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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21화 (221/298)

221화. 재회

참으로 오랜만에 고국의 공기를 다시 맡았다. 그리운 냄새에서 느껴지는 그 포근함이, 드디어 일 년여 만에 조선에 돌아온 실감이 나게 했다.

그러나 그런 감회도 잠시, 떠나기 전과 비교해 한층 규모가 커진 벽란항을 둘러보기 무섭게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하연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고 싶었다. 그러나 조선에 돌아왔다고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네덜란드부터 실어온 화물을 하선시키는 일부터 헨리에트 공녀를 따라온 네덜란드인들의 단기 거처를 알아보는 것까지.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쳐났다.

그래도 누굴 원망하겠는가. 다 내가 벌인 짓인데.

하루 동안 지시를 끝내고 그 일이 대강 궤도에 올라가자마자 나는 세자와 일행을 모시고 파주행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한양으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다시 행차를 출발시켜 이제는 멀리 한양도성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세자의 행차가 지나는 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실루엣만 봐도 누군지 알아볼 만큼 익숙한 사람이었다.

“인수인계.”

팔짱을 낀 충신의 입에서는 짧은 단어 하나만이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세자에게 예를 올리자마자 당장 내게로 다가와 하는 말이 이 꼬라지인 것을 보니, 지금 상황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사형? 대만 섬 출장소에 계시지 않을 때 알아봤지만 여긴 왜……?”

“어명이다. 안 대감은 세자 저하의 입궐 일은 미천한 내게 빨리 넘기고 귀가부터 하시란다.”

“예?”

입을 삐죽거리는 것을 보니 충신은 짧았던 자유가 끝나고 다시 노예생활로 원상 복귀한 것이 어지간히 불만인 모양이었다. 귀국선이 대만에 들렀을 때 출장소에서 요운이 마중 나온 것을 보고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제길, 누구는 팔자가 얼마나 좋은지 일 년 넘게 유람을 하고 돌아오는데, 누구 쉬는 건 반년도 못 기다려서 다시 불러올리고 말이야…….”

“그 말, 저희 장인어른께 전해드리면 됩니까? 불만이 꽤나 쌓이신 것 같은데요.”

분명 암행을 마치자마자 대만으로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났을 충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만 대신 여기 한양에 와 있다는 것은 다시 주인님에 의해 발목에 족쇄가 채워졌단 뜻이었다.

“영상 대감? 그러시든가. 차라리 김 대감 아래에서 골수가 뽑히던 시절이 더 나은 것 같으니.”

“예?”

“한수 네가 하란타로 놀러간 덕분에 네놈 빈자리를 채우랍시고 더 높으신 분께서 나를 쪼아대시고 있다. 아니지, 승정원에 끌려들어간 좌명이 놈이 네놈 빈자리만 무난히 채웠어도…….”

“아, 더 높으신 분이라니, 혹시…….”

혹여나 세자에게 들리기라도 할까, 잔뜩 목소리를 낮춰 내게 속삭이는 충신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영의정인 김육보다 높을 사람이 조선에 누가 있겠는가.

내가 없는 사이 우리 전하께서는 장인어른으로부터 노비 하나를 빼앗으신 모양이었다.

이거, 처가에 인사를 드리러 갈 일이 걱정되는데.

“도대체 그동안 일을 얼마나 하고 다닌 게냐, 이 자식아. 네놈 때문에 전하께서 ‘신하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얼마나 나를 괴롭히셨는지 알고는 있냐?”

“아, 그것이…….”

“네놈이 전하의 기준을 하늘까지 닿게 한 바람에 때문에 온 조정 신료들이 아주 죽을 맛이라더라! 좌명이 놈도 한수 네가 귀국하는 것만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던데,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아, 참.”

내가 없는 동안 가장 귀하신 분께 갈리느라 죽을 맛이었는지, 충신은 속사포처럼 내게 불만을 쏘아댔다.

아니, 그게 내 탓은 아니지 않은가.

헌데, 그렇게 쏘아붙이던 충신의 말이 갑자기 딱 멈추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라도 깨달은 듯했다.

“내 네놈에게 불평할 말은 석 달 보름이 걸려도 다 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사람인 이상 지금은 보내줘야 할 것 같다.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금수만도 못한 놈아. 내가 영상 대감이었으면 넌 이 자리에서 죽었어, 인마.”

아, 설마. 그 얘긴가.

임신한 공작부인과의 대화에서 깨달았던 그것 말이다.

“어서 빨리 가 봐라. 아낙이 서방 없이 그 고된 일을 홀로 견뎠을 텐데. 한이 하늘에 닿아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아. 그건…….”

나를 네덜란드로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무언가 슬쩍 숨기는 기색을 보이던 하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먼 길을 떠나는 서방이 자신을 염려할까봐 내 고운 사람은 그 중대한 일마저 숨겼던 모양이다.

아내의 그 가련한 모습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히죽 웃은 충신은 천천히 팔을 들어 도성 방향을 가리켰다.

“빨리 집에 가 봐라. 오죽 네 안사람의 사연이 안타까웠으면 전하께서도 먼저 집에 들렀다 입궐하라 어명을 내리셨겠냐.”

“……못난 서방을 만나 고생만 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알긴 아는 게냐. 참, 입궐할 때 올리려던 장계는 없냐? 전하께서 먼저 읽고 검토하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물론, 여기 있습니다.”

이미 일차 긴급장계는 젤란디아 요새에서 대기 중이던 예성선 편에 한양으로 보낸 상태였다.

임금 역시 이미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강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보고서만 내고 집에 들렀다 오라는 자비를 베풀 여유가 나오는 것이겠지.

품에서 꺼낸 장계를 내 손에서 빼앗자마자 충신은 그 두꺼운 손바닥으로 내 등을 짝 소리가 날 정도로 후려쳤다. 덕분에 나는 몸의 중심을 잃고 몇 걸음이나 허우적거려야 했다.

“빨리 가 봐라. 그래야 입궐 전에 조금이라도 마누라 얼굴을 오래 볼 것이 아니냐.”

나를 닦달하는 충신의 목소리가 묘하게 서글프게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인가.

그러나 어명이 사실이라면 충신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밖에 충신의 몸에 걸쳐진 상복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 이유 역시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기에 딱히 묻지 않았다.

***

일 년 넘게 돌아오지 못했던 내 집에 발을 디딘 것은 중천에 떴던 해가 슬슬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종로에 접어들자마자 나는 세자의 행차와 갈라졌고, 나와 동행하는 사람은 말 뒤에 올라앉은 요안뿐이었다.

혹시나 전처럼 하연이 대문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봐 익숙한 골목으로 접어드는 동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겨우 도착한 집 앞, 인기척을 느끼고 열린 대문 사이에는 기대했던 아내 대신 투박한 마당쇠의 얼굴만 삐죽 나와 있을 뿐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별채에 가 쉬고 있을게요. 언니랑 그동안 쌓였던 회포부터 푸세요, 선생님.”

말에서 내리자마자 요안은 말을 붙일 틈도 없이 쪼르르 제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괜히 과장된 몸짓으로 말을 타서 피곤하다는 사실을 어필하고 있었으나, 요안의 깊은 배려가 느껴져 코끝이 찡해져 왔다.

하연이 마중 나오지 않은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안채에 있다는 마당쇠의 말을 듣자마자 달려간 곳에서, 나는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쉿.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그대……. 어째서 이런 중대한 일을 내게 숨기신 겁니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서방이 중요한 임무를 맡아 멀리 떠나가는데 아내 된 몸으로서 어찌 당신 마음을 어지럽히겠습니까. 그리고 조금만 더 목소리를 낮춰 주세요. 우리 아가가 깰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래하듯이 나직한 말을 읊조린 하연은 곧이어 품에 안은 아기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안채에는 묘한 달달한 젖비린내가 가득 차 있었다.

꺼억. 아기는 귀여운 트림 소리를 몇 번 내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앙증맞게 몸을 몇 번 꼼지락거리고는 제 어미의 품을 다시 파고들었다.

“세상에…… 이 어찌…….”

“거 보세요. 숨기길 잘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이토록 넋을 놓는 모습은 혼인하던 날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 못난 사내가 없던 사이 홀몸으로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나는 그저…….”

“고생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줄곧 친정에 있었는걸요.”

대궐에서도 자신을 각별히 신경써줬다며, 하연은 고운 입술 한 구석에 미소를 묻혔다.

심지어 출산이 임박했을 때는 중전이 내의원에서 어의까지 보내줬다고 했다. 아마 감자로 술을 담그기 시작한 이후 내의원에 알려준 소독법이 꽤 도움이 됐겠지 싶었다.

“당신이 고안한 의술 때문인지, 산독이 오르는 일은 없었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당신을 닮아 그런지 어미를 고생시키지 않아 얼마나 돌보는 일이 수월했는지 모릅니다.”

“아가가 저를…… 닮았습니까?”

“보시겠어요? 누가 봐도 당신 자식이라고요. 후후.”

아기를 천천히 흔들어 어르던 하연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기가 깊게 잠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모양이었다.

새액, 새액. 하연은 규칙적으로 새어나오는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더니, 천천히 품에 안은 아기를 돌려 내 쪽으로 보였다.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이토록 귀엽고 예쁜 아기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기우였군요. 소첩은 당신이 아이를 처음 보고 낯설어할까 걱정했었는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기가 이렇게 예쁜 것을 보니 그대와 내 아이임이 분명한데요. 헌데…….”

“헌데라 하시면?”

“그대 말씀 중에 한 가지 틀린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어딜 봐서 저를 닮았단 말씀이십니까?”

“네?”

“누가 봐도 큰 눈, 짙은 눈썹, 오똑한 코, 앙증맞은 입술까지. 그대를 닮지 않은 구석이 없는 아이인데요. 이렇게 예쁜 아이가 저를 닮았단 말은 부당합니다, 부인.”

예상치 못한 말에 잠시 눈이 커졌던 하연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갑작스레 나온 웃음소리에 깊이 잠들어 있던 아이가 뒤척이며 얼굴을 찡그렸으나, 내 생각이 달라지진 않았다.

누가 봐도 아이의 외모는 하연을 빼다 박았다. 갓난아이 때부터 이렇게 예쁜 것을 보니 분명 내 첫 아이는 딸임이 분명했다. 아마 지나가는 사람 누구를 붙잡고 묻더라도 그런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 정말 당신은 참…….”

“왜 그러십니까, 부인? 제가 잘못 말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우리 아이가 당신을 닮아서 자라면 조선 제일의 미인이 되리라는 말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당신이 정말로 얄밉습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더러 어찌 하란 말씀이십니까.”

“부인?”

“새언니의 충고대로 오늘은 당신에게 쌓였던 서운함을 풀어볼까 했는데, 이런 분을 상대로 어찌 강짜를 부릴 수 있을까요. 얄미우신 분 같으니라고.”

하연이 내 손등을 애교를 섞어 슬며시 꼬집었다.

그제서야 나는 나도 모르게 아기의 등허리를 받쳐 안고 있는 하연의 손을 덥석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다 많은 이야기가 눈빛을 따라 오고 갔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간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곤히 잠든 아가를 포대기에 눕히고, 말없이 한참을 하연과 손만 마주잡고 있었던 것 같다.

긴 세월 동안 만나지 못한 탓에 쌓인 그리움은 그동안 건너온 바다만큼이나 넓고 깊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죄책감은 뱃전을 넘은 집채 만 한 파도만큼이나 커다랬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것은 양손을 마주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흐른 후였을까.

하연의 몸에서 갑자기 나직한 떨림이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전해져오던 나른한 행복감과는 정반대인 그 감정에, 나는 아내 앞에서 당황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저는 혹시나 우리 아이가 서방님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랄까 두려워서 그만…….”

“부인…….”

방금까지 기분 좋게 휘어져 있던 하연의 눈가에 안도의 감정이 맺혀 몇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속을 상하게 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기에, 나는 그저 아내의 작은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사대부가 규수의 표본과도 같던 사람이 이렇게 감정을 내비칠 정도라면, 그동안 얼마나 애를 태웠단 말인가.

그녀가 서방의 무사귀환을 빌며 장독대에 떠 놓았던 정화수만도 아마 수백 그릇은 될 것이었다.

가슴이 무거웠다.

그 와중에도 곤히 잠든 아이가 깰까봐 소리죽여 감정을 억누르는 하연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이제 우리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우리 아가, 세상에 온 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아가라고만 불려왔답니다.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요.”

“내가 그대와 우리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대 안에 우리 아이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지구 반대편 하란타에서였으니, 이 죄를 어찌 갚겠습니까.”

“당신…….”

“다만 돌아오는 길 내내 고민했던 이름 하나가 있긴 합니다. 아이의 성별을 알지 못하니 양쪽 모두 이름을 지어왔는데, 아이가 당신을 닮은 것을 보아하니 나머지 하나는 필요가 없겠군요.”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이의 양 뺨은 건강을 상징하는 연한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보아도 보아도 지겹지 않은 그 모습에서 겨우 눈을 떼자, 어느새 눈물을 거둔 하연이 내게 기대가 담긴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우리 아이가 당신의, 그리고 우리 집안의 기쁨이 되어주길 마음에서 지었습니다. 집 우 자에 기쁠 희, 우희(宇喜)는 어떻습니까.”

***

휴가는 달콤했으니 길지 않았다.

그동안 쌓였던 그리움의 만분의 일도 채 풀지 못한 채, 나는 이튿날 바로 대궐로 입궐해야 했다.

나를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은 하연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창덕궁에 입궐하자마자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일찍 임금을 마주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머물고 있는 선정전을 찾아가는 길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하?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네가 입궐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조금 급했느니라. 어서 편전으로 들자꾸나. 할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임금은 그 짧은 거리나마 기다리지 못하고 나를 마중 나온 모양이었다. 그때, 문득 평소와는 다른 모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상복은…….”

“선왕께서 얼마 전 붕어하셨다. 네가 하란타로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일어난 변고였지.”

내가 돌아오기 직전에야 왕릉을 조성하는 일과 묘호를 올리는 일이 마무리되었다며, 임금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처가에서 상복을 갖추고 입궐하라는 연락이 왔었고, 도성 앞에서 마주쳤던 충신뿐만 아니라 궐에 드나드는 신하들 모두가 삼베로 된 상복을 차려입고 있었으니까.

임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전하. 안 그래도 국정으로 바쁘셨을 터인데…….”

“버틸 만하다. 네가 없어도 조정이 어찌 굴러가는 것을 보니, 나도 그동안 조금은 성장했지 싶더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돌계단을 딛고 편전으로 오르는 임금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헌데, 그 와중에 임금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야 할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전하, 혹시 김 별장은 휴가 중입니까? 늘 전하 곁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군요.”

“아, 안 그래도 편전에 들어 그 이야기를 하려 했다. 중요한 이야기니라.”

그저 김 갑사의 안부를 물으려는 뜻이었는데, 날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무겁기 그지없었다.

임금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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