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마마님을 물리치는 법
덜컹, 덜컹.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일들을 매듭짓기 위해 사절단의 마차가 헤이그로 진입했을 때였다.
뭔가 도시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풍경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 역시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기 전과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고.
총독의 자택에 방문하고 나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빌렘의 부재를 알리던 집사가 전해준 정보 덕분이었다.
“포켄(Pokken)이요? 아, 설마…….”
“예, 그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걸렸던 병의 자국, 이걸 가리켜 포크(Pok)라고 합니다, 장관님.”
빌렘의 집사가 자신에 얼굴에 난 자국을 가리켰다.
알고 있다. 저 살이 패인 자국은 고름이 가득 찬 농포(膿疱)의 흔적이다. 장인어른 김육의 콧잔등에서도 저것을 본 기억이 있었다.
농포 수백 개가 온몸을 뒤덮어 결국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천연두가 남긴 흉터다.
“안 그래도 제일란드 주에서 그 병이 떠돌고 있다는 소식이 방금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공화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시는 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되지 않을지…….”
집사가 말끝을 흐린 이유가 있었다. 제일란드는 헤이그가 위치한 남부 홀란드에 접한 지방이다. 즉 천연두가 가까운 곳에서 유행 중이라는 이야기.
대강 예상은 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인류 최악의 전염병이 현실로 다가오자 가슴에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뭣이? 두창(痘瘡)이 근방에서 유행중이라고?”
소식을 들은 봉림대군 역시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 사절단 중에 천연두의 위력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은 대군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가 더 이상의 패악질을 부리지 못하고 돌아갔던 이유가 바로 천연두 때문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대군 대감.”
“저하께서 자리를 잠시 비우신 것이 다행이군.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마 서둘러 공녀를 데리고 조선으로 돌아가자 재촉하셨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너무 저하를 어린 아이 취급하시는 것 아닙니까? 대감?”
뭐, 하긴 암스테르담에서 세자가 보였던 꼬락서니를 생각하면 대군의 염려가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래도 세자의 어린 나이를 감안해서 조금은 관대하게 봐 주고 있었지만, 대군은 그 일을 겪고 더 깐깐하게 세자를 대했다.
그래도 세자는 남은 시간 동안 암스테르담을 견학하며 나름대로 의젓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사교와 풋사랑에 묻혀 있었던 헤이그에서와는 달리, 네덜란드의 발달된 문명과 산업을 눈으로 직접 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군의 그런 반응은 그저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인 모양이었다.
대군은 찡그렸던 표정을 풀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져왔다.
“그럼 어찌하는 것이 좋겠느냐.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 대로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몸을 피하는 편이 낫겠더냐.”
“일단 상황을 보되, 덴 하흐까지 병마가 침범하거든 몸을 피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나, 저희는 지금 하란타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습니다.”
“하긴, 예상치 못한 사태에 연루되면서 일이 많이 꼬이긴 했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어느새 하란타에 머문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구나.”
원래 계획대로였으면 짧으면 열흘에서 길어야 삼 주 정도 네덜란드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대군 말대로 빌렘의 쿠데타에 말려들게 되면서 체류 기간이 늘어난 상태였다.
몇 주 더 머물게 되는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천연두가 언제 가라앉게 될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세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조선을 너무 오래 비우게 되면 좋을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위험한 병이 돌고 있는 곳에 저하를 둘 수는 없는 법이다. 급할 때도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더냐. 이 정도 일이면 전하께서도 귀국이 늦어진 것을 이해해 주실 것이다.”
“대감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혹시 덴 하흐에 남으시려는 것은…….”
“병이 두려워 도망치는 외교관을 누가 신용하겠느냐.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나는 총독의 옆에 남아 있어야지.”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혹시 대감, 전에 두창을 앓았던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그랬던 적 없다. 그것은 왜 묻는 것이냐?”
천연두에 한 번 걸리면 일생 동안 다시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대군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닌 모양이었다.
뒤이은 설명을 들은 대군은 입술 한 구석을 찌그러뜨렸다.
“그렇군……. 그렇지만 내 결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두창이 사신과 같은 존재라고는 하나,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내 몸에 흐르는 왕실의 피가 울지 않겠느냐.”
“좋은 마음가짐이십니다, 대군 대감. 그러나 병마는 왕족과 백성을 구분하지 않고 찾아오는 법입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 역할을 짊어져야 하는 것 또한 왕족이 아니더냐. 나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
어차피 병자와 접촉하지 않으면 천연두는 옮지 않는 것이 아니냐며, 대군이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천연두가 그 정도로 제어될 질병이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망자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감의 의지가 그리 굳으시니 제가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까. 다만.”
“고맙다. 헌데 또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이냐?”
나는 천천히 소매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군과의 사이에 놓인 탁자에 소리 없이 올려놓았다.
“이것은 또 무엇이냐? 네가 이런 짓을 하면 꼭 터무니없는 일들이 따라붙던데 설마…….”
“터무니없는 일이라니요. 이것이 앞으로 수많은 백성들을 두창의 손아귀에서 구해낼지도 모릅니다.”
“농담이 아니었더냐? 두창의 손아귀에서 구해낸다니……. 한수 네가 의술에 해박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번에는 두창의 치료법이라도 고안해낸 것이더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네가 이랬던 적이 처음은 아니지. 성 부제학에게 걸렸던 염병도 그러했고, 형님께 걸렸던 학질 또한 네 손으로 뿌리를 끊어냈었다. 이번에는 나를 구하려는 것이더냐.”
“대군 대감을 잃었다가는 조선에서 기다리고 계실 전하께 무슨 타박을 들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빈말이나마 내가 걱정된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구나, 이놈.”
대군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으나 그의 표정은 전혀 거칠지 않았다. 이런 대화도 일 년 가까이 대군과 지내면서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이 예방법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조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방법입니다. 대감처럼 저를 철저히 믿어주실 수 있는 분이 아니면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방금 그런 말을 해놓고 잘도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구나. 건방진 놈 같으니.”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군 대감처럼 높은 신분에 따르는 책임을 잘 알고 있는 분이 아니면 권유할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입에 발린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하란타 사람들 앞에서 혀를 그리 놀릴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럼 왜 조선에 있을 때는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던 것이냐. 그동안 두창이 퍼진 적이 아주 없던 것도 아니고.”
“그것은…….”
끈을 풀어내고 주머니에서 내용물을 꺼내놓았다. 병이 흔들린 탓에 역겨운 색의 고름이 유리병 내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이건 또 무엇이냐. 이게 약이라면 정말로 목구멍으로 넘기기 어렵게 생겼구나.”
“특정한 병에 걸린 소의 종기에서 짜낸 고름입니다. 소에게 걸리는 두창이니 우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뭣이? 소?”
대군의 눈동자에 약간의 불신이 서린 것이 보였다.
이해한다. 이 시대 사람이면 이런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다.
“설마 이 고름이 두창의 치료제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대군 대감.”
“이것이 정녕 두창을 이겨내는 방법이라면 분명 형님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헌데 그럼 저 고름을 나더러 마시란…….”
“다행히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군께서 이 방법에 동의하신다면 침술을 써서 저 고름을 몸 안에 넣게 될 것입니다.”
주머니 바닥에 남아있던 쇠침이 미세한 챙 소리를 내며 탁자 위로 굴러 떨어졌다.
대군의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그러니까…… 병든 소의 종기에서 짠 고름을 내 몸에 넣겠다……?”
“그렇습니다, 대감.”
“한수 네가 아니었다면 당장 왕실을 능멸한 죄를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너라면 이런 것으로 헛소리를 하진 않을 터. 저 고름을 접종하면 두창에 걸리지 않는단 말이렷다.”
“침을 맞은 부위에 두창처럼 종기가 오르고 딱지가 지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기와 딱지는 증세만 닮아 있을 뿐 두창과 달리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호오…….”
대군의 표정에는 불안 반, 호기심 반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반응은 내 생각보다 더 온건한 것이었다. 당장 원 역사에서 제너가 우두법을 처음 시행했을 때, 영국의 언론은 우두 접종을 받은 사람들이 소로 변하는 만평을 실어가며 그를 비난했었다고 한다.
“그럼 그 증상마저 낫게 되면 두창을 앓았던 적이 있는 사람들처럼 다시는 두창에 걸리지 않게 된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이해가 빠르시군요, 대감.”
“그것을 어찌 알게 되었느냐. 아니,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
“이 근방 농촌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젖을 짜는 아낙 중에 우두가 옮았던 여자는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었습니다.”
“흠…….”
“어째서 조선에서는 이 방법을 쓰지 않았냐고 여쭈셨지요. 조선에서는 소에 이런 병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소에게서 우두가 옮은 아낙이 두창에 걸리지 아니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종두법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대군을 설득하려면 이 정도는 둘러댈 필요가 있어보였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조선에서 우두에 걸린 소를 구할 수 없어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한 것에 가까웠지만.
이 시기의 우두는 유럽과 서아시아 일부에서 발생하는 풍토병에 가까웠다. 천연두를 막기 위해 그동안 내 손이 닿는 모든 범위에서 우두에 걸린 소를 구하려 노력했었으나, 아무래도 동아시아에서는 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하란타에 오고 나서야 이런 발상을 떠올릴 수 있었던 모양이군. 그래도 그것은 속설에 불과하지 않느냐? 어찌 사람에게…….”
“저도 이 이야기만 들었으면 대군 대감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명국에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창을 예방하고 있었습니다.”
천연두 환자의 분비물을 이용해 약한 천연두를 발병시켜 면역을 얻는 방법, 인두법 이야기다.
인두법은 이미 백 년 전부터 중국 대륙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군은 청나라에 머물던 시절 인두법 처치를 본 기억을 떠올려냈다. 천연두 환자에게서 떨어져 나온 딱지를 말려 가루 낸 것을 코로 들이마시는 장면이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볼모로 잡혀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 것이라 더 기억이 생생하구나. 헌데 그 방법을 써도 죽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라 들었다. 네가 우두라 부른 병은 괜찮은 것이냐?”
“동인도회사에서 모아온 소문을 종합하면, 사람이 걸리면 약하게 앓는 병이라 이 병으로 죽은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했습니다. 아마 만에 하나 발생할 일을 제외한다면 없다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그렇다면…… 알았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다오. 너무 다급하게 나온 이야기라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싶구나.”
“물론입니다, 대감. 대감께서 이 방법을 쓰지 않으시겠다 하셔도 저는 이해할 것입니다.”
이해한다. 아무리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있고, 대군이 내게 품은 신뢰가 크다 해도 자신의 몸을 실험대로 쓰는 것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대군이 이렇게 머뭇거릴 것을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름을 입수하자마자 이미 나름대로 손을 써놓은 상태였다.
“다만, 제가 제 몸을 실험대로 써본 결과로는 일단 별 부작용은 없었습니다. 손에 고름을 몇 방 놓았는데 팔꿈치 아래에 수포가 몇 개 생기고 그 자리에 딱지가 질 뿐이더군요.”
“이미 네 몸으로 시험했다고?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했느냐?”
“이 우두라는 병이 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배우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논어에서 이르기를, 군자는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보이라(先行其言 而後從之)고 하였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소매를 걷은 내 팔에서 희미하게 남은 딱지 자국을 본 대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생각이 조금 바뀌었는지, 생각할 시간을 조금 달라고 요청한 그는 팔짱을 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대군을 우두법의 첫 대상으로 택해서 다행일지도. 사실 성격이 호탕한 대군이 아니었다면 우두법을 시험해보자는 제의조차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끼이익.
그때,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깨운 소리 하나가 있었다. 대군은 나보다 더 깊이 고민 중이었는지, 무슨 소리가 났는지 알지 못한 듯했다.
“저하? 공작부인을 만나러 가셨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게……. 공작부인께서 숙부님께 사과를 전해드리라 부탁하셔서 말입니다…….”
나는 그제서야 세자의 등 뒤에서 흔들리는 짙은 밤색 머리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번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었죠, 예조판서 대감?”
“공녀님? 여긴 어떻게…….”
“공작부인께서 앞으로 자주 봐야할 분들이니 미리 제대로 인사를 드리는 편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 생각도 같았고요. 어머, 대군 대감. 거기 계셨군요?”
“뭐, 뭐냐, 지금 이 상황은?”
방금까지 상념에 빠져 있던 봉림대군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눈이 그렇게 커진 것은 정말로 희귀한 일이었다.
헨리에트와 대군이 그렇게 회포를 푸는 사이, 문 앞에 서서 우물쭈물하던 세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이거, 임금과 중전을 똑 닮아 세자도 아내에게 휘둘리는 건 아닐까 몰라.
“송구합니다, 스승님. 이토록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 하필 도착을 알리려던 때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계셔서, 본의 아니게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어버렸습니다.”
“두창 예방법에 대해서 들어버리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저하? 그거야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 대군 대감이 결정을 내리는데 방해가 되었을 수는 있겠군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곤란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곤란해지다니, 무슨?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세자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대군과 안부 인사를 마친 헨리에트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커다란 갈색 눈망울은 무슨 기대라도 품고 있는 것인지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 판서 대감?”
“제게도 용건이 있으셨습니까? 그날 밤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전혀요. 대감 덕분에 이렇게 일이 잘 진행이 되었는데, 저는 그저 감사를 드릴 뿐인걸요. 아, 그 일에 대한 보답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게 무슨 소리야?
오라녜 가의 공녀님은 무언가 혼자 신나는 일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들뜬 표정을 짓고 계실 리가 없었다.
“저하께서 알려주셨어요. 방금 대군 대감께 포켄의 예방법을 알려주셨다면서요?”
“포켄……? 아, 맞습니다. 헌데 그것을 어찌…….”
“네덜란드 공화국의 세습총독을 담당하는 오라녜 공가의 일원으로서, 부탁드릴게요. 저도 그 실험을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실험? 도와? 내가 들은 것이 정녕 사실이 맞나?
하지만 내 귀는 잘못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헨리에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대군의 표정에서도 경악이 넘쳐흐르고 있었으니까.
“저도 대군 대감과 같은 침을 맞겠습니다.”
“예?”
“네덜란드 백성들이 포켄으로 무수히 죽어가고 있는데, 귀족으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