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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18화 (118/298)

118화. 노회한 이리

여느 때처럼 홍문관에 제일 먼저 출근해 성 영감을 기다리던 아침이었다. 바람처럼 나타난 영감님은 평소처럼 업무를 던져주기는커녕 갑자기 나를 옥당 밖으로 끌고 나갔다.

“사헌부에서 저를 탄핵하자는 이야기가 돌았다고요?”

“아무리 풍문거핵(風聞擧劾), 불문언근(不問言根)이라 하나, 좀 도를 넘은 주장이라 구체화되진 못했다 하네. 아무리 대간(臺諫)들이라 해도 탄핵에는 자신의 목도 걸어야 하니까.”

전 대사헌과 친분이 있는 서리가 말해 주었다며, 성 영감이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전해 준 이야기였다.

생각도 못했다, 탄핵이라니.

삼사, 특히 감찰을 담당하는 사헌부의 위세는 조정 내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풍문거핵, 소문만으로도 탄핵할 수 있고, 불문언근, 그 주장의 근거를 대지 않아도 된다. 그 여덟 글자가 사헌부의 권한을 상징했다.

“저는 탄핵당할 일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영감. 영감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정신 나간 산림 놈들이 사간원과 사헌부에 들어차 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세. 살다살다 그런 잡기에 실린 일로 탄핵을 논할 줄이야. 내가 사간원에 있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인데.”

미친 유교 탈레반 놈들.

뒤이은 성 영감의 설명을 들으니 예전에 언급된 산림 과격파의 소행이 분명했다. 좌의정 김상헌을 중심으로 모인 세력이자, 윤휴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이 통하지 않는’ 산림들.

허생의 뒷배를 봐주던 관료들로 추정되는 유력 용의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현직 관료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불순한 일이라고 사람을 탄핵하려 들어? 공무원의 품위유지의무를 걸고넘어지는 건 이 고리짝 시절부터 이어져온 전통이였구만.

“자네도 알고 있겠지. 삼사의 탄핵이란 반대 당파의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허나, 이런 일을 전하께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어전에서 먹히지 않을 것을 그들도 알기에, 잡기에 실린 이야기가 경거망동하고 오만하다는 언급 정도에서 그친 것일세. 앞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성 영감의 목소리는 꽤나 다급해 보였다. 그들이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영감님을 불안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가 실화인 것을 아는 성 영감이니 그럴 만했다.

안 그래도 장인어른이 내 이야기를 소설로 줄줄이 펴내면서 혹시나 싶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증거들을 인멸해 놓긴 했다. 특히 호피 복면과 정의봉은 나무 상자에 담아 마당 구석에 깊이 묻어 두었다.

한양에서 담장을 넘은 사건의 당사자인 김자점은 아직도 귀양이 풀리지 않은 상태, 낙향한 그 아들에게도 별 특이사항은 보고되지 않았던 터였다. 파직당한 전 남원부사는 심양에 다녀온 사이 세상을 뜬지 오래였고.

“뭐, 별 일이 있을까합니다만, 영감 말씀대로 당분간은 다른 일에 관여하지 않고 홍문관 일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특히 예친왕과 아직도 서찰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점은 절대 들켜서는 안 될 것이야. 그들을 발작하게 만들 거리를 절대 줘서는 안 되네. ……아.”

“무슨 일이십니까, 영감?”

성이성의 얼굴에 갑자기 그늘이 깊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무언가 중대한 일을 이제야 떠올린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던 일이 기억났네. 몇 년 전에 말일세.”

“무슨 말씀이십니까? 실수라니요?”

성 영감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역시 힘이 없었다.

“전하께서 자네와 나의 비밀을 알고 계시지 않는가. 동강난 마패의 비밀 말일세.”

***

태공망의 고사,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성 영감도 그때는 임금을 믿고 보고한 것이겠지. 하지만 처음 능양군에게 불려갔던 밤, 임금은 나와 내 스승의 뒤통수를 동시에 후려치고 말았다.

지금은 왕이 내 뒤를 슬슬 봐 주는 분위기지만, 언제고 다시 그 마음이 변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궐에 설치된 것과 다름없는 상태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대궐에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금의 마음이 변치 않길 기도하며 제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아니면…….

“지방으로 흩어 보낸 호포대를 경기로 모으라굽쇼?”

“그래, 김 갑사. 꼭 한양 근처에 머무를 필요는 없지만, 저번 허생이란 자의 검계 일도 있고 하니 당분간은 내 주위에 있어주어야겠네.”

“알겠습니다요. 안 그래도 이번에 청으로 상단이 떠나기 전에 한양으로 가죽을 모을 필요도 있고 하니, 전원을 소집하는 게 낫겠습죠.”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지만, 부디 이 무력을 쓰는 날이 오지 않기를.

그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궐내각사 생활을 이어나간 것이 며칠 째였나, 성 영감과의 약속을 어기고 홍문관을 벗어나야 할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일정, 자네도 이 서찰을 받았는가?”

“그렇네. 방금 궐에서 나온 주시동(奏時童, 궐내의 시간을 알려주러 다니는 아이)이 전해주었다네. 자네는 궐내각사에 있다보니 빨리 전달된 모양이군.”

퇴근길에 집 대신 성균관으로 향해야했던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좌명에게도 같은 물건이 전달되었을 것이 분명하므로.

“저번 증광시 갑과급제자들은 초대에 응하라니, 성근 자네도 같은 물건을 받았겠지? 이것은 대체…….”

“말은 미래가 기대되는 신진들과 교분을 나누고 싶다는 핑계지만, 이 연회자리를 마련한 이의 신상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좌의정 김상헌.”

그의 수하들이 나를 탄핵하려 들었던 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나를 연회에 초대하는가. 발신인이 산림의 대로(大老)인데는 확실히 숨은 뜻이 있을 터였다.

봉투에 적힌 이름을 발음하는 좌명의 목소리도 한껏 무거워져 있었다. 좌명 역시 이 사태의 중대함을 알아차린 듯했다.

“아버님께 탄핵 이야기는 들었네. 자네를 적대하는 자들이 꾸민 연회에 참석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어차피 연회 참석자라 해 봐야 조회 자리에서 다 보던 사람들일 텐데, 별 일이야 있으려고.”

말은 시원스럽게 나왔으나 마음은 못내 꺼림칙했다. 좌명의 말대로 김상헌의 자택에는 정적(政敵)들이 가득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병을 칭하고 초대를 피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면한 위기가 해결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정승쯤 되는 자가 초대하는 자리다.

‘에라,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좌의정 체면에 본인이 연 연회에서 무슨 짓을 하려고.’

그들도 양반의 체면과 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래도 손님으로 자리에 참석한 내게 손을 대는 일은 없겠지. 그런 자리를 만든 이유는 아직도 미궁 속이었지만 말이다.

장인어른과 성 영감에게도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다들 자리를 피할 필요까진 없다는 결론을 내려주었다. 어차피 그들 역시 반대 당파를 의식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봉변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란 예측이었다.

“가슴을 펴게. 당당한 관료의 한 사람으로 그들을 대하게. 자네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언제든 자네 뒤에는 우리가 있네.”

***

그렇게 약속 당일이 왔다. 이번에는 소매 속에 숨길 무기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쓸 무기는 세 치 혀면 될 테니까.

“어서 오게. 안 교리, 김 박사. 자네들 같은 미래가 밝은 신참들이 내 초대에 응해주어서 고맙네.”

김상헌의 저택 후원에 이미 연회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도포와 갓을 걸친 선비 십수 명이 돗자리 위에 놓인 주안상을 받은 채 나와 좌명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

글자로 옮기면 따스함이 가득 담긴 표현이겠지만, 김상헌이 전해온 인사에서는 찬바람이 씽씽 불고 있었다. 눈썹까지 하얗게 센 노회한 대신의 눈초리는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좌상 대감. 그런데, 이렇게 동석자가 많을 줄은 몰랐군요.”

“내 지난번 자네의 지부상소에 감명을 받아서 말일세. 자네가 어떤 자인지 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 뭔가.”

관자놀이에 검버섯이 올라앉은 노신(老臣)이 소매를 들어 주위를 가리켰다. 김집과 송시열처럼 눈에 익은 신료들도 있었지만 낯선 이가 훨씬 많았다.

특히 얼굴에 독기가 바짝 오른 선비 몇은 내게 따가운 눈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전해지는 적개심에, 오늘 자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대감, 여쭤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안 교리?”

“오늘 이 자리가 대감께서 신진 관료들을 초청한 연회 자리입니까? 아니면 사헌부의 야다시 자리입니까? 저는 구분이 안 가는군요.”

“허허, 그럴 리가. 이 자리는 분명 자네들을 환영하는 자리라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박사?”

야다시(夜茶時), 사헌부에서 야간에 차를 마시며 감찰 일을 논의하는 자리.

누군가 곧 의금부로 잡혀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야다시가 열린다 하던데, 지금 이 자리의 분위기가 마치 그것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좌명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놈의 잘생긴 옆얼굴이 미세하게 찌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랫동안 봐온 벗들이나 알 수 있을 차이였다.

“그렇습니까? 소인은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원들은 평시에도 술을 달고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라, 혹여나 술상이 앞에 놓인 탓에 이들이 연회 자리와 궐내각사를 구분하지 못 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짜식, 그동안 변하지 않았군.

할 말은 하는 남자, 좌명의 면모는 적들이 수두룩한 이 연회 자리에서도 발휘되고 있었다. 우리가 좀 더 어렸던 시절에는 그 혀가 귀찮은 일을 부른 적도 있었지만, 지금 자리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패기 있는 행동이 분명했다.

“어허! 연회 자리에서 무슨 망발인가!”

“쓰읍, 요새 선비들은 위아래도 모르는 겐가? 아니면 성균관에서는 삼사의 고충을 모르는 겐가?”

그래도 삼사 관원들을 대놓고 까는 건 좀 심하긴 했다. 나도 일단 삼사의 일원인 홍문관의 관원인데…….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술잔을 끼고 일해도 된다 허락된 것은, 그만큼 그들의 업무가 정신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술기운이라도 없으면 윗사람을 까는 상소를 어찌 올리라고.

하지만 잔뜩 뿔이 난 산림들과는 다르게 주최자인 김상헌은 껄껄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주름진 얼굴을 찡그리며 폭소하는 노인네에게서는 어떠한 의도도 읽히지 않았다.

“헛허, 재미있는 농담이구만, 김 박사? 그런 패기야말로 삼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덕목일진대, 이 자리에 부른 보람이 있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좌상 대감?”

“자네들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신진 관료들의 다음 보직을 논하기 위해서였다네. 보통 사헌부의 대간 자리는 홍문관과 성균관 출신의 젊은 인재들이 많이 거쳐 가는 자리니까.”

그래서 여기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판서 김집과 사간원, 사헌부 소속인 산림들이 몽땅 모인 모양이군.

꽤나 좋은 명분이었다. 혹여나 나중에 젊은 신료들을 불러다 갈궜다며 추궁 받을 일이 생기더라도 완벽하게 둘러댈 수 있는 핑계.

“그런 의미에서 자네들이 이 자리에 초대된 것이라네, 혹시나 선진들에게 먼저 인사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연회의 즐거움에 더해 자네들에게도 새로운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아니 그런가, 안 교리?”

“이런 자리에서 즐거움을 찾으라니, 좌상 대감은 소인과 꽤나 다른 취향을 가지신 모양이군요. 아마 이런 선진들이 득실거리는 부서에서 일하면 피가 마르지 않겠습니까?”

“후하하. 심양관의 애송이가 많이도 컸구나. 주상 전하의 말씀대로 개호주(새끼호랑이)가 호랑이가 되었어. 심양 형부(刑部)에서 오랑캐 놈들에게 맞서는 내 말을 옮겨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나와 김상헌은 구면이었다.

금주 전투에 보낼 원군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죄목으로, 심양으로 끌려와 국문을 받던 김상헌의 조선 측 통역을 맡은 자가 나였다.

홍타이지의 사촌, 정친왕 지르갈랑 앞에서도 태연무색하던 그였다. 그의 죄에 사형을 운운하는 정친왕 앞에서 ‘곧 죽을 사람이 애걸한다고 살 수 있겠는가.’라며 꼿꼿함을 잃지 않던 김상헌의 일화는, 그 일을 전해 들었을 뿐인 홍타이지조차도 기억할 정도였다.

“청인들이 대감을 매우 어려운 자라며 감탄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여전히 제게는 어려운 분이신 것 같습니다.”

“자네를 일찍 점찍어 놨어야 하는데, 자겸이 자네에게 들인 물이 큰 인재를 오랑캐의 앞잡이로 만들어 놨으니 이를 어쩐다.”

“영상 대감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청에서 벌였던 일은 제가 스스로 결정한 일입니다.”

다시 한 번 김상헌에게서 웃음보가 터졌다.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늙은 대신의 얼굴이 왜인지 이리를 연상케 했다.

“좋아, 좋아.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네, 안 교리. 앞으로 이 조정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여기서 이야기나 나눠보지 않겠는가? 아직 우리에게 남은 밤은 기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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