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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16화 (216/298)

216화. 호들갑

“장관! 나는 어떡하면 좋소! 어서 뭐라도 해 보시오! 제발!”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일단 공작부인이 내게 던진 숙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지금 내 앞에서 잔뜩 울상을 짓고 있는 이 남자가 과연 나를 협박했던 그 공작과 동일인이 맞기는 한지.

“헨리에트에게는 약을 주었다면서요! 제발 내게도 그 귀한 약을 나누어주시오! 이렇게 부탁하겠소!”

하긴, 그동안 빌렘은 공작의 위엄을 보이려 애를 써댔으나 그의 나이는 고작해야 이십 대 초반이었다. 아마 공작부인이 빌렘을 나에게 보낸 것은 이번 기회에 쓸 데 없이 부풀어 오른 그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면 어때? 이 김에 쌓인 감정도 풀 겸, 조금 놀려주는 것도 분명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거 참……. 그리 위험하다 경고를 드렸는데 선을 넘은 분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공작 각하일 줄은 더더욱 몰랐고요.”

“장관! 나는 그저 출타중이어서 경고를 듣지 못했을 뿐이오! 그러니 부디…….”

“그래도 공작부인의 말씀은 잘 들으신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공작 각하. 그렇지 않았더라면 끔찍한 고통과 함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마침 빌렘에게 처리시키면 좋을 물건이 하나 있긴 했다.

공포로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빌렘을 뒤로 하고 내 소지품이 든 궤짝을 열었다. 그 안에는 진한 향기를 풍기는 약재 단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하인에게 뚜껑이 달린 그릇을 가져오라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 귀한 약을 통째로 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오오! 그것이 동방의 비약이오? 어쩐지 신비한 향기가 흘러나오더니…….”

“그렇습니다. 공작 각하께서 군사를 일으켜주신 덕분에 암스테르담에서 이걸 처분할 틈이 없었거든요. 이걸 불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 그것은……. 장관, 미안합니다. 내가 그때는 그만…….”

“그 이야기를 지금 꺼낼 때는 아닌 것 같군요. 일단, 공작 각하께 약을 나눠드리는 조건이 있습니다.”

꽁지에 불이 붙기라도 한 듯이 하인을 닦달해 보낸 빌렘에게, 나는 단호히 용건을 꺼냈다.

우리 전하께서 쉬고 오라며 보낸 네덜란드에서 이 개고생을 하게 만들었으니, 이자에게 조금 엿을 먹이더라도 그 누가 나를 욕하겠는가.

“이것은 인삼이라는 물건입니다. 중원과 일본에서는 같은 무게의 금 가격에 비기는 조선의 명약이지요.”

“같은 무게의 금! 도자기보다 훨씬 귀한 약이구려! 그런 귀한 약을 내게?”

원래는 암스테르담의 경매장에서 화려하게 데뷔시킬 생각이었는데, 빌렘의 쿠데타 이후 모든 일이 복잡하게 꼬여버린 탓에 깜빡 잊어버린 물건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악성 재고를 빌렘에게 처리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말은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발진과 수포가 사라지는 즉시 이 약을 복용하면 공작 각하가 걸린 병은 천연두로 진행되지 않고 깨끗이 나을 겁니다. 단…….”

“오오! 그렇다면 그것만 먹으면!”

“……이렇게 귀한 약을 함부로 나눠드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공작께서는 저희 조선 사절단에게 진 빚도 조금 있으시지 않습니까?”

잠시 화색이 돌았던 빌렘의 얼굴에서 다시 핏기가 빠지는 것이 보였다. 이 한심한 공작은 그 와중에도 자신이 진 빚이 조금이라 말해줘서 고맙다며 웅얼거렸다.

당장 몇 주 전에 종전 협상장에서 대판 싸워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구는 것이 조금 뻔뻔하긴 했으나, 어쩌겠는가.

그래도 앞에 선 이 바보는 세자빈 후보의 오라비이자 네덜란드의 총독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인삼을 바닥에 던지고 빌렘이 보는 앞에서 신발 밑창으로 짓이기고 싶었으나,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오, 이거 마음 같아서는 확, 진짜.

빌렘에게 뱉고 싶은 악당의 대사는 한 트럭이 넘었지만 내 훌륭한 자제력은 겨우 그것을 이겨냈다. 물론 지구 반대편까지 겨우 실어온 인삼이 아깝기도 했고.

“내가…… 내가 잘못했소. 잠시 젊은 혈기에 눈이 멀어 조선 사절단에게 못된 짓을…….”

“고작 그런 말 한 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각하. 당신의 만용 때문에 상한 목숨이 몇이었는지 기억은 하십니까?”

“…….”

“그리고 사과를 하셔야 할 대상은 제가 아니라 다른 분일 텐데요? 그분은 왕족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공작께서 무슨 만행을 저지르셨는지 심복인 제게도 입을 다물고 계시는데, 공작께서는…….”

“아…….”

대군은 정말로 내게 빌렘의 만행을 털어놓지 않았다. 나랏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라는 대군의 엄명 탓에 더 이상 캐물을 명분도 없긴 했다.

아니면 정말로 대군은 빌렘을 교화가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것일지도.

상대방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으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가끔 보이는 철없는 모습 때문에 대군의 의도가 조금 의심되긴 했지만, 외교관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자세였다. 사실 그리 반드시 알아내야 할 만큼 유쾌한 일을 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기도 했고.

“그…… 정말로 왕제께서 내가 한 짓거리를 발설하시지 않으셨소? 그때는 눈이 돌아가 상당한 무례를 범했는데…….”

“직접 가셔서 여쭤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마침 두 분은 지금 같은 병에 걸렸다는 공통점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왕제도 이 병에? 잠깐, 그럼 헨리에트와 왕제가?”

“마음이 상당히 혼란스러우신 모양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공작 각하께서는 본인부터 염려하시지요.”

“아, 그렇지, 참. 실례했소, 장관.”

대체 이런 인간이 어떻게 공화파를 쓸어버리려는 잔혹한 쿠데타를 계획했던 건지, 나 참.

내 앞에서 쿠데타를 논하던 공작과 헨리에트 이야기만 나오면 바보가 되는 빌렘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둘 중 진짜 빌렘은 누구일까. 아니면 둘 다 빌렘이라는 인간의 일부이려나.

“아무튼, 대군께서도 상비약으로 이 인삼을 소지하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번 대군께 범한 무례를 사과하시고 그 답례로 약을 나눠받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왕제께는 사죄를 전하려 했소만……. 약을 구걸하면서 억지로 사죄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싫소. 좋아,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심코 가슴을 쫙 펴고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던 빌렘이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손에 수포가 난 것을 완전히 잊었던 모양이었다.

“귀여운 헨리에트를 먼 조선까지 보내는 일은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아이가 조선에 쉽게 적응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많을 것이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있소.”

빌렘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 종이에는 사람 이름과 서명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게 뭡니까?”

“헨리에트가 조선에 가서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동행시킬 사람들의 명단이오. 내 영지인 오라녜 공국과 덴 하흐 주위에서 이주할 사람들을 모았다오. 물론 비용은 내가 지불했고.”

“아, 그 말씀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동생을 위해 준비한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지참금보다 조선에 더 큰 선물이 될 수도 있지 않겠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록에는 생활과 관련된 온갖 분야의 장인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빌렘의 설명으로는 막 장인으로 인정을 받아 자기 공방도 온전히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빌렘이 저택을 꽤 오래 비웠던 것은 이걸 위한 것이었나. 병에 옮지 않았더라도 이 일로 나를 찾아올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체면 따위를 신경 쓰지 않고 찾아왔다며 빌렘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헨리에트는 네덜란드에서 누리던 삶을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소.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를 눈물을 머금고 보내면서도 이런 배려를 하는 것이오. 조선 측에서는 이것을 명심하시오.”

“알겠습니다. 귀한 공녀를 모셔가는 일이니, 조선에 도착해서도 공녀께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소. 장관 정도의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제대로 힘을 써 주겠지요. 그럼 안심하고 왕제께 사죄를 전하러 가보도록 하겠소. 이 정도면 약값은 충분히 치른 셈이 아니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사이, 빌렘은 재빨리 인삼 단지를 열더니 꿀에 재운 홍삼 한 뿌리를 맨손으로 꺼내 입 안에 넣었다.

어찌 손을 써볼 틈도 없는 재빠른 솜씨였다.

“우걱…… 이거…… 달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우걱…… 희한하구려…….”

“아, 그거, 지금 드시면…….”

“아, 참. 발진과 수포가 가라앉으면 먹으라고 했었던가? 뭐, 지금 먹는다고 별 일이야 있겠소? 약효가 문제라면 가라앉은 후에 장관을 다시 찾아오겠소.”

손가락에 묻은 마지막 꿀마저 쪽쪽 빨더니, 빌렘은 내게 손을 흔들고는 방을 나섰다. 멀어지는 걸음소리의 방향을 보아하니 정말로 두문불출중인 대군에게 향하는 듯했다.

음, 인삼이 몸에 해로울 일은 없겠지만 인삼을 먹고 올라오는 열기가 빌렘의 수포와 발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 문제가 생기면 조선에서 동행시킨 의원에게 보이면 되겠지, 뭐.

그렇게 그날 내게 몰아친 폭풍은 끝이 나는 듯했다.

그날 저녁, 자가격리를 해제한 대군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빌렘의 오른편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보니 둘 사이에 쌓였던 앙금도 좋은 방향으로 해소가 되었지 싶었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부작용이 튀어나왔다는 것이었지만. 귀하신 몸들에 접종한 우두가 아무런 문제없이 가라앉은 후의 이야기였다.

“……공작부인께서 인삼이라는 약재의 판매를 금해 달라 요청하셨다고요?”

“예. 이유는 묻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점심 무렵, 내 방에 찾아온 공작부인의 시녀장이 전해온 전언이었다.

갑자기? 왜? 전혀 짚이는 것이 없었다.

그동안 네덜란드인 중 인삼을 복용한 사람은 빌렘뿐이었고, 아무런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미 이 간곡한 요청을 들어줄 수 없는 상태였다.

“그게……. 이미 한 발 늦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집사장에게 문의하시지요.”

상비약으로 쓸 분량을 제외한 나머지 인삼은 이미 내 손을 떠난 후였다. 약속대로 수포와 발진이 가라앉자마자 빌렘이 약을 달라며 내 방을 쳐들어온 것부터 시작이었던가.

그때 말하는 투를 보니 빌렘은 인삼이 정말로 마음에 든 것 같긴 했는데……. 작은 인삼 한 뿌리를 씹어 먹자마자 어디론가 꽁지가 빠지게 달려가는 것이 무언가 급한 볼일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 요안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빌렘의 집사장이 찾아와 남은 인삼을 모조리 쓸어갔었지, 아마.

“집사장이라……. 알겠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 모양이군요.”

눈치가 빠른 시녀장은 금세 상황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서 물러갔다. 그러나 그녀가 비밀유지를 지나치게 철저히 했던 탓에, 나는 그저 갑작스레 몰려왔던 상황에 물음표만 띄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까지, 아니 몇 년이 지난 뒤까지 이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 후 헨리에트 건으로 또다시 마주했던 공작부인에게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공작이 또 아이를 낳았다고?’

조선에 돌아오고 몇 년 후였던가.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소식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기적으로 조선과 네덜란드 사이를 오가게 된 배편이 실어온 소식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빌렘은 요절한 탓에 아들 하나를 제외하면 후사가 없었을 터였다. 허나 공작의 후사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해가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날아왔다. 그 소식이 멈춘 것은 빌렘이 자식으로 야구팀 하나를 채우고 나서였다.

나는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공작가 다산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왜 공작부인이 인삼을 팔지 말라 요청했었는지 말이다.

***

네덜란드에서 모든 일정이 드디어 끝이 났다.

헤이그 항구는 조선 사절단을 배웅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절단이 탄 배는 네덜란드로 올 때는 한 척이었으나, 떠날 때는 두 척이 되어 있었다. 조선으로 떠나는 공녀와 동행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유학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겠다. 네가 얼마나 유익한 학문을 배워올지 궁금하구나.”

“저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잠시 곁을 떠나게 되는 일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란타에서 유학하고 싶다 그리 졸라댔던 주제에 말은 잘 하는구나. 하하.”

악동 네 명은 잠시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결국 만중이 레이던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으면서 장기간의 네덜란드 유학이 확정된 것이다.

우선 만중은 세자에게 작별을 고하러 나섰다. 유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세자와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었기 때문인지, 두 사람의 작별 인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하란타의 학문에서도 배울 점은 많으나, 성리학이라는 뿌리를 튼튼히 하고 나서 접해도 늦지 않을 것을.”

“사백(斯百) 형, 그건 이 동생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땅에서 세상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아직 그것을 집대성하기에는 제 배움이 얕으나, 훗날을 위해 이 땅의 학문을 배우고 익혀가려 합니다.”

“그래, 네 의지가 그렇다면 내가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나는 조선에서 다시 근본부터 학문을 닦으며 네가 어떤 것을 배워올지 기다리고 있겠다.”

세자와 만중의 인사가 끝난 후에는 석주의 차례였다. 손을 맞잡은 두 벗은 진심으로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의 사이가 저리도 돈독했었나.

만중이 유학을 결정하던 날, 석주가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겠다고 끝까지 우긴 만중 탓에 감정이 잠깐 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사이가 풀어져서 다행이지 싶다.

“도련님…….”

“길산이 너도 나중에 보자꾸나. 예판 대감께서 알아보셨듯 너는 천출이지만 재능이 있어. 내가 없는 사이 조선에서 네가 가진 재능을 잘 갈고닦아놓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당분간 작은어머니의 글을 못 읽으시게 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조금 힘이 들겠지만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는 여기 하란타에도 많으니 그것으로 버텨 봐야겠지. 괜찮다면 네가 하란타로 가는 배편에 책 몇 권을 보내주면 좋을 것 같구나.”

길산이 만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길산이 녀석을 제일 잘 챙겨주던 것이 만중이었던가. 길산이도 호칭만 도련님이라고 부를 뿐 꽤나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우정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도 잠시였다. 조선 사절단의 대표로서 마지막 마무리를 할 차례가 다가왔으니까.

그러나 내가 마지막까지 만나길 고대하던 사람은 이 자리에 결국 나오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한 채로, 나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작가의 말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사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의도치 않게 우두법으로 구한 목숨은 빌렘 한 명이 아닙니다.

원 역사에서 공작부인 메리 역시 빌렘이 죽고 몇 년 후, 본국인 잉글랜드로 돌아갔다가 남편과 동일한 질병인 천연두로 사망하고 말거든요.

유복자로 태어난 어린 빌렘 3세가 열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메리의 죽음으로 홀로 남은 빌렘 3세의 후견인은 외삼촌인 찰스 2세가 맡게 되는데, 빌렘 3세를 통해 네덜란드에 이간질을 가한 그 잉글랜드의 왕 찰스 2세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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