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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29화 (129/298)

129화. 대면(對面)

무방비 상태였던 금군이 전부 쓰러지기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격발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쏟아지는 칠백 발의 총탄은, 양화당 앞에 모여 있던 금군을 찢어발기기에는 차고 넘치는 양이었다.

창경궁의 돌바닥은 흐르는 금군들의 피로 금세 물들었다. 그 광경은 마치 그들의 붉은 복장이 직접 바닥에 짓이겨진 듯,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김 갑사, 김 장긴. 이 자리는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옛!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겠습니다요!

“바닥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버티겠수다!”

이미 피해 없이 금군들을 격멸하는데 성공했으니, 홍화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병력이 2차로 몰려온다 해도 싸움에서 지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흘릴 피는 내 대원들의 피였다. 거사가 반쯤 성공한 상태에서 나를 믿고 따라온 자들을 쓸 데 없이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사를 성공시키는 것만큼 우리 대원들이 살아남는 것 또한 중요하네. 좋은 날은 함께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잊지 말게나.”

그런 내 마음가짐이 전해졌는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두 사람은 금방 비장한 얼굴을 되찾고는 건투를 다짐했다.

“역시, 나으리의 초모(招募)에 응하고, 팔기군을 걷어차고 압록강을 다시 넘은 건 내 일생 최고의 선택이었음메…….”

김귀돌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섬돌에 발을 딛고 양화당에 오르자 임금의 밤을 지키고 있던 상선이 양팔을 뻗어 나를 막았지만, 그의 나약한 몸은 개머리판 한 방에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

드르륵.

장지문이 열렸다. 문풍지에 총탄이 스쳐간 자국 너머로, 쓰러져 경련하는 상선의 푸른 옷자락이 비치고 있었다.

“웬 놈들이냐!”

터져 나온 임금의 노성에도 괴상한 모습을 한 침입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에 잡힌 총의 개머리판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었다.

그제서야 임금은 침입자가 소지한 조총의 형태가 낯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에 덮인 짐승 가죽 역시 그랬다. 그나마 왠지 모르게 눈에 익었던 것은 그의 체구뿐이었다.

“전하, 기체후 일향 만강하셨사옵니까?”

침입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이 벗겨졌다. 그것을 목격한 임금의 동공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네…… 네놈!”

“전하의 용안을 일대일로 알현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사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공허하게 벌어진 임금의 입술은 경련하고 있었다. 그의 지엄한 혀는 돌처럼 굳어 좀처럼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밤중에 전하를 놀라게 해 드린 죄,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안한수. 방금까지 처분을 고민하던 신하가 임금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죄를 청하는 말과 달리, 그의 입술은 한껏 비틀려 있었다.

처음 만났던 자리만 하더라도 임금의 위엄 앞에서 벌벌 떨던 자였다. 아니, 얼마 전 이 자를 편전으로 불러들였을 때도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을 터였다.

그랬던 자가 어째서 이런 일을? 혼란에 빠진 임금의 코에 피비린내가 확 풍겨온 것은 그때였다. 침전 밖에서 흘러온 바람에 실린 피 냄새였다.

“어째서, 어째서냐……!”

앞을 막아선 자는 임금의 비통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릿발 같은 눈초리로 임금을 꿰뚫을 듯이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

“이놈! 짐승도 입은 은혜는 안다 했거늘, 어찌 이런 무엄한 짓을 획책했단 말이냐!”

상아색 답호(褡護). 능양군의 옷차림이 처음 만난 그날을 떠오르게 하고 있었다.

다만, 그때 내 코끝을 스쳤던 물비린내와는 달리, 지금 내 비강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금군의 피비린내였지만.

“은혜라 하셨사옵니까?”

“내 네 재주를 어여삐 여겨 온갖 은혜를 베푼 것을 잊은 것이냐? 반궁에서의 일도, 관직을 내려받은 일도, 장원으로 낙점받은 일도 모조리 잊었단 말이냐?”

임금은 애써 평온을 가장해 나를 꾸짖고 있었다. 허나 양심이 있다면 어찌 내게 은혜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예. 전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선비에 불과한 제게 전하께서 많은 은혜를 내려주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대역무도한 일을 꾸몄단 말이냐! 어서 군사를 물리고 내게 죄를 빌지 못할까!”

“하지만 전하, 제가 전하께 하사받은 것은 은혜뿐만이 아니었사옵니다. 그것은 전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능양군의 얼굴에 시뻘건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 얼굴에 담긴 감정은 분노인가, 경멸인가.

“이…… 이놈이!”

“이리와 여우가 들끓는 성균관에 재주를 시험하겠다며 저를 던져 넣으셨었지요. 거기서 싸운 끝에 부정의 증거를 찾아왔을 때, 아끼는 공신들의 허물이라며 애써 덮으셨던 분은 누구셨사옵니까?”

“신하를 벌하는 것은 임금 된 이의 판단이다! 어찌 신하 주제에 내 결정에 반기를 든단 말이냐!”

“뭐, 좋사옵니다. 허나 이상한 일이 또 있었지 않나이까? 피붙이를 의심하는 일이 극에 달해, 아들을 감시하라며 저를 먼 오랑캐의 땅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보내신 것도 은혜라 이를 수 있겠사옵니까?”

속이 후련했다. 그동안 쌓였던 일들을 씹어뱉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입에서 쏘아지는 가시를 그대로 맞는 능양군의 안색은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일이 결국 잘 풀렸으니 전하께서 소인을 적국의 볼모로 보낸 것도 크게 양보해 은혜라 치겠사옵니다. 헌데, 그렇게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한 제게, 전하는 어떤 음모를 꾸미셨나이까?”

“음모라니! 무엄하다!”

“소인은 조선을 위해 몸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었사옵니다. 청주가 고관대작을 미끼로 섬길 사람을 바꾸라 유혹했을 때도, 황녀와의 혼인을 들이밀며 소인을 만주족에 편입시키려 애썼을 때도 제 마음속에는 오직 이 나라 조선 하나뿐이었사옵니다! 헌데!”

임금은 반박하지 못했다. 서안 위에 올린 주먹에 핏줄이 몇 개나 돋은 모습이, 임금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가시밭길과도 같던 남의 땅에서 살아남아 끝까지 조선으로 돌아오려 애쓴 소인에게! 전하께서는 무엇을 해 주셨사옵니까! 모반죄라니요! 조선을 다해 몸을 갈아댄 대가가 고작 이것이나이까!”

“네놈이 오랑캐에게 신무기를 빼돌린 것은 사실이 아니더냐! 오늘의 일을 보면 역심(逆心)까지 품었던 것이 확실한데, 그 일로 혀를 놀릴 여력이 있는 것이냐!”

“역심이요? 오늘의 거사는 제게 들이밀어진 칼날만 없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말은 바로 하십시오!”

“이…… 이 역도놈이!”

분을 이기지 못한 능양군이 던진 무언가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굴에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니 방금 스쳐간 것은 벼루인 모양이었다.

세자에게 벼루를 던졌단 야사는 약간의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나.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임금은 신하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전하께서 과연 군위신강(君爲臣綱)의 도리를 지켰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정녕 유학의 기본인 삼강마저 잊으신 겝니까!”

“네놈이 지금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가르쳐요? 그런 말씀을 하시니 몇 마디 더 거들겠습니다. 제가 홍문관 교리로서 진작 전하께 경연에서 이런 가르침을 드렸어야 하는데, 신하의 도리를 미처 다하지 못해 죄스러울 따름이군요.”

“뭐야?”

“전하께서도 숱하게 경연을 치르셨을 테니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제선왕문왈 탕방걸하고, 무왕벌주하니 유저이까?로 시작하는 문장 말입니다!”

당연히 기억할 것이다. 온갖 역성혁명과 정변에 명분을 준 맹자의 그 문장.

제선왕이 질문해 말했다.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추방하고,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했다. 이러해도 되는 일인가?

맹자가 답한다. 인을 해치고 의를 해치는 자는 남을 못살게 구는 잔인한 일개 필부(匹夫)에 불과하다. 나는 일부(一夫)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능양군 역시 광해군을 몰아낼 때 이 같은 논리를 취했을 터이니.

“……감히 나를 지금 일개 필부라 일컬은 것이냐?”

“일개 필부만도 못한 적이 많았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옥좌에 오르신 후 울려 퍼지기 시작한 조선 팔도의 신음소리가 들리시지 않는 겝니까?”

“그때 세상에 나지도 않았던 놈이 무얼 안다고! 네놈이 내 치세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잘 알지요. 아마 조선 땅에서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소인일 것입니다.”

“이노오옴!”

분을 참지 못했는지 몸을 벌떡 일으킨 임금이었다. 그의 발에 걷어차인 서안이 바닥을 굴렀다. 옆에 놓여있던 등잔불이 무사한 것이 다행이었다.

“폐주와 북인의 학정을 못 이기고 떨쳐 일어난 것이 나다! 궁궐을 짓느라 피눈물 흘리는 백성들의 원망에 답하고, 기와에 색을 입히느라 화약을 빼앗긴 병졸들의 아우성에 응한 것이 나란 말이다!”

“그래서 그 백성들과 병졸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평안병사 이괄이 앞세운 칼에 맞아 쓰러지고! 두 번의 호란이 불러온 말발굽에 밟혀 죽고! 전하의 치세가 그들을 평안하게 만들었다 어찌 이를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이익!”

“그런 분이 어째서 남원에서부터 울려 퍼진 백성들의 울음소리는 외면하셨단 말입니까! 고작 공신이라는 자들이, 전하께서 평생 아끼고 돌봐야 하는 백성보다 중했단 말입니까!”

“이놈이!”

다시 한번 물건 하나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넉넉히 피할 수 있었으나, 나는 굳이 그 물건을 몸으로 받아내는 쪽을 택했다.

내 도포에 부딪힌 책 한 권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무런 아픔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네놈이 임금이란 중임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공신이란 자들의 등쌀에 치여 살아야 했던 치욕을 어찌 헤아린다고! 오랑캐의 수장 앞에서 자존심도 버리고 머리를 박아야 했던 내 심정을 어찌 짐작한다고!”

“그깟 자존심, 진작에 버렸으면 더 많은 백성들이 무사했을 것입니다! 압록강을 넘어 끌려간 자들도 훨씬 적어졌겠지요! 내가 이끌고 온 부하들은 당신이 백성들에게 흘리게 한 피눈물의 총체입니다!”

“이 입만 산 놈이……!”

그때였다. 고요하던 바깥이 총소리 한 발과 함께 다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한 것은.

“하, 핫하. 역도를 토벌하러 수비대가 온 모양이구나. 언제까지 네놈이 입을 그렇게 놀릴 수 있나 두고 보겠다.”

방금 터진 총소리는 호포대의 경고사격인 모양이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날리는 김 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응답하는 낯선 목소리는 홍화문을 지키던 수문장인가. 역도 운운하며 항복을 요구하는 것을 보니 분명 그럴 것이다.

“수비대? 이제 궁에 남은 병력을 다 합해봐야 내 부하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랄 텐데요?”

그 말을 증명하듯,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그 굉음은 넓지 않은 양화당을 뒤흔들고 있었다.

앞에 선 임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계속해서 연발되는 총소리 사이에서 미약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을 임금 역시 느꼈을 것이다. 그 비명들은 전부 멀리 홍화문 방향으로부터 흘러들고 있었다.

전하,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생각해 보니 전하의 말이 옳은 부분도 있군요. 이 호총의 설계도를 심양에 품고 가지 않았더라면, 저 수많은 정예병을 양성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이 역도 놈, 처음부터 역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 맞지 않느냐!”

“전혀요. 전하께서 제게 칼을 들이밀지 않았더라면, 조선 팔도의 해수를 구제하며 평화롭게 여생을 보냈을 사람들입니다.”

“뭐야?”

“청의 팔기군으로 남아 출세할 수 있었음에도, 반절 넘게 고향으로 돌아와 조용히 사는 것을 택한 이들이 다시 사람을 겨누게 만든 자가 바로 전하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지팡이처럼 짚고 있던 호총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허리춤에 꽂혀있던 쇳덩이를 뽑아들었다.

방금 말한 ‘조용히 살아가려 했으나 사람을 겨눠야만 했던 이들’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능양군은 지금 침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계속해서 배경음으로 울리는 총소리와 비명소리에 넋이라도 나간 것일까.

“네놈이 정녕…….”

소매에서 꺼낸 탄약포를 뜯어 장전을 완료할 때까지, 앞에 서 있는 임금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천천히 총구를 임금을 향해 들어올렸다. 의금부로 끌려간 초관이 선물한 권총이었다.

“이제 소인은 이 창경궁에 들어앉은 해수를 구제하겠사옵니다. 암군(暗君)으로 역사에 저지른 죗값을 치르십시오, 전하. 그것만이 소인이 원하는 바이나이다.”

눈앞에 불길이 솟았다.

이 자가 박연을 비롯한 내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들고 일어날 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더는 용서하기 어려웠다.

처음으로 능양군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 겨눠진 총구에서 느껴지는 냉기는 분명 임금에게도 전해진 모양이었다.

지금 이 방아쇠를 당기면 모든 것은 끝난다. 역사를 뒤집어엎고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아니 되네!”

“안 된다!”

막 검지에 힘이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내 앞을 가로막은 사람에게서, 그리고 막 양화당에 들어섰음이 분명한 등 뒤의 사람에게서 터져 나온 비명에, 힘이 들어가던 손가락은 다시 방아쇠에서 멀어졌다.

“그래서는 아니 되네! 전하를 쏘려거든 나부터 쏘게!”

“안 교리! 참아라! 분을 이기지 못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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