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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38화 (138/298)

138화. 구월산 아지트

구월산 주위의 민가에서 멀미로 지친 몸을 쉬고 있던 호포대원들은 분명 깜짝 놀랐을 것이다.

구월산 유람을 간다고 산을 올랐던 어사가, 웬 거지 몇 놈을 몰고 내려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장, 고저 쌀을 몇 가마 구해서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셨습네까?”

“그래, 그 비용은 이것으로 갈음하고, 길잡이로 쓸 자도 붙여줄 테니 목적지에서 합류하도록.”

대원 절반은 산적 몇을 붙여서 식량을 구해오라 명하고, 나는 나머지 대원들을 끌고 다시 산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방금 나왔던 산채.

다 쓰러져가는 산채였지만 그걸 써먹을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몸은 조금 어떤가? 괜찮아졌는가?”

“아이고, 물론입죠, 대장!”

다시 구월산을 올랐다. 그러는 동안 동행한 대원들이 평소보다 몸이 조금 축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내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 주고 있는 대원 역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장시간 배를 타며 겪은 뱃멀미 탓인가, 아니면 전라도에서 겪은 고생 탓인가.

“호남에서와 다르게 해서에서는 그래도 고생이 덜할 것일세.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끄떡도 없습니다요!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습죠!”

어사 일로 전라도를 돌면서 가장 고역이었던 일은, 먼 길을 가는 일도, 거친 잠자리와 음식을 견디는 일도 아니었다.

스무 명이나 되는 대원들을 눈에 안 띄도록 흩어 목적지에서 접선시키는 일이 가장 고역이었다.

역졸의 협조를 구하지 않고, 직접 끌고 내려간 병력들로 어사출두를 하는 일은 분명 효과적이긴 했다. 그러나 이십 명의 장정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민가에 신세를 지기라도 한다면 필히 주변에 소문이 돌 터.

때문에 대원들은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서너 명 단위로 나눠져 각자 다른 일행인 양 위장해야 했다. 그들을 목적지에서 다시 모으는데 낭비된 시간도 컸던 데다, 그 과정에서 소모된 대원들의 체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우리 대원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불가능했겠지.’

지금까지 쌓아온 사냥과 전쟁 경험에 비하면, 호포대에게 그 정도 행군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정이 꽤나 길었다는 점.

그 과정에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까지 밟아야 했던 대원들은 마른 보존식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노숙까지 무릅써야 했다. 그들에게 괜히 미안한 감정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이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어떤가. 방금 머리를 굴린 결과에 따르면 구월산은 거점으로 꽤나 괜찮은 위치였다. 살펴야 할 대동강 하구의 포구들과도 가깝고, 출두를 나가야 할 황주와도 멀지 않다.

이곳에 대원들을 주둔시키면서 편안하게 정보를 모으고, 겸사겸사 산적이 된 백성들도 감화시킨다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그런 계산 아래 내린 결정이었다.

“히익! 나으리! 나으리는 대체……!”

산채를 지키고 있던 두목은 갑자기 들이닥친 스무 명의 장정을 보자 넋이 나간 듯했다.

처음에는 호포대원들을 관군으로 착각해 꽁무니를 빼다 김 갑사에게 바로 붙잡혀온 두목이었다.

산채에서 쌀가마니가 올라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가 뜻밖의 손님을 마주했으니 그럴 만도 했나. 곧이어 산채 마당에 쌀가마니 여럿이 쌓이고, 등산 도중 사냥한 짐승들이 해체되는 장면을 보면서, 두목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나으리께서는 대체 뭐 하시는 양반이대요? 나으리를 위협한 저희에게 도대체 왜 이리 잘해주시는 거시까?”

“궁금한가? 그걸 알면 내 여기에 오래 머물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

“아, 아닙시다! 이렇게 좋으신 분이 어떤 분이든 무슨 상관이까요.”

조선 최고의 정예병답게 대원들의 행동은 빨랐다. 삽질 또한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니었으니.

산채의 무너져가는 울타리와 벽을 점검하고, 지붕에 너와를 채워 넣어 산채를 쓸 만한 거처로 만들고, 조촐한 식사까지 준비하는 데는 불과 반나절 정도면 충분했다.

그 사이, 나는 재빨리 산채의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화전(火田)을 일군 자국이 빼곡한 것이, 이건 산적들의 산채라기보다는 오히려 화전민들의 부락에 가까웠다.

“나으리! 즈이가 참으로 죽을죄를 지었시다!”

배가 빵빵해진 산적들이 식사를 마치자마자 내 앞에 넙죽 엎드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산적들을 보자니 기분이 묘했다.

“무거운 죄가 맞긴 하지. 지나가는 길손에게, 그것도 나 같은 양반에게 죽창을 들이밀었으니.”

손에 든 정의봉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분위기를 흔들어놓는 쿵 소리에 산적들은 기겁을 했다.

“히익! 나으리! 저희는 그래도 사람을 해친 적은 없었시다! 정말이누만요!”

“허나 내가 너희를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그 죄를 잊어서가 아니다. 어쨌건 너희가 지나가는 행인을 털어댄 죄는 나중에 죗값을 치르게 만들 거니까.”

꼴을 보니 산으로 도망친 농민들이 반 화전민, 반 산적 생활을 한 것이 분명했다. 이런 걸 보고 생계형 범죄라 하던가.

아무리 명승지로 유명한 구월산이라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어느 골짜기든 맹수가 노닐기 마련이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환보다 무섭다는 공자님 말씀이 그대로 재현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 자들은 한동안 가죽공방에서 무두질을 하든, 나루에서 하역하는 일을 하든 그 죗값은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도리에 맞겠지.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도 산적들은 그리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색이 되었던 산적들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오히려 밥은 먹여주시는 것이냐며 감동하는 놈도 있었다.

“……그렇게 나를 도와 죗값을 치른다면, 내 너희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해하였느냐?”

“그거야 저희는 마다할 이유가 없누만요…….”

어차피 민생을 살피러 나온 길, 산적이라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써 주는 것이 어사로서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 전에 이들에게 쓸 만한 정보가 있다면 뽑아먹어도 좋을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떨고 있는 산적들에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얼마나 산에서의 삶이 궁핍하고 힘들었으면 이 정도 제안에 감동을 받는 것인가.

한숨이 살짝 새어 나왔다.

엎드려 있는 십수 명의 등짝 사이에서 조그만 머리통 하나가 쏙 올라온 것은 그때였다.

“거짓말! 세상에 공짜로 밥을 먹여주는 사람이 어딨어요?”

“야, 인마!”

“아저씨들, 지금 속고 있는 거예요. 양반한테 속아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 양반을 또 믿어요?”

“언노미 너, 미쳤네?”

“내가 뭘 미쳐요? 그냥 우리를 죄다 죽이고 산채는 태워버리면 되는 사람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 아녜요?”

호오.

안 그래도 내 자그마한 성의 하나에 이렇게 감사를 연발하던 산적들의 모습이 살짝 불편하던 차에, 흥미로운 사태 하나가 발생했다.

산적들 사이에서 벌떡 일어난 웬 꼬마 하나가 그들을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어려보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열 살도 안 된 아이 같았다.

두목이 거둬서 심부름꾼으로 쓰던 아이라 했던가. 겉모습은 꼬질꼬질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엿보이는 총명함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놈이 미쳐가지고! 나으리! 언노미가 저희 산채에 굴러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는 게 없시다. 너그럽게 봐주시…….”

“뭘 몰라요? 양반이 밥 한 끼 줬다고 이러는 아저씨들이 이상한 거지!”

“괜찮다. 그 아이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지 않느냐.”

“나으리!”

호기심이 슬며시 돋는 것이 느껴졌다.

꾸민 꼴을 보니 천한 출신임이 분명했으나, 입에 담는 것부터 야물딱진 아이였다.

“그렇게 착한 척 하지 마세요! 양반이란 자들은 다 똑같은 거, 다 아니까!”

“너,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내가 두렵지 않은 게로구나?”

“아이고! 나으리! 이놈이 부모도 잃고 혼자된 지 오래라 아래위를 모르누먼요! 용서해주시다!”

“내가 틀린 말 했어요? 내가 아는 양반 중에 착한 양반은 한 명도 없었단 말예요!”

아이의 입에서까지 저런 소리가 흘러나오게 만든 새끼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버릇없는 아이의 말보다 그 말에서 유추할 수 있었던 사실 때문에, 내 가슴이 묵직해지고 있었다.

“분명 저 양반도 아저씨들을 방심하게 만들어다가 어딘가로 끌고 가서 팔아버릴 거예요! 아저씨들도 다 한 번씩은 봤던 일이잖아요!”

“야! 그러실 거였으면 팔아넘길 놈들한테 밥은 왜 먹이네? 진작에 때려눕히고 끌고 가셨겠지! 이 새끼가 나으리께서 오냐오냐하시니까 아래위를 모르고!”

“아저씨들도 맨날 양반한테 당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밥 한 끼 줬다고 이러는 게 어딨어요!”

“아직도 이놈이 정신을 못 차리고!”

두목이 아이의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았다. 꽝 소리와 함께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지만, 내 신경은 온통 다른 쪽에 실려 있었다.

누구를 끌고 가서 팔아버린다고?

손아귀에 쥐어진 정의봉이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잠깐, 끌고 가서 팔아버린다니. 이 근방에서 사람을 팔아넘긴단 말인가?”

“나으리, 그것이…….”

“으아앙! 아저씨들도 우리 부모님처럼 될지도 모른단 말예요! 으아앙!”

“저희가 길손들을 잡아다 팔아넘겼다는 얘기가 아니시다! 저희는 그저……!”

하긴, 너희 같은 허당들한테 잡혀 팔려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사색이 되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 두목의 입에서 중요한 정보가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리대금으로 진 빚 대신 땅과 딸을 빼앗긴 이야기, 부모 잃은 아이들을 꼬드겨 노비로 만들어 팔아먹는 것을 목격한 이야기. 생활고에 못 이겨 자신의 몸을 팔아 부모에게 남기고 간 이야기…….

“아니, 그건 자매(自賣)가 아닌가? 스스로 돈을 받고 노비가 되길 자청하는 일은 엄연히 경국대전에 어긋나는 일일 텐데?”

“그렇게 어려운 말씀을 하셔도 저희는 모르갔시다. 저희 같은 무지랭이들이 무얼 알고, 무슨 방도가 있었으까요.”

제 사연을 털어놓은 두목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좌중의 분위기 역시 숙연해졌다. 산적들을 둘러싸고 있는 호포대원들도 노비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닐 터.

나 역시 가슴이 묵직했다.

아마 황해도로 접어들어 포구에 내리자마자 구월산이 눈에 띄었던 것은 하늘이 인도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의 처지는 잘 알겠다.”

“나으리, 저희를 용서해주시는 거시까?”

“용서라……. 그것은 하늘께서 맡으실 몫이고, 너희들이 죗값을 치를 방도 중 하나가 방금 생각난 참이다.”

“방도라 하시면……?”

***

며칠 후, 나는 대동강 하구의 또 다른 포구인 오리포(梧里浦)에 나와 있었다.

정보를 모아오라 흩어 보낸 대원들에게 산적 하나씩을 길잡이로 붙여준 후, 나 역시 현지 시찰에 나선 것이다. 이쪽의 포구는 처음부터 정해졌던 목적지였던 터라 오리포로 향하는 내 수행원들은 김 갑사와 유 서리면 충분했을 터.

“저기요, 아저씨! 다리 아프다고요!”

“그래, 그래. 내 등에라도 업힐 테냐?”

“아니, 업어달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고요!”

“그래, 그래. 어차피 길은 머니 방해가 되지 않으려거든 업히려무나.”

산적들을 전부 대원들에게 딸려 보냈으니, 산채는 당분간 텅 비어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열 살 남짓한 꼬맹이를 혼자 남겨두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기묘한 동행이 완성되었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 패랭이 쓴 다소 왜소한 얌생이, 삿갓 쓴 덩치, 그리고 꼬마 하나.

녀석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산을 거의 내려왔을 때부터 입이 터져 종알종알 입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의외로 한 사람 때문이었다.

“김 갑사, 너무 무리는 하지 말게.”

“어이쿠! 나으리, 이런 일은 익숙합니다요. 걱정 붙들어 매십쇼.”

“익숙하다니? 자네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이 돌보는 일인데?”

“이래 봬도 이미 손자가 있는 몸입니다요. 헛헛.”

뭐? 내 알기로 김 갑사는 송시열과 비슷한 연배였을 텐데?

십대 중반에 조혼해 바로 아들을 낳고, 그 아들도 조혼해 벌써 꽤 자란 손자가 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김 갑사였다. 맙소사.

어쩐지 눈도 마주치지 않던 꼬마를 순식간에 다뤄내더라. 이미 그 꼬마를 업고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아버지와 아들이었지만 말이지.

‘저 건방진 녀석, 어젯밤에 나한테 빠따 돌리는 법 알려달라고 할 땐 언제고.’

김 갑사에게 붙어있는 꼬마가 딱히 신경 쓰여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 산채에 머물며 피로를 풀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동안 있었던 일이었다. 늘 하던 일과대로 정의봉으로 밤공기를 가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선 하나가 느껴졌었다.

‘웬 놈이냐!’

‘히…… 히익!’

양반은 싫다면서, 내가 빠따 돌리는 모습은 대체 왜 훔쳐본 건지.

넋을 잃고 지켜본 주제에, 그러면서도 그 건방진 말투로 몽둥이 쓰는 법을 알려달라기에 저 버릇없는 꼬맹이 놈을 살짝 손봐줬던 터였다. 손잡이 끝으로 딱밤을 딱!

그 탓에 삐졌는지, 녀석은 산을 내려오는 내내 내게 말 한 마디 걸어오지 않았다. 김 갑사가 아니었으면 다루지도 못했을 뻔 했다.

“저기, 말 좀 묻겠네.”

“하이고, 여기선 못 보던 양반이신데, 뒤에는 웬 부자(父子)를 데리고 다니시까?”

“아, 내 일행인데, 그럴 사정이 좀 있었다네. 뭐 하나 물어도 되겠는가?”

“물론이시다. 아랫사람의 가족도 챙기시는 게 참말로 보기 좋시다.”

포구에 들자마자 길 가던 아낙 한 명을 붙잡았다. 웬 낯선 양반이 던지는 질문에 잠시 벽을 세웠던 아낙이었지만, 그 경계심은 김 갑사와 꼬마 덕에 꽤나 누그러진 듯했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포구에 활기가 가득하구만? 뭐 달라진 것이라도 있었나?”

“아, 초행이라 모르시누만요? 얼마 전부터 한양서부터 저기 청나라로 가는 배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서 그렇시다. 요 오리포로 들어와서 실어 가는 황해도 물건들도 조금 되누만요.”

대청 무역이 늘어난 것이 여기까지 영향을 끼쳤나? 긍정적 신호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다음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장리 빚을 놓거나 노비를 거래하는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고리대금, 아, 그러니까 이자를 비싸게 받고 재물을 빌려주는 사람도 좋네.”

“……양반님께서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는데, 그 자랑은 안 엮이시는 게 좋을 것이라요.”

“왜 그런가?”

“그기…….”

갑자기 불안한 태도를 보이는 아낙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캐묻는 내게, 아낙은 입을 딱 다물고 말았다. 내가 몇 번이고 이유를 물어도 그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기만 할 뿐이었다.

“유 서리, 무언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고리대금이 근본적으로 원한을 사는 일은 맞지라. 헌데 저 반응은 그 이상이랑게요.”

겨우 그 자의 거처를 캐물어 자리를 옮기면서도, 내 직감은 무언가 이상을 감지하고 있었다.

곧 정의봉을 쓸 일이 생길지도.

아낙이 가르쳐준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포구에 어울리지 않는 단 한 채의 기와집이 막 시야에 들어왔을 무렵이었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하나가 눈에 띄고 있었다.

“김 갑사, 내 눈에 보이는 저 사람, 자네 눈에도 보이는 것 맞겠지?”

“제 눈에도 똑똑히 보이는구만요. 헌데, 왜 갑자기 그걸 물으시는 겝니까요?”

얼굴에 그늘진 자들이 때론 울상을 지어가며 드나들고 있는 고리대금업자의 대문 앞에, 웬 장옷을 뒤집어 쓴 낭자 하나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작가의 말

승정원일기에는 한양 등지에서 전문적으로 양인을 노비로 속여 팔아먹은 일당을 체포한 뒤 그들의 죄상을 왕에게 보고한 기록이 몇몇 남아있습니다.

주로 지방에서 상경해 자매를 원하는 노비나 양인들에게 거짓으로 노비문서를 작성해 주고 매매를 알선한 후 수수료를 받아 챙겼는데요. 흉년과 기근 등이 반복해서 일어나자 먹고살기 위해서 평민들이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노비로 팔아넘긴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불법이었고요.

1815년 김고지라는 이가 작성한 자매문기, 즉 자신을 남에게 파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 또한 전해져 오는데, 여기에도 굶주려 죽은 아비를 장사지내는 비용을 구하려 남매가 노비로 몸을 판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고작 아홉 살과 다섯 살짜리 아이들이었죠.

저렇게 어린 아이들이 무얼 알고 문서까지 작성했겠습니까. 다 브로커의 수작이었겠죠. 일정하게 정해진 수수료율은 없었지만 브로커들은 대략 몸값의 4분의 1에서 2분의 1 정도의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신분제가 슬슬 무너지기 시작했음에도 노비 제도가 유지되고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방식으로 노비가 꾸준히 재생산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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