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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12화 (212/298)

212화. 감사 인사

“장관은 정말 끝까지 틈을 안 주시는군요. 하하.”

“상대하는 쪽에서 숨을 돌릴 여유를 주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요. 안 그렇습니까?”

회담은 길었다. 어찌 보면 암스텔 강 위에서 이루어졌던 휴전 협상보다 더 빡빡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나를 상대한 동인도회사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빌렘과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이제 거기서 양보한 것들을 조선과의 무역으로 때우겠다는 심보인 것 같았다. 미래에 올 더 큰 이익을 생각해 내 휴전 제안에 동의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작은 이익까지 챙겨가려는 모습이 조금 괘씸하긴 했지만.

어쨌건 그들도 그들의 조국, 네덜란드의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조선 측의 입장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호구가 되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도 장관이 거래 조건으로 추가로 얹어주신 정보는 꽤나 쓸만해 보였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오토만 놈들에게서 커피 묘목을 빼돌리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적합한 재배지는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거든요.”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확실한 정보일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요.”

“지금까지 장관의 말이 틀린 적이 있었습니까? 일단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정보임은 분명합니다.”

원래 역사에서 네덜란드가 커피 묘목 재배를 성공한 지역이 어딘지 나는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들의 동방 거점인 바타비아가 위치한 곳, 자바 섬의 고산지대에서 네덜란드는 처음으로 커피를 수확해냈다.

“지나가는 길에서 마주친 사소한 정보까지 기억하시다니. 만약 커피 재배가 성공하면 이것은 전부 장관 덕입니다.”

“사소하진 않았습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신비한 음료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대상이니까요. 게다가 그 아랍 상인이 말한 말이 진실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저는 장관이 하는 말이라면 가죽으로 고기 수프를 끓인대도 믿을 겁니다. 하하.”

정보의 출처를 꾸며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네덜란드까지 오는 길에 들렀던 어느 항구에서 만난 익명의 아랍 상인에게 들은 정보, 그렇게 둘러댄 내 말을 동인도회사 사람들은 일단 믿어주는 듯했다.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다.

늘 따뜻한 지역이되 너무 더우면 안 되고, 비가 적당히 많이 내리되 물에 잠기지 않는 곳,

그런 곳은 열대 지방의 고산지대뿐이었다.

자바 섬의 고산지대는 그 조건을 전부 충족하는 곳이다.

“아, 잠깐. 일 이야기는 이쯤 합시다. 장관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이 있었거든요.”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요? 지금 어디로 가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만…….”

지금 나는 비트를 따라 나선형으로 된 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숨이 찰 기미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어두컴컴했던 시야가 갑자기 확 밝아졌다.

그 순간, 내 눈앞에 암스테르담 시내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제야 이 광경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본래 사절단이란 더 가벼운 임무를 띠고 방문하기 마련인데…….”

“……아름답군요. 통제사가 왜 암스테르담을 공화국의 심장이라 불렀는지 알 것 같습니다.”

굳이 회담 도중 주어진 휴식시간에 요한 더 비트가 나를 끌고 온 이유가 있었다.

시청을 중심으로 부채꼴의 동심원 모양으로 펼쳐진 운하, 바다와 육지 사이에 몇 개나 놓여있는 부두,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바쁘게 오가는 상선들.

암스테르담은 젊고 활기찬 도시였다.

이 도시가 꿈틀거리며 쏟아놓는 상품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세자는 암스테르담의 곳곳을 견학하며 그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것도 잠시,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돌아보니 요한 더 비트가 나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더 비트 씨?”

“요한이라 부르셔도 됩니다, 장관님. 당신이 아니었다면 공화국은 또다시 무익한 피를 흘려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막아주신데 대한 자그마한 감사입니다.”

“이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요한. 저는 그저 동맹국의 미래를 위해 미약한 힘을 썼을 뿐이니까요.”

“절대 미약한 힘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총독의 음모를 미리 차단해주신 데다가, 당신이 없었더라면 트롬프 제독님도, 저도 서로의 의중을 확인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내전에 휩쓸렸겠지요.”

내가 아니었다면 아버지도 총독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요한 더 비트는 거듭 고개를 숙여왔다. 그는 내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일지도.

“외교관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미래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공화국의 구원자였습니다, 장관님.”

“…….”

“협상 자리에서 말씀하셨지요. 공화국의 가치는 하나된 나라에서 나올 것이라고요. 저는 그 말씀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그 말을 제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겠습니다.”

내가 정확히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요한 더 비트는 휴전 협상 자리에서 내가 남겼던 말이 어지간히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몸을 바로 한 그의 시선은 똑바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장관께서도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이제 공식적으로 공직에 오르게 됩니다. 암스테르담의 법률고문 자리가 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요한. 당신은 분명 큰 인물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그리고…….”

무언가 뱉기 어려운 말이었는지, 요한 더 비트는 두어 번 코를 킁킁 들이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그의 콧잔등 옆이 미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저는 장관님 같은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번에 장관님을 옆에서 보며 배운 것들이 참으로 많았거든요.”

“저를요? 네덜란드에도 훌륭한 분들은 많을 텐데요?”

“아닙니다. 오히려 장관께서는 공화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공화국의 미래를 깊이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상황을 뒤집어내는 결단력, 상황을 냉철히 판단하는 판단력,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화술까지…….”

“부끄럽군요…….”

높은 종탑으로 바로 내리쬐는 햇빛 때문인지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한은 내 상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장관님은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시지만, 저는 장관님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담고 닮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공화국은 갈등을 넘고 화합할 수 있겠지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아니, 당신은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직도 스승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고 느끼고 있거든요.”

“조선에서 오신 분들은 다들 훌륭한 스승님을 만나고 오시는 모양이군요. 저도 한 번 들러야 하나 고민입니다, 하하.”

갑작스러운 칭찬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기분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네덜란드 공화국의 차기 총리가 될 사람의 칭찬이다.

게다가 요한 더 비트가 원래 역사에서 오라녜 파와 갈등을 빚었던 것과 달리, 젊은 시절부터 마음을 다르게 먹어준다면 네덜란드의 미래는 훨씬 밝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올 비참한 최후 역시 사라지겠지.

“요한.”

“예, 장관님.”

“그렇게까지 저를 높이 평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모자란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신 보답으로, 몇 가지 조언을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마음속에 새기고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요한 더 비트와 함께 양 파벌의 가교 역할을 해 주어야 할 트롬프 제독의 나이는 너무 많다. 게다가 해군 제독인 그는 언제 전장에서 스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요한 더 비트가 이렇게 나온다면, 차라리 그에게 조언과 함께 미래에 대해서 귀띔이라도 해주고 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받아들일지는 요한 스스로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조선의 관료로 살아오며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궁금하군요. 무엇입니까.”

“나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역적의 자손이든, 인질로 잡힌 왕족이든, 남의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든 동족이든 말입니다.”

“…….”

“그렇게 진심을 다한 결과는 나중에라도 전부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주군이자 파트너가 되었고, 가장 아끼는 총칼 그 자체가 되었으니까요.”

내 말을 들은 요한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부디 내 조언 하나가 그의 비극적인 미래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길.

“조선의 거상이 남긴 말 중에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려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남기려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으로서 업적을 남기려 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람을 남기십시오. 그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조언입니다.”

거상 임상옥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어차피 이곳은 지구 반대편이니 알 사람은 없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 스스로도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주제에 이런 발언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의외의 사건 하나로도 뒤바뀌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요한에게도 부디 오늘의 대화가 그 계기가 되어주길.

그래, 내가 남원에서 아버지와 만났을 때처럼 말이지.

“장관께서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셨군요. 이제야 당신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굳이 제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네덜란드에 와서 했던 행동들 역시 그 기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직접 덴 하흐로 달려가 총독의 음모를 막아 세우셨을 때도 역시 그랬던 것입니까? 목숨을 걸고 두 파벌 사이를 중재하신 이유가…….”

“네덜란드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도 좋은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예를 들면 트롬프 제독님이라든지, 당신이라든지, 그리고 여기 두고 갈 당신의 친구, 미힐이라든지요.”

동맹국으로서 조선의 이익도 고려해야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네덜란드가 엉망이 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쉽게 트롬프 제독을 찾아가기로 결정할 수 있었고, 총통위를 끌고 헤이그를 습격하기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알 것 같습니다, 장관님.”

“제 뜻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분명 네덜란드 공화국의 기둥이 될 인재입니다.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으면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별 것 아닌 조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 더 비트는 다시 허리를 깊이 숙여가며 감사를 전해왔다.

이제 그가 군중에게 습격당해 산 채로 매달려 끔찍한 죽음을 맞는 미래는 없어졌으려나. 부디 원 역사의 비트가 독선에 빠져 숱하게 적을 만들었던 일이 여기서는 반복되지 않길.

그리고 위대한 제독 라위터르 역시 총독의 질투를 사 타국의 바다 위에서 죽어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갑자기 어제까지만 해도 어깨에 가득했던 피로가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네덜란드에서 해야 할 일을 완수해서인지, 아니면 요안이 덕분에 푹 자서인지는 모르겠다.

그 덕분인지, 높은 곳에 올라 맑은 눈으로 보는 암스테르담 시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것 하나만을 위해 네덜란드에 방문했다 해도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

“……결과적으로 오늘 장관께서 요구하신 조건들은 전부 수락될 예정입니다. 동인도회사 사람들은 지금 결과에 꽤나 만족하고 있거든요. 거기에 커피 재배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추가로 알려주셨으니까요.”

“다행이군요. 도자기 판매량을 늘리고 추가 상품을 더하는 것에서 만족해주시다니요.”

“동방에서 오는 물건들은 없어서 팔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만족해야지요. 게다가 조선 측은 포모사 섬에서의 협조도 약속해주셨지 않습니까?”

회의가 끝나고 요한 더 비트는 나를 배웅하러 시청 앞까지 동행했다. 그리고 숙소에 있다가 나를 마중 나온 세자를 상대로 직접 회의 내용을 브리핑해줄 정도로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장관님, 오늘 해주신 귀중한 말씀, 평생 새기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입니다. 부끄럽군요.”

“아닙니다. 특히 2년 안에 엥겔란드와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프랑크라이크(프랑스)를 너무 신뢰하지 말라는 말씀 역시, 새겨 두겠습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날 영란전쟁 이야기다. 다행히 비트는 예언처럼 두루뭉술하게 말한 그것마저 철석같이 믿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지 싶었다. 내가 건넨 정보로 네덜란드의 외교를 설계하는 일은 요한 더 비트의 몫이다.

내 앞에 손 하나가 내밀어진 것은 그때였다. 다시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해온 요한 더 비트가 내민 손이었다.

“장관님, 당신의 헌신을 공화국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악수라……. 좋군요. 우리가 손을 맞잡은 것처럼 조선과 네덜란드 역시 대등한 관계에서 함께 하길 바라겠습니다.”

내가 악수의 의미를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요한 더 비트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리고 곧이어 내 귀에는 신임 법률고문의 속삭임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장관께서 제게 남기신 다른 말은 죽을 때까지 결코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아, 요한 당신이 왕국의 신민답지 않다고 평한 그 말 말이군요.”

후후. 요한 더 비트의 작은 코웃음이 귓가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서는 적의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그 표현을 당신은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은데.”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니, 그 말을 들은 누가 당신을 왕국의 신하라 생각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장관님?”

※ 작가의 말

작중에 묘사된 젊은 시절의 요한 더 비트는 애송이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작중 시점으로는 스물 대여섯밖에 안 되는 상황이니 그럴 만하죠. 그러나 요한 더 비트는 네덜란드 역사에 남을 정도로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1차 영란전쟁에서 네덜란드가 판정패를 당한 후 홀란드 주의 총리 자리에 올라 의회의 실권을 잡은 요한 더 비트는 중상주의 정책과 해군 강화 정책을 펴고, 강대국 사이에서 상호 방위조약을 통한 중립 외교를 펼쳐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연장시켜 나갑니다.

그 결과 바다에서는 미힐 더 라위터르가 영국 해군을 연전연패시켜 2차 영란전쟁에서는 영국에 복수를 성공합니다. 그리고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육두구 산지를 당시에는 별 볼일 없던 뉴 암스테르담(현재의 뉴욕)과 교환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죠.

그러나 가장 무서운 적은 강한 적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적이라는 격언처럼, 요한 더 비트는 말년에 예측하지 못한 적을 만나 몰락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크롬웰 사망 후 찰스 2세가 즉위하고,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가 친정을 시작하면서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네덜란드는 점점 코너에 몰리게 됩니다. 요한 더 비트는 2차 영란전쟁 이후 영국이 경제적으로 회복하지 못해 전쟁을 걸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철저히 빗나갔거든요.

루이 14세가 찰스 2세를 돈과 여자로 매수했고, 찰스 2세는 혈연관계가 있는 빌렘 3세(작중 빌렘의 유복자입니다.)를 지원해 네덜란드에 다시 분열의 씨앗을 심습니다. 빌렘은 자신이 세습 받아야 할 총독직을 요한 더 비트가 폐지한 것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었거든요.

그 결과, 1672년 영국과 프랑스는 동시에 네덜란드에 선전포고하게 되는데 이것이 3차 영란전쟁입니다. 요한 더 비트는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고 해군 전력을 강화해 라위터르가 두 강대국의 해군을 홀몸으로 막아내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문제는 육군이었죠. 현재 벨기에 지역을 넘어 물밀 듯이 밀어닥치는 프랑스 육군을 막을 병력이 네덜란드에는 없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패배에 민심은 바닥을 쳤고, 마침 이 상황을 틈탄 빌렘 3세는 민중을 선동해 여러 차례 요한 더 비트를 암살하려 시도했습니다.

결국 요한 더 비트는 전쟁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 자리에서 사퇴한 직후, 빌렘의 선동을 받은 군중에게 습격당해 길거리에서 살해당하고 맙니다. 일국의 총리 자리까지 오른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최후였습니다.

그러나 요한 더 비트가 위대한 정치가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헤이그 한가운데에 동상을 세우고, 해군 상륙함과 거리에 그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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