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병환이 들었으면 치료해야
학질(瘧疾), 현대어로 하면 말라리아.
오죽 고통스러운 병이면 사나울 학(虐)이 한자에 들어가는 병.
‘학을 떼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무섭고 악질인 병.
원 역사에서 소현세자는 이 병으로 명을 다했다. 인조에 의한 독살설도 전해져 내려오나, 그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째서 이런 중대한 증상을 방치했단 말이오!”
“그게…… 처음에는 가벼운 한증(寒症)만 나타났던지라…….
“말이 되는 소리요? 어의란 자가 저하의 옥체를 어찌 그리 가볍게 여길 수 있단 말이오!”
어의의 말로는 세자가 갑자기 오한(惡寒)과 한전(寒戰) 증상을 보였다 했다. 열이 올라 부들부들 떨리던 세자의 증상은 몇 시간 후 사라졌고, 그래서 내의원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후, 다시 같은 증상이 발발했다.
더 심하게, 더 길게.
잠복기 48시간, 전형적인 한국형 말라리아인 삼일열(三日熱) 증상이었다.
“너무나 괴롭구나, 안 교리……. 몸에 감각이 하나도 들지 않아…….”
“저하, 조금만 버티시옵소서. 제가 어떻게든 손을 써 보겠습니다.”
“으으……. 나를 혼자 두지 말거라……. 혼자 있다가는 이 고통 탓에 섬돌에 머리를 찍을지도 모르겠다…….”
소논문을 쓰며 이 시기에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소현세자의 암살설이었다. 그 진위를 찾기 위해 실록부터 승정원일기, 심양일기까지 전부 뒤졌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독살이나 암살이 아닌, 원 역사에서 원래 몸이 약했던 세자가 북경, 심양, 한양까지 오는 고된 노정을 감당하지 못해 더 약해진 몸에 말라리아가 감염되어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것.
혹자는 말라리아는 겨울에 감염되지 않으며, 세자가 골골거렸던 것은 북경에 머물던 겨울부터라며 증상만 같은 다른 병을 의심했으나, 본래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는 5월에서 10월 사이에 기승을 부린다.
연천에서 군 복무를 할 때도 그래서 5월이 되기 전에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었던 터였다. 덕분에 전역 후 몇 년 동안은 헌혈도 하지 못했었는데.
원 역사에서 소현세자가 열병이 발병한 것도 음력 4월, 지금도 음력 4월.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바로 그 시기였다.
“저하, 버티셔야 합니다. 이 증상은 이틀을 주기로 돌아옵니다. 조금만 버티시면 다시 평안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크윽! 살려다오! 이 고통을 어떻게든 줄여다오, 안 교리!”
모기를 통해 감염된 말라리아 원충은 적혈구에 파고들어가서 기생하다, 성장이 끝나면 적혈구를 터뜨리고 빠져나온다. 거기서 오는 고통은 세자를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가고 있었다.
자리에 일어나 앉기만 해도 힘이 쭉 빠지고, 소변이 흑갈색이며, 드시라 올린 수라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다는 환자의 말.
전부 말라리아 원충이 원인인 열병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했다.
“저하, 조그만 참으십시오. 소인이…… 소인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어서! 어서 약을 가져다다오! 미쳐버릴 것 같다!”
온몸에 열이 펄펄 끓는 세자는 이성을 잃은 듯했다. 아마 그는 지금 이렇게 통증으로 울부짖었던 사실도 후에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원 역사보다 일찍 귀국했기에 세자가 말라리아에 걸리는 미래도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몰라 세자에게 운동을 권하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기초체력을 쌓아주려 애를 썼던 것인데.
‘모기의 창궐 같은 자연의 이치는 한낱 인간이 손을 쓴다 하여 막을 수 없는 일인가…….’
그렇다면 아무리 내가 역사를 바꾸어도, 훗날 닥칠 지옥과 같은 참사, 경신대기근은 그대로 밀어닥친다는 뜻이겠지.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수십 년 후에 닥칠 참사를 지금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나의 주군, 나의 희망. 소현세자는 이대로 가면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병약하던 원 역사와는 달라졌다고 하나 말라리아는 건강한 신체마저 집어삼키는 악독한 병이다.
‘기억해내라. 소논문에 적었던 한 글자라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이 말라리아의 치료법을 알고 있었다. 품이 너무나 많이 가는 일이라 앞으로 모든 백성을 말라리아에서 구하지는 못하겠지만, 세자 한 명은 구할 수 있는 치료법이었다.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이요? 그런 의서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옛 진(晉)나라 시절 의서니 어의 자네도 모를 만하지. 하지만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나 의방유취(醫方類聚)에도 인용된 고서임은 분명하네.”
“거기에 저하께서 앓으시는 학질의 치료법이 실려 있었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거기에는 이 승(升, 리터)의 물에 개똥쑥 한 움큼을 담근 후, 비틀어 짜서 낸 즙을 마시라고 적혀 있었다네.”
동궁전 밖으로 불려온 어의의 표정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아무리 영의정이 내의원 도제조를 겸임할 정도로 선비 된 자는 의학 또한 공부한다고는 하나, 처음 들어보는 처방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뛰어난 의술을 발휘했던 전적이 있었다. 보수탕이라 불리는 경구수액은 조선 땅에서 장티푸스로 죽어가던 백성들을 다수 구제했던 터였다.
임금까지 감동시켰던 그 일은 내의관 의원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그래서 지금 내 이빨이 먹혀드는 것이다.
“개똥쑥이라면 소인도 알고 있습니다. 청호(菁蒿)를 가리키시는 것이지요?”
“맞네. 내의원에도 많이 구비되어 있을 테지.”
“소인도 숱하게 써본 약재입니다. 소화불량이나 황달에 특효고, 발열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학질에 특효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개똥쑥에 말라리아 약효성분은 분명히 존재하나, 조제법, 투여법이 이 시기에는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겠지. 자네를 비롯한 의원들은 그 약재를 탕약으로 끓여서 병자에게 먹였을 테니까.”
“당연히 약효가 우러나려면 약숯으로 오래 끓여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틀렸네. 학질을 잡아낼 약효는 찬물에 우려내야 온전할 수 있다네. 내 말을 믿어 보겠는가?”
2015년, 중국의 식물화학자 투유유에게 중국 여성 최초의 과학분야 노벨상을 안겨준 업적.
지구 반대편 남미로 날아가 키네나무 껍질을 구해올 필요도 없이, 흔하디흔한 개똥쑥에서 추출한 물질로도 개도국에게 고통을 주는 말라리아를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엄청난 발견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찬물에 약효가 잘 우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것입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열이 닿으면 약효가 파괴되니,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써야하는 것이네.”
“나리가 하신 말씀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날것 그대로 세자 저하께 올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리께서 이 급한 상황에서 저를 붙잡으신 이유를 정녕 모르겠습니다.”
“그것 또한 안 될 일이네. 개똥쑥 이파리에는, 약효를 가진 부분이 아주 조금 들어있기 때문이네.”
죽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세자에게 약효가 들 만큼 개똥쑥을 생약으로 먹이려면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여야 할 것이다. 허나, 저렇게 열병을 앓아 소화력이 떨어졌을 것이 뻔한 병자에게 약초를 그대로 먹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수라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분께 어찌…….”
“약효를 내는 부분을 농축하는 방법은 분명 있다네. 들어보겠는가?”
어의에게 설명했던 대로, 개똥쑥에 들어있는 말라리아 특효약 ‘아르테미신’은 무게 대비 함량이 너무 낮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는다면, 나는 현대인이 아니겠지.
그런 한계를 알고 있기에, 17세기에 이런 지식이 있었다면 소현세자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여 소논문에 다른 분야의 지식을 합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 것이었는데.
“일단 주후비급방에 언급한 대로 개똥쑥을 정해진 양의 물에 담가 약효를 뺀 후, 그것을 짜내도록 하게.”
“그 다음은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리 말씀대로라면 그것을 물에 우려낸다 해도 저하께서 적어도 수십 그릇은 드셔야 할 것입니다.”
“잘 듣게, 물이 잘 스며들지만 질긴 한지와 그것을 널어 매달 봉, 그리고 개똥쑥을 우려낸 물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게.”
***
약이 완성되는 데는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렸다.
어의가 붙여준 의녀들에게 지시해 수십 근의 개똥쑥을 우려내 쥐어짠 물을 그릇에 담고, 한지를 봉에 길게 매단 후, 늘어진 한지의 끝을 물이 든 그릇에 담근 결과였다.
‘사람이 오가지 않는 건조한 곳에 봉하여 놓고, 이 종이에 더러운 것이 닿지 않도록 청결을 유지하게.’
‘나리, 이것은 대체……?’
‘물이 한지에 빨려 올라가면서 종이에 약효가 옮아가고, 물이 마르면 종이에는 약효만이 남는 원리라네.’
모세관 현상과 증발을 이용해 약효 성분만을 농축시키는 방법.
공중에 매달아 놓은 한지의 끝을 그릇에 담가 놓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물은 중력이 허용하는 한도만 종이로 빨려 올라가 증발할 것이고, 물이 사라진 종이에는 악효 성분만이 남는다.
물이 증발한 자리에는 다시 그릇에 담겨있는 물이 빨려 올라와 빈자리를 채운다. 시간을 충분히 들이면 종이에는 한 그릇 분의 약효 성분이 전부 농축되게 되는 것이다.
“나리! 준비되었습니다!”
“서두르지 말게! 저하의 생명과도 같은 약일세!”
그렇게 수십 그릇이나 되는 개똥쑥 우린 물은 매달린 수십 장의 종이에 전부 약효 성분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전부 모아 다시 한 그릇의 찬물에 담근 결과가 어의가 든 약사발에 담겨 있었다.
‘제발, 세자에게 약효가 있어야할 텐데…….’
독하기로 유명한 아프리카산 말라리아가 아닌 이상, 비교적 순한 편인 한국의 토착 말라리아는 약과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고, 평소에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죽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냉정하게 이성적인 생각을 굴릴 수 있을 때 이야기다.
앞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환자를 두고, 원래 의사도 아닌 내가 만든 약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이성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다.
“저하, 약을 들였습니다. 이것만 드시면 편안해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으으…… 안 교리, 정말이냐? 이 고통이 멎을 수 있단 말이냐?”
“한 방울도 흘리지 마시옵소서. 저하의 생명이 달린 약입니다.”
“내 네가 주는 약이라면 부자(附子)라도 마실 것이다. 이리 다오…….”
열병에 시달린 세자가 귀한 약을 게워내는 참사를 걱정했으나, 세자의 목구멍으로 넘어간 약은 한 방울도 넘어오지 않았다. 약에서 한지 냄새가 분명 났을 텐데, 세자가 대견했다.
그동안 약을 삼키는 세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낯빛을 보니 구토가 넘어올 지경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세자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약을 전부 목구멍으로 넘기는데 성공했다.
“방금 만든 방법 그대로 계속해서 약을 만들게. 내의원에 개똥쑥 재고는 넉넉한가?”
“흔한 약재라 아직 넉넉하긴 합니다만, 매일같이 약을 만들어드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나리.”
“내 아는 상단에 부탁해 약고개 근방 약방의 개똥쑥을 몽땅 쓸어 내의원으로 보내겠네. 절대 저하께 약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게!”
***
“고생이 많은 모양이구려, 안 선생. 얼굴이 반쪽이지 않소.”
“아닙니다, 초관 어른. 다만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내의원에서 숙식하다시피 해가며 세자의 병구완을 하고 겨우 퇴궐한 참이었다. 다행히 충신이 온 한양의 개똥쑥을 모아 궐로 보내준 덕에 약재가 떨어지는 법은 없었다.
세자의 병세는 한결 완화되었다. 일차로 열이 내리고 잠복기 48시간이 지난 후 다시 열이 솟구치긴 했으나, 전번보다 버틸만한 수준의 발열이었던 것이다. 세자가 고통에 못 이겨 악을 지르는 일도 없었다.
정말로 아르테미신이 제대로 추출된 것인지, 아니면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인지, 또 아니면 세자의 체력이 잘 버텨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한 고비는 넘긴 것이 분명했다.
“저하의 병구완에 스스로 자원했다 들었는데, 일이 꽤나 고됐던 모양이오?”
“고작 그 정도로 고된 티를 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세자의 일 때문에 얼굴이 반쪽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 약재를 구하는 일은 충신에게 일임했다고는 하나, 봉림대군의 정보를 한당의 어른들에게 전하는 일 또한 미룰 수 없었다.
‘그것이 정녕 사실인가?’
‘대군께서 허튼 소리를 하진 않으셨겠지요. 때문에 호포대를 조금씩 도성 안에 들여놓을 생각입니다.’
‘자네, 설마……!’
‘그 설마입니다. 대비하고 있지 않는다면 언젠가 전하의 칼날이 저희를 먼저 칠지 모릅니다.’
김육은 생각에 잠기고, 현 임금의 반정공신이었던 최명길은 그 자리에서 눈을 꾹 감을 뿐이었다. 자신이 세운 임금을 다시 몰아낼지도 모르게 되다니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한당의 중진들이 모두 모인 자리.
아무리 그래도 임금에게 칼을 겨눠야 하냐는 의견과, 만일을 대비해야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의견이 일치된 부분이 있었으니, 적어도 지금 김상헌이 산림 극단주의자들을 이끌고 조정을 어지럽히는 상황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 전하를 적대하자는 결정은 미뤄두는 대신, 놈들이 우리를 칠 생각이라면 적어도 거기에 반격할 준비는 해 놓도록 하세.’
친분이 깊은 파주 목사와 교하 현감을 김육과 성이성이 끌어들이기로 했다. 한양 가까이 주둔한 그들의 병력은 유사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명길은 나와 함께 김집을 방문해 산당 온건파 세력에게 조정에서의 협조를 당부하기로 했다. 거사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김상헌의 당파를 정치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일시 동맹이었다.
일은 잘 풀려나가고 있었으나 확실히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랐다. 최근에는 눈을 붙였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던 차였다.
“그래, 그렇게 바쁘신 양반이 내게는 왜 찾아오신 게요? 혹시 요안이가 궁녀라도 되겠다고 한 것이오?”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이 시간에 초관 어른을 찾아왔습니다.”
“요안이 일은 중요하지 않단 말이오? 이거 좀 섭섭한데.”
상황을 모르는 초관은 농담을 던져왔으나 거기 어울려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했으니까.
“초관 어른, 며칠만이라도 거처를 잠시 옮겨주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