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68화 (168/298)

168화. 뒤풀이

그렇게 이완이 모든 치하를 받고 뒤로 물러난 후에도, 연회가 벌어지는 파주행궁의 정청(政廳)에서는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임금이 손을 들어 정숙을 명한 후에야, 오늘 이자리의 주인공에 대한 포상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도 조선 수군을 잘 부탁한다. 라위터르 수사.”

“예, 전하! 그 명, 엄중이 받들켔슴니다!”

아직 조선말이 완전하지 않아 통역이 필요했던 탓에, 라위터르에 대한 치하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임금이 청사 안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시작되겠지.

그러나 방금까지 라위터르에게 경계심을 비추던 시선들이 조금 누그러진 것이 느껴졌다. 그가 단기간에 이뤄낸 성과와, 방금 보여준 충무공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보고도 아직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사람은 아마 적지 않을까.

라위터르 또한 바뀐 분위기를 읽었는지, 임금이 내린 어사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임금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앞으로 조선의 원양수사에게 감히 딴지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고 있었다.

다만, 라위터르가 저리 깊이 허리를 숙인 이유는 임금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극소수에 불과했다.

방금 포상으로 하사받은 또 다른 보검이, 라위터르의 손에서 부들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수병들이 즐거이 고기를 뜯고 술잔을 비우는 소리를 뒤로 하고, 임금은 이날의 주인공들을 전각 안으로 인도하고 주위의 사람을 물렸다.

자리에 동석한 것은 방금 포상을 받은 두 사람과 통역을 맡은 박연, 그리고 나와 이날까지 반촌의 상관에서 특명전권대사 역할까지 하며 지대한 공을 세운 엘세라크였다.

“그래, 나도 처음에는 하란타 사람이 정녕 조선의 일에 온 힘을 다할까 걱정했건만, 그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여기 박 판관도 그렇고, 연일석 상관장 또한 그러하니.”

“전하께서도 저희 하란타에 큰 관심을 가져주시고, 조선과의 교류 또한 연일 늘고 있으니, 어찌 제가 양국의 우호를 위해 온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엘세라크가 임금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본명인 얀 판 엘세라크를 한자로 음차해 연일석이라는 조선 이름까지 지을 정도로 그는 조선과 네덜란드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일 년이 넘는 사이 그의 조선말이 유창해진 것은 그 증거 중 하나였다. 충신과 그렇게 매일같이 어울렸으니, 서로의 모국어가 익숙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가.

“그렇게 겸손할 필요는 없다. 하란타에서 들여온 염전 덕분에 원양수군을 조직하는데 부담이 꽤나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마침 염전 바닥에 까는 도자판(陶瓷板, 타일)을 굽는 일이 도공을 양성하는데 안성맞춤이었기도 하고.”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적국인 서반아의 기술이긴 하나이다. 허나 그 작은 기술이 조선에 도움이 되었다니 소인이 어찌 기쁘지 않겠사옵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하란타 상선대가 가져온 초석이 아니었거든 병기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천자총통을 다시 꺼낼 일도 없었겠지. 이 이상 많은 양을 청국에서 들여오기도 눈치가 보이는 판이었다.”

“저희 하란타 또한 조선이 아니었다면 안정적으로 무역을 이어가기 어려웠을 것이옵니다. 이제는 장기(나가사키)에서 사들이는 교역품보다 조선에서 사들이는 교역품이 많을 지경이나이다.”

안 그래도 조선 입장에서는 호총을 들려준 총통위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초석 수급에 골머리를 앓던 상황이었다. 네덜란드가 이것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으니 예쁘게 보일 수밖에.

네덜란드 역시 정성공에 치여 얻지 못하던 대륙의 교역품과, 조선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와 비단을 본국으로 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조선에 방문했던 네덜란드 특사도 돌아가면서 갤리온 한가득 교역품을 실어 갔던 터였다.

덕분에 잠실의 뽕나무밭은 점점 넓어지고, 한강 상류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싣고 강을 타고 내려오는 배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한양 근처의 빈민들이 잠실로 몰려들어 명의 방직 기술로 비단을 짜고, 반촌 사람들은 경기 광주로 출퇴근하며 도자기를 구웠다.

“당분간은 남경보다 가까운 거리의 교역에 집중하겠지만, 나중에는 대만 섬에 위치한 하란타의 거점으로 직접 물건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날 또한 기대되는구나.”

“전하께서 이번에 저희 동인도회사에 출재(出財, 투자)하신 금액 또한 엄청나신데, 그 이후의 일까지 살펴주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게다가 전하의 의중을 살피니 그 이상도 염두에 두신 것 같사온데, 제 짐작이 맞으리까.”

이번에 네덜란드의 갤리온 여러 척에 실어 보낸 교역품은 단순한 교역품이 아니었다. 초석을 선물 받은 조선 국왕의 답례품임과 동시에, 임금이 그 이상의 도자기와 비단을 마련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투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특히 도자기의 경우는 왕실에서 쓰던 백자의 생산을 크게 늘려 답례품으로 보낸 것으로, 특사로 온 줄리스테인 남작도 그 품질에 감탄을 금치 못한 물건이었다. 바닥에 철화로 허(虛) 자가 적힌 도자기가 네덜란드에서 명품의 증거로 여겨질지도.

북경 시절에 보낸 친서에부터 언급이 되어 있던 상황이라, 네덜란드의 특사는 조선에 파견되어 올 때부터 금박으로 장식한 투자증서를 들고 왔다. 은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양의 재물이 그렇게 조선 국왕의 명의로 VOC에 투자되었다.

그 과정에서 회사, 투자 같이 당시에 없던 번역어들을 새로이 마련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북경에서처럼 동인도회사 같은 단어를 풀어 설명할 필요가 없어져 다행이었다.

“회사라는 말이 아직 낯설긴 하구나. 어쨌건 대만 섬과 관련한 일은 하란타 공의 특사와 이미 협의된 사항이다. 아직은 조금 때가 먼 일일 테지만.”

“이미 하란타에게 조선은 커다란 존재가 되었나이다. 앞으로도 전하께서 본국과 동인도회사를 잘 살펴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겠사옵니다.”

“여기 도승지에게 하란타가 처한 상황을 들은 이후로, 나 역시 우리 조선과 같은 처지인 하란타에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되었도다. 그러니 상관장은 늘 그랬듯 조선과 하란타 사이 친선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

엘세라크는 임금의 말에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조아렸다.

조선에서 세운 공 덕분에 동인도회사 안에서 출세가 예정되어 있으니, 이 상관장은 조선과 네덜란드 사이의 관계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이 분명했다.

얼마 전 본국으로 돌아간 특사 역시 엘세라크를 크게 치하했다고 들었다. 최신 범선인 스쿠너와 호총의 설계도를 교환하고, 실물 총기 서른 정을 배에 실은 특사가 떠난 날, 엘세라크는 고국의 술을 뜯어 나와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엘세라크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이제는 군사비밀을 공유할 시간.

임금의 명을 받고 엘세라크가 전각을 떠나자, 방 안에는 이제 원양수군과 관련된 이들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래, 원양수사. 내 하사품은 마음에 들었더냐.”

임금의 시선이 라위터르에게 먼저 향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오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날 뻔했을 정도로 기뻤다고 하나이다. 이 자리에 들어오기 전 손에서 떼어놓기 아쉬울 정도로 감사한 하사품이었다고 했사옵니다.”

임금 앞에서 무기를 소지할 수는 없으니 미리 보검을 받아가는 윤휴와 작은 실랑이가 있었을 정도로, 라위터르는 임금의 하사품이 마음에 들었던 듯했다. 내가 생각해낸 하사품이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라위터르의 입에서 완벽한 조선말이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석 자 칼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박 판관, 어찌하여 갑자기 원양수사가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이냐?”

박연을 통해 다음 말을 이으려던 임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연은 익숙하다는 듯이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임금의 물음에 답했다.

“그것이…… 아직 다른 말은 더듬거리는 정도지만 원양수사는 충무공과 관련된 문구들은 제게 발음을 배워 고쳐가면서까지 발음까지 완벽하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나이다.”

“그리고 저 문구는 전하께서 내린 보검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제 지시로 통영에 보관되어 있는 충무공의 장검에 새겨진 문구와 같은 것을 새겼습니다.”

상세한 전말을 모르고 있던 임금의 시선이 내게 잠시 나를 향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임금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아주 잘했다는 뜻이었다.

“포상을 받는 것은 이번이 끝이 아니게 될 것이다, 원양수사.”

“이 보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후로도 성심을 다해 전하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옵니다.”

이미 라위터르에게 내릴 두 번째 선물을 우리집 별당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이충무공행록(李忠武公行錄)과 임진장초(壬辰狀草). 충무공의 조카가 쓴 전기와, 충무공이 왜란 동안 올린 장계를 모은 책은 이미 번역이 끝났다. 거기에 더해, 덕수 이씨 종가에 쌓여있던 충무공의 조병(操兵, 훈련) 서적까지 번역하느라 요안이 눈가가 거뭇해질 정도였다.

이미 충무공의 추종자가 된 것이 분명한 라위터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아닐까. 흥분하면 땀을 흘리기 일쑤인 라위터르의 넓은 이마가 방금처럼 땀으로 잔뜩 젖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임금은 손수 술병을 들어 라위테르에게 한 잔을 권했다. 바다로 뻗어나갈 임금의 칼날이 될 이를 향해, 임금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나 원양수사, 나는 이제는 수병을 단순히 육성하는 일만으로는 만족할 수는 없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가?”

그대로 어사주를 받아 마신 라위터르는, 주어콜(Zuurcool, 양배추절임)과 비슷하다며 좋아하던 김치 한 쪽으로 입가심을 하더니 짙은 눈동자를 임금에게 고정했다.

“너 또한 대만 섬에 위치한 하란타 거점에서 보내온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왜구라 불리는 해적들이 갑자기 늘어났다는 소식이었지. 기억하고 있느냐.”

“이번에 벽란항에 드나든 하란타 상선의 선장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옵니다.”

“그래, 너희 포모사(대만) 총독에게서 그 해적들을 토벌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이번 건은 병사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아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약속한대로 임금이 내게 신호를 보냈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문서를 꺼내 라위터르의 앞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박연은 내가 나서자 뒤로 물러났다. 내가 지난 일 년 사이, 요안이에게 배워 유창하게 네덜란드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제주도에 표류했을 때 자신과 아내의 일이 생각난다며 능글맞게 빈정거리긴 했지만.

“전하께서 명하신 대로 지금부터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이것이 적 해적의 주력선인 관선(関船, 세키부네)입니다. 수사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충무공의 기록에서 수차례 읽어 모를 수가 없소. 이제 내가 이 배들을 마음껏 사냥할 수 있는 거요?”

자신이 포르투갈 독립 전쟁에서 수장시켰던 스페인 함대에 비하면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며, 벌써부터 라위터르는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을 단순히 왜구 토벌에 쓰려고 지구 반대편에서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왜구가 들끓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남명에서 류큐 일로 일본과의 무역을 일시 중단하면서 자금줄이 막힌 사쓰마 번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무사히 남명에 다녀온 충신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류큐에서 조공을 싣고 영파항으로 들어가려던 배가 접안조차 하지 못하고 다시 바다로 쫓겨났다고 했다, 대마도주 역시 남해상에 왜구의 출몰이 늘었다며 경고를 조정으로 보낸 상황이었다.

“진정하십시오. 그놈들을 바다에 수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신 것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수사의 진짜 임무가 아닙니다.”

“충무공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임무가 아니라니, 그것은 무슨 소리요? 이런 써먹을 데도 없는 조각배를 나포해오라는 말씀은 아닐 테고.”

“수사께서는 왜구들 뒤에 숨어있는 진짜 적을 끌어내셔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그것은 수사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해적을 소탕하며 그놈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조사해오라? 그 배후가 조선이 노리는 진짜 목표요?”

아무리 사쓰마 번을 조지는 일을 쇼군이 묵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나, 적어도 남의 영토를 공격하려면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명분을 왜구 토벌에서 구할 생각이었다.

왜구가 날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유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사쓰마 번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긴 했다. 허나 나랏일은 그렇게 물렁한 생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성공이 한 말대로, 나는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구정물이라도 얼마든지 마실 각오가 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사쓰마 번의 손아귀에서 류큐를 해방시켜 조선과 하란타의 영향권에 넣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는 조선─류큐─대만을 연결하는 축선을 중심으로 해상을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확실히 포모사(대만) 근방에 위치한 섬들이 해적의 소굴이 되면 난감하겠군. 하지만 고작 해적 몇을 잡는다고 그들이 섬을 넘겨주겠소?”

“당연히 거기서 그칠 생각은 없지요. 우리의 함대는 곧 적의 본진을 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소매에서 꺼낸 부채가 바닥에 펼쳐진 지도를 향했다. 처음엔 벽란항을 향했던 부채 끝은 천천히 제주, 류큐, 그리고 규슈 섬 방향을 따라가더니 한 점에 멈췄다.

가고시마, 사쓰마 번의 심장부였다.

“이곳을 치려면 상륙시킬 병력이 필요하겠군. 이렇게 바다가 육지 안으로 파고 들어간 지형은 지상병력의 호응이 없으면 치기 어렵소.”

“그렇게 판단하실 줄 알았습니다, 원양 수사 영감.”

라위터르는 최초로 해병대를 운용한 제독이기도 했다. 그는 깊은 만의 안쪽에 위치한 가고시마를 보고 바로 지상군의 상륙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당연히 맞는 판단이겠지.

“총통위의 병력을 일부 넘겨드리겠습니다. 마음껏 훈련시켜 상륙병으로 쓰셔도 됩니다.”

“호오, 줄리스테인 남작도 감탄하던 그 정예병을?”

호총의 시연을 보일 때, 네덜란드의 특사는 호포대 출신 총통위 병사들의 무용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네덜란드도 마우리츠 공이 선형진을 숙지시킨 정예 총병대가 존재하는 나라였음에도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만주 벌판부터 태평양까지 구르게 될 호포대 출신 병사들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 정도의 정예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그들만 전쟁터로 보내고 뒷전에 물러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조금 후에 벌어질 일이겠지만 대강 그림이 그려지는군. 알겠소, 도승지. 이번에 해적을 소탕한 후에는, 이 가고시마라는 곳을 공략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수사께서 빠르게 이해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빼먹었군요.”

“중요한 사실이라니? 여기서 더 할 말이 있단 말이오?”

라위터르가 두 눈을 꿈뻑였다. 그는 이쯤 되면 대강 정리되었겠다 싶겠지만, 이번에 전달할 정보는 그의 의지를 활활 불타게 만들 정보였다.

“충무공의 마지막 전투에서 조명 연합함대에 커다란 피해를 입힌 시마즈 가문의 소굴이 이 가고시마입니다. 수사 영감.”

※ 작가의 말

1. 허(虛)명 백자와 염전

허(虛)명 백자, 혹은 허명 자기는 실제로 내수사 직속으로 있던 경기도 광주의 도자기 가마에서 왕실을 위해 구워내던 백자입니다. 바닥에 철화로 빌 허자를 적어 왕실에서 쓰던 물건임을 표시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나머지 품질이 낮은 물건은 관아 소속 가마인 관요(官窯)나 사옹원(司饔院)에서 제작했습니다.

염전 기술은 원 역사에서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들어왔으나, 유럽사 기준으로는 동로마제국 시절부터 존재했다고 확인됩니다. 유럽에서는 암염이 많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중해나 흑해처럼 해류가 느리고 염전을 구성하기 좋은 지역에서는 천일염 또한 가격경쟁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는 염전 방식은 전통적인 자염(煮鹽) 염전이 아닌, 이 지중해식 염전에 더 가깝습니다.

작중에 엘세라크가 언급한 에스파냐의 염전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염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네덜란드 독립 전쟁 당시, 스페인의 재정을 틀어막기 위해 네덜란드 함대가 안달루시아 지방을 틀어막아 소금 수출을 봉쇄했고, 그것이 스페인 왕실에 큰 타격을 주어 군대에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2.노량 해전과 시마즈 요시히로

작중 시점에서 사쓰마 번의 다이묘는 시마즈 미쓰히사(島津光久)입니다. 그의 할아비,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는 정유재란부터 조선에 침략한 왜장으로, 그가 입힌 피해가 극심해 실록까지 이름이 남아 있는 왜장입니다. 그는 노량해전에서도 조명연합함대에 큰 피해를 끼쳤고, 왜군이 본토로 철수하는데 그의 병력 다수를 희생해가며 공을 세웠습니다.

충무공의 대장선에 날아든 유탄의 정체 역시 시마즈의 배에서 쏜 조총에서 나왔다는 설이 다수설입니다. 후퇴로에 남겨놓은 잔병들이 동귀어진하는 방식으로 적장을 저격해 추격을 방해하는 스테가마리(捨て奸)라는 전술은, 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요시히로가 적군 한가운데 고립되었을 때도 사용된 전법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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