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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34화 (134/298)

134화. 라일락 향기

대문을 열자, 코에 와닿는 공기가 낯설었다. 그만큼 오랜만의 귀가였다.

그동안 돌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은 거사를 다짐하고 뛰쳐나가기 이전과 다른 것이 없었다. 이래서 장가를 잘 가야한다는 것인가.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때마침 안채에서 그리웠던 사람이 버선발로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하연이었다.

“……지지 않으셨네요.”

“그대 말을 내가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아내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 동안을 그렇게 멈춰 있었다. 가끔 떨림을 전하는 그녀의 머리카락과 가슴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물기는, 그녀가 가슴을 태우며 애써 견뎌왔던 세월의 무게를 알려줄 뿐이었다.

분명 당일에 즉시 무사히 반정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서찰로 안부도 통했다. 그러나 글자로 풀어내는 그리움은 한계가 있고 직접 체온을 맞대야 녹아내리는 감정이 분명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마당에 못 박혀 선 채, 그녀를 한참 동안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동안 쌓였던 그리움을 전부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고단하실 서방님께 송구한 말씀이지만, 쉬시기 전에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연이 얼굴에 아쉬움을 가득 담은 채 몸을 떨어뜨린 것은 잠시 후였다. 그 아쉬움은 이윽고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바뀌어 아내의 표정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일 말씀입니까, 부인. 제가 없던 사이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요.”

“별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한시바삐 당신과 회포를 풀고 싶지만, 당신이 가장으로서 결정하셔야 하는 일임은 분명하니까요.”

별채……. 안 그래도 궐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온 탓인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는 공과 사를 분명히 가를 줄 아는 여자였다. 나를 당장이라도 다시 끌어안고 싶은 얼굴을 하고는, 저리 냉정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여자기도 했다.

“요안이가 별채에 머물고 있습니까.”

“예. 소첩은 지어미로서 당신의 선택을 따를 것이고, 당신께서 현명한 선택을 내리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분명 매듭은 지어야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의금부에 억울하게 잡혀갔던 박연의 가족은 거사 당일 바로 풀려났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별채가 비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요안의 친정은 이미 출가를 허락했다는 뜻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별채에 계속 머물고 있는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 것일까.

“정말 괜찮겠습니까, 부인.”

“저를 질투를 내보이는 못난 여인으로 보시는 겁니까. 정해진 답은 분명 하나일 것이고, 그걸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는 서방님께 달린 일이겠지요.”

하연도 그걸 알고 있기에 내게 결정을 재촉하는 것이리라. 현명한 아내의 말은 늘 틀린 곳 하나가 없었다.

물론 사대부가의 안주인답게 말은 담담하게 하고 있어도, 아내의 속이 멀쩡할 리는 없겠지.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

별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있었다. 늘 풍성하게 땋고 다니던 요안의 황금빛 댕기머리가 쪽 진 머리로 변해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기절한 요안을 박연의 집에서 안아 데려왔던 날 본 적이 있던 모습이었지만, 언니의 손으로 쪽을 지었던 그때와 지금의 쪽에 담긴 의미는 분명 다를 것이다.

분명 지금 요안의 뒷머리에 올라앉아있는 서툰 머리모양은, 스스로의 손으로 지은 것임이 분명하니까. 그것은 어른의 표식이었다.

“선생님…….”

“몸은 좀 어떠하냐, 그날 정신을 잃었던 이후로 또 비슷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더냐.”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그동안은 언니가 힘에 겨워했던 일이 많았는데, 언니를 이 집에서 도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무엇 때문일까, 눈앞이 갑자기 가물거려 왔다.

그리고, 가물거리는 시야를 다스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무엇인가가 달라져 있었다.

내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사람이, 더 이상 예전의 녀석으로 보이지 않았다.

요안의 어른스러운 대답 때문인가, 아니면 틀어 올린 머리에 꽂힌 비녀 때문인가.

“궐에서 꽤나 고생이 많으셨다 들었어요. 푹 쉬셔도 좋았을 텐데, 왜 갑자기 별채에 찾아오셨나요?”

“…….”

“아버지가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달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도 같이요.”

생글거리며 애써 평온을 가장하는 요안이었으나, 나는 이제 그녀에게 건네야 할 무거운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너는 이제 어찌하고 싶으냐.”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묻지 말거라, 요안아.”

순식간에 그녀의 표정에 어둠이 깃들었다. 웃음으로 어물쩡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챈 듯했다.

“선생님은 저를 어떻게 하고 싶으신데요?”

분위기를 삽시간에 진지하게 만든 요안이 역으로 질문을 던져온 것은 그때였다.

“어떻게 하고 싶냐니, 그것이…….”

“선생님이 언니라면 사족을 못 쓰시는 건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집을 그렇게 오래 비우셔놓고, 귀가하시자마자 언니와 시간을 보내시는 대신 저를 찾아오신 건 그만한 이유가 있으셔서 그런 것 아닌가요?”

왜 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걸까. 녀석의 말과 어울리지 않는, 의연해 보이는 표정 때문인가.

심양에서 돌아온 후 성장한 요안을 마주하면서, 철없던 예전과 많이도 달라졌다는 느낌은 이미 받아왔었다. 나아가 이제는 먹물에 뒤덮인 채 엉엉 울던 시절의 녀석의 흔적마저 찾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있었다.

녀석도 이제 어른이 된 것인가.

얕은 한숨과 함께 복잡한 기분이 가슴속을 묵직하게 채웠다.

“그래. 솔직히 말하마. 금부도사가 들이닥쳤던 그날의 이야기다.”

“…….”

“내 그날 금부도사의 앞을 막아서고, 그에게 너를 소실로 삼았다 말했던 것은 오로지 너를 연좌에서 빼내기 위함이었다. 알고 있느냐.”

“선생님이 다른 생각을 품고 그런 말씀을 하셨단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정말로.”

“그럼…….”

“선생님 눈에는 예전부터 언니밖에 비치지 않았으니까요. 그걸 이 한양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왜인지 모르게 요안의 말에서 체념이 묻어나고 있었다. 마치 한숨이라도 묻어날 것 같은 말투였다.

“그리고 아버지께 졌던 신세까지 생각하면, 바보같이 착해빠진 선생님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실 수 있었을 리가 없어요. 그렇죠?”

“…….”

“선생님은 언니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평생 첩 같은 건 들이실 생각이 없으셨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곤란하신 거잖아요. 이조판서 댁 꼬맹이도 알 만한 사실을 제가 모르겠어요?”

요안의 말이 서릿발처럼 내 가슴에 꽂혔다. 단어 하나하나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그 일에 휘말려 내 소실로 알려지게 된 것이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면, 어떻게든 내 온 힘을 쏟아서라도 수습해 주마. 아마 네 뜻이 그렇다면 중전마마께서도, 주상전하께서도 힘을 보태주실 것이야.”

“고작해야 초관의 여식이 얽힌 일에 그런 권력을 휘두르려 하지 마세요, 선생님. 부제학 영감께서 보셨으면 선생님을 잔뜩 혼내셨을 거예요.”

“요안아…….”

“무엇보다, 제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는 말 자체가 틀렸어요. 그랬다면 왜 제가 아직도 선생님댁 별채에서 머물고 있었겠어요. 둔하신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시라니까.”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는 요안이었으나 방 안의 무거운 분위기는 그리 변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혼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중요한 관계를 왜 요안은 이렇게 간단하게 결정하려 하는 걸까.

분명 요안이라면 본인을 사랑해 줄 짝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외모도, 능력도, 친화력도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내 집 별채에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제가 왜 세자빈, 아니 중전마마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는지?”

“……대강은.”

“저는 선생님도, 언니도 너무 좋아요. 세상에서 가족을 빼고 제일 좋아하는 두 사람을 고르라면 선생님과 언니를 뽑을 거예요.”

“…….”

“언니가 갓 귀국하셨던 선생님을 밀어내고 있었을 때, 그래서 도와드린 거였어요. 두 사람이 불행해지는 꼴만은 절대 볼 수 없었거든요.”

때맞춰 창밖에서 불어온 바람 탓일까. 그 바람에, 별채 마당에 심어져 있던 수수꽃다리 향이 훅 실려 날아왔다.

요안은 그 살랑거림에 맞춰 제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서툴게 찐 탓에 쪽에서 새어 나온 머리칼이 허공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갑자기 깨달은 거예요. 제 마음속에도 어떤 감정이 꽉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요.”

“그것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 감정이 선생님과 언니 사이에 오가는 그 감정과 같은 것이 맞는 건지. 그저 선생님을 보며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동경 같은 건지, 아니면 사제 관계에서 오는 친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

“잘 모르는 게 맞겠죠? 이런 건 처음이니까요. 어머니 말로는 나이를 더 먹으면 알게 된다던데, 언제쯤이면 알게 되는 걸까요. 하하.”

전해져오는 가볍지 않은 감정 탓에 나는 입을 함부로 열 수 없었다.

가볍지 않은 데다, 너무나 섬세하고 다치기 쉬운 감정.

그것을 어찌 함부로 다루겠는가.

“하지만 그 감정 때문인지, 선생님 곁에 있기만 해도 즐거워져요. 선생님과 같은 곳을 보면서 선생님의 힘이 되고 싶어져요. 그리고…….”

“…….”

“선생님이 저를 대등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욕심이 언제부턴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한 일이었어요.”

요안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티 하나 없이 맑은 눈동자였다.

“그래서 중전마마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느냐.”

“마마께서는 제 글을 읽기만 하셨는데도 모든 것을 짐작하고 계셨어요. 제 마음속에서 들끓던 이상한 욕심들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주신 것도 마마세요.”

“그래서 처음에 거절을 표했던 네가 마음을 바꾼 것이었구나…….”

“맞아요. 나중에는 마마께서 선생님을 눈치 없다고 혼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섬기길 잘했단 생각이 조금 더 들긴 했지만요.”

그제서야 조금 감이 왔다.

강빈이 요안의 이야기를 꺼냈던 날, 어째서 나를 계속해서 타박했는지 말이다.

왜 나를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는지도.

“아무튼, 확실한 건 그거예요.”

“확실한 것이라니?”

“제가 이야기했었잖아요. 아무한테나 시집가는 건 질색이라고. 언니처럼 마음에 드는 사내가 없으면 시집 안 갈 거라고.”

“…….”

“어쩌겠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벼운 한숨을 내뿜으며 미소 짓는 요안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편치 못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혼인을 결정해서는 분명 안 될 일이니까.

그렇게 요안은 계속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가면서 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마치 내가 입을 열어 자신을 말리려던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 조선 땅에는 선생님처럼 제게 딱 들어맞는 지아비감도 없으니까요. 아주 적당한 사람이라 할까.”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요안의 얼굴에 갑자기 익살스러운 기운이 가득해진 것은 그때였다.

“아내가 나랏일을 한다며 집 밖을 나돌아다니는 걸 용인해 줄 사람은 한양에 선생님뿐일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나 홀대라도 받으면 중전마마께 바로 고해바칠 수도 있고요.”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이라고 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엄청 중요한 이유라고요!”

하, 왜 또 자연스럽게 손이 이마로 가는 건지. 녀석에게 완전히 말려들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녀석이 어른스러워졌다고 착각했던 일이 바보 같았다. 그럼 그렇지,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그렇게 죄책감 가지시지 마세요. 저는 그저 이 집에서 선생님과 언니랑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 때가 되면 짝을 찾으려 드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고,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다스려질 것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군자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 본성을 다스리는 유학을 제게 가르친 분이 선생님이잖아요!”

“이런 곳에서 궤변으로 늘어놓으라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녀석에게 지금까지 휘둘리고 있었다니, 하아.

“언니, 요새 몸도 계속 안 좋잖아요? 제가 같은 집에 살고 있어서 언니가 얼마나 든든해하고 있는지 선생님은 모르실걸요?”

“뭐? 왜 안사람 핑계를 네가 대는 것이냐?”

“선생님은 점점 높으신 분이 되셔서 집에 신경도 잘 쓰지 못하실 텐데, 언니를 도울 사람 한 명을 더 들였다 여기시라니까요?”

“고작 그런 이유로 혼인을 결정해서는 안 된대도!”

녀석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래놓고 자기를 어른으로 봐 달라고?

“자꾸 이러시면 중전마마께 다 고해바칠 거예요! 선생님이랑 제대로 된 끈이 있어야 상궁들이 저를 함부로 못 대한단 말예요!”

“뭐? 그런 끈은 중전마마로 충분하지 않느냐?”

“우씨! 내가 왜 이런 답답이를 소설 주인공으로 썼지? <안 선비전> 이야기만 나오면 헤벌레해지는 그 상궁 아줌마들 좀 다스리게 도와달라구요!”

왕비가 된 강빈이 왜 그리도 요안이의 소실 얘기를 쐐기 박으려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이런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수족이 될 요안이에게 내 이미지를 덧씌워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히려는 것인가.

“그럼 그 사람들에게 네가 내 제자라고 밝히면 되는 일이 아니냐?”

“선생님 또 탄핵당하고 싶으세요? 선비가 아녀자를 제자로 받는 일은 평범하지 않은 일이라면서요? 그래서 지금까지 잘 숨기고 있었는데, 자식과도 같이 여겨야 할 제자를 아내로 취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어……?”

“이제 더 높으신 관직에 오르실 거라면서요? 군사부일체, 이것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거잖아요? 제 말 한 마디면 강상의 도리를 어긴 죄로 확!”

“네가 지금 나한테 배운 내용으로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그러니까 그냥 제자 말고 소실 시켜달라니까요!”

요놈의 자식이 감히 나랑 맞먹으려 들어?

하지만 녀석의 논리에 반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요안이 상처 입었던 먹물 사건 이후로 그 이유를 들어 녀석의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긴 했었으니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걸 청출어람으로 봐서 뿌듯해해야 하나.

“어, 그리고…… 여기, 궁에서 가깝단 말이에요! 친정은 언덕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이유로 자꾸 어린애처럼 떼쓸 테냐?”

“어린애요? 말씀 잘하셨네요. 제가 진짜 어린애였던 시절에 아버지에게 저 책임진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책임지세요!”

“뭐, 뭐?”

“시끄러워요! 아무튼 제가 여기 있기 싫어질 때까지 들러붙어있을 테니까 그리 아세요!”

이 고집쟁이를 도대체 누가 가르친 거지?

어느새 내 앞에는 금발벽안의 거머리 한 녀석이 못된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이 거머리를 당분간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지도.

하연이 이 녀석의 고집에 지쳐 내게 정해진 답이 하나뿐이라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안이 녀석의 고집은 쇠심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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