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89화 (89/298)

89화. 아담 샬과 또 다른 서양인

미래에 순치제라 불릴 새로운 황제가 제위에 오른 후, 북경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갔다.

어린 황제 대신 국정을 전담하게 된 도르곤이 내부 정비에 힘을 쓴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전비(戰費) 징수에 시달려 피폐해졌던 북경 백성들이었다. 그들이 새 왕조와 지배층을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민심부터 달래야 했다.

북경의 식량고가 열렸다. 심양에서 실어온 물건까지 합해 수백만 석의 곡식이 피폐해진 북경 백성들에게 뿌려졌다. 청군의 북경 입성 이전의 죄는 모두 사면되었고, 무거운 세금 역시 전부 폐지되었다.

청나라가 점령지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던 치발령(薙髮令)까지 연기할 정도로 도르곤의 조치는 파격적이었다. 당분간 변발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포고령에, 북경 백성들 중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효경(孝經)에 나오는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란 구절은 명에서도 통용되는 덕목이었으니까. 사실 괜히 엮여 머리를 밀릴까봐 내가 제안한 건이긴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뛰어났다. 누가 멀쩡한 머리카락을 밀리고 싶겠어.

그렇게 또다시 숨 돌릴 시간도 없는 한 달여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지금 세자와 함께 또다시 낯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국식으로 의자에 앉아 손님을 접대하는 세자의 모습이 묘했다.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조선국 세자 저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왔네, 탕약망(湯若望). 자네도 그동안 잘 지냈는가.”

서로 예를 갖춰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스스럼없이 안부를 주고받는 것을 보니, 내가 구르던 한 달 사이 꽤나 친분을 쌓은 듯했다.

헌데 세자의 말에 웃으며 맞장구를 치는 상대의 외모는 꽤나 낯설었다.

분명 명나라 복장을 걸친 남자였다. 그러나 그의 움푹 들어간 눈, 커다란 콧대, 풍성한 수염은 동아시아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외모가 아니었다.

“저하께서 본국의 문물에만 관심을 가지신 줄 알았더니, 이런 제안을 해 오셔서 놀랐습니다.”

“나도 전부터 관심이 있는 분야긴 했지. 그러나 구체적인 생각은 여기 안 자의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네.”

“호오…… 그렇습니까? 이분이 저하께서 그토록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시던 그 심복입니까?”

“자랑이라니, 안 자의가 들으면 오해할 말은 하지 말게.”

“이분이 북경의 백성들을 지켰다는 소문이 저자에 자자합니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셔도 되는 일입니다. 세자 저하.”

내가 아니었으면 무고한 백성들이 다수 죽어나갔을 것이라며, 멋쩍어진 세자가 뒤통수를 긁게 만드는 탕약망이었다. 이국의 풍모를 지닌 갈색 눈동자를 굴리는, 이 사람의 이름을 본국 식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요한 아담 샬 폰 벨, 줄여서 아담 샬.

신성로마제국에서 건너온 예수회 사제이자 얼마 전에는 도르곤에 의해 천문관측기관인 흠천감(欽天監)의 우두머리로 임명된 이였다.

“사담은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저하께서 요청하셨던 건을 모두 들어드리기는 조금 어려울 듯합니다. 특히 데려갈 사람을 요구하셨던 부분이 그렇습니다.”

“이 땅에도 사제가 부족하다고 들었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저희의 문물을 도입하시려는 저하의 뜻은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신 다른 것은 힘써 도와드리려 노력했습니다.”

아담 샬이 뒤에 서 있는 자에게 눈짓을 건넸다. 역시 서양인의 외모를 한 수행원이 앞으로 나와 꾸러미 하나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자의 얼굴과 팔뚝이 시꺼멓게 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예상치 못한 부탁이었습니다만, 부탁하셨던 종자는 확실히 구했습니다. 저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는 요구하신 수량도 맞춰질 겁니다. 그리고 이 꾸러미는 같이 말씀하셨던 역법서와 서학서고요.”

“일국의 왕세자가 고작 구황작물의 종자를 부탁했다는 사실이 예상외였나.”

“아닙니다. 저하께서 백성들을 이토록 어여삐 여기시는 분이니, 저하의 심복 역시 약탈과 학살을 막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실을 깨닫고 홀로 즐거워했을 뿐입니다.”

“이것 역시 안 자의의 제안이었다. 심양에서 농장을 경영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귀가 솔깃해지진 않았을 테지.”

청에서 식량 공급을 끊은 후 사하보 농장을 키워야 했던 탓인지, 세자는 신대륙의 작물 종자를 요구하자는 내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막 명에 들어와 있을 감자, 고구마, 땅콩 종자를 귀국길에 들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담 샬이 구하지 못했더라면 체류기간을 연장해서라도 구하려던 것들이었다. 수고를 덜었다.

“좋은 신하를 얻으셨군요. 그 신하의 의견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이시는 저하 역시 좋은 임금이 되실 겁니다.”

“고맙네, 탕약망. 사실 구황작물 도입 정도야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말로 고민이 깊었던 것은 다른 일 때문이었네.”

“이해합니다. 문을 닫아 건 귀국의 상황은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하 같은 분이 세자로 계신다는 것은 저희에게도 행운입니다.”

말을 맺은 아담 샬이 손짓을 보내자 아까 꾸러미를 들고 나왔던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탁자에 앉았다. 이 사람이 내가 아담 샬을 통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보낸 편지를 받은 사람인가.

“홀란드, 여기서는 홍모(紅毛)라 부릅니다만, 그 땅에서 무역을 위해 설립한 집단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보통은 대만 섬 부근에서 활동하는데, 마침 연락이 닿아 운 좋게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갈색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남자가 무어라 인사로 추정되는 말을 건네 왔으나, 알아들을 순 없었다. 대륙 남부에서 통용되는 민남어(閩南語)인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심양으로 넘어가기 전 박연에게 네덜란드어라도 배웠어야 했나.

그러나 아담 샬의 눈치가 더 빨랐다. 곧바로 그가 유려한 명국어로 그의 말을 통역해 준 덕분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동방의 고귀한 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 하는군요. 이 자의 이름은 피터르 판 슈타우텐베르그라 합니다. 선원 생활에 익숙해 결례를 저질러도 용서를 부탁한다고 전해달랍니다.”

“나는 조선국 왕세자 이왕이라 전해주게. 그리고 여기 있는 안한수 자의가 그를 상대할 것일세.”

낯선 사람들을 소개받은 피터르의 눈동자가 세자와 나를 연이어 향했다. 그 눈동자에는 경계와 호기심이 반반 섞여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피터르. 조선국 시강원 자의 안한수라 합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보낸 서신은 읽어보셨겠지요?”

“젤란디아 요새에서 북경까지 먼 길을 온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군요. 굉장히 파격적인 귀국의 제안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면 당신을 이곳까지 끌어낼 수 없었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질문 몇 가지가 있다고 하는군요. 아, 그리고 당신을 한스라고 불러도 되겠냐는데, 괜찮겠습니까?”

발음이 어려우면 마음대로 하라지. 뭐, 나름 그들에게 익숙한 이름인 게 이득일 수도 있겠다.

허나 남한테 별명까지 붙여준 것 치고는 피터르의 얼굴에 새겨진 긴장감은 흐려지지 않았다. 마치 내 속까지 뚫어보려는 것마냥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첫째는 귀국에 생존해있는 벨테브레이라는 자에 관련한 질문이랍니다. 아우엘케르크라는 배에 탔다가 실종된 것까지는 명부를 뒤져 확인했다는데, 정말로 그 자가 살아있습니까?”

“얼마 전 본국에서 온 사신들에게 그에게서 온 서찰을 받았습니다. 원하신다면 나중에 당신이 조선으로 찾아오실 때 대면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십 년여 전에 표류한 자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하는군요. 당신이 벨테브레이와 관련이 있는 자라고 편지에 적었다는데,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묻습니다.”

“그의 딸과 혼약을 나눈 사이입니다. 이제 제가 귀국과 접촉한 이유를 이해하실 수 있겠지요?”

크흠. 세자가 가볍게 옆에서 헛기침을 뱉었으나 이미 사전에 설명이 끝난 이야기였다. 그들의 경계심을 쉽게 무너뜨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한양을 떠나기 전에 박연이 먼저 제안한 방법이 아닌가. 남녀 간의 일을 이런 일에 함부로 이용하면 안 된다며 반대하던 세자였으나, 당사자가 허락했다는 말에 내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리고 그 효과는 분명 뛰어났다. 검게 탄 피터르의 얼굴에서 경계심이 살짝 걷힌 것이다. 턱수염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긴 그의 표정은 꽤나 누그러져 있었다.

아담 샬이 전해온 뜻도 피터르의 표정이 보여주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문을 닫아걸고 있던 조선이 갑자기 동인도회사에 접촉해 온 것도 내 말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차기 국왕인 세자가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보증이 어디 있겠는가.

“피터르가 말하길, 결론을 내리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냐고 하는군요. 그들 입장에서는 조선국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홀란드는 조선에서 멀고 먼 나라입니다. 벨테브레이를 제외하면 조선과 접촉했던 홀란드 인조차 없을 것인데, 문을 닫아걸었던 나라가 갑자기 어찌하여 홀란드와 상행(商行)을 개시할 생각을 하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합니다.”

합당한 의문이었다. 아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부에서 내려온 질문일지도. 애초에 이 자들은 조선에 대해서 흥미를 분명 가지고 있었으니까.

네덜란드는 일본과 접촉하여 나가사키에 상관을 세웠을 무렵부터 조선과의 통상무역관계를 수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중에는 수교의 목적으로 코레아라는 이름의 범선까지 건조해 보낼 정도였으니.

동아시아에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세력을 축출해냈지만 여전히 그들의 무역량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명청교체기의 혼란기라, 일본은 에도 막부의 쇄국령 탓에 그들은 새로운 거래처에 목이 말라 있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내 대답에 따라 이들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의 여부가 달려 있다.

“분명 아국 조정에는 일본의 막부처럼 쇄국을 주장하는 자들이 주류긴 합니다. 허나, 저와 세자 저하는 심양에서 볼모생활을 하며 상업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을 조선에 훗날 적용해 볼 계획입니다.”

“귀국의 무역이라 함은 중원과 일본으로 족한 것이 아니었냐고 묻습니다. 홀란드 사람들 역시 정보를 계속 취합하고 있었다고 말하는군요.”

“지금까지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계신 탕약망님을 통해 저하께서는 서쪽의 문물에 관심을 가지셨고, 그 정도의 지식을 성취한 자들은 큰 가치가 있다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피터르의 입술이 삐죽였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홀란드를 높게 봐 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새롭게 거래를 틀 정도로 조선이 매력적인 거래처가 아니라고 하는군요.”

“뭣이?”

“저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무례를 저질러서 송구하오나, 그들은 상인이라고 합니다. 이문이 떨어지지 않는 곳에는 갈 수 없다고 전해달랍니다.”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던 세자가 핏줄을 세웠다.

세자에게라면 그 발언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 일국의 상인 따위가.

허나 나에겐 여유가 있었다. 그의 말이 전형적인 블러핑인 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 저 피터르란 자가 동인도회사에서 어떤 직위에 올라 있고 어느 권한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들의 상황은 손바닥을 보듯 훤했다.

그 개 같은 김교수가 극찬한 졸업소논문의 한 단락을 전부 너희 VOC(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할애했는데, 그걸 잊어버릴 리가 있겠냐. 망할 자식들아.

“호오. 그렇소? 내가 알기로 당신들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닐 텐데? 조선을 눈 뜬 장님쯤으로 아는 것이냐고 똑똑히 전해 주십시오. 감정(監正) 어른.”

“정말 그렇게 전해도 되겠습니까?”

“막부가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열었다고는 하나, 출입하는 배의 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을 텐데요. 복건과 대만에서의 무역은 정지룡의 상단과 치열하게 경쟁 중이고요. 아닙니까?”

방금까지 미소를 잃지 않던 피터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도대체 이 정도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면 조선을 얼마나 호구로 본 것인가.

방에 틀어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 정도로 생각한 건가?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니었지만 내가 있는 한 조선을 그렇게 취급하게 둘 생각은 없었다.

“당신들이 원하는 비단, 인삼, 도자기. 곧 조선에서도 구해갈 수 있을 겁니다. 혹시 홍삼이라고 들어는 봤습니까? 내 가는 길에 선물로 조금 드리지요.”

“…….”

“또, 당신들이 배로 은을 실어다 이 지역에서 금으로 바꿔 시세차익을 보았던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아, 요새는 또 그것으로 이문을 남기기 어려워졌다지요? 새로운 거래처가 생기면 반드시 그쪽에도 이득이 될 텐데요?”

아담 샬의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피터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뭐라 소리를 질렀다. 네덜란드어를 몰라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군요. 아니, 안 자의님. 저 또한 궁금합니다. 당신은 대체…….”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감정 어른. 저 자에게 전해주십시오. 우리 조선이 아무 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당신들이 조선을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면 사업을 확장할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도 전해주십시오.”

피터르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동방의 원숭이쯤으로 여기던 자들이 이토록 동인도회사의 사정에 훤할 줄 몰랐던 것일까.

이미 기세는 넘어온 상태였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전의를 잃은 개에게는 몽둥이질을 더 가해야 한다지?

“홀란드의 상업 집단, 아, 회사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요? 당신들이 인도의 동쪽을 대상으로 설립한 그 회사는 투자도 받는다지요?”

“…….”

“어떻습니까, 세자 저하의 내탕금에서 당신네 회사에 은자라도 투자한다면 좀 진지해지겠습니까? 당연히 투자금을 받았다는 증서 정도는 발급해 주시겠지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발행한 세계 최초의 주식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까지 들은 피터르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지켜보던 세자만 갑작스레 변한 그의 태도에 어리벙벙해할 뿐이었다.

※ 작가의 말

1. 아담 샬

이전부터 소현세자의 삶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들은 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당시 북경에 머무르고 있던 선교사로 중원에 홍이포란 것을 처음으로 도입하고 생산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하죠.

그가 만든 시헌력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음력이라고 사용되는 날짜는 이 시헌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수행하던 이가 귀국하며 <개계도(改界圖)>, <칠정력비례(七政曆比例)>라는 역법서를 가져오며 조선에 시헌력이 알려지게 되고, 숙종 대에 이르러 완전히 도입되게 됩니다.

소현세자가 북경에 머물던 70여 일 간 아담 샬과 교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허나 어느 수준에서 교분이 오갔는지, 소현세자가 아담 샬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남아있는 아담 샬의 기록에는 과장이 많이 섞여 있고, 소현세자의 볼모생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심양일기마저 북경 천도 이후로는 마치 기록이 잘려 나간 듯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중에서 건네받은 감자와 고구마 종자는 중국 땅 기준으로 이미 명나라 말엽에 전래되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감자와 고구마를 일본에 전래해 준 세력도 네덜란드입니다.

2.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동인도회사 하면 영국의 식민지 경영을 위한 그것만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네덜란드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회사가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세계 최초의 다국적기업이기도 합니다.

당시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과 이득이 쏟아지는 인도, 중국, 동남아를 놓고 경쟁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이, 한데 뭉쳐 대규모 선단을 파견해 나오는 이득을 나누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사업이죠.

전성기인 1670년대에는 150척의 상선, 40척의 군함, 50,000명의 직원과 10,000명 규모의 군대를 거느린 거대 조직으로 발돋움합니다. 지금은 작중에서 설명했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아 약간 지지부진한 상태이긴 한데 미래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법이죠.

3. 민남어

중국어가 북경어 중심의 보통화로 통일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도 화북이 아닌 지방에서는 지방 사투리, 아니 거의 별개의 언어 수준의 방언들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오어, 상어, 감어, 객가어, 민어, 광동어, 동간어들이 그것인데요. 민남어는 그중에서 민어에 속하는 언어를 가리킵니다. 복건어(푸젠어)라고도 하며, 복건성, 광동성, 대만 일대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화교들의 대다수가 쓰는 말로도 유명합니다.

네덜란드의 중국 상행은 위에 언급된 지역에서 대다수가 행해졌을 것이므로, 네덜란드 선원이 익혔을 언어는 민남어라 설정했습니다. 당연히 저 시대의 북경어와 민남어는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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