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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84화 (외전) (284/298)

외전 1화. 또 한 명의 암행어사

“또 암행을 나가라는 말씀이시옵니까?”

창덕궁의 편전이 사내의 목소리로 우렁우렁 울렸다. 임금이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짚을 정도로 크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주위에 다행히 인기척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네 벗이 이번에는 꼭 네게 암행을 보내라 적극 권장하더구나. 정 어명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럴 리가 있겠나이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단박에 임금 앞에 온몸을 내던져 기쁨을 표시한 사내는 곧 바람같이 편전을 빠져나갔다. 임금은 그런 사내를 보며 빙그레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번에는 강 사인이 중전이 기대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할 텐데 말이지……. 여봐라! 밖에 상선 있느냐?”

“예, 전하. 부르셨사옵니까?”

“총통위에 연락을 넣어 김 별장을 편전에 들라 전하라. 내 병력 선발에 관해 긴히 남길 말이 있으니.”

허리를 깊이 숙이고 물러나는 상선을 보는 내내 임금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기뻐하게 해줄 광대…… 아니 신하가 조만간 한양을 출발할 것이기에.

“아차. 이래서는 안 되지. 나랏일이다. 나랏일.”

임금은 잠시 자신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번 암행은 중전의 취미생활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임금 아래에서 죽어라 갈렸던 사인(舍人, 의정부 정4품) 강충신을 위한 일종의 휴가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귀중한 공노비가 휴가 중 기분전환을 하면서도 나랏일까지 해오면 더욱 좋지 않겠던가? 임금도 다 생각이 있어서 충신에게 암행을 명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중전이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해야 할 텐데…….”

하지만 임금은 애처가 기질을 끝까지 숨기지 못할 모양이었다.

지금은 어사 제도를 크게 개편하며 청요직에 거론되는 신하들을 전부 한 번씩은 어사로 내보내는 상황. 하지만 그들은 나랏일을 충실히 수행할지언정 재미있는 일화는 거의 만들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지방의 부패를 감찰하고 새 제도를 보급하는데 어사 제도는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지금까지 자신이 처음 읽었던 어사 이야기 이상의 충격을 가져다주는 장계를 받아보지 못했던 터였다.

“한수를 보내면 무언가 나올 만도 하다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임금은 사실 괜히 세자의 견문을 틔워주겠답시고 아끼는 아우를 먼 네덜란드로 보냈던 일을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수족처럼 일하던 최고의 신하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 공백을 메우느라 꽤나 고생했어야 했으니까.

그나마 방금 싱글벙글하며 뛰쳐나간 충신이 수족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해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매번 투덜거리면서도 일은 제대로 하던 충신에게, 네가 암행을 나갈 수 있는 것은 벗이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주면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까.

“참으로 기대되는구나. 과연 이번 암행의 결과는 어떠할지.”

하지만 지금 임금이 또다시 미소 짓고 있는 것은 충신의 표정을 상상해서가 아니었다.

또다시 임금의 온 신경이 중전을 향해 가 있었던 것이다. 임금의 생각이 이리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마침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중전이 슬슬 독파해가는 상황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굳이 열심히 부리던 공노비 한 명에게 암행을 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임금 부부의 금슬은 여전히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몇 년 전 이야기지만, 마흔이 다 되어서 늦둥이를 가질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

“살았다! 나는 살았다!”

한양의 서쪽 정문, 돈의문 앞. 웬 사내 하나가 난 데 없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뜻 모를 말을 외치고 있었다. 드디어 두 번째 암행어사를 나가게 된 충신이었다.

“마침내……! 마침내 목줄에서 벗어났다! 으하하하!”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호탕한 웃음소리가 돈의문 앞에 퍼져나갔다.

그럴 만했다.

의정부에서 일 년 내내 갈리던 충신의 숨통을 트여줄 것은 사실상 대만 파견과 어사밖에 없었다. 벗이 다녀온 네덜란드 역시 언젠가는 한번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지금까지는 네덜란드는커녕 한양도 벗어나기 어려웠던 터다.

차라리 한양이라도 벗어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생각해 보면 그동안 휴일 구분 없이 궐내각사에 출근도장을 얼마나 찍었던가. 충신은 그의 목줄을 말 그대로 조였다 풀었다 하는 임금에게 속으로 쌍욕을 몇 번이나 갈겼는지 모른다.

“정신 차리십쇼, 도련님. 중대한 나랏일로 나가시는 분이 뭐 이리 들떠계십니까?”

하지만 그런 해방감도 오래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옆에서 패랭이를 쓰고 그 모습을 착잡한 듯 지켜보고 있던 중년 사내 하나가 충신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행수? 왜 네가 나온 것이냐? 내가 분명 적당하고 힘 잘 쓸 젊은 놈을 보내라 했을 텐데?”

“지시를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적당하고 힘 잘 쓰지 않습니까? 도련님.”

“또, 또! 그놈의 도련님 소리. 하지 말라고 십 년이 넘게…….”

“그러게 어르신 말씀대로 지금이라도 혼인을 하시면 서방님이라 불러드리지 않겠습니까? 나이야 좀 들었다지만 아직도 유력가의 따님들이 사주단자를 들고 줄을 설 텐데요!”

차림새에서 신분이 명확히 구분되고 있었음에도, 능숙하게 투닥거리는 두 사람 사이는 친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정 관료인 충신의 말빨이 밀리는 듯했다.

“그리고, 도련님도 저를 아직까지 행수라 부르면서 그러시깁니까? 제가 행수였던 시절이 대체 언제 적 이야깁니까? 도련님도 그러시면서 저보고 이러시면 곤란합죠!”

“내가 행수라 부르는 게 문제가 될 리가? 이제 내가 일선 행수들이랑 마주할 일은 없…….”

“그러실 거면 미혼인 몸으로 도련님이라 불리는 것도 각오하셨어야지요! 거 과거도 붙으신 분이 군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책에서 안 배우셨답니까?”

“또 그놈의 혼인 이야기냐. 생각 없대도. 네가 어리바리하던 진짜 행수 시절이 그리워지는구나. 그때는 이리 바락바락 대들지 않았었는데. 말투도 더 순박했고.”

둘 사이는 하루 이틀 이어져 온 관계가 아닌 듯했다. 중인 치고 높은 벼슬까지 하는 양반에게 저리 바락바락 대들 수 있는 사람이 흔하겠는가.

하지만 자꾸 거듭되는 결혼 이야기 탓일까. 방금까지 기뻐하던 모습과 달리 충신은 금방 풀이 죽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행수는 기운이 빠진 주인을 더는 물어뜯지 않았다.

“으휴……. 도련님. 그래도 제가 아니면 또 누가 도련님을 돕겠습니까. 이번에도 시작부터 잡다한 일은 제가 싹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노자 챙기는 일부터 총통위 병사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까지.”

“그건 그렇다만……. 그건 내가 그동안 도성 안에서 따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은근슬쩍 행수 네 공을 올려치는 것 같은데…….”

“흠, 크흠! 그럴 리가 있습니까. 일단 나랏일이 먼저니 제가 데려온 방자와 인사나 하시지요. 한시바삐 목적지로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윗분의 미심쩍은 표정이 걸렸는지, 행수는 지체 없이 돈의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사내 하나를 끌고 나타났다. 나머지 총통위 병력들은 먼저 조를 나누어 철산으로 출발했다고 했다.

“……행수.”

“예, 도련님.”

“뭔가 총통위에서 사무만 담당하던 놈을 잘못 잡아온 거 아니냐? 내가 분명 힘 좋고 몸 날랜 자로 김 별장에게 특별히 부탁했을 텐데.”

“그것이…… 김 별장 말로는 이 친구가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분명 도련님께 필요한 병력일 거라고…….”

충신이 지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가 있었다. 행수가 데려온 총통위 병사는 몸이 날래 보이긴 했으나, 힘을 쓰기에는 영 부실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충신은 오히려 그에게서 진하게 풍기는 먹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어이, 거기 병사.”

“예, 옛. 어사님. 아, 아차.”

“쉿! 야, 행수. 너 이렇게 기본도 안 된 놈을 어디서……!”

새벽녘, 마패를 들이밀고 통금 중인 도성을 빠져나온 탓에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자칫 일이 더 꼬였다가는 초장부터 마패를 반납하고 짧은 휴가가 끝나버릴 뻔했다.

“어휴. 이걸 확……. 얘 돌려보내자고 지금 다시 도성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야! 넌 뭐가 특기길래 김 별장이 너를 나한테 붙여줬냐?”

“그게……. 제가 총통위에서 문서 꾸미는 것은 제일 잘합니다. 훈련 내용과 결과를 기록하는 것도 제일 잘 하고요”

“뭐라고?”

“그게…… 문서…… 꾸미는 걸…….”

“너 설마 학도복무자냐? 성근학당에서 총통위로 파견 나와서 녹봉 받아가며 공부한다는 그?”

병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이 가득 차서가 아니라, 답답하다는 듯 몰아붙이기 시작한 어사에게 벌써부터 기가 질렸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충신은 곧바로 이마를 부여잡고 말았다. 왜 김 별장이 이놈을 방자로 붙여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야 이 씨……. 내가 장계를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놈을 방자로……!”

“진정하십쇼, 도련님! 혹시 출두 마치고 문서작업이 수월하도록 도와라, 뭐 이런 목적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힘 쓸 일이야 도련님이 일당십은 거뜬하시니……읍!”

“행수, 그걸 내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아냐? 어휴, 돌아버리겠네, 진짜.”

충신은 깨닫고 말았다.

글 잘 쓰는 병사를 붙여주었다는 건, 곧 왕이 빠른 출장 복귀를 바란다는 뜻과 같다는 것을.

아무래도 빌어먹을 전하께서는 공노비의 목줄을 오래 풀어주지 않으시려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증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충신은 아직도 벌벌 떨고 있는 병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놈을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휴가를 늘리는 것이 유일한 답인 듯했다.

“너, 혹시 출두 끝나고 뒤처리 일 관련해서 따로 내려 받은 밀명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김 별장보다 더 윗분한테 말이다.”

“그런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입장이라서요.”

“그럼 내가 미리 경고 하나 하지. 부임지 관아 가서 문서에 손 댈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거다. 말만 자알 들으면, 내가 네놈 공부 끝날 때까지 학비 정도는 내줄 수도 있으니까.”

“학비요? 저…… 정말이십니까?”

병사는 엄청난 제안을 듣자마자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그걸 본 충신은 임금이 더 이상 걸어놓은 안전장치가 없음을 확신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리가 없었다. 충신은 철이 들기 전부터 사람을 파악하는 데는 도가 터 있었으니까.

“그럼, 속고만 살았냐? 대신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신용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거든. 지금 이 자리에서 한 약속, 지키지 않으면…… 알지?”

“…….”

“나는 그런 놈에게는 주기로 약속했던 것의 곱절을 빼앗아가고도 성에 안 차는 사람이야. 알아서 잘 해라, 응?”

얼굴이 하얗게 질린 병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충신은 이번 농땡이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임금이 그를 충신에게 붙여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유생을 어사에게 붙여주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

“사실 그거, 꽤나 오래된 발상입니다. 제가 소과 준비를 할 때 스승님께서 내신 발상이었지요.”

“뭐, 뭐야, 인마?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법을 전하께 알려드린 흉적(凶賊)이 한수 너였냐?”

“그럴 리가요. 중전마마께서 제 후처를 그리 다그치시는데, 제가 어찌할 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이 자식이!”

훗날 암행을 마치고 돌아온 자리, 그곳에서 충신은 자초지종을 자백한 벗의 멱살을 잡기 직전까지 가고 말지만, 아직 그것은 먼 이야기였다.

사실 벗이 그 아이디어를 어쩔 수 없이 임금에게 분 것도 아니었고.

***

“좋아. 그럼 대강 마무리 되었으니 봉서(封書)나 개봉해 보실까?”

북. 기세 좋은 소리를 내며 임금의 어찰을 봉인한 봉투가 찢겨져 나갔다. 보통 선비들이 장도를 품에서 꺼내 편지를 개봉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도 임금의 편지를.

“이야……. 우리 전하께서 그래도 휴가는 제대로 주시려나 보네?”

“그 무슨……? 도련님, 목적지가 어디길래 그러십니까?”

충신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올라붙었다. 아무래도 한양을 오래 떠나게 된 데서 오는 기쁨인 듯했다.

“평안도 철산(鐵山).”

“예? 철산이라면…… 거의 압록강 근처 아닙니까? 청나라에서 교역을 열어주기 전, 거기 가도(椵島)에서 밀무역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전하께서는 아무래도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밀무역을 단속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내가 그쪽에 빠삭한 건 잘 알고 계실 테니까…… 엥?”

“또 무슨 일입니까, 도련님?”

왕의 명령서를 읽어 내려가던 충신의 눈매는 어느새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글을 읽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쩐지 도성을 떠나기 전 전동흘(全東屹)이란 무관을 만나고 가라 하시더니……. 그 사람이 차기 철산 부사였군.”

“철산 부사요? 아, 그러고 보니 최근 철산에서 무슨 이상한 소문이…….”

“그래. 전임 철산 부사가 임지에서 원인도 모르는 횡사(橫死)를 당했다고 한다. 그 이유도 알아오라 하시는구나. 전동흘은 양지에서, 나는 음지에서.”

날카로워진 눈매와 다르게, 충신의 입가에 서린 미소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새 장난감을 받은 아이를 보는 듯했다.

“전하께서 아주 재밌는 일을 선물해주셨구만? 이런 일만 주신다면 의정부에서 갈리는 일도 기꺼이…… 아니, 이놈의 입이 왜 멋대로 움직여? 미쳤나, 이게.”

그런 충신을 바라보는 행수의 입에도 웃음이 길게 걸려 있었다. 그의 웃음은 잘 자란 막내를 보며 흐뭇해하는 맏형의 웃음을 닮아 있었다.

“……도련님, 늘 생각하는 겁니다만, 도련님은 생각보다 나랏일이 재밌으신 모양입니다?”

“행수, 뭔 개소리야? 내가 나랏일이 재밌으면, 지금 이렇게 어사를 나가는 일을 즐거워할 리가 없잖아?”

‘아무렴요. 도련님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도련님은 성균관까지 들어가시고도 조정에는 절대 발도 딛지 않으시겠다 하시던 분인걸요.’

거친 말을 입에 담는 충신을 보며, 행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적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덧없이 여기던 그때의 충신과, 지금의 충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언제였더라. 충신이 마포나루로 벗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난 날 이후로, 충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그날 이후로 행수는 두 명의 벗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올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행수, 왜 갑자기 말이 없어? 철산까지 먼 길을 오갈 게 막막해서 그래?”

“아닙니다. 잠깐 딴 생각이 들어서 그만…….”

“그럼 얼른 출발 준비나 하자고. 저기 얼타고 있는 병사 놈도 알아서 챙기고. 이 빌어먹을 한양, 빨리 떠 버리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도련님. 분부대로 합죠.”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재빨리 한쪽 길가로 달려간 행수는, 잠시 후 손에 말고삐 세 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윽고 행수가 낑낑거리는 병사를 겨우 말안장 위에 올렸을 때, 이미 말에 올라 고삐를 쥔 충신이 병사를 향해 잔뜩 찌푸린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 빨리 출발하자고. 날이 밝고 도성문이 열리면 사람들 눈에 띄게 될 테니.”

“물론입니다. 자, 가시죠.”

슬슬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등진 채, 세 마리의 말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1656년 병신년, 후대에 민담과 소설로 길이 남을 어사출두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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