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09화 (109/298)

109화. 윤휴(尹鑴)

그 송시열이 보냈다니, 눈앞에 선 낯선 선비를 문전박대할 수도 없었다. 옆에 있는 장인어른이 이 불청객을 쫓아주길 내심 바랐으나, 김육은 오히려 할 말을 나누라며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아닌가.

내 뒤에 쪼르르 붙은 요운은 선비를 학당 안으로 들인 것에 내심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마 나와 회포를 풀 시간을 낯선 선비가 방해한다고 여기는 모양인 듯했다.

“이 학당도 안 교리의 훌륭한 뜻이 어린 장소라 들었소. 당파를 가리지 않고 배움을 청하는 자라면 수업료도 받지 않고 모두를 가르친다지? 우리 남인 아이들까지 말이오.”

자리에 앉자마자 교실로 쓰는 대청마루를 한 바퀴 둘러본 낯선 선비였다. 처음 보는 사이였음에도 익숙하다는 듯이 공치사를 쏟아놓는 것이, 붙임성이 어지간히 좋은 자이지 싶었다.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장인어른과 제 벗이 다 해낸 일이니 저는 관여한 바가 없다시피 합니다.”

“학당에도 안 교리의 별호가 붙어 있는데, 아직도 그리 겸손이시오? 영보의 말로는 조정에서 가장 패기 있는 신료를 대라면 당신을 대겠다고 하던데, 들은 말과는 다르구려.”

“패기요?”

“정전에 도끼를 품고 들어가 조정중신들이 모두 모인 한가운데에 내던지지 않았소? 내 그런 선비다운 기개는 살다 살다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오.”

낯간지러운 말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앞에 앉은 선비는 내 칭찬을 하며 도리어 본인이 열에 들떠 있었다.

분명 내가 한 짓들이 맞긴 하나, 이런 찬사를 받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었다. 특히 그놈의 별호가 자꾸 언급되는 것부터 말이지.

“게다가 국사를 논하며 그 이판 대감 앞에서 성리학을 대판 깠다지요? ‘모든 사람이 군자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니, 제도로써 그것을 보완해야 한다.’ 크으.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이 씻겨 내려가는 줄 알았소.”

“그 발언은 굳이 성리학을 비판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소생을 과대평가하시는 것이 아닌지?”

“과대평가라니? 그 노인네들 앞에서 현 제도의 모순을 성리학과 엮어 신랄하게 비판의 날을 세울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된단 말이오? 난 영보에게 그 일화를 전해 듣고 감동하고 말았소!”

이제 숫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낯선 선비의 눈이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이 사람, 조금 위험한 사람 아닌가?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앞에 앉은 자는 주저리주저리 내 약력들을 읊어가며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소설을 퍼뜨린 부작용인가. 문득 오스스 소름이 돋아 요운을 돌아보니 이놈의 표정은 또 왜 이러는지.

“무얼 좀 아시는 분이로군요! 저희 스승님이 이렇게 굉장하신 분입니다! 사부학당은커녕 글 선생도 구하지 못하는 저를 흔쾌히 수업료도 거의 받지 않고 가르치셨죠!”

“허어, 배포 또한 넓지 않은가? 자네, 그럼 안 교리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겠구만?”

“그럼요! 지금 성근학당에서 가르치는 교재들도 이미 그 시절에 스승님께서 저술하신 것들입니다. 그 독특한 구성을 이미 오 년 전에 구상해내셨다구요!”

“허어, 오 년 전이면 약관(弱冠, 20세)의 나이 이전이 아닌가? 그 어린 나이에 이런 정밀한 주석서를 편찬했다니, 내 여기 오늘 오기 잘한 듯싶네!”

어질어질하다……. 아니, 그런 이야기는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방금까지 처음 보는 방문객을 경계하던 녀석과 동일 인물이 맞는 건지.

요운이 놈은 대화에 끼어들어 급발진을 밟더니, 이제는 숫제 나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낯선 선비와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열이 괜한 내 얼굴에까지 옮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열띤 대화가 식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많이 흘러갔어야만 했다. 그동안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고 가라앉혔는지.

“……이 학당을 일으켜 세운 두 명의 젊은 선비가 전부 갑과 급제자라! 이 성근학당의 미래는 밝기가 그지없을 것이네! 자네가 작은 스승님이라 부르는 그분도 뵙고 싶구만?”

“그분도 종종 쉬는 날이면 학당에 들르시곤 하니 만나시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헌데, 처음 뵙는 선비님. 이쪽을 보십시오. 스승님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핫? 아, 미안하오. 거 초면부터 추태를 부렸구만. 용서하시오.”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나, 그렇다고 뭐 어쩌겠는가.

굳은 입꼬리를 구길 수밖에.

결국 이 뻔뻔한 선비의 정체는 그렇게 둘에게 내내 조리돌림 당하듯 수치 플레이를 당하고 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나는 남원 윤씨 가문의 사람이오. 이름은 외자로 휴(鑴) 자를 쓰고 있소.”

***

윤휴, 조금 더 후대에 남인의 거두로 활약하는 사람이며 송시열과 원수지간이었다는 사실밖에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송시열과 교분이 있었나?

하지만 거의 광신도 수준으로 날뛰기 시작한 그와 대화를 나눠보자, 묻혀 있던 기억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솔직히 서인들 사이에서 도는 소리 중에 안 교리가 청의 앞잡이라는 이야기도 많은데, 만나보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소. 정말로 그랬다가는 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겠지. 으하하.’

‘그놈들은 안 교리가 조선에 청나라 물을 들이려 제도를 망가뜨린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오. 나도 당신이 추진하는 대동법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긴 하나, 개혁을 막으려는 수구 놈들이 더 문제라 생각하고 있소.’

‘이전까지는 나도 청이 원수고 멸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안 교리가 중원에서 한 일들을 보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소. 복수도 자강(自彊)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오. 그때까지는 체질을 바꾸며 숨죽일 필요도 있겠지.’

윤휴는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 후대의 이익,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실학에도 영향을 주었으나, 끊임없이 북벌을 주장할 정도로 반청 기조가 강한 인물이었다.

헌데 내가 청나라에서 한 일이 젊은 윤휴에게 자그마하지만 큰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원 역사에서의 중년의 윤휴는 군사력을 강화해 언제든지 청을 정벌해야 한다며 주장하던 사람이었으나, 지금 앞에 앉아있는 젊은 윤휴는 생각이 달라 보였다.

그렇게 윤휴가 자기소개를 겸해 찾아온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끝마친 이후였다. 갑자기 바닥을 양손으로 탁 짚은 윤휴가 묵직한 제안을 건넨 것은 그때였다.

“나, 솔직히 말하겠소! 안 교리가 마음에 드오! 앞으로 나와 교분을 맺어 주시오!”

“예?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아, 하긴 당신 입장에서는 산림과 관련이 있는 자가 갑자기 접근하니 경계할 만도 하겠구려. 그럼 이건 어떻소? 이 학당에서 내가 훈장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를 주시는 건?”

이 이름을 말하기 싫은 학당에 머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그러는 동안 나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려 하겠지. 옆에서 눈을 빛내는 요운이 놈의 입이야 한없이 쌀 테고.

만나자마자 사람을 사정없이 몰아치는 것이 왠지 충신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었다. 둘이 만나면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으나 낯선 자를 함부로 곁에 두는 것은 신중해야 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내 식대로 여기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오. 사실 그대가 어전에서 주창했다는 경세치용(經世致用),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구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기에, 그 구절에 담긴 참뜻을 여기 머물면서 익혀보고 싶어서 그렇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는 자타공인 스승님의 첫 번째 제자기도 하고, 호판대감의 일도 꽤 돕고 있으니 선비님께도 말씀드릴 것이 많을 겁니다.”

“호오, 자네가 도와준다면 든든하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아까 막무가내로 군 일은 사과하겠네. 내가 성질이 좀 급해서 말이지.”

“아닙니다. 스승님에 대한 마음이 지극하셔서 그러신 것인데, 어찌 제자로서 허물을 묻겠습니까. 마침 학생들을 가르치시던 작은 스승님도 성균관으로 가신 터라 일손이 부족하던 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왜 너희 둘이서 마음대로 손을 마주 잡고 일을 결정하냐? 나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윤휴를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 영감’ 학당에서 배움을 구하려는 학생들이 늘고 있었지만, 가르칠 사람이 모자라 일부는 돌려보내는 상황이라고 했으니까.

장인어른이 확장한 학당을 보여주려 나를 데려온 이유도 아마 학당의 규모를 더 키워보자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인 듯했다. 그럼 요운이 하나로는 부족하니 선생도 더 구해야 하는데, 윤휴 정도의 인재면 말 그대로 굴러들어온 호박이었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면 멋대로 가르칠 것 같지도 않고, 요운이 녀석과 쿵짝도 잘 맞는 것 같고, 무엇보다 거절하면 앞으로 계속 귀찮게 굴 것 같으니 일단 맡겨나 볼까.

“정말이오?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는데?”

“일단 궐에서 급제자들이 권지로 활동하듯, 제 제자의 방식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최종 결정은 이 녀석에게 보고를 받고 숙고한 후 내리겠습니다.”

“걱정 마시오! 내 안 교리 마음에 안 들 자신이 없다오!”

“스승님, 오랜만에 본 저를 그토록 믿고 의지해주시다니…… 저는 그저 감동입니다…….”

사실 입에 올리기도 싫은 학당을 윤휴까지 통째로 그냥 요운이에게 떠넘긴 것이지만, 멋대로 착각하라지. 어차피 나랏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적당히 재정만 지원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리라.

“참, 안 교리. 방금 성명을 나누며 생각난 일인데, 본관이 죽산이라 하셨지 않소?”

“예. 죽산 안씨입니다. 무어 문제라도 있습니까?”

“호남의 저명한 유학자 중에 이름으로 방자 준자를 쓰시는 어른이 계신데, 그분과 같은 가문이 아니오? 영보가 서신을 통해 배움을 구하는 분이기도 하고, 이판 대감과도 연결이 있다고 들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전라도 진안에서 올라왔긴 하나, 다른 친척들과 교분이 없이 혈혈단신이었던 터라…….”

“보성과 진안이면 거리가 좀 있긴 하군. 모르는 것도 이상하진 않겠지. 허나 지금처럼 산림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그분 같은 거유(巨儒)와 같은 문중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소?”

안방준? 한양에 출사하지 않은 이름 높은 학자 중에 친척 어른이 있는 모양이었다. 윤휴의 말대로 언젠가 그 관계를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름을 기억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시일 안에 편지라도 보내는 편이 낫겠다.

“그럼 앞으로의 일은 대강 일단락이 된 듯싶으니,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겠습니다.”

“허어, 벌써? 아직 안 교리와 나눌 이야기가 산처럼 많은데…….”

“앞으로 스승님을 뵐 날이 산처럼 많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그만 보내드리지요. 날도 어둑해졌고요.”

“하긴, 집에서 미인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셔야겠구만. 안 교리의 혼인에 얽힌 이야기는 온 한양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니 말이오. 핫핫!”

나를 보내면서도 꼭 마지막까지 초를 치는 윤휴였다. 본인이 생각하는 혼인이란 중매가 필수라지만 나와 하연의 이야기는 연애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절의로 가득 차 있으니 바람직하다나.

언제까지 내 일거수일투족이 한양에 뿌려지려나.

괜히 그 범인의 오라비인 요운이 녀석이 미워지려 했으나, 어차피 오늘 밤새 윤휴에게 내 이야기를 내놓으라며 괴롭힘을 당할 것이 뻔히 보이는지라 조용히 자리를 뜨기로 했다.

아니다, 과연 요운이 녀석이 그걸 괴로워할까? 왠지 이 듀오가 앞으로도 내 뒷목을 잡게 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불길함을 억지로 떨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능글맞은 윤휴의 목소리가 돌아서 나가는 내 등 뒤에 꽂혔다.

“앞으로 맡겨만 주시오! 내 조선 땅에 장차 성근학파가 자리 잡을 수 있게 열심히 할 테니!”

그리고 아마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할 것 같다. 하아.

***

준비한 보람이 있었는지, 대동법 관련 업무는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전답 한 결(結)에 대동미 열세 말을 내는 것이 정해지고, 감자와 고구마에는 당분간 세금을 걷지 않기로 했다.

대략 십 년에서 십오 년이 앞당겨진 정책이었다. 이제 다음 목표는 동전의 발행을 삼십 년쯤 당기는 일이다. 김육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동전을 만들 구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행정의 혁파 또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단 호조 내의 모든 문서는 모두 표로 대체되거나 표를 첨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김육의 주청으로 지방에서 올리는 보고 역시 표로 대체되는 모양이었다. 이름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헌데, 조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산림 세력의 영수였던 김집이 대동법 논쟁으로 권위가 무너지기라도 한 것인지, 하나로 뭉쳐있던 산림 세력이 분열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전에 이야기한 것 기억하시오? 서인들 사이에서 안 교리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개혁 자체를 막으려는 수구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쉬는 날 학당을 찾았을 때, 나를 불러 세운 윤휴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또 광신도 노릇을 하나 싶었는데, 오늘만은 그의 태도가 진지했다.

“이판 대감이나 송 헌납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그런 사람들은 그나마 산림 사이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오. 그렇지 않았으면 영보와 내가 교분을 나눌 수 있을 리가 없겠지.”

“그렇다면……?”

“김집 대감 뒤에서 원로 노릇을 하던 좌상 대감이 과격파 세력을 규합한 모양이오. 그 사이에 당파 내에서 대동법 일로 사직하고 낙향한 산림 관료들도 몇 있다 들었소.”

좌의정이라면 청에 붙잡혀 있다 풀려난 김상헌을 가리키는 것인가. 내가 이해한 대로 극단주의자들이 서인을 장악해 가는 것이 맞다면, 앞으로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나마 김집과 송시열은 온건파에 해당하는 관료들이었으니까.

“주의하시오. 안 교리. 그들은 정말로 꽉 막혀있으니까. 이전과는 다를 것이오.”

남인인 윤휴는 수학하던 시절부터 그들에게 당한 것이 조금 있는 모양이었다.

헌데, 조정의 세력이 분열되고 주도권이 바뀐다는 사실에서 왜 익숙한 냄새가 나는 건지. 창덕궁 후원의 연못에서 맡았던 물비린내가 갑자기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능양군에게 끌려가 처음 그를 접했던 날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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