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새로운 시대
첫닭이 울 무렵, 김 갑사의 비통한 외침이 북촌을 갈랐다.
초혼(招魂). 죽은 이의 옷가지를 들고 지붕에 올라가, 그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며 혼이 돌아오길 바라며 치르는 의식.
그러나 어사의 성명을 세 번 불렀음에도,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시신이 일어날 리는 없었다. 김 갑사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어사의 이름을 입에서 풀어놓자마자 기왓장에 머리를 박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유 서리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내 앞에서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유 서리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상례(喪禮)를 뒷바라지하던 사람이…….
차라리 비바람이 불어닥치는 것이 다행이었다. 온몸을 적셔댄 빗방울들이,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던 어사의 가르침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으니까.
“이 얼마나 애통한 일입니까…….”
“방문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흰옷을 차려입은 무수한 문상객들이 넓지 않은 어사의 집 마당을 가득 채웠다. 내 눈에 익은 조정 신료 중 문상을 오지 않은 자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어사의 인망은 두터웠다.
“그 관자에 올라앉은 삼베조각은 무엇입니까.”
“감히 제가 상주를 칭하고 삼년상을 치를 처지는 아닙니다만, 스승님께 입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표식이나마 당분간 몸에 품고자 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사모(師母)인 금씨 부인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어사의 집에 하숙하던 시절 신세를 여러 번 졌던 사모님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손을 붙들고 굵은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실 뿐이었다.
어사 역시 늦장가를 들어, 이제 갓 스물이 넘은 아들 하나만 남겼을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나보다 어린 그를 대신해 상주 노릇이라도 하고 싶었다.
반정의 뒤처리를 하느라 하연이 기다리고 있는 집에도 돌아가지 못한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같이 어사의 집을 방문해 아침저녁으로 곡을 올렸다.
장지에 매장하기까지 사대부의 상례(喪禮)는 한 달을 지속하는 것이 예기(禮記)에 적힌 예법이었다. 그 사이 능양군의 양위를 형식상으로나마 반대하던 신하들은 점점 줄어들어갔고, 조정에는 새로운 왕의 즉위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어사의 상여가 장지로 향한 다음날,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의식이 인정전 앞뜰에서 거행되었다.
“주상 전하! 천세! 천천세!”
“천세! 천천세!”
하지만, 내 주군이 왕을 상징하는 면복을 입고 면류관을 쓴 채, 선왕의 교지와 국새를 받아 옥좌에 오르는 순간에도, 나는 그리 기쁘지 않았다.
새 임금의 즉위를 축하하며 피운 향은 어사의 상을 치르며 맡은 향을 떠올리게 했다. 두 손을 마주 잡아 이마에 올려 임금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 동작이 어사에게 마지막으로 올리던 두 번의 큰절을 떠올리게 해 마음이 복잡했다.
그런 내 기분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아비를 밀어낸 옥좌에 오르게 되어 마음이 복잡했는지. 세자, 아니 새로운 임금 역시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전하께서 근엄함을 몸소 내비치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었지만, 나는 임금의 본심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보낸 눈길에는, 즉위의 기쁨 대신 안쓰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
***
“한수야, 아직도 부제학을 마음에서 보내지 못한 것이냐.”
“……송구합니다, 전하.”
“그럴 필요 없다. 내 그날 양화당에서 본 일만으로도 너와 부제학의 관계가 어땠는지 잘 알 것 같았으니.”
그날 밤, 나를 침전으로 부른 새 임금은 즉위식을 망쳤다는 타박 대신 천천히 내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에 다시 눈시울에 울컥 올라오는 것이 있었으나, 겨우 참아냈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잃었으니 네 심사가 복잡한 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산 사람은 계속 살아가야 하는 법이다, 한수야.”
“…….”
“그동안 고생 많았다. 너와 공신들이 분골쇄신한 덕분에 조정이 안정을 찾았지 않느냐.”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각오했던 최명길이 힘써준 덕에 조정의 교통정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끝난 상황이었다. 그 능력이 묻히는 것이 아쉬워, 임금은 낙향하려던 최명길을 붙잡았다.
은퇴는 하되, 한양에 남아있으라는 조건이었다.
“그 완성부원군이 설계했으니, 당분간 지속될 조정의 구도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반정 전의 구도와 완전히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럴 필요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 견제할 세력이 없는 당파는 썩고 만다고 했었지. 남은 산림들이 제 역할을 다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의정부, 비변사, 육조의 실권을 쥔 좌의정 자리에는 김육이 올랐다. 그의 휘하, 실무진이 필요한 요직들에는 한당의 신하들이 줄줄이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조정의 중재를 맡아야할 자리에는 산당의 우두머리인 김집이 올랐다. 반정에 참여하지 않아 자격이 없다 극구 사양한 그였으나, 조정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설득에 결국 뜻을 꺾었다.
“실무는 한당이, 견제는 산당이. 서로 발목을 잡으려 하는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인재 상황에서는 최적의 구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 다만…… 네 스승이 마지막으로 머물던 홍문관마저 산당에게 넘겨도 괜찮겠느냐. 나는 네가 그 자리에 애착을 가질 줄만 알았는데.”
“부제학이 살아있었다면…… 그런 사적인 감정으로 나랏일을 처리하려 했다고 불호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소신은 그 결정에 한 치 후회도 없습니다.”
남은 산당의 대다수는 삼사(三司)에 배치되었다. 입에 쓴 소리를 자주 하는 그들에게 최적의 근무지일 터였다. 그래서 조정의 구도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임금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산림 극단주의자들이 모조리 숙청되었으니, 그동안 삼사에서 올라오던 독기 서린 간언들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었다. 부디 송시열, 송준길 같은 제정신 박힌 산림들이 삼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사헌부마저 산당에게 양보하는 것은 조금 아쉽긴 했다. 관리의 허물을 다스리는 사헌부야말로 한수 너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일진대.”
“소신은 이번에 집의로 임명된 송시열을 믿나이다. 영보가 고집이 세고 원리원칙을 따지긴 하나, 그 성격이야말로 사헌부에 반드시 필요한 기질이기에.”
“어느새 그와도 교분이 생긴 모양이구나. 그래. 사헌부 말고도 네가 필요한 자리는 무수히 많다. 특히 내 곁에 늘 함께해야 하는 관직이면 더욱 그러하지.”
임금이 서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천천히, 공손하게 양손으로 받드는 교지(敎旨)에서 임금의 굳은 의지가 전해져왔다.
“……전 홍문관 교리 안한수를 승정원 도승지에 임한다…….”
“내 직접 작성한 교지다. 심양관 시절을 떠올리며 작성해 본 것인데, 양식에 어긋나지는 않았더냐.”
임금이 승정원의 우두머리 자리를 내게 맡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현대로 치면 비서실장에 비기는 자리다. 왕명의 출납은 도승지를 거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고, 국정에 대해 의견도 서슴지 않고 내야 하는 자리다.
상왕이 재위하던 시절에는 산림들이 차지해 국왕의 수족처럼 움직이던 자리. 그 탓에 재임 중이던 6인의 승지 전원이 쫓겨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를?
“틀린 곳 하나 없습니다. 헌데 승지라 함은 정삼품 당상관 자리가 아닙니까. 소신에게는 아직 과분한 자리입니다.”
“과분하다니? 네가 청국에서 맡았던 직책을 생각해 보거라. 나는 마땅히 네 그릇에 어울리는 자리를 이제야 돌려주었을 뿐이다.”
홍타이지에게 하사받았었던 잘안 장긴 자리가 정삼품 무관에 비기는 자리라는 이야기는 이미 어사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임금 역시 그 사실을 언급하는 것인가.
“게다가,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자리에, 너 말고 누구를 임명해야 한단 말이냐, 한수야.”
“전하, 하오나…….”
“승정원에서 맡은 일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것을 생각하면 너도 이번 인사(人事)를 수긍할 수밖에 없을 텐데?”
생각해 보니 그랬다. 승정원은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왕을 가르치는 경연의 한 축을 맡고,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승정원일기에 기록해야 하며, 그것을 외부에 알리는 조보 또한 배포한다.
승정원의 모든 일이, 내가 그동안 겪어왔던 나랏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전하의 뜻, 잘 알겠습니다. 깊이 새겨 받들겠습니다.”
“좋다. 허나 그전에, 네가 치워야 할 걸림돌이 하나 있다.”
“소신이 알기로는 동부승지 자리부터 차례로 승진해 올라가야 하는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올지…….”
내게 교지를 돌려받은 임금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무겁던 분위기를 다소 부드럽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내 최측근이자 반정의 일등공신을 바로 도승지에 임명한다고 문제가 될 것이 있겠느냐. 지금처럼 관직들이 요동치는 상황에서는 그런 관습을 무시했던 전례도 있었다는구나.”
“그렇다면 무엇이 걸림돌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경국대전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웠을 네가 아직까지 헤매는 것도 우습구나, 한수야.”
임금의 입가에 배어든 웃음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즉위 첫날부터 나를 놀려먹고 있는 임금의 모습에서 나에 대한 깊은 신뢰가 느껴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내가 무엇을 빠뜨렸는지는 감이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 설마?
“……소신이 참으로 기본적인 것을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정삼품 이상, 당상관이라는 자리는 내외직(內外職)을 두루 섭렵해 경험을 쌓은 후에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아무리 내가 특명을 내린다 해도 말이지.”
“가뜩이나 승지의 임명 관례를 깨려는 전하께, 더 부담을 드릴 수는 없겠군요.”
“그래.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그렇다면 내가 어떤 방법을 택하리라 생각하느냐.”
설마 반년이라도 외직, 그러니까 지방관 자리로 나갔다 오라는 말인가. 가장 무난한 방법은 분명 그것일 터였다.
하지만 내 추측을 전해 들은 임금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눈만 껌벅거리고 있던 때였다.
“너를 내 옆에서 하루도 떨어뜨리기 싫은 상황인데, 어찌하여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너를 외직으로 내보내겠느냐.”
“그렇다면 어찌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소신은 전하께서 무슨 뜻을 품으셨는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한수야, 너는 정녕 북경의 회동관에서 나와 나누었던 맹세를 잊었단 말이냐.”
회동관에서 세자 시절 임금에게 했던 맹세라…….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허나 그 기억에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비와 다른 임금이 되겠다던 세자에게 처음으로 신(臣)이라는 단어를 쓰고, 내가 가지고 있던 어사의 증표 한 조각을 세자에게…… 아!
“전하, 설마 일반적인 외관직 대신에 다른 직책을 명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대리 어사를 한 번 해 보았으니, 진짜 어사도 한 번 해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전하, 그것은…….”
분명 남원에서의 어사출두는 즐거운 기억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즐거운 기억의 큰 부분을 담당하던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내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한 것인지, 임금의 얼굴에는 안쓰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언제까지 부제학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
“부제학을 아예 네 마음속에서 지우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이번 기회에 네가 이 나라에 품었던 초심을 다시 되새기고 왔으면 한다.”
“……그 뜻, 받들겠습니다.”
“조각난 마패는 이제 추억을 되새기는 것 외에는 다른 용도로 쓰기 어렵지 않겠느냐. 마패를 새로이 내려 받고, 부제학의 가르침을 넘어 새로운 어사(御使)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구구절절 옳은 말뿐이었다.
차마 그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나를 앞에 두고, 임금은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천천히 내게 다가온 임금은, 내 손아귀에 무언가를 쥐여주고 다시 제자리로 향했다.
“……새 마패로군요.”
“이제 나는 이 일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네가 털어놓은 가장 큰 비밀에 관한 이야기는 어사를 나갔다 온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꾸나. 이다음부터는 네 문제고, 네 영역이니까. 잘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한수야.”
어찌 저 말을 거역하겠는가. 저토록 나를 신뢰하는 임금 앞에서.
“어찌 감히 전하의 명을 어기겠습니까. 곧 일행을 꾸려 출두지로 떠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본래 암행어사를 파견할 때는 소문이 퍼질 것을 염려해 명을 내리는 즉시 숭례문을 나서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너와 나 사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렇다면…….”
“네 아내의 얼굴을 본 지도 꽤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회포를 풀고 다시 입궐하도록. 네 암행 출발은 그때 하는 것으로 하겠다.”
어차피 방자를 구할 시간도 필요하고, 현지의 역졸 대신 호위로 쓸 호포대 몇을 선발할 시간도 필요할 테니, 다소 여유를 가져도 좋다는 임금의 배려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내 네 입에서 생생한 민생(民生)을 전해 들을 날을 고대하고 있겠다. 너만큼 백성들의 입을 대신할 수 있을 자는 없을 것이니.”
임금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내 절을 받는 임금 역시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에게도 이 주제는 꺼내기 껄끄러운 이야기였던 듯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던 자리에, 다소 가벼워진 임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 것은 잠시 후였다.
“참, 그 일 말이다. 중전이 참으로 잘 되었다 좋아하더구나.”
“그 일이라니, 어떤 일을 가리키시는 것입니까?”
“네가 박 초관의 여식을 소실로 받아들인 일 말이다. 일국의 왕과 왕비를, 남편과 아내가 각각 섬기게 되다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냐며 열을 올리더구나.”
강빈, 아니 이제 중전마마라 불러야 하나. 그 여사님은 도대체 또 이런 쓸 데 없는 것에 꽂히신 건지.
꽤 긴 시간 동안 귀가를 하지 못했던 덕분에 잠시 미뤄놓았던 문제를 이제 처리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