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감자떡과 마카롱
책값을 계산하던 윤 서방이 아연실색했을 정도로 중전 마마가 지른 책의 양은 엄청났다. 처음에는 짓궂은 농담인줄 알던 그의 낯빛이 점점 퍼렇게 질리는 것도 조금은 볼만한 일이었다.
“아직 한양은 멀었습니다. 여태껏 그 작은 심양보다도 은자가 덜 돌고 있다니요.”
책을 짊어지고 궁궐을 향해 멀어지는 금군 두 명을 바라보는 중전의 표정에 불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이걸로도 만족을 못 하신다고요? 가지고 나온 은자로 부족해 어음까지 써 놓고 온 마당인데?
아마 조선 제일의 부자는 그 누구도 아니라 여기 중전일지도 모르겠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내탕금을 보유한 왕과 왕비가 아닐까.
“부인, 이 정도의 은자가 심양에서도 흔하게 오갔었소? 내가 알기로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북경에 운영 중인 고려점의 하루 매출에도 한참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쓸 만한 책을 전부 쓸어 담았는데도 이 정도라니.”
심양과 북경에서 볼모로 머물던 시절 일궈 놓은 재산은 충신을 통해 중전이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 임금이 즉위한 후 내가 가진 잘안 장긴의 도장이 도르곤과의 약속대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수입이 늘어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였을 줄이야.
남명의 존재 때문에 강남과의 교역이 막혀 청은 꽤 많은 물자를 조선에서 수입해가고 있었다. 때문에 일 년 동안 새로 건조한 배들은 끊임없이 남경과 벽란항, 그리고 산동 반도를 오갔다.
사실 남명에서 수입한 물건이 곧바로 조선만 거쳐 청으로 향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화북에 넘쳐나는 인구에 비해 늘 부족했던 식량의 경우가 그러했다. 바닥짐 역할로 선창에 실려 조선으로 들여온 쌀가마니들은 부두에 내리지 않고 그대로 산동으로 향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임금이 내탕금이 호조 재정을 추월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나야 구체적인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도대체 그동안 얼마를 벌어들였다는 것인지.
“세책점을 운영하는 좌의정 가문 사람들이 더 분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오늘 나들이를 매우 기대하고 있었는데, 벌써 실망스러워질 줄이야.”
“마마, 아니 형수님. 오늘 구입하신 책도 충분히 많은 양입니다. 옮기는데 장정 한 명도 힘에 겨워 둘을 보내야 했지 않습니까.”
“자네도 그렇고 금군들도 그렇고, 수련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고작 그 정도 책에 다리가 후들거리다니, 그래서 우리 낭군님을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느냔 말이야.”
아니 그만큼 책을 들고 다리가 안 후들거리는 사내가 어디 있다고?
우리 강 여사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반쯤 농담인 것이 분명했으나 왜인지 모르게 말에서 뼈가 느껴지고 있었다. 다음 장소로 자리를 옮기는 도중 인적이 드물어지자, 중전이 하연을 바라보며 묘한 소리를 해댔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남경에서 가져온 환약, 내의원에서 검사가 끝났으니 길일을 받아 곧 내려주려 했거늘, 도승지의 상태가 이래서야 숙부인이 그 약을 복용하더라도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닌가?”
“마마…… 제 서방은, 그러니까…….”
“자네 가문의 후사는 우리 세자의 미래와도 관련된 일이니 내명부에서도 한껏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네. 그러니 어서…….”
“주, 중전! 그쯤 해 두시오, 어허!”
당황한 임금이 황급히 중전을 만류할 정도로 그녀의 폭탄 발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리 주책맞은 여사님 덕분에 하연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갔고, 나는 혹시 가까이서 잠행하고 있던 금군이 이 말을 들었을까 연신 주위를 둘러보아야 했다.
***
그렇게 세책점을 나서고, 운종가를 한 번 왕복하며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들과 내수사에서 낸 상점을 확인한 후였다. 경복궁 터를 막 돌았을 무렵, 앞서 걷는 이의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무슨 일인가 해서 살펴보니, 임금의 시선이 운종가 행랑 뒤에 위치한 뒷골목에 꽂혀 있었다.
“한수야, 이 골목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오느냐?”
“아, 피마동(避馬洞)으로 향하는 골목이군요. 백성들이 높으신 분들의 말을 피하기 위해 지나다니는 뒷골목입니다. 피맛골이라고도 하지요.”
사실 나는 운종가 방문이 끝나면 임금을 끌고 성균관에 들이닥쳐 유생 놈들이 벌벌 떠는 꼴을 감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뭐, 가는 길에 피맛골에 들른다 해서 큰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성균관 시절 꽤 자주 들락거렸던 동네였던 탓에 의도치 않게 길잡이를 하게 되었는데, 임금이 그것에 의문을 가진 것이다.
“허어, 네 분명 이곳은 백성들이 주로 다니는 공간이라 하지 않았더냐. 한수 너는 도승지쯤 되는 이가 어찌하여 피마동 지리에 익숙한 것이냐?”
“형님, 그것이…… 유생 시절에…….”
“아, 산군저동 이야기에 나오는 기루가 이 근처였는가? 자네와 강 별제가 유생 시절에 김자점의 자택 담장을 넘을 때 써먹었던 그곳 말일세.”
“예. 그렇습니다, 형수님…….”
하연 앞에서 기루 이야기는 꺼내기 싫었는데. 우리 중전 마마께서는 아내에게 잘하라는 의도신지 계속해서 내 옆구리를 찔러대고 계셨다.
아니면 임금더러 이 근방에 암행 나와 바람피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란 경고인가?
그러나 그 말을 전해듣는 하연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히려 내 아내는 감히 중전의 말에 생긋 웃으며 토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루가 없었으면 저는 도승지와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유생시절부터 술은 잘 마셔도 즐기지는 않는 사람이라, 취하도록 술을 먹일 기회를 엿보느라 제 오라비가 애를 먹었었지요.”
“호오, 숙부인. 지금 제 서방 편을 드는 겐가?”
“지금까지 도승지가 제게 보여준 모습을 보면 믿을 수밖에요. 멀리 남경에 가서도 흐트러짐 하나 없던 사람인데, 고작 한양의 기루가 문제이겠습니까.”
하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중전은 재미없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내 사랑스러운 아내를 바라보니 가슴 속에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남경까지 단기간에 다녀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그 와중에 또 선물을 챙겨오셨다고요? 당신, 그럴 필요는 없으셨는데…….’
‘어쩌다보니 남경에서 수집해온 서적이 요안이 선물처럼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대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
‘남경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그대가 내 옆에 같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들었습니다. 언젠가 그대 몸이 낫거들랑 우리, 그곳에 같이 갑시다. 꼭.’
그때 내 소매에서 나온 그림족자는 지금 안채, 하연이 서안에 앉으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다. 안채를 드나들며 남경의 야경을 묘사한 그 그림에 먼지 한 톨이라도 묻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연은 그 이야기를 중전에게 수줍게 털어놓았다.
강 여사님의 입은 내 아내의 의도대로 딱 다물어졌으나, 눈이 묘한 색을 띠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또 이 이야기를 글 쓰는 궁녀에게 맡겨 소설 한 편을 뽑아내실 생각이신가.
그렇게 두 여인이 이상한 열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아내에게 정신이 팔렸던 사이, 내가 호위해야 할 대상이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양반님이 여긴 왜……. 무엇할려고…….”
“이 이상하게 생긴 떡은 무엇이더냐? 처음 보는 것인데?”
이 양반이!
어느새 골목 어귀에 광주리를 펴고 앉아있는 웬 노파에게 접근해 있는 임금이 보였다. 헐레벌떡 따라가 보니 임금은 떡장수를 향해 궁금한 점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중이었다.
딱 봐도 귀해 보이는 양반을 보고 말을 더듬는 떡장수가 가엽지도 않으십니까, 전하?
“형님! 여기서 무엇 하시는 겝니까?”
“봐라, 한수야. 내 백성들이 우리가 들여온 것 이상의 지혜를 짜낸 결과다.”
“예? 그 무슨 말씀이신지…….”
“이 할멈은 보관이 어려워 상한 마령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찌 이 모습이 가련하지 않겠더냐.”
그제서야 연한 회색을 띤 반투명한 덩어리가 광주리에 켜켜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거, 감자떡인가?
내가 아는 감자떡과 다른 모양새 때문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임금은 광주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고! 이건 양반님네들이 드시는 음식이 아니걸랑요! 이런 고랑내 나는 음식을…….”
“……맛있다. 지금껏 먹어왔던 어느 수라보다 맛있구나.”
“예? 그것이 무슨 말씀이요? 아무 맛도 날 텐데요?”
말문이 막혔다. 당황해 손을 내젓고 있는 할멈의 설명을 들어보니, 썩은 감자를 물에 담가 윗물만 계속 따라 버리고, 바닥에 남은 전분을 모아 만든 떡이라 했다.
그것을 임금은 묘한 표정으로 맛보고 있었다.
나도 임금을 따라 광주리에 손을 뻗었다. 그 물컹하고 애매한 맛을 본 순간, 임금의 심정이 내게 확 전해져 왔다.
“여기 떡장수 할멈이 우리에게 큰 과제를 주었구나. 그렇지 않느냐, 한수야.”
“예, 형님. 어깨에 큰 짐이 얹어진 것 같습니다.”
이곳은 한양 최고의 번화가인 운종가의 뒷골목이다.
온갖 술집에서 술 익는 향기가 흘러나오는 뒷골목에서 발견한 초라한 음식은, 암행을 나와 들뜬 기분을 한방에 가라앉혀 주었다. 아마 임금도 마찬가지겠지.
아직 우리의 대업은 성공이라 말하기에는 멀었다.
외국과 본격적인 교역을 시작하고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해적을 소탕할 원양함대를 조직했다고는 하나, 아직 수도 한가운데서 이런 음식이 팔리고 있는 것도 이 나라의 현실이었다.
“할멈, 이 떡들, 쌀로 치면 얼마나 하겠는가.”
“쌀이요? 저는 이걸루 그저 보리라도 몇 홉 얻으면 다행이라 생각했거등요……. 양반님네들이 이런 초라한 음식을 맛있게 드셔주셨으니 그걸로 됐지요.”
임금에게서 눈빛이 날아들었다. 나는 소매에서 주머니를 꺼내 오(五)자가 적힌 커다란 동전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도 떨고 있는 떡장수 노파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이게 뭐요?”
“이걸 들고 숭례문 근처 선혜청이라는 곳에 가면 쌀로 바꿔줄 걸세. 두 되 닷 홉에 상당할 텐데, 할멈 힘으로 들고 갈 수 있겠는가.”
“그 정도야 뭐……. 아니, 이 쇳덩이가 쌀 두 되하고 반 되가 더 되는 물건이라고요?”
“할멈의 마령서 떡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네. 받아 두게.”
할멈은 멍하니 손에 쥔 조선통보 대형전 두 닢과 나를 눈동자를 굴리며 연신 바라보았다. 그렇게 정말로 이것이 쌀이 되냐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할멈의 감자떡 바구니를 받아들 수 있었다.
“이것은 금군들에게 맛보여주고, 나머지는 오늘 저녁 수라로 하겠다. 안사람에게도 이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야겠구나.”
“절반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제 녹봉으로 산 물건이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 느낀 감정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소매에서 손수건으로 쓰는 천을 꺼내 감자떡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광주리에서 들어 감쌌다.
작업을 마치자 어디선가 나타난 금군 하나가 광주리를 들고 창덕궁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광주리는 내가 입궐한 다음날, 편전의 대들보에 매달린 채로 발견되었다. 아마 이날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겠다는 임금의 다짐이었을 것이다.
“아차!”
“왜 그러십니까, 형님.”
“부인을 잊었다. 너 또한 네 부인을 잊지 않았더냐?”
방금까지 진지함이 가득 차 있던 임금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무리 금군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는 하나 쓰개치마를 쓴 여인 둘을 뒷골목에 방치한 것이다.
하지만 곧 어디선가 나타난 금군이 임금에게 예를 표하고 두 여인이 사라진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 방향을 따라가자, 곧 이정표처럼 중전과 숙부인 뒤를 단단히 지키고 서 있는 김 갑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인!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오? 걱정했지 않소.”
“낭군님, 사내들끼리 여인네들을 내버려두고 사라지셨으면서 타박까지 하시는 건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 그것이…….”
“쉿! 곧 완성되나 봅니다. 잠시만 조용히 해 주세요.”
임금이 중전에게 기를 못 펴는 것은 늘 보던 일이니 그렇다 치고, 황급히 하연에게 다가가 곁을 지키고 섰을 때였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코에 무언가 장소와 맞지 않는 냄새가 와 닿았다.
여기는 낮에는 차를 팔고 저녁에는 술을 파는 곳인가?
길가에 꺼내놓은 화로에서 연신 피어오르는 냄새는, 조선에 떨어지고 좀처럼 맡을 수 없었던 달달한 냄새였다.
“떡장수 할멈은 잘 다독이고 오셨습니까? 마마께서 좋은 냄새를 맡으셨다며 저를 여기까지 끌고 오셨답니다.”
“아무 일도 없어 다행입니다, 그대. 헌데, 이건 저 번철(燔鐵)에 든 음식에서 나는 냄새입니까? 저런 무쇠그릇은 전을 부칠 때나 쓰는 줄 알았는데, 저기 덮은 뚜껑은 또 뭡니까?”
“모르겠습니다. 냄새는 약과와 비슷한데, 만드는 방식이 처음 보는 것이라…….”
하연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손잡이 없는 프라이팬처럼 생긴 번철 옆에서 신나게 젓가락을 휘젓는 사내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들고 있는 사발에서 흰 거품이 몽글몽글 솟아나 있었다.
“계란 흰자만 빼서 저렇게 빠르게 휘저으니 거품이 올라오더군요. 당신은 저것의 정체를 아세요?”
“어……. 하란타 상관장에게 대접한 카스텔라를 만드는 과정 중에 저것이 들어가긴 하는데, 저게 왜 여기에?”
저거, 머랭(meringue)이잖아.
계란 흰자에 설탕을 더하고 휘저어 단단한 거품을 낸 혼합물. 가마솥에 구워 대접한 카스텔라의 폭신폭신함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 제법이 어쩌다가 피맛골까지 흘러나왔지?
“뭣이? 헌데, 그 과자는 소맥분(小麥粉, 밀가루)와 수유(酥油, 버터)가 들어가지 않는가. 사탕(砂糖, 설탕)도 대량으로 들어갈 텐데?”
“형수님,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느새 강 여사님은 임금을 끌고 우리 부부 옆으로 와 있었다. 내가 저 알 수 없는 음식이 무엇인지 단서의 꼬랑지라도 잡은 것을 감지한 듯했다.
“맥분과 수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 통에서 흰 가루를 계속 뿌리는 것을 보니 내수사에서 사탕은 사들인 듯한데 도대체 무엇을 만드는 걸까요.”
“그거야 왕실이 아니면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저 흰자 거품으로 만든 반죽이 방금 번철 안으로 들어갔다네. 이제 일 각(刻, 15분) 쯤 시간이 흘렀는데…….”
중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숯불에 올린 번철을 지켜보던 요리사가 뚜껑을 열었다. 뚜껑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달콤한 향기 사이로, 나는 상아색 쿠키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은 임금과 중전이 그걸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이상한 과자를 맛보고 만 것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에 달콤한 맛까지 나, 차와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감상을 남긴 중전은 바로 그 자리에 있던 과자를 전부 사들였다. 요리사 말로는 하란타에서 들어온 과자라 난과(蘭菓)라 이름 붙였다는 물건이었다.
피맛골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한 탓에 임금과 중전은 바로 대궐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만인지상 부부가 남긴 하사품은 금군의 손에 의해 집까지 전해졌다. 미루어 보건대 아마 그 요리사는 곧 궁중으로 불려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이거, 어디서 먹어본 기억이 난다 했더니, 마카롱에서 크림이 빠진 맛이잖아?’
이걸 여기서 맛보게 되다니, 현대에서 평소에 즐기는 맛은 아니었지만 꽤나 감회가 새로웠다.
단맛에 환장하는 요안이 녀석은 맛을 보더니 친정에도 맛을 보여주고 싶다며 과자를 들고 안방을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 짓던 하연은 길산이의 입에 난과 하나를 물려주고는 몇 개를 갈무리해 친정으로 전하라 심부름을 보냈다.
“전하의 하사품인데, 몇 개 남지 않았네요. 이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는 단 것은 그리 즐기지 않으니, 그대와 요안이가 기뻐했다면 그것으로 됐습니다.”
“당신도 참…….”
내 앞에 놓여있는 서안 위에는 난과 단 두 개가 남아있었다. 맛도 봤으니, 원래 단맛을 즐기는 하연의 몫으로 전부 양보할까 하여 그것들을 아내 쪽으로 밀어놨을 때였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은 하연은 난과 하나를 들어 천천히 맛을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볼을 감싸는 것을 보니 정말로 그 맛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대 마음에 든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다음에도…… 흡?”
하연이 마지막 난과를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다음 순간, 방금처럼 고운 입술로 난과를 문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그때 달달한 것이 내 입 안에 쏙 하고 들어왔다. 그 맛이 난과의 단맛이었는지, 다른 맛이었는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소첩도 한 개 반을 맛보았으니, 당신도 한 개 반을 맛보아야 공평한 것이 아니겠어요?”
내 입가에서 부스러기마저 훑어가는 하연을 보며, 혼이 뽑혀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아, 입으로 혼을 뽑아가는 요괴가 조선에도 있었던가?
***
라위터르의 원양수군 함대가 벽란항으로 귀환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남짓이 흐른 후였다.
그의 배에는 아주 커다란 전리품이 하나 실려 있었다.
서귀포 남쪽 해상에서 사쓰마 번의 사략함대를 박살내고 얻은, 아주 커다란 전리품이었다.
※ 작가의 말
사실 카스텔라를 굽는 데는 베이킹파우더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데, 그것 없이 만드는 전통적인 카스텔라는 흰자 거품을 쳐서 만든 머랭을 섞어 폭신폭신한 식감을 냅니다.
그 머랭에 곱게 간 설탕 조금과 전분가루, 아몬드 분말을 섞어 구운 것이 마카롱의 과자 부분, 코크입니다. 아마 작중의 마카롱에는 아몬드 분말 대신 땅콩 가루가 들어가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