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집으로
두 번째로 마패를 잡게 된 일은 그렇게 끝이 났다.
길고 긴 여정을 마치고 한양 도성문을 통과해 궁궐로 향했을 때,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며 임금은 나를 반기는 기색을 얼굴에 숨기지 못했다.
곧바로 나에게 편전으로 들라 명을 내린 임금이었다.
편전에 들었던 신하들을 모두 물린 임금은, 신하 된 예로 절을 올리는 절차마저 마다했다. 그리고는 내가 임지에서 올렸던 장계들을 꺼내 내 구두 보고와 대조하면서, 어사 활동으로 얻어낸 성과에 대해서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왜 아버님께서 네 스승을 어사로 여러 번 내보내셨는지 알겠구나. 이렇게 일처리를 빠르고 확실하게 해올 줄이야.”
임금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첫 번째 임지였던 전라도에서는 자잘한 폐단들을 적발해 탐관오리들에게 몽둥이찜질을 가한 정도였지만, 황해도에서는 꽤 큰 건들이 걸려 나왔으니.
대동법이 순조롭게 전라도 해안에서 점점 강을 따라 내륙으로 확대되는 상황 역시 눈으로 확인하고 온 마당이었다. 그리고 황해도에도 물길을 이용해 곡식을 나를 기반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파악했으니, 곧 대동법의 확대를 또 한 번 논해야 할 것이다.
“과찬이십니다, 전하. 제 일솜씨는 그분에게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겸손 떨 것 없다. 앞으로 어사를 자주 파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가 어사로 나가 쌓아온 실적을 보면 이것처럼 효과적인 수단도 없지 싶은데.”
임금은 그제서야 농을 섞어가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어내고 있었다. 길었던 어사 활동의 보고와 평가를 마치고 나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하오나 어사란 직분은 아무나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제 스승이 생전에 정신을 못 차리는 성균관 유생을 어사의 방자로 내보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농담을 남기긴 했습니다만.”
“재회에서 내리는 징계 대신 그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그러지 않더라도 미래가 창창한 신하가 있다면 어사로 내보내, 폐단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도 좋지 싶구나.”
“어사로 보내시려는 이가 그 일에 적합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요. 그러나 아마 어사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개나 소나 어사로 보낸다고 어사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겠는가. 내가 보기엔 어사로 나갈 만한 젊은 신료 중에 적합한 자는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임금은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무언가 꾸미는 것이 있지 싶었다.
“그러하냐? 내 보기에 적합한 자가 있어, 다음 차례로 암행을 보낼 사람들을 미리 선발해 놓았는데 말이다.”
“벌써 거기까지 염두에 두신 것입니까. 혹시 중전마마께서 어사 이야기가 소설화되는 것을 열렬히 원하고 계셔서 그러시는 것입니까?”
“원, 농담도 잘 하는구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만.”
“전하!”
“하지만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네 근처에 아주 적합한 어사의 인재가 여럿 있는 것을.”
임금의 입술이 짓궂게 비틀렸다.
그걸 본 내 입꼬리도 씰룩거리며 올라가려 했다.
아하, 그 얘기셨구만?
“아, 그 사람들이라면 소신만큼 어사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지요. 반드시.”
“너무 웃음기를 숨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일단 네 벗들도 외관직을 겪지 못했으니 어사로 파견함직하고, 송 집의 역시 급격한 승진에 비해 아직 외관 경험은 일천할 터.”
“언젠간 보내겠다 벼르고 계시단 말씀이시군요.”
“뛰어난 인재들을 작은 고을 하나에 묶인 채로 시간을 보내게 하는 일이 아까운 것이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더 넓게, 더 효과적으로 쓰이는 것이 조선을 위한 일이겠지.”
물론, 내가 겪었던 고생을 그놈들도 한 번씩은 겪어야지. 안 그런가?
내 음험한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임금은 내 표정을 보더니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여튼 우리 전하께서는 신하의 마음까지 너무 잘 살피셔서 문제라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물론 너처럼 몽둥이를 대놓고 휘두를 권한까지는 주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어사를 지방으로 자주 암행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한양에 앉아서는 보지 못할 것들이 태산과 같지 않느냐.”
“전하께서 직접 암행을 나가시겠다 고집만 부리시지 않으신다면야, 어찌 반대할 일이 있겠습니까.”
“……반대할 생각이었느냐?”
아니, 당신이 몸에 두른 건 용포예요, 이 양반아.
하지만 여전히 나를 앞에 두고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임금을 보니 아무렴 어떻지 싶었다. 스스로 암행을 나간다 해도 한양 도성 정도에서 그치겠지 설마.
“좋다. 어사 일은 여기서 매듭짓도록 해라. 네가 들고 온 안건은 내 조만간 조회에 회부해 대신들의 의견을 물을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둘만 있을 때는 그런 말투는 쓰지 않아도 좋다 하지 않았느냐. 몇 달 떨어져 있었다고 다시 내가 어색해지기라도 한 것이냐. 나는 오랜만에 널 보니 즐겁기 그지없는데.”
여전히 임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진하게 남아있었다. 하긴, 심양관에 들어갔던 이후부터 임금과 이토록 길게 떨어졌던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럴 리가요. 다만 공무를 수행하는 신하로서 공과 사를 구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시작과 끝이나마 형식을 차리려 하였을 뿐입니다.”
“그런 깐깐함까지 네 스승을 닮으려 하느냐. 참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구나.”
“그분 같은 신하들이 조정에 가득해진다면 조선의 미래는 창창할 것입니다. 제가 학당에서 양성하는 후계들도 그분의 정신을 이어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겠지. 네 그 목표 또한 내가 한껏 후원해주겠다. 아, 성근학당 말이 나오니 할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만, 오늘 풀어놓기엔 너를 너무 오래 붙잡게 될 테니 이후로 미루도록 하겠다.”
뭐지? 무언가 숨기고 있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는 임금이었다. 허나 그게 임금과 나 사이에 별 문제를 만들 리는 없었다. 오랜만에 전하의 장난에 어울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임금은 내게 퇴근을 명했다. 길고 긴 임무의 끝이었다.
“자, 그럼 집으로 돌아가 당분간 휴식을 취하도록. 네 신임 도승지로서의 첫 등청 일정은 따로 금군을 보내 전하겠다.”
“알겠습니다. 헌데 금군이라…… 호포대 대원들은 금군으로 제 몫을 다 하고 있습니까?”
“물론이지. 모름지기 금군에 요구되는 것은 절대적인 충성심과 무력 아니겠느냐. 호포대가 그 기준에 미달될 리가. 다만 궐내 생활에는 조금 적응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아직 사냥꾼 사병(私兵)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해 이전 금군들에 비하면 촌티가 조금 흐르긴 하나, 임무수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임금의 설명이었다. 대원들이 금군의 새빨간 복장을 하사받고도 임금의 허락을 받아 줄무늬를 그려 넣었다는 말에는 절로 이마를 잡고 말았지만.
그렇게 임금에게 물러나겠다는 의미로 큰절을 올리고 막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무언가를 잊었다는 듯, 임금이 무릎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참, 제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구나. 쉬는 동안 어사 장계로 올린 내용을 요약본으로 한 부 작성해서 네 소실에게 전하도록.”
“요약본을 말입니까? 아, 설마…….”
“네가 짐작하는 이유는 절대 아니니라. 이 일이 조정에서 다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성들도 네 이야기에서 통쾌함을 느끼고 싶을 테지.”
“절대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말로는 이제 찍어내기 시작할 좌명의 신보에 연재할 새 글감이 필요하다고 변명하는 임금이었지만, 당신 속을 내가 모를까.
임금의 뒤에 중궁전에서 뻗어나온 것이 분명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나는 분명 보았다. 그 여사님, 아니 중전마마는 오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
궐에서 물러나온 내 발걸음이 향할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내 집, 그곳 말고 또 갈 곳이 있을 리가.
헌데, 그렇게 잔뜩 기대를 품고 익숙한 대문을 두드렸건만, 나를 맞으러 나온 사람은 웬 뜬금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요? 드디어 한양에 돌아온 것이오?”
대문 사이로 삐죽 얼굴을 내민 사람은 금발벽안 초관이었다. 요안이라도 만나러 왔던 건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나는 박연의 손에 이끌려 사랑채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어사로 떠나기 전 사랑채의 모습과 지금의 사랑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내 물건들은 전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박연의 물건들만 가득했으니까.
“크흠…… 사위! 크흠. 아, 이제 선생을 사위라 불러야 하는 것이오?”
“요안이가 제게 시집왔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요. 어떻게 의금부에서 풀려나신 이후로 잘 지내셨습니까, 장인어른.”
“고신(拷訊, 고문)을 당하기 직전에 풀려나서 다행히 가족들 중 몸 상한 사람은 없었다오. 피해도 없고, 요안이도 그렇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의금부에 끌려갈 가치가 있었지. 하하.”
너스레를 떨어대는 박연의 웃음소리도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둘러댄 이야기는 아니지 싶었다.
“헌데, 어우, 안 되겠소, 선생.”
“무엇이 말입니까?”
“아무리 요안이를 선생 소실로 들여보냈다고는 하나, 입에 익숙한 호칭이 편하지 장인 사위라는 호칭은 낯간지러워서 못 쓰겠구려. 괜찮겠소?”
순박한 초관의 말 한마디에, 가족들의 행방이 궁금한 상태였음에도 몸에 더운 기운이 확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박연은 정말 늘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나 때문에 의금부로 끌려간 것이었는데, 크게 해를 입은 것이 없다니 그게 무엇보다도 다행이기도 했고.
“물론입니다. 저도 사실 초관 어른이라는 호칭이 더 편하긴 합니다.”
“좋소. 사실 나도 이제 초관이 아니지만 말이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시절을 추억하며 이렇게 부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아니면 내 별호로 부르겠소?”
“금태…… 아닙니다. 그래도 장인이신데, 어찌 함부로 별호를 부르겠습니까. 헌데 초관이 아니라니요. 드디어 품계를 올려 다신 겁니까?”
“드디어 지겨운 말단에서 벗어나게 되었지. 종사관(從事官)이라니! 이게 다 선생 덕분이오!”
이제 금발 태닝 초관이 아니라 금발 태닝 종사관인가? 순식간에 여섯 품계를 건너뛴 박연의 출세는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겉모습 탓에 페널티가 있을 박연이 그리 높은 관직에 임명된 것이 조금 의아하긴 했다.
“아, 그게 궁금할 만하지. 주상 전하께서 내게 제대로 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덕분이 아니겠소? 성은이 망극할지어다!”
“전하께서요? 어떻게……?”
“전하께서 과거에 폐지된 총통위를 부활시키겠다 하셨소! 호포대 같은 정예 병력을 금군으로만 쓰기는 아까우시다며 내린 결정이오!”
총통위(銃筒衛).
세종 시기에 4군 6진을 개척하며 화기 사용이 급증하자 이것을 전문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구성한 부대.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쳐내고 왕위에 오른 후, 화기 억압책을 펼치며 예산 핑계를 대고 해체해 총통위의 짧은 역사는 막을 내렸던 터였다.
임금이 그것을 부활시키겠다고 한 이유는, 금주와 북경에서 천명을 다투는 전장에 직접 종군하면서 호포대의 무지막지한 화력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양에 묻어두었던 은덩이들을 눈치 안 보고 조선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된 지금, 내탕금을 굴려 나온 돈만으로도 플린트락 소총을 든 정예병 수천 명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전하께서 그런 복안을……! 하긴, 지금 조정에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진 호포대라면, 거기에 본인들이 쥔 호총의 출처가 종사관 어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종사관 어른의 명에도 잘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오! 내 조선에 와서 제대로 된 중임을 맡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소! 이 명을 전달받고는 며칠 동안 가슴이 뛰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오!”
마치 소년처럼 눈빛을 빛내는 박연이었다. 이제 종사관이 된 초관에게서 풍겨 나오는 열기에 몸이 파묻힐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 덕분에 입이 뚫렸는지, 박연이 총알처럼 쏘아대는 수다는 거기서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 상감마마의 즉위를 축하하며 증광시가 열렸던 것은 알고 있소? 이번 무과 급제자들 중에 호포대 출신들이 몇 있는 건 알고 있고?”
“호포대 출신들이요? 무과 과목을 생각하면 대원들이 무과에 급제할 일은 없다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총통위 신설과 맞물린 증광시여서, 이번 무과에 한해 경전과 병법, 궁술의 비중보다는 승마술과 사격술에 가점을 많이 주었다 하오. 상감마마의 뜻이셨겠지. 그 결과…….”
“호포대 지휘관들 중에 총통위 군관으로 옮겨간 이가 몇 있겠군요. 금군으로 남길 바라지 않았던 대원들은 죄다 총통위로 소속을 바꿨을 거고요.”
내가 생각해도 궐에서 왕을 지키며 시간을 죽이는 삶을 원할 대원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굴렸던 훈련 탓인지, 아니면 사냥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에 중독된 것인지, 조선에 들어오고 나서도 일선을 떠나지 않으려던 대원들이 호포대의 대다수였으니까.
그럼 구월산에 구축해놓은 산채는 이제 총통위의 활동 거점 중 하나가 되려나. 아마 그럼 착호갑사들도 총통위로 흡수되지 않을까?
임금이 구월산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친 이유가 있었다. 임금 나름대로 추진한 총통위 정책이 내 계획을 수정한 것은 물론이고.
“그뿐이오? 선생이 전해준 명국의 야금술도 있고, 그 원료 또한 삼개나루 대방께서 구해주신다 했으니, 이제 총통위에 배치될 신병들이 전부 호총으로 무장할 날도 멀지 않았겠구려!”
“이제 제가 가져다드린 책을 연구하실 여유가 생긴 겁니까? 분명 그건 조선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럼! 내가 예상하던 방법과는 꽤 다르긴 한데, 일단 실험은 해 봐야지! 야금술을 연구해 철을 뽑아내는 방법이 개선되면 총기뿐만 아니라 철을 쓰는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줄 것이오!”
박연은 흥분을 가라앉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초관의 갈색으로 탄 피부 아래로 붉어진 혈색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으니.
세자를 따라 심양으로 떠날 때, 박연이 내게 전한 부탁은 분명 두 가지였다.
조총의 점화장치로 쓸 황철석을 구해달라는 부탁과, 총신을 양산하기 위해 강철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중원의 야금술을 알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물론 나는 그 부탁을 잊지 않았다. 때문에 북경에서 입수한 중국의 야금술 서적에, 내가 알고 있던 강철 제조법을 슬쩍 섞어서 청에서 귀국길에 박연에게 전했던 터였다. 고령토를 빚어 만든 도가니에 쇳물을 넣고 석회를 첨가한 후 가열해 강철을 뽑아내는 공법.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은 정말로 기본적인 개념에 불과했던지라 분명 시행착오를 겪어야겠지만, 박연이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연료로 쓰일 역청탄 역시 엄청나게 소모되겠지만 청과의 교역이 궤도에 올라간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이고.
“목표를 크게 잡는 건 좋지만 천천히 하십시오. 밥도 급히 먹다가는 체하기 마련입니다.”
“흠…… 선생 말이 맞소. 사실 전하께서도 내게 총통위 일만 맡길 생각이 아니라 명하셨으니 선생이 염려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 같소이다.”
“그렇습니까? 전하께서 또 종사관 어른을 어디에 쓰시려고…….”
“아, 그것은 선생이 찾아오더라도 당분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하셨소. 쉬는 동안 선생을 방해하지 말라는 어명이 내렸었거든.”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무기 개발에 몰두할 수 없다는 것이 서운한 것인지, 아니면 내게 왕이 내린 밀명을 밝히기 어려워서 서운한 것인지. 박연의 얼굴은 그제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했다.
“아이고! 맞다! 선생 쉬는 걸 방해하면 안 된다고 전하께서 그리 이르셨는데! 내 또 이야기하는데 신이 나서 정신을 놓고 말았구려!”
“이미 익숙합니다, 종사관 어른.”
“아니, 선생도 내게 그렇게 맞춰주셔서는 안 되지. 이 집에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소?”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었는데.
이 아저씨랑만 엮이면 나는 늘 이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요안이와 요운이를 제자로 받은 것도 다 이 흥분한 아저씨랑 엮이면서 시작된 일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