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40화 (240/298)

240화. 마주치지 말았어야 할 사람

자왈, 교언영색이 선의인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교묘하게 꾸민 말과 보기 좋게 꾸민 얼굴빛에는 어진 마음이 드물다고 하셨다.

“구왈기야 장긴? 무슨 용건…….”

“잠시만 자리를 비켜달라니까요, 탕약망? 제가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후후.”

말투를 보아하니 방금은 황제 앞이라고 본성을 누르고 있었나 보군.

당황한 채로 오보이의 완력에 그대로 밀려나는 아담 샬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 제삼자를 말려들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중화전 앞, 그늘이 제법 진 자리에는 나와 구왈기야 오보이, 둘만이 남았다. 그림자가 태양빛을 삼킨 장소, 그곳에서 놈은 천천히 번들거리는 눈빛을 드러냈다.

“아까랑은 달리 제법 그럴 듯하게 구네? 카간 앞에서는 온갖 겁먹은 척, 점잖은 척, 당당한 척까지 다 하더니.”

“무슨 일이십니까? 양황기의 바야라 장긴…… 이셨던가요?”

“모르는 척 하지 마. 어린 카간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이지. 아, 말은 놓는다? 어차피 너, 인수 반납하기 전에도 계급은 내 아래였잖아?”

“……마음대로 하십시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보이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놈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샤르후다에게 들었어. 그 멍청이는 자기 전공을 부풀리는 버릇은 있어도 남의 일을 거짓으로 전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 여러 모로 부리기 좋은 친척이지.”

“…….”

“닝구타에서 세운 공도 그렇고……. 너, 그래도 능력은 꽤 있는 모양이더라? 그러니 섭정왕이 그렇게 아꼈을 거고, 얼마나 아낀 수하였으면 숙사하 그놈과 너만은 살려내려고 그리 마음을 썼겠어.”

“섭정왕께서요?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만.”

“모르는 척하는 거 보게? 그럼, 갑자기 섭정왕의 수하 중 굵직한 놈들이 카간에게 순순히 협조하겠다고 나오는데, 내가 그 정도 뒷조사도 안 해봤을 것 같아?”

눈치 빠른 자식 같으니.

뒷조사 운운은 허세에 불과하겠지만, 놈이 순치제의 심복이 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사천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을 칭하던 장헌충을 토벌한 무력과 본능적인 정치 감각을 지닌 부하. 어떤 군주가 중히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 얼굴에는 한 조각의 티도 드러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날뛰는 놈을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었으니까. 다만 표정과는 달리 마음속은 여전히 들끓는 채였다.

오보이의 예리한 눈매는 그런 내 속마음을 뚫어보겠다는 듯이 내 얼굴을 훑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하, 이것 봐라. 이번엔 잡아떼시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면 속아 넘어갔겠네. 그런데 그거 아나? 초원의 늑대와 너희 같은 먹잇감의 차이를? 혹시, 초원의 바람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알아?”

“바람이라…….”

“고려 같은 산골에서 태어나 농사나 짓던 놈들은 모를 수밖에. 이 코는 초원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바람에 실린 냄새를 분별할 수 있단다. 겁먹은 먹잇감이 풀풀 풍기는 냄새 말이야.”

“그렇습니까? 범에게서 나는 비린내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서, 저도 냄새는 꽤 잘 맡는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이들의 후예는 다른 모양이군요.”

휘이.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오보이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는 바람 소리를 냈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춰주고 빠져나가려했지만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놈은 내 옷자락에 발톱을 박은 채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런 부류, 알고 있다. 한 번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로 끝인 부류들.

꽤나 귀찮은 놈에게 걸려든 것 같은데.

“네가 쓰고 있는 가면, 어지간히 질긴 모양이구나? 이만큼 하면 웬만해서는 얼굴 위에 덧씌운 가식들이 벗겨져 나가던데. 섭정왕이 아끼는 이유도 알겠구나.”

“…….”

“다 알고 있어. 다이칭 구룬에서 계략을 쓰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섭정왕이 자기 부하들의 배신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지. 카간께선 그저 섭정왕을 무릎 꿇릴 일에 흡족해하실 뿐이시지만, 나는 못 속이지.”

“제가 써본 가면은 타스하 잘안의 상징인 범가죽뿐인지라. 다른 가면은 써본 기억이 없습니다만.”

순간, 더운 기운이 피부를 덮침과 동시에, 코에 찌를 듯한 향수 냄새가 치고 들어왔다. 오보이가 갑작스레 거리를 좁혀오며 얼굴을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끝까지 뻣뻣하게 구네?”

“…….”

“잘 들어. 나는 원래부터 네놈 같은 종자들이 싫었어. 알아?”

놈의 날카로운 시선은 내 얼굴 거죽 뒤를 샅샅이 훑겠다는 듯이 내게 꽂혀 있었다.

이 새끼,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적개심을 보이는 건가.

“나는 선대 카간이 네놈 나라의 숨통을 끊어놓지 않은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왜? 너희는 형제의 맹세를 하고도 여전히 한조를 받들며 뒷통수를 친 놈들이거든. 쥐새끼 같은 놈들.”

“…….”

“그리고, 병자년에 뜨거운 맛을 보고도 여전히 우리 만주족에게 제대로 된 협조를 하지 않았지. 그거 알아? 병자년의 조선과, 네놈이 날뛰기 시작한 금주의 전장에는 나도 있었다는 거?”

“같은 전장을 겪은 전우셨군요. 헌데 어찌…….”

“그 입으로 나를 전우라 부르지 마! 기회나 엿보는 쥐새끼 같은 나라의 놈이. 카간을 현혹하고 바투루(전사) 칭호를 꿀꺽했을 적에는 뭐라도 된 것 같았어? 주제도 모르고 감히 고려 놈이 의정왕대신회의에 끼어들어 호오거 님을 방해해?”

아, 놈이 품은 원한은 그때부터였나.

이제야 흐릿하던 적개심의 윤곽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험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꼴을 보아하니 이놈은 만주족 우월주의자 쯤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현 카간을 추대한 것은 두 친왕께서 합의하신 일입니다. 그걸 제게 따지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하, 이 뻔뻔한 새끼가 잡아떼는 것도 일품일세? 네놈이 장긴들을 선동해 시위를 벌인 거,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 줄 알았어? 그건 그렇다 치자. 호오거 님도 숙청의 칼날은 피하셨고, 네놈도 본국으로 돌아가 역겨운 얼굴을 다시 안 볼 수 있었으니까.”

“…….”

“그런데, 여기가 어디라고 뻔뻔하게 다시 얼굴을 들이밀어? 섭정왕이 다 죽어가니까, 이제 카간께 다시 줄을 갈아타겠다? 이 새끼는 사내가 밸도 없나.”

“…….”

“내 말이 틀렸어? 화북에 식량을 공급한답시고 아직도 한조 놈들과 교역을 끊지 않은 놈들이 말이야. 다이칭 구룬에 섭정왕처럼 네놈들을 좋게 보는 무리들만 있는 줄 알아? 네놈 나라가 그동안 한 짓거리, 모두 기억하고 있어!”

그래. 기억이 났다. 내가 다행히 머리를 밀리고 변발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당시에는 이놈들의 세력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단 한 명, 불타는 북경성에서 내게 월도를 들이밀던 한윤을 제외하고는.

그 후, 홍타이지가 나를 마카타와 혼인시키길 단념하고 조선으로 돌려보내면서 모든 불만이 그나마 가라앉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적대감을 잊지 않고 있었다니.

“지금까지는 박쥐처럼 다이칭 구룬과 한조 사이를 오가며 이익을 빨아먹었겠지. 카간 앞에서 한조의 함대를 정벌하겠다 호언장담한 것을 보면.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거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방금 카간께 드린 고언은 그저 양국의 관계를 위해…….”

“양국의 관계? 하. 네놈들 조정에 득시글거리는 한조의 추종자들도 쳐내지 않은 주제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달라?”

“조정을 구성하는 권한은 아국의 금상 전하께 있습니다. 저희 주상께서는 서열상 친왕보다 높으신 곳에 위치하신 분인데, 그분의 결정에 지금 바야라 장긴에 불과하신 분께서 반기를 드시는 겁니까?”

“어쭈. 이렇게 나오시겠다? 그래, 이럴 줄 알고 있었다. 음흉한 고려 놈들 같으니.”

이놈이 품은 감정은 나에 대한 적대감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양 호란 이후 조선이 보인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 그것이 나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된 것인가. 친조선 정책을 계속해서 펴는 도르곤 밑에서 견디느라 꽤나 마음고생이 심했겠군.

그러나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었다.

놈이 적당히 세게 나왔다면 고개나 한 번 숙여주고 자리를 뜨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어 같은 놈은 살점이 드러난 부분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상태였다. 이제와 고개를 숙인다고 놓아줄 리가 없겠지.

“네놈들이 다이칭 구룬에서 가져가는 은덩이의 양, 내가 따로 알아본 바로는 장난이 아니더라? 그걸로 한조 놈들의 함대를 쳐부술 정도의 힘을 길렀으니, 그 힘이 다음번에 향할 곳은 어디가 될까?”

“아국이 키운 함대는 교역로를 수호하고 그곳에 가해지는 위협을 격멸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국의 상황을 계속해서 곡해하시면 더 이상은 곤란합니다.”

“다이칭 구룬이 고려를 위협하면 그 창끝을 우리를 향해 돌릴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해십니다.”

“오해? 그럼 네놈들이 정성들여 키운 그 함대, 당장 우리에게 넘기든가. 그건 또 못하겠지? 겉과 속이 다른 새끼들 같으니라고.”

오보이의 의심은 깊고도 어두웠다.

아마 도르곤의 힘이 강성할 때는 호오거와 함께 최전방 전선을 떠돌았을 자이니, 그 원한 탓에 나와 조선에 이렇게 강한 적대감을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기나긴 남명과의 싸움에 매몰된 나머지,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이익을 주는 대상에게는 칼부터 겨누고 보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이 자가 나와 조선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긴 하지만.

“잘 들어. 앞으로 네놈의 일거수일투족, 전부 내가 지켜보고 있을 거다. 카간은 그저 조선이 자신의 편으로 들어왔다고 좋아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차후 다이칭 구룬의 가장 큰 위협은 네놈들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글쎄요. 동쪽보다는 북서쪽에 신경을 쓰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국을 경계할 시간에 한데 뭉쳐 힘을 쌓고 있는 오이라트 놈들을 경계하시는 것은 어떨지.”

“이 새끼……. 너, 뭐 하는 놈이야? 고려에 틀어박혀 있던 놈이 어떻게 그런 정보를…….”

몽골의 서쪽, 위구르 지방 너머에서 웅거하고 있는 준가르 이야기였다. 강희제와 옹정제 시절 청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될 그들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선대 카간께서 저를 아끼신 이유가 다 있지요. 충고 하나 드리겠습니다. 멀쩡한 양국 사이에 균열을 만들기 전에, 다이칭 구룬에 확실히 위협이 될 세력부터 정리하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이 구왈기야 오보이 님의 눈에 잘못 든 놈들은 앞으로 이렇게 될 거거든. 북경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을 비롯해 네놈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멀쩡하길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내게 잘 보이는 게 어떨까?”

이마에 핏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내 호포대를 건드린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한편 놈의 협박과 동시에 왼쪽 어깨에 강한 악력이 가해져 왔다. 중성적으로 생긴 얼굴과 달리 옷 아래에 가려져 있는 오보이의 근육질 몸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어깨에서 올라오는 통증과 함께, 원 역사에서 이 새끼, 아니 오보이가 한 짓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름도 낯설 만주족 놈을 내가 기억하는 이유가 있었다.

순치제의 정적들. 그리고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귀족들을 베어 넘긴 인간백정.

그리고 그 공으로 권신이 되어 조정을 장악하고 어린 강희제의 앞길을 막으려 들었던 간웅(奸雄).

권력 방향으로 향해있는 놈의 더듬이에 내가 방해물이라는 신호라도 간 것일까.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이 자식과는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다이칭 구룬에 해가 될 행동을 할 리도 없을뿐더러, 그저 팔기 아래의 지휘관 중 하나인 바야라 장긴께서 어떤 권한으로 저를 감시하시겠다는 말씀이신지?”

“하, 이 새끼. 끝까지 시치미를 떼시겠다? 일개 바야라 장긴이 카간의 곁에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는 건 네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글쎄요. 방금 카간께서는 고작 잘안 장긴 자리를 그만둔 저도 너그럽게 받아주신 것 같습니다만.”

아마 순치제에게 약속받은 자리라도 있는 모양이지.

곧 도르곤이 수명을 다하게 되면 놈이 숙청의 최선두에 서서 칼날을 휘둘러댈 테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대응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어쭈?”

천천히 어깨에서 억센 손길을 떼어놓았다. 그러자 놈은 내 악력에 흠칫 놀라더니 손에 힘을 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으로 놈에게 밀릴 생각은 없었다. 놈은 방금 분명 내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해왔으니까. 그리고 놈은 내가 지금까지 조선에서 이루어온 결과들을 부수려 했으니까.

“이럴 줄 알았어, 이 새끼. 문관인 척을 하더니만 옷자락 아래 이런 힘을 숨기고 있었잖아?”

“무슨 말을 더 하시고 싶은 것입니까. 지금 길 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위협만 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놈의 손을 완력으로 뿌리친 것이 효과가 있었나보다. 손을 거두어들이는 놈이 잠시 얼굴 한 구석을 찌푸린 것을 보면.

그러나 놈의 얼굴은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뒤이어 놈의 손이 천천히 허공을 갈랐다.

놈의 목젖 앞을 길게, 엄지를 세운 채로.

“너, 앞으로 내게 잘못 걸리는 일이 없길 바라야 할 거야. 네놈과 고려는 오늘부로 숙사하 놈보다 내 안에서 위험순위가 높아졌으니까. 영광으로 여기라고.”

“…….”

“그럼, 오늘은 이 정도로 할까. 오랜만에 즐거웠다? 너 같이 팔팔한 먹잇감일수록 나중에는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빌곤 하지. 그날이 벌써부터 기대되네.”

오보이가 휘두른 소매에서 바람이 흩뿌려졌다. 그늘이어서 그런지, 그 바람은 내 얼굴을 핥고 지나가며 서늘함만을 남기고 있었다.

이거 상당히 일이 귀찮게 된 모양이다.

놈이 몸을 돌려 멀어지자마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도르곤이 힘을 잃은 덕분에 귀찮은 놈이 기세등등해졌군.

“안 장긴! 괜찮으십니까? 어째서 저 자가……?”

급하게 달려와 안부를 물어준 사람은 구왈기야 오보이의 기세에 눌려 멀리 떨어져 있었던 아담 샬이었다. 그제서야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빠지고, 속에 품었던 긴 날숨이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괜찮습니다. 살아오면서 시비를 걸린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 구왈기야 오보이는 지금 직책만 바야라 장긴이지, 황제 폐하의 제일가는 심복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다음 영시위내대신(領侍衛內大臣) 자리가 그의 것이 되리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카간의 친위대장 겸 북경의 치안총책임자 자리군요. 알고 있습니다, 탕약망 님. 방금까지 많은 대화가 오갔거든요.”

“아마 곧 피의 숙청이 북경에 불어닥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안 장긴, 조심하십시오. 저 자에게 잘못 보여서 좋을 일이 없습니다.”

아담 샬이 경고한 내용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원 역사에서 구왈기야 오보이가 한 일 그대로였으니까. 순치제에게 무난히 받아들여지는 줄 알았더니, 그의 칼날에게 미움이 박힐 줄이야.

사실 개선식 자리에서부터 놈이 나를 노려볼 때부터 느끼고 있긴 했다. 놈과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걸. 왜, 사내의 직감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이미 카간께 언질을 받은 것도 있고, 저는 곧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려고요.”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아무튼 별일이 없으시니 다행입니다. 전장에서도 흉폭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입니다.”

아담 샬의 염려를 들으며 애써 가라앉혔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순치제가 요절한 후 놈이 조정을 장악하는 미래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이 마지막 청나라 방문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 하지만 만약 놈이 훗날 조선에 시비를 걸어온다면, 그걸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

무거운 마음은 내 발걸음을 숙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다. 나쁜 일은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 가벼워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방금 있었던 일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대장! 오랜만에 어울릴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북경에 계시는 동안 몇 번이라도 찾아오십시오! 언제든지 어울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호포대 시절의 옛 부하들이 대접을 받고 있는 자리로 향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과 어울린 것은 답답한 마음을 푸는 데 꽤나 효험이 있긴 했다.

그리고, 오보이가 숙청을 운운한 대상이었기에 이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옛날 생각도 나고, 너희가 건강한 것을 보니 그것이 무엇보다 좋구나.”

“대장, 우리는 몸이 청에 있더라도 영원히 대장 편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조선으로 대장을 따라간 대원들은 팔뚝에 십자흉터를 전부 새겼다면서요? 저하를 모시고 이루신 무용담, 전부 들었습니다. 김귀돌 장긴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했다구요.”

“우리도 언젠가 그런 의기를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대장이 조선에서 곤란에 빠지면 우리가 언제든지 달려갈 겁니다.”

“그때는 대장에게서 십자흉터보다 더한 표식을 받고 말 겁니다. 무엇으로 우리의 의기를 표시할지 대장은 미리 생각해 놓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런 옛 부하들 앞에서 어찌 마음이 풀리지 않겠는가.

내가 그동안 해온 것들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청나라의 인간백정 따위, 언제든 적으로 돌릴 각오가 서 있었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술에 얼근하게 취한 대원들은 헛소리들을 늘여놓으며 자기들끼리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려댔다.

“지X들 하고 있음메. 조선에서 대장을 건드릴 사람은 주상 전하뿐이신데, 그분이 대장을 왜 건드리시남? 대장 버리고 청나라에 남은 놈들이 입만 살아가지고는.”

“에이! 김 장긴! 저기 시녀가 더 술을 못준다는 말에 아직까지 뿔이 나셨습니까? 그러기에 저 까마득한 후배 놈들한테 무리한 일을 시키면 안 됐지요. 남원폭격을 한 채로 술을 받아오라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야, 이 자식들아. 대장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 어찌함메?”

“하하하!”

이곳에만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호포대는 조선에 떨어진 현대인인 내가 비빌 수 있는 몇 안 되는 언덕 중 하나였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에라, 너 죽고 나 죽지비. 대장! 그거 아시우까? 대장이 황녀님과 피자점에서 만났던 일을 까발렸던 게 저기 방두쇠 저놈이우다!”

“아니! 귀돌 자네는 왜 나를 걸고 넘어져? 대장! 저는 이미 죄를 낱낱이 고해바치지 않았습니까! 예전 일, 혹시 잊으신 건 아니지요?”

“자네가 충신 사형에게만 그 일을 몰래 털어놓았다가 그 지경이 된 것은 훨씬 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네. 사형 본인을 매달아놓고 직접 들은 이야기거든.”

“예? 그 말씀은…….”

“와하하하! 자백이 자백이 아니었구마! 순전히 대장의 자비 덕분에 두쇠의 목이 붙어 있는 것이었음메! 와하하하!”

술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내 사람들과 나누는 술자리 분위기는 이렇게 언제든 즐거운 법이다. 잘안 장긴쯤 되는 부하가 여전히 내 앞에서는 대가리를 쉽게도 박아대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참, 대장! 두쇠 이놈, 쉽게 용서해서는 아니 되우다! 이놈이 얼마나 돈독이 올랐으면 회동관 근처에 피자점을 또 냈다 하우다!”

“회동관이라면 조선에서 보낸 사행단과 상단이 묵는 숙소가 아닌가? 그 근처에서 고려점들도 영업을 하고 있으니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나 보지.”

“청나라가 좋다고 남은 놈이 여전히 조선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있으니 엄벌에 처해야 하지 않수까? 야, 거기 황건철이! 뛰가서 새 대접 하나 얻어오라!”

“아, 귀돌이! 나 이제 대리 잘안 장긴이야! 부하들 앞에서 사발식을 시킬 생각인가?”

“와하하! 여기서 제일 높은 대장한테 죄를 지었으면 부하들 앞이건 뭐건 죗값을 치러야지비!”

허나 숫제 방두쇠의 목구멍에 술병을 꽂을 기세로 달려드는 김귀돌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숙소 근처에 피자점이라……. 돌아가는 길에 오랜만에 조선 음식이나 먹어 볼까.

***

즐거운 술자리였지만, 그 자리에는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더 있었다가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마시고 싶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덕분에 자금성에서 물러나왔을 때도 해는 여전히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향한 거리는 인파로 바글거렸다.

‘누군가는 해장을 피자로 한다더니, 내가 이 꼴이 될 줄이야. 아니, 이제 자연스럽게 피자를 조선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꼴부터 웃기지 않은가.’

목적지는 방두쇠의 아내가 북경에 열었다는 피자점. 그가 말한 대로 숙소인 회동관과는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위치한 가게였다.

사실 숙소로 들어가 사람을 보내 음식을 가져오게 하면 되지만, 술도 깰 겸 직접 걸어가기로 했다. 북경성을 걷다보니 옛날 생각이 조금 나기도 했고 말이다.

“어라?”

하지만 저 멀리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가게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술이 확 깨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었다.

내 앞을 걸어가는 수많은 낯선 이들 사이로, 익숙한 자태 하나가 내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으니까.

한 여인이 길산이 또래만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평범한 차림새 사이로 미처 숨기지 못한 귀부인의 품격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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