
“과찬이십니다. 황녀 자가.”
“안 장긴과 혼인하면 이런 새로운 음식들을 더 먹을 수 있는 것일까요. 신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일 먼저 먹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좋은데요?”
피자에서 눈을 떼어놓지 못하더니, 장도의 움직임이 멎자마자 잽싸게 한 조각을 들어 크게 베어 문 황녀였다. 오물거리는 그녀의 볼에서 행복한 감정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혼인이란 걸 그렇게 쉽게 생각해도 되는 건가? 하긴, 처음부터 가출의 목적이 시녀에게 들은 음식을 먹으려는 것이던 황녀님에겐 당연한 것일지도
그보다 저렇게나 먹는데도 살이 어디로 가는 건지, 참.
이러다 내 보직이 조선인 조총 부대의 대장이 아니라 황녀 자가의 요리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때였다.
황녀는 햄스터처럼 입에 음식을 잔뜩 넣은 채로 무언가 말하려다, 방금 체통을 지키라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난 것 같았다. 그렇게 얼굴을 찡그리며 음식을 목구멍으로 겨우 넘기는 모습은 조금 귀엽긴 했다.
“새콤달콤한 것이 아주 맛있네요. 안 장긴도 어서 하나 드셔보세요.”
“새콤달콤하다니, 남만시 양념 맛이 그렇게 진합니까?”
“그것도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이 안에 들어가 있는걸요. 이런 걸 어떻게 꿔쿠이에 넣을 생각을 한 거죠?”
어라? 내가 토마토소스에 넣은 것은 양고기와 제철 채소뿐이었을 텐데?
피자 이야기를 전해준 시녀와 입맛이 똑같아 역시 맛있을 줄 알았다며 일장 연설을 시작한 황녀를 앞에 두고 피자 조각을 입에 물었다. 아…… 이 맛은?
“맛있죠? 탕후루를 이런 데 넣을 생각을 하다니, 후식으로 손색이 없겠어요.”
새콤달콤하다는 황녀의 말에서 알아봤어야 했다. 산사나무 열매를 졸인 조청으로 감싼 탕후루가 걸쭉한 치즈 안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으니.
도대체 누가 이따위 악마를 만들어 낸 거야? 현대에서 파인애플 피자도 질색하던 내 입맛에 새콤달콤한 탕후루가 들어간 피자는 고문 그 자체였다. 그러나 황녀 마음에 쏙 든 음식을 어떻게 뱉기라도 하겠는가. 꼭꼭 씹어 미소 지으며 삼킬 수밖에.
“이런 음식은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겠어요. 그렇죠?”
황녀 자가, 당신께 잠시 끌리던 제 눈을 단박에 틔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악마를 매일처럼 먹으라 하시면 당신과 혼인, 죽어도 못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