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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82화 (282/298)

282화. 마음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

다시 한번 얼굴을 꼬집었다.

이번에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지, 조선에 떨어진 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나.”

요새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하긴 했다. 가끔 눈앞에 있는 물체가 여러 개로 보이고, 잠드는 동안 유체이탈 비슷한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래서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주위 사람들에게 남길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필을 시작해 얼마 후 조선을 다시 덮칠 을병대기근과 산업혁명을 예고하는 부분까지 완성했을 때, 초막 밖에 어둠이 내렸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는 기억나는데, 여긴 어디지?”

어떤 감각도 자극도 느껴지지 않는 이 공간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분명 방금까지 나는 초막 안에서 제자가 선물한 모피로 몸을 감싸고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감각이 희미해진 것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눈앞은 온통 뿌연 안개로 뒤덮인 듯하고, 다리는 내가 정말로 바닥을 딛고 있는지도 의심될 지경이었다.

“여기가 사후세계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아니면 내가 조선에서 지은 죄 때문에 연옥에라도 끌려온 건가?”

그러고 보니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초막 밖이 낮인 것처럼 환하게 밝아졌던 기억이 났다. 그 후 정신을 차려보니 이 이상한 안개 투성이의 공간에 있었고.

갑자기 밝아져? 문득 머릿속에서 저번 인생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분명…….

“이상하다. 그때는 바로 조선으로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저세상에 온 건가?”

어떻게 잊겠는가. 멀쩡히 하늘을 가르던 혜성이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조선으로 끌고 간 기억을. 그리고, 그 직후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경험들까지.

하지만 여기가 사후세계라는 가설도 그럴 듯했다. 활력이 부족하던 육체는 어느새 20대의 것처럼 기운이 넘치고 있었고, 조선에서 말년까지 쌓였던 노인네 입버릇도 어느새 싹 사라진 상태였으니까.

그때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등 뒤 공간에서 어떤 낯선 감각이 전해져오기 시작한 것은.

“누구……?”

“한수야, 너는 벌써 이 형을 잊은 게냐. 섭섭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안개 속에서 드러난 그림자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평생 조선을 위해 온힘을 다한 사람이었다.

“저…… 전하!”

“형님이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는 건 여전하구나. 그동안 잘 지냈느냐.”

내가 유일하게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 소현세자, 아니 임금이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세자에게 양위한 후 침전에 누워 마지막 유교를 내리던 노쇠한 모습이 아닌, 처음 심양에서 만났던 시절의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어째서……?”

“어째서라니, 너는 내가 반갑지 아니한 것이더냐?”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 저희가 다시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럼 이곳이 저세상쯤 되는 곳입니까?”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를 일이지. 애시당초 미래인인 네가 조선에 오게 된 것은 이해가 되는 일이었더냐? 핫핫.”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임금이 내 어깨를 천천히 두드렸다. 그제서야 아무 느낌도 없던 몸에서 감각이 깨어나는 듯했다.

“이제야 왔구나. 이곳에서 너를 꽤나 오래 기다렸느니.”

“기다리시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명할 시간이 없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니까.”

“그 무슨…….”

“네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참이다. 아우야.”

오래 떨어져 있던 임금에게 반가움을 표현할 시간마저 모자란 모양이었다. 내 안타까운 속을 안다는 듯, 임금은 다시 내 어깨를 지그시 감싸고는 멀어져갔다.

“마지막…… 인사요? 형님, 그 말씀은…….”

“고맙다. 비운의 세자였던 나를 역사에 남을 임금으로 만들어줘서.”

“형님…….”

“고맙다. 안타까운 최후를 맞은 세자빈과 내 아이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미래를 되돌려줘서. 그리고…….”

익선관을 쓴 임금의 머리가 나를 향해 깊이 숙여졌다. 왕이 신하에게 고개를 숙이는 기묘한 상황이었음에도, 이상하게도 그것을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의 만백성을 대신해서, 고맙다. 네가 없었으면 수없이 스러져갔을 죄 없는 목숨들이 너로 인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형님…….”

“더불어 이 나라의 미래 또한, 너로 인해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대표해, 네게 깊은 감사를 전하마. 고맙다, 한수야.”

그렇게 나를 으스러지듯 강하게 끌어안은 임금은, 내가 당황하던 사이 눈인사를 한 번 남기더니 안개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기분이 얼떨떨했다.

그러나 임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지 못한 아쉬움을 느낄 틈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또 다른 인기척이 등 뒤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느껴진 것은 사람의 기척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자리에 감도는 것은 내가 그동안 너무나 그리워했던 짙은 매화 향기…….

“그대……!”

“잘 지내셨어요, 당신?”

이 사람을 보내고 얼마나 힘들었던가. 이 사람을 그리며 얼마나 괴로운 말년을 보냈던가.

조선에서 얻었던 기억은 전부 흐려졌다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한 내 눈가에서는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내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모습 그대로 미소 짓고 있는 하연, 내 아내.

“왜, 왜 나를 두고 먼저 가셨습니까. 어째서…….”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反)이랬던가요. 사람에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랍니다. 나를 위해 그렇게 눈물 흘리지 마세요, 당신.”

“하지만…… 그대 없이는…….”

“소첩은 본래 다른 사내에게 시집가 짧은 생애를 마쳤을 운명, 당신 덕분에 더 길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니 그리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당신이 그리 슬퍼하면, 저 또한 가슴이 쓰라리니까…….”

고운 손가락을 뻗은 하연이 내 눈가에서 눈물을 슬쩍 거뒀다. 어느새 그녀는 내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 달콤한 목소리를 속삭이고 있었다.

“당신을 만난 이후로 사랑하는 이에게 안기는 기쁨을 배웠습니다. 운명에도 없던 아이를 낳아 기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표현이 진정 무슨 뜻인지도 알게 되었지요.”

“…….”

“저는 그토록 행복한 삶을 살고 갔는데, 어째서 당신은 이리 슬퍼하시는 거예요. 낭군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받으며 선물 같은 인생을 살았는데, 어째서 당신은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거예요.”

“그대…….”

“고마워요. 날 사랑해줘서. 감사해요. 날 그토록 아껴줘서. 나는 다음 생에 태어나도 당신을 만났던 이 세상에서 성균관 유생 안한수의 아내로 태어날래요. 그러니…….”

천천히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이 느껴지더니, 입술에 녹아내릴 것 같은 매화 향기가 머물다 흩어졌다. 그 너머로, 하연은 다시 한번 싱그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를 떠나보낸 것을 그리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 우리는 옷깃 이상을 스친 사이이니, 억겁의 세월이 흐르다보면 언젠가 같은 하늘 아래 다시 인연이 닿을 날도 오기 마련이겠죠.”

“여보…….”

“안녕. 내 사랑. 당신과 보낸 나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거예요.”

급히 손을 뻗었으나 닿지 않았다. 영원히 떼어놓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임금이 그랬듯 연기 사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빈 공간을 달리고 또 달려보았지만 그녀는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허리가 저절로 굽혀져 아래를 향했지만, 더 이상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눈물 흘리지 말라 전했으니까. 그녀도 나를 잊지 않겠다 했으니까.

“무얼 하고 있는가, 자네?”

“……!”

“실망스럽구만. 내 자네더러 이렇게 약한 사람이 되라 가르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그때였다. 중후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 또한 내가 그동안 듣고 싶었던…….

“어사 나리……?”

돌아본 자리에는 낡은 도포자락이 휘날렸다. 올이 몇 올 나간 갓과 성성한 미투리까지, 산골에서 처음 마주쳤던 차림 그대로를 한 어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래, 조선에서의 삶은 만족스러웠는가?”

“스승님……. 아버지……. 어째서…….”

“아, 다른 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은 사람이 나라서 실망했는가? 이런, 나는 내가 자네에게 그것보다는 더 큰 존재일 것이라 생각했…….”

그만 감정이 격해진 나는 어사를 덥석 끌어안았다.

담담하게 나를 받아들인 어사는 그저 내 등을 천천히 두드려 줄 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최소한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고 급하게 어사를 보내야 했던 내가 그동안 가장 해드리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

“다행히 염려하던 만큼은 아닌 모양이구나. 그래, 아들아. 그동안 잘 지냈느냐.”

“물론입니다, 아버지……. 저는, 저는 잘 해낸 거겠죠?”

“그럼. 나 역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나와 한 약속을 아주 잘 지켜주었더구나. 이 땅에 내려진 저주 받은 운명을 바꿔놓겠다는 그 약속 말이다.”

메마른 줄만 알았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어사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토닥이며 위로를 전했다.

“잘했다. 아주 잘 했다. 이 아비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아버지…….”

“내 아들이 조선 제일의 신하가 되어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역사상 최고의 어사가 되어 수많은 백성들을 구제했다. 아비로서 이것 이상의 즐거움이 어디 있겠느냐.”

나를 품에서 떨어뜨린 어사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어사가 그리 환하게 웃는 모습을, 나는 살면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안다. 네가 나를 먼저 보내며 안타까워 한 것이 무엇인지. 네가 지금 나를 만나 이토록 슬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저는, 저는 아버지께 입은 은혜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한으로 남아…….”

“수욕정이풍부지하고, 자욕양이친부대라(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멈춰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 법…….”

“조금만, 조금만 더 오래 계셔주십시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 먼젓번처럼 그리 쉽게 보낼 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서 뜻 모를 쓸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단다. 아들아.”

“왜, 어째서입니까. 아버지께서 떠나지만 않으신다면 그것은…….”

“내가 허락받은 시간은 아주 짧단다. 아마도 너를 찾아왔던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찌하여 네가 나를 위해 해준 것이 없었다 말하는 것이냐.”

어느새 내게서 떨어진 어사가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어사의 소매 끝동으로부터, 마치 영원처럼 멎어있던 안갯속에서 어떤 형체들이 스며나오기 시작했다. 그 형상들은 끝도 없이 늘어서, 마치 인파가 바다를 이루었다던 표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들은…….”

“이 아이를 기억하느냐. 네가 처음으로 구제한 생명일 게다.”

어느새 그 무리의 가장 앞으로 걸어간 어사는 무릎을 꿇고 어느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 어사의 행동은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에서 선명한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래. 네가 운봉현에서 염병으로부터 구한 아이다. 기억이 나느냐.”

“빨랫감에 대해서 묻던 아이…….”

첫 만남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제자가 대견했는지, 어사는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짓더니 옆에 서 있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럼 이 아이는 어떠냐. 익숙한 얼굴이겠지?”

“파평대군 대감……?”

“그래. 네가 바꾼 역사에서는 그렇게 불렸겠구나. 원래 역사에서는 소현세자의 둘째 아들, 경완군 이석린이라 불렸을 아이다. 아마 네가 없었더라면, 유배 갔던 제주도에서 형과 함께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목숨을 다했겠지.”

“…….”

“이 둘은 나였다.”

모를 리가 있는가. 내가 섬겼던 주군의 둘째 아들, 내 제자였던 왕의 동생을.

헌데, 어사가 뒤에 붙인 이야기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두 아이가 자신이었다니.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사는 뚜벅뚜벅 걸어 다른 사람을 옆에 세웠다. 이번에는 눈가 검붉은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기골이 장대한 장정이었다.

“너의 가장 충직한 부하 중 한 사람, 김귀돌이로구나. 아마 생전에 수많은 군공을 세우며 병마절도사 자리에까지 올랐었지?”

“맞습니다…….”

“이 사람은 네가 없었으면 어찌 살았을 것 같으냐. 그대로 심양에서 청인들의 노비로 살다 젊은 나이에 혹사당해 명을 다했을 것이다.”

“…….”

“이 또한 나였다.”

수수께끼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어사의 말뜻을 기를 쓰고 추리하던 사이, 또다시 어사는 낯선 이를 한 명 옆에 세웠다. 이번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네겐 생소한 사람일 것이다. 당연히 너와는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을 테니. 그리고 역사에 남기는커녕 존재하지도 않았을 사람이니.”

“그 말씀은…….”

“네가 대기근을 막지 못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사람이다. 이 같은 사람이 조선 팔도에 수두룩한 것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제가 원 역사에 비해 피해를 줄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를 소개하시는…….”

“……이 또한 나였다. 아들아.”

아. 이제야 어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내 깨달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어사는 양 소매를 휘둘러 무수한 그림자들을 모두 안개 속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눈가에서는 다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슬픔이 아닌, 다른 감정이 담긴 눈물이었다.

“아, 잊을 뻔했군. 이들도 네게 인사를 남기고 싶다고 했는데.”

그런 나를 지그시 지켜보던 어사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곁에는 어느새 충직한 어사의 수하 두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김 갑사……. 유 서리…….”

“이들도 본래는 조정에서 쫓겨나 끈 떨어진 양반인 나를 끝까지 섬겼을 사람들이지. 네 덕분에 어떤 한도 남기지 않고 모든 능력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세상을 떠났더구나.”

“저는 이들에게 해준 것이 없습니다. 이들이 스스로 저를 도왔을 뿐…….”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역시 나였단다.”

김 갑사와 유 서리 역시 허리를 깊이 숙여 절하더니 안개 속을 향해 멀어졌다.

나는 이제, 어사가 하려는 말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네가 불쌍한 이들에게 베풀었던 모든 것이, 네가 마음 가는 사람들에게 힘써 행했던 모든 행동들이 모두 나에게 해준 것과 같았단다. 아들아.”

“아버지…….”

“그런 네가 어찌하여 내게 해준 것이 없다 슬퍼하는 것이냐. 너는 어떤 자식보다도 내게 커다란 효를 다했는데.”

어사의 따스한 체온이 내게 전해졌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먼저 끌어안은 것이다.

다시 오열하기 시작한 나를 위로하듯, 어사는 내 머리를 슬쩍 쓰다듬더니 등을 토닥거렸다. 잠시, 아주 잠시 동안 전해진 격려 덕분에, 나는 금세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따스한 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런, 시간이 다 된 모양이군.”

어사에게서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가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아버지?”

“이제 나는 가 봐야 한단다.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들아.”

내게서 떨어진 어사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 감돌고 있었다.

얼마 만에 다시 만난 것인데 또다시 이별이라니. 깜짝 놀란 나머지 손을 휘저어가며 어사를 붙잡으려 했으나, 그의 몸은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처럼 내게서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아버지!”

“네가 먼저 내게 알려주지 않았더냐. 너는 본래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저는……!”

“이제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란다. 만나서 반가웠다. 언젠가 또 보자꾸나.”

안개 사이로 숨기 시작한 어사에게서 마지막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보인 그의 입가에는 분명 미소가 올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등 뒤에서 환한 빛이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빛의 근원지를 알아내기 위해 돌아선 내 앞에는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건……?”

안개로 휩싸인 공간 한가운데, 그곳에는 웬 빛으로 이루어진 기둥 하나가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솟구치는 빛줄기는 나를 향해 점차 따스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전해진 따스함은, 내가 사랑하던 이들에게서 전해지던 온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것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바로 앞까지 다가가 빛줄기를 지켜보던 나는 무의식중에 그 안으로 한 발을 내딛고 말았다.

순간, 기분 좋은 따스함이 온몸을 감쌌다.

어머니의 양수에 담겨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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