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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72화 (172/298)

172화. 개선

원양수사 라위터르는 보고를 위해 벽란항에서 상경하며 조운선 두 척을 대동했다. 마포나루까지 한강을 거슬러온 배에서 이번 해전에서 공을 세운 자들과 원양수군이 노획해온 전리품들이 내려져 창덕궁으로 보내졌다.

파발이 먼저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엄청난 승전이었다.

초반에 마구잡이로 소규모 해적선들을 도륙하고 다닌 것도 대단했지만, 그들이 조선군의 위력에 질려 숨어버린 후 미끼를 던져 월척을 낚은 공이 특히나 엄청났다.

“쳐부순 적선만 스물다섯 척에 달한다? 그것이 사실이더냐?”

창덕궁 인정전 앞마당에서 조촐하게 거행된 개선식에서, 임금은 장계를 읽으며 몇 차례나 질문을 던져야 했다. 고작 다섯 척을 끌고 나가 이룬 결과라기에는 장계에 적힌 전과가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대부분은 많아야 한 번에 서너 척 규모의 해적을 소탕한 것이라 그리 큰 공은 아니옵니다만, 마지막 해전에서는 꽤 큰 규모의 적을 격파하는데 성공했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사자는 한손에 꼽는 데다 아군 전선도 흠집 몇을 제외하면 깨진 것이 없다? 하, 참으로 충무공의 재림 그 자체가 아니더냐!”

“원양수사는 급이 다른 상대를 일방적으로 때린 것에 불과하니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 겸손을 보였습니다, 전하.”

소규모 해적들이 사라진 후, 우리측 교역선까지 미끼로 던져가며 적을 이끌어낸 마지막 해전은 적 세키부네만 스무 척에 달하는 불리한 전투였다.

물론 배의 성능이나 체급은 아군 원양수군이 앞서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위터르는 피해도 거의 없이 일방적으로 적을 파괴했다.

부사령관인 이완이 올린 장계에 따르면, 먼저 원거리 포격으로 적들을 제압한 후 그래도 전의가 꺾이지 않은 잔병들은 대장선이 몸소 앞으로 나아가 조란환(鳥卵丸, 산탄)을 쏘아대며 격멸했다고 했다.

특히 사정거리 밖이라 방심하고 있던 적선들을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 포의 사정거리를 늘려 박살 냈다는 이야기는 그 자리에 참석한 대소신료들의 턱을 떨어뜨리는데 충분했다.

맞바람을 받으면 뱃전이 기울어지는 것을 이용해 각도를 높였다나.

라위터르의 임명을 반대했던 신하들에게 이완이 은근히 시선을 쏘아댔으나, 그들 중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쯤 해 두라, 원양우후. 헌데 여기 유공자 명단에 특이한 경우가 하나 있구나. 대다수는 적선에 포탄을 명중시켜 제압한 화포장과 포수들인데, 여기 포도관의 공적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구나. 적혀있는 그대로가 맞느냐?”

“예. 적선을 향해 활을 쏘다 뱃전으로 몸을 날려 대장선에 몰래 기어오르던 왜구들의 머리를 몽둥이로 깨부수고, 적선에 직접 뛰어내려 적장을 후려쳐 사로잡았다 하옵니다.”

“허허, 사무를 보좌하라 승선시킨 포도관이 이처럼 무용까지 뽐내다니. 본래 유생이었다고? 믿기 어려운 전과로다.”

공을 세운 포도관은 앞으로 나오라는 임금의 명에, 내 첫째 제자가 자랑스레 가슴을 펴고 임금의 앞으로 나섰다. 녀석이 등짝에 멘 익숙한 몽둥이의 형상을 보고, 나는 임금의 뒤에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이마를 잡고 말았다.

“포도관 박요운. 어디서 이렇게 대단한 무예를 익혔느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소인의 활솜씨는 무릇 선비라면 누구나 익혀야 하는 경지에 불과하며, 봉술은 스승을 닮고자 어깨너머로 배운 것에 불과하나이다. 이번에 운이 좋아 작은 공을 세웠을 뿐, 대단한 것이 아니옵니다.”

“허어, 겸손하기까지 하구나. 혹시 스승이라면 내 뒤에 있는 도승지를 일컫는 것이렷다.”

“예, 그렇사옵니다. 한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승지의 투창 실력은 배우지 못하였사오나, 봉술은 성근학당의 학도들과 활솜씨를 연마할 때마다 함께 닦은 것이나이다. 전장에서 운 좋게 발휘할 수 있어 행운이었사옵니다.”

그러니까, 왜 내 빠따가 녀석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건데? 방망이 깎는 노인이 한양에도 있었나? 그리고 잠깐, ‘학도들’과 함께 봉술을 닦았다고?

임금의 명을 받아 빠따를 휘둘러보는 요운의 스윙폼은 나를 어설프게 닮아 있었다. 적의 뚝배기를 깨놓는 데는 충분했지만, 어디서 훔쳐본 것인지는 몰라도 나를 따라 한 것이 분명했다.

저런 놈들이 ‘그 학당’에 우글거린다니.

“도승지가 문무를 겸비한 것이야 한양에 모르는 자가 없을 테지만, 그의 제자들 또한 도승지를 따르려 하니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 있겠더냐. 조선의 미래가 참으로 밝도다.”

“과찬이십니다, 전하.”

“별장 박연의 아들 요운. 내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겠다. 듣자 하니 생원시에 입격한 이후 대과에 응시하지 않고 하란타인들과 교류에 온 힘을 쏟고 있다던데, 빠른 시일 안에 내 곁으로 와 나랏일을 하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겠노라.”

요운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임금의 시선이 내게 와 닿았다. 제자의 성장을 보고 어떤 기분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었지만, 요운에게 제대로 해 준 것이 없는 나는 그저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을 뿐이었다.

그저 공부에 필요한 학자금과 교재나 마련해주고, 가끔 학당에 나가 관료로서 품어야 할 마음가짐이나 강연한 것이 다였다. 윤휴가 급제해 승정원에 들어오면서 비었던 교관 자리도 윤휴가 알아서 유형원이라는 거물을 꽂아 넣었고.

그런 마음에 애써 날아오는 시선을 피하자, 임금의 눈길은 허리를 숙여 성은에 답하고 있는 요운을 향해 돌아갔다.

“좋다. 그러면 내 네가 세운 전공을 감안해 상을 내리겠다. 혹시 원하는 상이라도 있느냐.”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소인, 주제넘게 전하께 올리고 싶은 주청 하나가 있나이다.”

“주청이라? 무엇이더냐, 내 들어보겠다.”

“여기 원양수사를 따라 수군에 복무하며 공을 세운 학도들은 소인뿐만이 아니옵니다. 그들의 사연 또한 전하께서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이다.”

요운의 말을 들은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스스로 험한 전장에 나가길 자청한 이들이다. 그 정도 주청은 당연히 들어줄 수 있는 것이었다.

세 명의 수군들이 임금의 앞에 나섰다. 나는 그들이 등짝에 내 빠따를 닮은 몽둥이 한 짝씩을 메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장에서 무기로 쓰기엔 조금 부족할 텐데, 나중에 못이라도 박으라고 알려줘야 하나.

“도승지의 몽둥이는 성근 학당의 전통이었던가? 그래, 어떤 사연이기에 내가 듣기를 청한 것이더냐.”

“전하, 여기 앞으로 나온 학도들은 활을 쏘는 사수로 수군에 몸담아도 되는 것을, 굳이 위험한 화포를 다루는 포수가 되길 자청했사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하고 계시나이까.”

“포수들이라 하였느냐? 내 너희들은 하란타인들의 통역을 위해 배에 올라탔다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학문을 공부하던 이들이 위험한 일에 자원한 것이냐?”

“여기 공을 세운 세 명 외에도, 열 명 남짓한 학도들이 포수로 이번 왜구 소탕에 종군했나이다. 그 이유는 이들 스스로가 조선에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옵니다.”

요운이 눈빛을 보내자 군졸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몸은 단단해보였지만 얼굴에 아직 어린 티가 흐르는 학도였다.

“전하, 소인은 통례원 찬의 신득의의 서자 신무라 하옵니다. 이 자리에서 전하의 용안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영광이나이다.”

그렇게 신무라 자신을 소개한 학도를 필두로, 공을 세운 세 사람이 모두 자기소개를 끝마쳤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셋 다 스물 안팎의 젊은이들이 아니더냐. 헌데 세 명 모두 서출(庶出)이라?”

“예. 그렇사옵니다, 전하. 소인들은 도승지의 덕을 입어 감히 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서자들이옵니다. 이번에 수군으로 복무한 열세 명은 저기 포도관을 제외하면 전부 서얼의 신분을 타고난 자들이나이다.”

아…….

그제서야 붓대나 잡던 학도들이 왜 칠반천역으로 불리는 수군에 자원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학당에서는 출신에 상관없이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자들이면 전부 받아들여 유학과 어학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양반이 아닌 양인뿐만 아니라 서얼 출신들도 꽤나 섞여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차피 조정에서 쓸 인재를 양성하는 것 외에도 김육과 충신의 사업이나 네덜란드와의 협력에 쓸 인재 역시 키울 생각이었기에 의도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와 요운은 서출과 아예 상관없는 사람도 아니었고.

“……허생의 일이 꽤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구나, 도승지.”

“예. 그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또한 서얼들을 학당에 받아들이는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전하.”

“그렇게 학문을 배우던 서얼들이 스스로 화포를 잡고 전장에 나아갔다고…….”

눈을 서서히 감은 임금이 말을 잃은 채 수염 끝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 기특한 서얼들의 심정이 어땠는지 임금 또한 절절히 느끼고 있으리라.

이완의 보고를 들으니 여기 앞에 선 서자 셋의 공이 군졸 중에 가장 컸다고 했다. 제일 먼저 요운에게 불려나온 신무는 천자총통을 신들린 듯이 쏘아 적 대장이 서있는 자리를 명중시키고 대장선을 침몰시키는데 일조했다고 했다.

나머지 둘은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적선과의 거리가 줄어들자 직접 선봉에 서 적선으로 뛰어내려 왜구들을 제압하고, 잡혀가던 제주 어부들을 구출해왔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전과였다.

“내 전하를 대신해 너희에게 묻겠다. 혹여나 너희가 수군에 복무하겠다 자원한 것이,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더냐?”

“아닙니다, 도승지 영감. 영감께서 학당에 들르실 때마다 강조하신 것이 있는데,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다만…….”

“다만……?”

“저희 서얼들은 배움에 목말라 있어도 채워줄 곳이 없고, 스스로 학문을 닦아도 그것을 쓸 곳이 없었습니다. 허나 도승지 영감과 주상 전하께서는 그 갈증을 시원히 풀어주셨습니다.”

아직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앳된 청년이 품은 각오는 눈부셨다. 나는 그 각오를 새긴 신무의 눈동자에서 차마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그 은혜를 한 톨이나마 갚기 위해 스스로 몽둥이를 들고 일어선 것입니다. 덕분에 전하의 교역선을 지킬 수 있었고, 전하의 명을 받은 원양수사 영감을 도울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족합니다.”

“……박 포도관, 너는 이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

“원양수군에 하란타 사람들이 복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들에게 전달한 순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열세 명 전부의 뜻이 한자리에 모였으니까요. 수군에 복무해 전하의 은혜를 갚자고.”

생각해보니 요운 역시 이국적인 외모와 출신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받아왔었다. 그러니 서얼들과 어울리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고작 차별받지 않고 가르침을 받았단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걸었다기엔 무언가가 부족했다. 아마도 이 서얼들은 전장에 나감으로써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 있지 않았을까.

서얼도 이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그들의 눈동자에서 읽히는 메시지였다.

“……도승지, 현재 서얼들이 나랏일에 종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느냐.”

눈을 감고 나와 신무의 대화를 듣던 임금의 목소리가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상왕께서 허통사목(許通事目)을 제정하신 이후로, 서자의 손자, 얼자의 증손자부터는 예조의 허통을 받아 과거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이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로구나. 그렇지 않느냐.”

“곡식을 내고 납속을 받거나, 군공을 세우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 서얼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나이다, 전하.”

얕은 한숨을 내쉰 임금은 다시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임금과 나의 반응을 지켜보는 서자들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인재가 모자라 당파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기로 천명한 것이 오래 전이거늘, 과인은 또 다른 소외된 인재가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내 불찰이로구나.”

“전하, 그 말씀은…….”

“도승지, 방법이 없겠느냐. 이들 역시 훌륭한 내 인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지 않더냐.”

임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승지들 사이에서 당황한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임금이 적서의 차별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처음 비쳤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나와 임금은 이미 이 건을 탕평책을 논하면서 고려한 적이 있었다. 인재 수급을 위해서, 그리고 억울한 이를 없애기 위해서도 언젠가 적서 차별을 철폐하겠다 뜻은 모으고 있었는데, 지금이 최적의 시기라 임금은 판단한 듯했다.

“전하! 그것은 태종대왕과 성종대왕께서 세우신 원칙을 어기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경국대전에도 적서를 구분하라 적혀있지 않사옵니까?”

좌승지 송준길이 바로 과거의 사례를 들어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조선의 신분제 자체를 뒤흔들겠다는 것이었으니, 이렇게 나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좌승지 영감, 허면 그동안 서얼들을 구제해주신 상왕 전하의 뜻 또한 잘못되었단 말씀이십니까?”

“윤 주서! 그런 뜻은 아니나…….”

“공을 세우거나 나라에 재산을 바친 백성에게 혜택을 주는 납속(納贖) 또한 성종대왕 시기부터 내려온 제도입니다. 그 전례를 따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입을 열어 반박하기도 전에 먼저 송준길의 말에 반박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윤휴였다. 학당에서 직접 저 서얼들을 가르쳤으니, 그만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이윽고 윤휴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해결책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정도야 간단하지.

“좌승지, 그것은 서얼들 스스로 증명하도록 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승지 영감?”

“지금 견마지로를 다하겠다 뜻을 보인 서얼이 고작 열셋에 불과하다고 싹부터 꺾을 이유는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좌승지.”

“하오나 영감, 지금 공을 세운 서얼은 열셋에 불과합니다. 전국에 깔린 서얼이 수만은 될 진대…….”

마침 서얼들이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가 왔다.

나라에도 이득이 되고, 서얼 스스로에게도 이득이 될 절호의 기회가.

앞으로 원양함대의 규모는 현재의 다섯 척보다 훨씬 커질 것이었다. 그 급격한 성장을 감당하려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신병들이 필요하다.

“원양수군이 작전을 나간 사이, 벽란항에서 추가로 전선을 건조하기 시작한 지도 조금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배를 움직일 수군을 추가로 양성하는 것이겠지요.”

“도승지 영감, 그 말씀은……,”

“전국에 격문을 뿌려 뜻 있는 서얼들을 수군에 신병으로 받겠습니다. 정말로 서얼이 이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결과가 말해주겠지요.”

임금이나 내가 힘을 써서 서얼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일방적인 명령은 반드시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당장 조정에서도 반대가 빗발칠 것이 뻔했다.

이 정도 판을 깔아줬으면 서얼들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흑인들이 북군을 위해 싸우고 자유를 얻었듯,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었듯 말이다.

그리고 전장에서 발휘될 그들의 투혼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임금에게 전해 줄 예정이다.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도록 말이다.

“좋다. 내 도승지의 말대로 우리 원양수군이 목표를 달성하면 그것을 기념하는 증광시를 크게 열 것이다. 추후에 조정에서 그것을 논하도록.”

“전하! 혹여나 그것은 증광시에 서얼의 응시 제한을 푸시겠다는 말씀이 아니옵니까? 그것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좌승지. 그것은 서얼들이 세운 군공이 오랫동안 이어온 관습을 깰 정도로 눈부셔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 결과를 지켜본 후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

임금의 폭탄발언을 들은 다른 신료들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윤휴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자신은 서얼도 아닌 주제에, 요운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누구보다 빨리 임금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런 녀석에게 흐뭇한 시선을 던지다가 문득, 마음에 얹혀있던 짐 하나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녀석, 혹여나 앞으로는 이 일로 가슴앓이할 일이 없기를.

***

논공행상이 마무리되고, 나와 임금은 의금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위터르가 잡아온 가장 커다란 전리품을 국문하기 위한 자리가 의금부에 마련되어 있었다.

국문장에 들어서자마자 웬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치 머리카락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불쾌한 냄새였다.

“으아아악!”

“끼아아아아악!”

포로로 잡힌 해적들은 이미 금부도사들에 의해 모진 고문을 받고 있었다.

역관들만 그 사이를 오가며 정보를 뜯어내느라 분주했는데, 나는 그제서야 방금 맡은 냄새가 인두로 살을 지지는 역겨운 냄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작가의 말

조선 초기에 제정된 서얼금고법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무과나 잡과 응시를 풀어주는데 그쳤고, 본인은 정실의 아들이나 조상이 서얼인 응시자에 한해 예조에서 판단하여 문과 응시를 허락하게 하였는데, 그 경우에도 답안지에 유학(幼學)이 아닌 허통(許通)을 적어 서얼 출신임을 명시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채점과정에서 불이익이 따랐겠죠.

덧붙여, 서얼 본인에게 문과 응시가 허락된 것은 정조 시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했고, 문과에 합격한 서자가 청요직에 처음 오른 것은 더 후대인 철종 시기에야 일어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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