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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27화 (227/298)

227화. 화학자와 판관의 취미 생활

군관 김악기는 방문이 열리기 무섭게 마루를 박차고 방으로 들이닥쳤다. 바로 뒤에 황건철 군관이 따라온 것을 보면 그의 판단은 옳았다.

“오, 신입. 그래도 군관도감에서 제대로 배우긴 배워왔나?”

“당연합니다. 전하를 호위하는 중에 위험을 감지하고 제거하는 것이 저희의 임무니까요.”

들릴 듯 말 듯한 대화와 동시에, 어느새 허리춤에서 쌍발권총을 뽑아든 두 군관은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불순분자가 넓은 방 안 어딘가에 매복하고 있는 사태는 없었다.

콜록. 넓은 방안을 잠시 헤매던 황건철이 외마디 기침과 함께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제서야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연기가 빠져나가 시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엥? 황건철 군관님. 이 무기, 혹시 무엇인지 아십니까?”

웬 낯선 기구들을 구경하던 황건철의 귀에 김악기의 질문이 꽂혔다. 그쪽을 향해 돌아보니, 총통위의 제식소총인 호총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조총 하나가 후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조총? 놈이 전하를 노리기라도 한 것인가?”

“과연 그렇겠습니까? 총이랑은 거리가 멀게 생긴 위인이 아닙니까?”

그 괴상하게 생긴 하란타인은 누가 봐도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러나 황건철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니 짬에 벌써부터 그걸 판단하고 자빠졌냐며 짧게 갈구고는 방 밖으로 향했다.

“헌데 황 군관님, 군관님도 이 조총의 정체를 모르시는 겁니까? 무기라면 빠삭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듣도 보도 못한 무기다. 여기 이 틈은 폭발 때 갈라진 건가? 묘하구만.”

그렇게 황건철이 괴상한 소총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손에 힘을 준 순간이었다.

뚝 소리와 함께 총통위 군관들이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황 군관님?”

“이거, 내가 부순 거 아니다? 폭발로 망가진 거다? 그렇지, 악기야?”

***

“콜록……. 콜록……. 아이고, 이 방법도 실패로구먼.”

문 틈 사이로 삐져나온 것은 익숙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얼굴이었다. 요한 루돌프 글라우버, 내가 네덜란드에서 데려온 화학자는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아이고, 장관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이제 장관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그리 큰 상관은 없는 일입니다만.”

“헌데 같이 오신 분들은……. 이 분은 세자 저하셨던가요?”

“글라우버, 내 옆에 계신 분은 아버님이다. 어서 예를 취하지 못할까.”

“아버님이요? ……아이고!”

조선에 오고 임금을 단 한 번 본 것에 불과했으니 기억을 못한 건가. 하긴 궁궐에서 곤룡포를 입고 있을 때의 임금과 사복으로 변장하고 있을 때의 임금은 분위기가 확 달라지긴 했다. 그러니 나 없이도 잠행을 그렇게 자주 다닐 수 있었겠지.

그렇게 글라우버가 어색한 조선말과 세자의 통역 도움을 받아 임금에게 절을 올리는 동안, 폭발음이 난 방으로 달려 들어갔던 금군들이 수색을 마치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헌데, 방을 나서는 그들의 손에는 웬 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 대감, 여기 금군들이 방 안에서 이상한 조총을 발견했다 하는데, 어찌해야 할까요? 이 조총이 나온 방주인을 체포해야 할지…….”

번장이 건네받아 내게 들고 온 조총은 나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잠시 동안 낯선 조총을 살펴보자, 그 조총이 방 안에서 나온 이유를 대강 알아낼 수 있었다.

내 입이 방정이었지. 분위기에 들떠 너무 빨리 스포일러를 뿌려버리지 않았던가.

뇌홍과 무연 화약의 개발이 이제 눈앞에 보이고 있는 상황, 그 다음 단계 역시 준비해야 마땅하긴 했다. 물론 꼴을 보니 내 예상대로 금방 개발이 완료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말이다.

“게다가 군관들은 조총이 폭발에 휘말려 파손되었다 보고를 하고 있으나, 제가 보기에는…….”

“아니네, 번장. 그들의 추측이 맞네. 그리고 방금 난 폭발음은 내가 지시한 군용품을 개발하다 난 일이니, 그쯤하고 원래 임무로 돌아가게.”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대감. 대감께서 지시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던 번장은 내 말을 듣자마자 의혹이 가신 얼굴을 하고는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나는 그에게 건네받은 조총 시제품을 들고 임금과 글라우버가 서 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부싯돌로 화약을 격발하는 현 방식을 대체한다? 우리 군사들이 쓰는 호총을 개량하는 중이란 말이렷다?”

“예, 그렇습니다. 제조법은 확립이 되었고, 이제 이 물질에 불순물을 섞어 안정적으로 폭발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남았습니다. 방금 폭발은 그 실험을 하다가 쌓아놓았던 목간에 불똥이 튀어버리는 바람에 그만…….”

글라우버는 작은 모자처럼 생긴 구리 부품을 임금에게 들어보였다. 그가 뇌홍을 다루는 법만 확립해준다면 뇌홍에 저 캡(cap)을 결합해 뇌관이 만들어질 것이다. 원 역사에서 퍼커션 캡이라 불리던 물건이다.

퍼커션 캡이 개발된다면 발사까지 시간차가 있고 습기에 비교적 약하다는 플린트락 소총의 단점이 해결된다. 게다가 불발 확률 역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엇, 그 물건은…….”

이걸 만드느라 몇 번이나 손가락이 날아갈 뻔 했다며 열을 올리던 글라우버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임금의 어깨 너머로 내가 다가오는 모습을 그제서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내가 이런 것이나 만들라고 최고의 대장장이들을 붙여준 것은 아닐 텐데. 관자놀이 핏줄이 불뚝 솟는 것이 느껴졌다.

“제가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현재 기술로는 구현하기 힘든 발상이라고요.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이런 데 시간을 쓰시다니요.”

“아, 그것이……. 얀, 아니 박연 판관이 흥미롭다며 한번 취미삼아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재료도 불량품인 조총 총신을 가져다 썼고요.”

내 손에 들린 총을 발견한 글라우버가 뒤늦게 변명을 해댔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임금은 눈만 둥그렇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뇌홍과 퍼커션 캡이나 개발해달라고 했지, 언제 이런 시대를 뛰어넘은 물건을 주문했나. 안 그래도 면을 이용한 무연 화약도 아직 활용할 곳이 적어 개발을 보류하고 있는 마당에.

“취미로 즐기시는 것은 좋은데, 제가 부탁한 것에 차질이 생기면 참으로 곤란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글라우버 씨?”

“그래도 개발에 몰두하다 남는 시간에 만지작거리는 것인데……. 죄송합니다,”

어느 날이었던가, 박연과 글라우버를 데리고 술 한 잔을 하면서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문제였다.

언제나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뇌관과 무연 화약의 개발을 마치면 다음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 박연의 질문에, 흠뻑 취한 나는 현재 쓰는 종이 탄약포를 발전시켜 종이 탄피를 만들고, 나아가 후미로 장전하는 총을 목표로 할 거라고 떠벌렸던 것이다.

사실 탄이 장전된 카트리지를 교체하는 방식의 조총이 명나라에서 예전에 개발되었던 상태라, 후미장전식 소총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이야기에 꽂힌 사람이 발상을 행동에 옮길 것이라고까지 예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일이 년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엄포를 놓았건만.

“그래도 새 무기를 개발하는 데 많은 진전이 있었지 않느냐. 그리 혼을 낼 일은 아니지 싶구나.”

“형님, 하지만…….”

“주어진 과업만 수행하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든 상관이 있겠느냐. 다만 이 괴상한 조총, 나도 흥미가 조금 생기긴 하는구나.”

임금의 눈이 벌컥 열려있는 총신 뒷부분으로 향했다. 지금은 그저 총신 일부를 잘라내고 나사를 달아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든 조악한 물건이었음에도, 기존 조총과 다른 이질적인 모습은 임금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던 모양이다.

“이곳으로 탄과 화약을 넣고 점화하는 것이냐? 총구로 넣는 방식에 비해서 확실히 간편하게 생겼구나.”

“형님, 더 이상 흥미를 가지시면 아니 됩니다. 저렇게 허술하게 여닫는 물건이 어떻게 화약이 폭발할 때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한껏 아쉬운 표정을 지은 임금은 입맛을 다시고는 총을 내게 돌려주었다. 아마 글라우버도 내 말에 반박할 수 없으니 지금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다.

후미장전식 총기는 약실을 효과적으로 폐쇄하지 못하면 기존에 쓰던 조총에 비해 단점이 두드러진다. 총신 내부의 압력을 붙잡지 못하면 탄의 속도가 떨어져 정확성과 사거리 모두를 잃을 수밖에 없으니까.

원 역사에서는 고무 패킹이 압축되면서 약실을 막는 방식을 쓰든지, 아니면 구리 탄피가 순간적으로 팽창하면서 가스를 차단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 고무는 아메리카 대륙에만 있고, 구리로 정밀한 탄피를 대량으로 제작 가능한 기술은 없다.

이미 술자리에서 솔깃해하던 박연과 글라우버에게 몇 차례고 말했던 이야기다. 그러니 방금 쓸 데 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내 갈굼에 글라우버가 바로 꼬리를 내린 것이다.

“아쉽구나. 꽤 재미있는 발상이라 생각했거늘.”

“저라고 아쉽지 아니하겠습니까. 이런 복잡한 물건은 만들라고 해서 뚝딱 나오는 물건이 아니니 문제지요.”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래도 계속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않느냐?”

“이미 이 연구를 위해 하란타에서 온 대장장이들을 붙여주고 수차까지 지어주지 않았습니까. 그 설비를 이용해 다른 짓을 하면 오히려 곤란합니다.”

내 말을 들은 글라우버의 고개가 땅바닥으로 향했다. 이놈의 연구를 편하게 해 주려고 네덜란드인들이 쓸 제분소를 불편을 감수하고 멀리 한강변까지 옮겼는데 이런 짓이 곱게 보이겠는가.

그래도 표정을 보니 진지하게 반성은 하는 모양이었다. 더 질책해봐야 남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오늘은 이쯤 하겠습니다, 글라우버 씨. 사실 제가 당신에게 쓸 데 없는 소리를 한 것도 원인이니까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남는 시간을 이용해 한 일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대감.”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총기에는 문외한인 당신이 주도한 일은 아니겠지요. 뇌관의 개발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으니, 더 이상의 책임은 묻지 않겠습니다.”

마음속에 굳은 다짐 하나가 들어찼다. 한양에 돌아가거든 우리 금발벽안 장인어른을 갈구러 바로 출동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범인은 그 사람뿐이었다.

그렇게 폭발 소동이 정리된 후, 나는 정밀부품 생산을 담당하는 네덜란드 대장장이들을 불러 애로사항을 청취한 후 대장간을 나섰다. 그 사이 임금이 세자를 끼고 글라우버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격려라도 전하는 모양새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여기도 참으로 기대가 되는구나. 새로운 문물은 언제나 환영이다.”

지금 임금이 다리를 쉬러 들어온 곳은 하란타 정착촌에 세워진 음식점 중 가장 큰 곳이다. 평소에는 마을의 주점도 겸하는 이 가게에는 커다란 뒷방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VIP들을 이리로 안내했다.

“그리 대단한 것이 없더라도 실망하지 마셔야 합니다, 전하. 하란타의 음식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을뿐더러,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알고 있다. 그러나 한수야. 너는 내가 땅콩 범벅에도 기뻐하는 소탈한 임금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냐? 나는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온 것이다.”

실은 잔뜩 기대한 임금이 상심이라도 할까봐 둘러댄 것이었는데. 마침 문 밖에서 맛있는 냄새가 새어 들어와,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전하, 웬 하란타 사람 하나가 귀빈실에 계신 분들을 뵙겠다 청하고 있사옵니다. 헌데 문제가 하나…….”

“알고 있다. 나와 미리 이야기된 것이니 그 여인을 안으로 들게 하거라.”

“여인인 것은 어찌……? 아니옵니다, 어명대로 수행하겠습니다.”

문 앞을 지키던 금군 번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방으로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임금이 굳이 세자를 끌고 여기 정착촌까지 왕림한 이유와도 일맥상통했다.

곧이어 원래대로였으면 외부인의 출입을 엄히 금했을 방안에 사람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를 본 세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꽃처럼 피어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상 전하, 그리고 세자 저하.”

“공녀 자가.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시간이 흘러 한층 더 성숙한 사춘기 남녀 사이에는 묘한 눈빛이 수차례 오고 갔다.

그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서찰로만 마음을 전해야했던 두 사람이다.

애타는 감정이 서로에게 날아가는 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하지만 애정이 가득한 두 사람 사이를 바라보는 한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쉽게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단순히 세자의 들끓는 감정을 풀어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대체 임금은 공녀를 불러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것인가.

막 열리려는 임금의 입술에 온 신경이 집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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