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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13화 (113/298)

113화. 반촌의 주인

일단 허생이란 자를 만나보고 결정하겠다는 내 말에, 변승업은 연신 몸을 반으로 접을 기세로 허리를 숙여댔다.

보는 내가 더 난감할 지경이었다.

그의 굽신거림은 내가 적당한 날짜와 장소를 일러준 후에야 겨우 멈췄다.

“도련님! 제수는 제가 들어다드리겠습니다요!”

어느새 자리를 비웠던 변 서방이 나타난 것은 변승업과 작별하고 반촌을 벗어날 무렵이었다.

고작 곶감 한 꿰미를 실어다 준다면서 지게를 메고 왔기에 무슨 속셈인가 했는데, 변 서방의 등짝에서 뜬금없이 훈김이 폴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자네, 등에 멘 것은 무엇인가?”

“도련님 이야기를 했더니 촌장 어른이 반색하시면서, 당장 대접해드릴 것이 없다면 뭐라도 드리고 오라 하던 뎁쇼. 그래서 가져온 것입니다요.”

“아니, 그래도 그건 조금 과하지 않은가? 사사로이 받기 어려운 물건이네.”

“도련님이 이토록 가까이 계셨는데 소인들이 고기 한 점 대접을 못 해 드렸으니 안타까워서 그러는 것입죠. 갈비 몇 대 가지고 누가 트집을 잡겠습니까요?”

변 서방의 등짝에서 오르던 김의 정체는 시뻘건 통 갈비 두 짝에서 흘러나오는 수증기였다. 그가 이어서 자랑스레 떠벌리는 것을 들으니 도살장에서 갓 잡은 물건을 대령한 듯싶었다.

이걸 뇌물로 보아야 하나, 성의로 보아야 하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헌데 변 서방은 그 낌새를 눈치채기라도 한 모양인지 충신에게 내 신혼집 위치를 묻더니 먼저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손 쓸 틈도 없는 사이의 일이였다.

“사형, 제 집을 그리 쉽게 알려주시면 어떡합니까?”

“받아 둬라. 저런 몸부림이라도 없으면 저 좁은 반촌에서마저 기를 못 펴고 살 사람들이다.”

“그 무슨…….”

“저들은 평생 성균관에 매여 사는 처지다. 한양 한복판에 천민들만 모여 살고 있는데, 그동안 무슨 취급을 받았겠냐. 저들이 유생들과의 관계에 목숨을 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아…….”

“하물며 너처럼 옛 주인의 핏줄을 타고난 장원급제자가 나타났는데, 미래는 밝은데다 민생까지 챙기는 훌륭한 관리라? 저들에게 네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생각을 해 봐라.”

조금 낯부끄러운 말이었으나 반박할 말이 없었다. 충신은 나와 좌명보다 더 오래 성균관을 다니면서 반촌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이 있을 테니까.

거기에 우리가 성균관에 다니던 시절 동장의, 서장의를 비롯한 유생들 꼬락서니를 생각해보면…… 반촌 사람들이 나를 보자마자 왜 저렇게 환대하는지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마을에서 변 역관 같은 자를 끼고 암거래에 나서는 것을 보면, 반촌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백 중 구십구는 맞을 게다. 그러니 너를 처음 본 자리에서부터 지극정성인 것이겠지. 아무리 반촌과 안 씨 사이에 얽힌 사연이 있다고 하나 이건 정도를 넘은 대접이야.”

“교하에 정착한 속환인들도 있는데, 한양에도 신경 쓸 곳이 한 군데 더 늘었군요.”

하긴 유생 시절에도 반촌 출신임이 분명한 수복이나 비복들이 나를 위해 일해준 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이들이다. 내 쪽에서 친분을 쌓기 전에 성균관을 나와서 문제였지.

더 생각해보니 성균관 밥에 설사약을 탔던 일도 있었지. 혜민서 의관이 잘 덮었다지만 어쨌건 그들에게 민폐를 끼쳤던 것 같기도 하고…… 쌓은 업보는 갚아야 도리려나.

“네가 선택한 길이다. 부제학 영감이 들으면 위정자는 어쩌고 하면서 또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시겠지.”

“그건 그분을 따라 상경했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입니다. 게다가, 관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역이 손에 들어온다면 언젠가 써먹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언제까지고 정도(正道)만 걸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 같은 놈이야 네 그림자에서 영원히 사도(私道)를 걸을 셈이지만, 너도 지금 자리에 만족하고 마냥 떳떳하게만 살 것은 아니지 않냐.”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히는 일은 사형이 도맡아서 해줄 줄 알았습니다만…… 저도 언제든 그럴 각오를 해 둘 필요가 있겠지요.”

나를 뭘로 보는 것이냐며 충신이 가볍게 주먹을 날려왔으나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시절부터 말은 험했으나 속내는 늘 깊었던 사람이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며, 그답지 않은 선비스러운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짓고는 걸음을 재촉하던 충신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자리에 멈춰 선 것은 잠시 후였다.

“아, 그러고 보니 잊은 게 있다. 청에서 받아온 선물이 있었는데, 네가 흥미로운 건을 들고 온 바람에 까먹고 말았지 뭐냐.”

충신의 소매에서 나온 봉투에는 익숙한 글씨체의 만주문자가 적혀 있었다.

도르곤의 글씨체였다.

이 양반이, 까먹을 걸 까먹어야지. 확.

***

“결국 반란은 진압되고 명과 청, 두 나라로 중원이 남북으로 양분될 모양이구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섭정왕이 직접 전한 정보니 틀림이 없겠지요. 이자성의 농민군은 뿌리가 뽑히기 일보 직전이라 적혀있으니, 지금쯤은 아마 토벌이 완료되었을 것입니다.”

그날 저녁, 성 영감의 사랑방을 찾아갔다. 세자가 시킨 일이라고는 하나 어쨌건 나랏일은 아닌 일에 휴가를 내주었으니 보고는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제학 영감께서는 곶감 이야기보다 도르곤이 직접 전해온 대륙의 정세에 더 관심을 보이시고 있었다. 하긴, 호조나 포도청에서 맡을 일보다는 예조에 소속된 홍문관 업무와 관련된 일에 눈이 향하시겠지.

“왜 그리도 아련한 얼굴을 하는 겐가. 북경에 놓고 온 황녀 일로 아직도 싱숭생숭한가?”

“아닙니다. 제가 안사람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자네 아내 일로는 농담도 못 하겠구만. 덕분에 자네가 늘 기어코 퇴청 전에 일을 끝내려 용을 쓰니 내게는 좋은 일이지만 말이지.”

성 영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도르곤의 편지였다. 살짝 익살스러운 표정이 영감님 얼굴에 서려있었으나, 애써 무시했다.

내가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한문으로 번역한 탓에, 성 영감은 거기 적혀있던 황녀의 근황에 대해서도 유심히 읽은 모양이었다. 실은 그 뒤의 대목이 훨씬 중요하기에 함께 번역한 것이었는데.

“뒤에 이어진 내용이 중요합니다. 대륙의 정세는 그렇게 일단락이 된 모양이지만, 청국의 권력구도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모양이니까요.”

“농담이든 진담이든, 자네더러 북경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냐고 묻는 것만 보아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알겠네. 몽골의 코흘리개에게 황녀를 시집보내야 하는 황실이라…….”

“섭정왕의 말로는 출가를 거부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아는 섭정왕은 정말로 제가 필요했다면 이런 서찰은커녕 소환장을 발부했을 사람입니다.”

원 역사의 도르곤은 이런 일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누르하치도, 홍타이지도 해내지 못했던 산해관 돌파와 북경 점령을 섭정왕의 위치에서 홀로 해냈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권위에 도전할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업적은 죽은 홍타이지의 마지막 위업이 되어버렸고, 도르곤은 형이 북경 땅을 밟게 해주고자 어쩔 수 없이 오삼계와 일시동맹을 맺고, 명의 황제를 살려 보내기까지 한 마당이다.

그래서 도르곤의 힘은 여전히 강성하다고는 하나, 원 역사처럼 황제와 다름없는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를 조선으로 돌려보낸 것을 후회한다는 식의 문장을 적은 것인가. 내 부탁에도 불구하고 황녀의 혼처가 바뀌지 않은 것을 보면 꽤 그럴듯한 추측이다.

하지만 도르곤 정도의 실력자라면 내가 없더라도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집안 단속에 신경 쓰는 사이 남명에게 숨을 돌릴 틈이 주어질 수는 있겠지만.

“하긴, 그러니 자네보고 훗날을 도모할 계획을 잊지 말라 다짐을 넣는 거겠지. 이 정지룡이라는 자는 누구인가? 이 자 탓에 섭정왕이 해금령을 내리려는 것이려면 대단한 자이지 싶은데.”

“강남 일대의 해상무역을 장악한 세력의 우두머리입니다. 그의 개인 재산은 남경으로 쫓겨 간 명 조정의 자금을 댈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요. 그의 돈줄인 무역을 금해 숨통을 틀어막으려는 목적일 것입니다.”

“강남과 중원의 무역을 막고 필요한 물건은 조선을 통해 구하겠다는 속셈이군. 우리를 중립적인 중개자로 위장하고 은근히 저쪽에 불리한 조건을 강요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겉으로는 여전히 명을 따르는 자들이 우글거리는 나라니, 우리가 청을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정지룡이 의심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섭정왕이 그린 큰 그림은 대략 그렇습니다.”

“하긴, 그들 입장에서 청의 배후에 위치한 우리가 손을 먼저 내밀었을 때 그걸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남경으로 내려간 숭정제는 그래도 정권을 꽤 무난히 수습한 듯했다. 도르곤이 보낸 편지의 내용과 최명길이 명에 파견한 세작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남명은 내 목적대로 원 역사보다 청의 공세를 오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도르곤이 해금령 카드를 일찍 꺼내 든 것도 그런 낌새를 눈치챈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달리 성 영감은 원 역사를 알지 못하겠지만, 그 역시 이맛살을 깊이 파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마 그의 머릿속에는 개혁파가 공유 중인 미래의 청사진이 현재의 정세와 끼워 맞춰지고 있을 것이다. 원 역사를 알고 있는 내 머릿속 생각과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그렇게 두 대국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려면 국내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 나라 안 물류의 흐름도 수월치 않은데, 어찌 바다를 건너 중개무역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착실히 기초를 쌓는 중입니다. 이번에 귀국한 강 진사가 이번에는 청에서 조선(造船) 장인을 데려왔기도 하고요.”

“저하께서 보위에 오르는 즉시 일을 밀어붙일 생각인가? 그쪽 일은 자네한테 맡기겠네. 새로운 일에 밝지 못한 늙은이들은 조정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줘야겠지.”

“예, 그래서 이번 매점매석 일로 영감께 협조를 요청 드린 것입니다. 혹여나 일이 잘못되면 포도청의 도움을 받을 생각까지 해야 하니까요.”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성 영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곶감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동법의 추진 명분에 큰 타격이 생긴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을 터.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전해 들은 영감님의 반응을 보니, 일단 쓸데없는 일로 출근을 빼먹었다며 불호령을 들을 일은 없지 싶었다. 고작 암상인 하나에 좌지우지되는 조선의 상황을 탄식하는 영감님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일단 저하께 보고를 올려야겠구만. 그 후엔 어찌할 텐가? 방금 말한 대로 포도청을 동원해 암상인들을 몽땅 잡아들일 셈인가?”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그럴 생각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조금 두고 볼 생각입니다. 그들의 조직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허생이란 자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의 성이 허가라면 아마 양천 허씨 집안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그 집안에서 난 서자가 조선을 뒤흔들어 놓다니 운명이란 참 얄궂지 않은가.”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이 양천 허씨였다. 김육의 영향으로 성 영감도 소설을 조금 접하게 되면서 그 책을 읽은 모양이었다.

이 시기에 유명한 양천 허씨 대신도 몇 있었으니, 그들의 혈육인가. 허목과 허적, 남인의 거두로 활동했던 인물들이었다.

어라, 남인?

“자네 모양새를 보아하니 그 허생이란 자를 직접 다뤄볼 생각 같은데, 너무 무리는 하지 말게. 위험한 일에도 엮이지 말고.”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성 영감이 염려하는 말을 던져왔다. 늘 그렇듯 따뜻함이 가득 담긴 눈빛과 함께였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랏일도 중요하지만 자네 몸이 더 중요하니 항상 주의하게. 자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조선의 미래는 금방 어두워지지 않겠는가.”

암상인이 엮인 일이니 수틀리면 그들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 조언을 마음에 새기면서도, 성 영감의 걱정이 단순히 부하나 제자에게 건네는 그것처럼 느껴지지 않아 가슴이 찌르르 울리고 있었다.

이번 생에 아버지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을 받았으려나.

그렇게 나랏일을 챙기던 양반이 전해온 따스한 감정 탓에 별별 생각이 다 드는 자리였다.

***

연장자의 지혜는 늘 옳다던가. 성 영감의 염려는 정확히 맞아들어갔다.

허생과 만나기로 한 날, 약속 장소로 지정한 충신의 기루에 웬 검계 한 무리가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의 앞에 선 자는 웬 꾀죄죄한 도포와 찌그러진 갓을 걸친 자였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바였다. 성 영감에게 얻은 힌트에서 놈의 정체와 행적을 대강 추적한 이후로는 계획을 다 세워놓았으니까.

생각보다 놈은 거물이었다.

“생각보다 간이 작으시군요. 제 아우들의 무기를 빼앗은 것은 그렇다 치고, 이 자리에 들이시도 않으시다니.”

“아니, 허생 자네, 나리께 무슨 그런 망발이야? 나와는 상의가 없었던 일이잖아!”

그릇이 큰 것인지, 예의가 모자란 것인지.

앞에 앉은 허생은 당하관쯤 되는 관리는 별것 아니라는 듯, 도리어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고리대금으로 관리 몇은 이미 손아귀에 쥐고 있다던가. 들은 내용 그대로였다.

옆에 앉은 변승업만 몸이 달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었다. 이 자가 변 역관의 일본 무역망을 삼키고 싶어 접근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군.

“변 역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어주게. 이 자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리? 저는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허생과 동업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이 자가 이렇게 나올 줄도…….”

“알았으니 조용히 하고 옆으로 물러나 있게. 자네를 의심하려는 것이 아니니까.”

건방진 놈, 감히 나를 상대로 시작부터 무력 시위를 해?

허생이 끝까지 동행할 것을 고집해 방 안에 들인 놈의 ‘아우’ 한 명에게서도 협박의 낌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놈의 잘려 나간 귀가 이 자리의 분위기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 놈의 허장성세에 장단을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걸 보니 오늘 충신의 기루를 통째로 빌린 것이 다행인 듯했다.

“핫. 허생이라 했나?”

“무엇이 그렇게 우스우십니까?”

“오히려 간이 작은 것은 자네가 아닌가? 고작해야 관리 하나와 그의 벗을 보러 오는데 ‘아우들’을 구름같이 몰고 오지 않았는가.”

충신과 나는 성 영감의 염려 덕분에 평소보다 기루를 관리하는 패거리를 늘려놓았었다. 덕분에 허생이 이끌고 온 무뢰배들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충신의 수하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몇 보였다는 것인데, 그들의 정체는 유생 시절 만리재에서 나를 습격했다 참교육을 당한 왈짜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삼개나루 뻘밭에 묻힐 위기를 면하고 충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양이었다.

“배짱이 두둑하신 분이시군요. 제 검계들을 보고도 겁먹지 않으시다니.”

“고작해야 칼을 들고 백성들을 협박하는 일로 먹고사는 무뢰배들, 겁먹을 이유가 있는가? 그 정도야 이 사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하지.”

“벗이라는 분이 삼개나루 상단의 대방입니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덕분에 허생이 처음 놓은 수를 분쇄할 수 있었다. 물론 준비한 수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놈의 위협에도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묘하게 여우상을 한 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확실히 평범한 관리는 아니시군요. 이 허생을 처음부터 당황하게 만드는 분은 처음 봅니다.”

“자네도 평범한 서생은 아니지 않은가. 혼자서 조선의 장사판을 쥐락펴락하려 드는 서생이 있단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네.”

기죽지 않고 받아치자 허생에게서 날아오는 시선에 한결 날카로움이 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 맞부딪히는 눈빛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길 지경이다.

확실히 예사 인물은 아니다. 또한 내게 순순히 복종할 인물도 아니다.

만만치 않은 사내였다.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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