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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42화 (142/298)

142화. 무이이야(無以異也)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어사로 나온 이번 길, 마음을 추스르라는 전하의 명 탓에 깊은 생각은 하지 않고 움직였던 터.

남원에서 있었던 대리 출두와는 달리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어사의 표식은 진짜였고, 행여 실수나 사고를 저지른다 하여도 이제 내게는 그것을 수습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암행을 다니던 내내 고민이 깊었다.

나는 임무를 제대로 해낸 것일까.

남원에서 어사에게 전해 받은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암행어사다!”

침묵이 흐르던 자리에 웬 백성 하나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한 번 불붙은 반응은, 둑이 무너지듯 연달아 백성들 사이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호포대원들이 두들기기 시작한 탐관오리의 수하들에게서 나는 비명과 타격음이, 백성들의 반응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두 탐관오리가 나를 맞이하겠다며 꾸며놓은 잔치 자리는, 진정한 잔치 자리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어사 나리께서 이 황주에 오셨다!”

“탐관오리 놈들을 응징하러 암행어사께서 오셨다!”

“살았다! 부디 저 염병할 사또 놈들에게 나라님의 철퇴를!”

아. 그랬구나.

방금 품에서 마패를 꺼내던 내 손에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마치 나를 붙잡고 이끄는 것만 같은, 친숙한 손길이었다.

조금 거칠고 앙상한, 다소 서늘하기도 했던 손길.

‘……전하께선 그래서 나를 어사로 내보내셨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사의 가르침은, 내가 그의 뜻을 받드는 한 여전히 내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내딛는 걸음마다 힘이 가득 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두 탐관오리에게 다가가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척. 등에 메고 있던 정의봉을 쓰레기 두 마리를 향해 겨눴다. 아끼고 섬겨야 할 백성의 피를 빨다 못해 그들을 팔아먹은 개새끼들이었다.

‘지켜봐주십시오, 아버지. 당신의 아들이 앞으로 이 땅에서 해나갈 것들을.’

퍽. 몽둥이가 쓰레기 하나를 박살냈다.

이 몽둥이 또한, 어사와 만나지 못했다면 이 땅에 구현되지 못했을 물건이었다.

***

황주목 관아는 그 어느 때보다 백성들로 붐비고 있었다.

평소에는 탐관오리의 서슬에 눌려 관아에 얼씬도 하지 않던 백성들이었다.

“……어푸푸푸……. 나리, 살려주십시오!”

어사에게서 분노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호랑이 가죽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관아를 둘러싸고 있는 백성들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죄인을 국문 중이던 어사의 손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줄무늬 옷을 입은 군사 하나가 그 명을 받들었다. 거꾸로 매달려있던 죄인의 대가리는 그렇게 다시 물동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첨벙!

어사와 마찬가지로 짐승 가죽으로 얼굴을 가린 군사에게, 백성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그 군사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물고문이 너무나 가벼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리를 트는 주뢰(周牢)형이나 무릎을 꿇려 뭉개는 압슬(壓膝)형, 달군 쇠로 지지는 낙형(烙刑)으로 다뤄도 속이 시원치 않을 놈들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놈들이 이틀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푸! 어사 나리! 소승은 정녕 모르는 일이…… 오로록.”

반대쪽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땡중 역시 물동이에 머리를 담그길 반복하고 있었다. 어사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고 나직이 중얼거렸는데, 백성 중 그 말의 참뜻을 이해한 자는 몇 되지 않았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형틀에 묶여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쓰레기 두 놈이 있었다. 관아의 전 주인인 황주 목사와 그놈의 수하, 은율 현감이었다.

“어사 나리! 소인은 죄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부 오해에서 빚어진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황주 목사와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런 일을 벌였겠습니까! 저 악질 놈들이 소인들을 음해하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백성들의 야유가 온 관아를 뒤덮었다. 당황한 황주 목사가 고함을 지르며 야유를 막아보려 했으나, 도리어 날아오는 야유는 더 거세질 뿐이었다.

“황주 목사, 자네가 담당하던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 말하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소인이 원리원칙대로 국법을 집행하느라 우매한 놈들이 사사로운 원한을 품은 모양입니다! 나리께서도 국정을 다뤄보신 경험이 있으시니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사로운 원한이라?”

“그렇습니다! 일단 소인을 형틀에서 풀어주시면 그것에 대해 자세한 변을 올리겠습니다! 소인은 억울합니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백성 모두가 보았다. 호랑이 탈을 쓴 어사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듯한 환상을.

“원리원칙대로 국법을 집행했다라……. 나이가 맞지 않는 자에게, 심지어는 죽은 자에게 군포를 부과하고, 그들에게서 군포를 거둘 수 없으면 이웃과 친척에게 거둬댄 짓거리가 원리원칙에 의거한 행동이었다 이 말인가?”

“나리! 나리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게 다 조정에서 지시한 군포의 수량을 맞추려다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조정에서 지시했다? 내가 아는 조정과 자네가 아는 조정은 다른 모양이구만?”

어사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이런 일을 대비해 황주 고을의 모든 조세 납부 현황을 병조와 호조에서 정리해왔다며 말을 덧붙이는 어사였다.

“아니, 고작 종이 한 장에 그게 다 들어갈 리가……!”

“그거야 자네처럼 우매한 수령이나 할 생각이고, 자, 볼까. 여기 방금 찾아낸 황주 고을의 군적(軍籍)이 있네. 황주 목사.”

그렇게 어사는 황주 고을에서 거둬진 군포의 수를 군적에 오른 백성의 수로 계산해 빠르고 정확하게 유추해냈다. 당연하게도 그 숫자는, 중앙에 보고된 군포의 수보다 훨씬 많았고.

“……이런 상황인데도 발뺌하겠다, 이 말인가? 황주 목사?”

“아니…… 그것이…….”

“추가로 거둔 군포는 어디로 빼돌렸는가? 유난히 덩치가 좋던 자네의 말에게 갔는가? 아니면 자네가 해마다 한 명씩 들인다던 측실들에게로 간 것인가?”

어사의 목소리가 점점 화기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기운을 감지했는지, 쓰레기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아이고! 어사 나리! 나리의 말씀이 전부 맞습니다! 저는 황주 목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불쌍한 자입니다! 부디 바르게 살펴주십시오!”

“은율 현감! 네놈이 어떻게 감히!”

“호오, 그런가? 헌데, 은율 현감. 자네의 고변은 내가 아는 바와는 다른 이야기지 않은가?”

“예?”

어사가 소매에서 서찰 몇 장을 꺼내들었다. 어리둥절해하던 은율 현감의 얼굴은, 어사가 그 서찰의 내용을 읽기 시작하자 급속히 핏기를 잃기 시작했다.

“……‘이달치 상납이 모자라지 않나! 약속과 다르니 속히 제대로 상납하도록!’ 이 서찰 끝에 적힌 것은 누구의 수결인가? 이 서찰이 어디서 나왔는지 혹시 현감은 알고 있나?”

“아…… 그것이…….”

“내 알려주지. 저기 매달려서 약수를 열심히 마시는 자의 소굴에서 나온 서찰이라네. 우연찮게 저 자의 자택에 변고가 생겨,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이지. 이렇게 나오면 섭섭하네, 현감.”

아예 하얗게 질려 입술까지 덜덜거리기 시작한 은율 현감이었다. 그런 현감을 보며 어사는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손에는 예의 그 몽둥이를 단단히 쥔 채였다.

“어푸푸! 나리! 그것은 오해……!”

“호포대. 죄인의 입이 아직 열리는구나. 약수가 모자란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

“옛, 대장!”

첨벙 소리와 함께 항아리에 담긴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물동이에 담긴 물보다 어사의 목소리에서 스며 나오는 냉기가 더 서늘했다.

어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 탓일까. 항아리에서 튀어나온 물이 현감에게 닿을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현감의 얼굴은 흘러내리기 시작한 물기로 온통 젖어들기 시작했다.

“황주 목사, 예로부터 국방과 군역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라 했다. 군역이 흔들리면 국방이 흔들리고, 외적이 나라를 노리게 되면 상감마마의 시름은 깊어지며 백성들은 발을 뻗고 잘 수 없게 된다.”

“나리!”

“이 나라가 전란에 휩싸였던 때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그 치욕을 잊고 나라의 기틀을 해하려 했단 말인가!”

‘병역 비리’라는 단어가 입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어사의 분노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담장 밖에도 전해졌는지, 사또 둘의 변명이 새어 나올 때마다 터지던 백성들의 야유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저벅, 저벅.

관아의 마당에는 동헌마루에서 내려와 죄인들에게 접근하는 어사의 발소리만 연달아 울릴 뿐이었다.

“은율 현감, 목민관이란 주상 전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스려야 하는 자리다. 여러 벼슬 중 가장 어렵고 책임이 무겁다 할 수 있지.”

“예, 예!”

“예? 예에? 그걸 잘 아는 자가, 보살펴야 할 백성들을 노비로 만들어 팔아넘기고 이문을 취해? 어찌 이것이 인두겁을 쓴 자가 할 짓이란 말인가!”

“나, 나리!”

“이 하루하루 대변만 생산하는 쓰레기들 같으니라고!”

어느새 어사는 형틀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곧바로 마당이 바람 가르는 소리에 휩싸였다. 어사가 몽둥이를 쥐고 목표를 향해 거세게 후려쳤기 때문이었다.

“악! 아아악!”

“아픈가? 정강이를 제대로 맞았으니 죽고 싶을 만큼 아프겠지, 물론.”

“나리! 살려주십시오!”

“이 상황에서도 목숨은 귀한가 보지? 좋아.”

하지만 입에 담은 말과는 다르게, 어사의 몽둥이는 한 번 더 빛을 뿌리며 휘둘러질 뿐이었다.

이번에는 옆 형틀에 묶여있던 은율 현감의 정강이에 몽둥이가 작렬했다.

“아아아악! 으아아악!”

“스스로의 고통을 그리도 잘 아는 자들이, 가엾은 백성들에게는 고통을 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뭐든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그랬어야지!”

두 쓰레기의 정강이에 다시 한번 몽둥이질이 각각 작렬했다. 쓰레기들의 비명이 관아 마당을 가득 채우고, 그것을 통쾌히 비웃는 백성들의 웃음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끄…… 끄윽. 살려…… 살려주십시오! 끄윽.”

“살려 달라? 좋아, 그러면 내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해 보겠나? 대답 여하에 따라 생각을 바꿔보지.”

“지, 질문이오?”

“자네들이 수령 자리에까지 올랐으면 반드시 알아야 했을 덕목에 관한 질문일세.”

말을 칼로 베듯 마무리 지은 어사가 동헌 구석을 향해 손짓을 보냈다. 그 손짓을 받은 것은 어사의 의자 뒤에서 대기하던 꼬마였다.

그 꼬마는 이윽고 무언가를 집어 들고 쪼르르 어사를 향해 달려 내려왔다. 어사를 바라보는 꼬마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었다.

“자, 이 물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자네들.”

“카…… 칼이 아닙니까?”

“바로 맞췄네. 그럼 묻지. 사람을 몽둥이와 칼로 죽이는 것이 각각 무엇이 다르다 생각하나?”

어사가 탐관오리들을 향해 들이민 것은 고리가 달린 짧은 단도였다. 칼날이 일으킨 바람이 놈들의 얼굴을 핥고 지나간 듯했다.

당장이라도 그것에 푹 하고 찔릴 것 같았는지, 두 쓰레기는 앞다투어 어사의 질문에 대답해댔다. 아마 도포 소매 사이로 드러난 십자 흉터와, 근육으로 굵은 어사의 팔뚝이 놈들의 입을 여는데 즉효였으리라.

“저, 저희의 목숨을 거두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어사께서 저희를 해하시는 건 국법에 어긋납니다!”

“어차피 몽둥이든 칼이든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같지 않습니까! 살려주십시오! 어사 나리!”

“한 놈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감히 국법을 운운하고 있고, 한 놈은 그래도 잘 알고 있구만. 그럼 다음 질문일세.”

“예?”

“예, 예!”

“……그러면 백성을 칼로 죽이는 것, 그리고 네놈들이 행한 정치로 죽이는 것이 각각 무엇이 다르다 생각하나?”

“……!”

벌벌 떨던 쓰레기 둘의 몸서리가 멎었다. 어사의 싸늘한 물음에 얼어붙기라도 한 것 같았다.

“맹자께서 그리도 강조하셨던 대목이 이제야 생각났나 보군. 나는 그분께서 남긴 말씀에 근거해 네놈들에게 사람을 해한 죄에 버금가는 처벌을 내릴 것이다.”

“나리!”

“그것이 내 신념이고, 내게 마패를 쥐어주신 주상 전하의 뜻이다. 평생 갚아도 모자랄 죄를 저지른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도록.”

곧이어 하늘을 가른 몽둥이 끝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점점 커져만 가는 백성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탐관오리에게 천벌을 내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뚜렷이 들려오고 있었다.

※ 작가의 말

맹자 양혜왕 상편 4장

梁惠王曰 寡人願安承教。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편안하게 가르침을 받길 원합니다.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 有以異乎

맹자가 대답해 말했다. 몽둥이와 칼로써 사람을 죽임에 그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曰 無以異也。

(양혜왕이) 말하길, 다름이 없습니다.

以刃與政,有以異乎

칼과 정치로써 (사람을 죽임에), 그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曰 無以異也。

(양혜왕이) 말하길,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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