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89화 (289/298)

외전 6화. 귀하신 분으로부터의 청혼

“뭐어어?”

“네가 시집을?”

여학당 본당에서 경악에 가득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히죽 웃고 있는 소녀가 전한 소식 탓에, 다른 두 소녀가 놀라 내지른 비명이었다.

“아니, 우희 너도 이제 시집가도 이상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 같은 왈가닥을 누가?”

“그러게 너희 어머님 같은 분이면 몰라도 너를? 그거 완전 영상 대감을 노린 정략혼인 아니니?”

이곳은 중전의 주도로 탑골에 마련된 금남의 구역이다. 기생방으로 변한 원각사를 중종이 밀어버린 후 공터로 남아있던 곳에, 새로운 배움의 터가 들어선 것이다.

세 사람은 이곳에서 견습 궁녀인 생각시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실은 지금의 대화도 생각시들을 상대로 글을 가르치는 수업이 끝난 후 세 사람이 떨던 수다 도중 나온 것이었다.

“거짓말이지, 그거? 사람 좋으시기로 소문난 신 상궁님도 그 이야기는 안 믿으시겠다.”

“우희 네가 무슨 시집이야? 책읽기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책벌레 주제에. 너, 집에서 밥 지을 줄은 아니?”

“너무한 거 아니야? 이렇게 청혼이 날아온 것을 보면, 나도 나름 훌륭한 신붓감 취급을 받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헤헤. 설마 너희, 내가 부러워서 그러는 건 아니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우희는 책보에 교재를 담으며 바보처럼 웃음을 흘렸다. 그런 친구를 졸지에 질투한 사람이 되어버린 두 친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 사람은 신분 차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여학당까지 같이 들어온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지켜본 철없는 친구가 갑자기 청혼을 받았다는 소식을 믿지 못할 만도 했다.

“얘, 아무리 네가 학문도 잘 배우고 여학당에서는 훈장 노릇도 하고 있다지만……. 그건 아직 애들이나 가르칠 때 얘기잖아. 솔직히 학문 빼면 생각시들이랑 너랑 수준 차이도 그닥…… 읍읍.”

“정작 궁에서 은퇴하신 나인님들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계집애가 시집을? 그 어디 사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안사람으로 아무 계집이나 상관없으시다든?”

친구 둘에게 매서운 공격을 받은 우희의 얼굴에 순식간에 구름이 끼었다. 작은엄마를 따라 이곳에 드나들며 공부하다가 만난 친구들은 저잣거리 상인 집안 출신답게 입이 매웠다.

여학당은 내수사와 궁에 필요한 여성 인력을 길러내는 양성소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자도 나라에 도움만 된다면 기꺼이 써야 한다는 송시열의 발상이 어느새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중전 또한 여학당의 큰 후원자였다. 덕분에 새 궁녀들은 이곳에서 일차 교육을 받았고, 은퇴한 궁녀들은 이곳에서 내수사의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니 우희의 두 친구처럼 상인들이 딸을 여학당에 밀어 넣기 시작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너네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사람 섭섭하게…….”

“으이구……. 이런 울보가 무슨 시집을 간다고. 허튼 소리 하지 말고 내일 수업 준비나 하렴. 영상 대감께서 우리 귀여운 우희 놀리겠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겠냐.”

“그치만……. 우리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신걸. 그리고…….”

“왜, 너도 시집갈 나이가 된 건 사실이니, 사윗감을 찾아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시키시려는 생각이셨을 수도 있지. 우리 친구가 아직도 어린애 같으니, 영상 대감께서도 오죽 걱정이시겠냐.”

울상을 짓고 있는 우희의 볼을 잡아당기며 친구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놀려먹기 좋고, 양반댁 규수답지 않게 소탈한 친구를 시집보내는 일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사실, 우희에게 청혼이 들어왔다는 말 자체를 못 믿겠다는 말도 진심이긴 했다. 누가 이런 철없는 애를 아내로 삼는다고? 웬만한 성균관 유생들보다 유학에 밝은 녀석이니 남장이라도 시켜서 어디 학관으로 일하게 만들면 또 몰라.

“그런가……? 근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아버지 말씀으로는 나한테 청혼한 상대가 되게 높은 분이고, 멀리 가게 될 수도 있으니 혼인을 하고 싶거든 깊이 생각해보라 하시던걸.”

“뭐? 그게 진짜야? 그럼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니란 소린데. 정말로 우희 너를 콕 집어서 청혼을?”

“잠깐. 높은 분에 멀리 갈 수도 있다? 너 설마 궁궐로 들어가는 거 아니니?”

방금까지만 해도 우희가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여기던 친구 둘의 입이 딱 벌어졌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자 이제는 혼인 이야기가 피부에 와닿은 듯했다.

“궁궐이라고?”

“그래! 그 말씀대로면 딱 궁궐 이야기 아니니. 음……. 그럼 네 상대는 원손 합하신가? 조금 어리시긴 한데 아주 안 될 나이차도 아니고…….”

“아니지. 그럴 거면 벌써 금혼령이 내려졌어야 정상이라구. 대군 대감들은 다 혼인을 하셨는데, 그럼 어느 분일까?”

어느새 두 친구는 우희의 혼처가 어디인지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맞대고 공부할 때보다 더 치열하게 말다툼을 벌이는 두 친구를 보니, 우희는 이 대화가 끝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

“그래서 날 찾아온 거니?”

“그게……. 그렇습니다, 마마.”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맞아들인 귀한 여인의 머리에는 진한 갈색 가체가 얹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아마 조선에서 검은 색이 아닌 가체를 사용한 사람은 이 사람이 처음일 것이다.

“후훗. 너는 오늘도 참으로 엉뚱하구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내 너를 아끼고 있다만.”

“엉뚱하다니요……. 그럼 마마께서도 모르는 일이세요?”

친구들의 추측이 완전히 틀린 모양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우희를 보며, 헨리에트는 귀엽다는 듯이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글쎄……. 네 이야기를 전하와 중전마마께서 아예 안 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근 궐내에서 국혼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단다. 생각해보면 지금 궐에 네 나이와 어울리는 상대도 없지 않니?”

“주상 전하께서도, 세자 저하께서도 후궁을 두지 않고 계시니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다른 종친들도 있으니 설마해서 여쭈러 와봤습니다.”

“종친들 사이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단다. 이제 조금 안심이 되니?”

가슴을 쓸어내리는 우희를 보며, 세자빈은 다시 한번 자연스러운 우아함이 물씬 풍겨나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름다운 미소였다. 우희가 어머니 손을 붙잡고 궁을 드나들던 시절부터 저 미소는 한 번도 아름다움을 잃은 적이 없었다.

세자빈의 미소를 넋 놓고 바라보던 우희의 머릿속에 그녀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남편의 사랑이 아내를 아름답게 만들어준다고 했던가.

우희네 집안을 생각해도 그건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희의 어머니도, 작은엄마도 세월은 흘러갔을지언정 아름다움과 기품은 나날이 더해질 뿐이었으니까.

우희는 문득 좋은 짝을 만난 세자빈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한듯, 흥미로운 눈빛을 한 세자빈이 우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처음 봤을 때는 어린애에 불과했던 너도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구나. 내가 저하와 사랑에 빠졌던 것이 지금의 너보다 훨씬 어렸을 적이니, 오히려 조금 늦은 편이지.”

“마마의 사랑 이야기는 이미 역사에 남을 수준이잖아요. 멀리서 사내 하나만을 보고 찾아온 여인, 그리고 여인을 위해 숱한 걸림돌을 이겨낸 사내. 하지만 저는…….”

“누가 알겠니? 네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단다. 네 서모의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란 말이지. 그동안 마음에 들었던 사내는 없었니?”

“음……. 글쎄요. 제가 그동안 가까이 두었던 사내라고는 길산 오라버니가 전부였던 터라…….”

생각해보니 그랬다. 헨리에트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지만 우희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내는 한 명도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오라비를 따라 성근학당에 들락거렸고, 요새도 운종가에 있는 세책점이나 관훈동에 있는 외가에 자주 다녔음에도 우희에게 이성은 잘 와닿지 않는 존재였다. 오히려 로맨스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세자빈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직 사내를 보고 가슴이 뛰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뭐,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그런가요? 저는 당연히 언젠가는 중매가 들어와 혼인하게 될 것이라 생각해서, 이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조선에서는 그게 보통이긴 하지.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게 된다면 그것보다 인생에서 더 큰 축복은 없는 법이거든. 혹시 이런 사람이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니?”

어느새 첫사랑도 못해본 동생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언니가 되어버린 세자빈을 앞에 두고, 우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가 말한 대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전혀요. 굳이 원하는 남편감이 있다면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라……. 조금 아쉽구나. 그런 대답은 열 살배기 우리 군주(郡主)에게서 나올 수준인데.”

“그치만, 딱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도 없는걸요. 예전에는 오라비 같은 사람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청나라에서 온 올케한테 꽉 쥐여 사는 게 바보 같아 보이더라고요.”

“그것도 흔한 부부 관계 중 하나란다. 본인만 좋다면야 남들이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래도 제 남편은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면 좋겠어요. 음……. 길산 오라버니처럼 굳이 무술에 뛰어나지는 않아도 좋지만, 학문 쪽으로는 훨씬, 훠얼씬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아버지처럼요.”

사실 우희의 아버지도 전장에서 웬만한 무관 이상으로 활약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그런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았던 탓에 딸은 약간의 착각에 빠져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대답이 세자빈의 마음에 쏙 들었는지, 우희를 바라보는 그녀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참, 질문이 하나 더 있어요. 마마.”

“무엇이니?”

“그…… 제게 청혼하신 분이 높으신 분이여서 멀리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인데요. 생각해보니 마마께서 딱 이 경우에 해당하는 분이시더라고요.”

“그렇구나. 하긴, 저하께 시집오기 위해 하란타에서 조선으로 오는 길은 참으로 멀었지.”

“혹시 그 결정, 후회하신 적은 없으세요? 저하 하나만 보고 고향을 떠나오신 거잖아요. 힘든 일도 많으셨을 텐데.”

질문을 받은 헨리에트가 짧게 숨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세자빈의 시선이 과거를 더듬기 시작했다.

“힘들었었지, 네 말대로. 아마 네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저에게 청혼한 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마마였다면 절대 그런 일은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나도 그때는 어린 마음에 저지르고 본 것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그 결정에 감사하고 있단다. 나도 저하를 만나기 전까지는 지금의 너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거든.”

“정말요? 그렇게 금슬이 좋으시면서요?”

“그래.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되면, 앞길을 가로막는 그런 장애물들이 사소한 문제로 변해버리는 순간이 오고 만단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저하의 아내로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행복한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정도로 말이야.”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던 헨리에트가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모양이었다.

우희는 그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나니,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그녀처럼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흠……. 이러면 오히려 다행인 건가?”

“다행이라니요, 마마?”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혼잣말을 조금 해본 거야.”

우희가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 세자빈이 맥락 모를 혼잣말을 던져왔다. 무언가 유도 신문 비슷한 것에 당한 모양이었지만, 아버지를 닮아 연애 쪽으로는 둔해빠진 우희가 그것을 알아챌 리가 없었다.

***

하지만 편안한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갑자기 동궁전에 웬 금발벽안의 여인이 난입한 탓에 대화가 유부녀 토크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남편이 세자를 만나러 입궁한 사이 난입한 세자빈의 동향 사람이었다.

“마르그리트, 그게 정말이야?”

“그럼요. 마마께서는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그이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모르실 거예요.”

“열정 하면 우리 저하께서도 질 분이 아니신데?”

“우리 만중 님은 사나이 그 자체셨답니다. 네덜란드에서도 보기 드문 상남자셨죠. 그날 무도회가 끝나고 나오는 길, 제 허리를 감싸 안고는 하시는 말씀이……. ‘내 여자가 되어 주시겠소, 아가씨?’였다니까요? 그리고는…….”

“어머, 어머. 그 다음은?”

어째서 자신의 결혼 상담이 여기까지 흘러갔는지.

김만중의 처 마르그리트 역시 높으신 분과 결혼해 멀리 떠나온 여자에 해당했다. 원래 우희는 그녀에게서도 조언을 구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가 두 사람의 과거 연애담으로 화제가 흘러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세자 저하께서는 더하셨지. 그 어린 나이에, 암스테르담으로 떠나시는 걸 아쉬워하는 나를 붙잡으시고는. ‘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덴 하흐로 돌아오겠소, 헨리에트. 내 심장에 걸고.’라고 하셨다니까? 그리고는 바로 입술을…….”

“세상에, 어쩜. 저하께서도 로맨스 소설을 꽤나 많이 읽으셨나 보네요. 그래서 그 다음은요?”

문제는 미성년자를 배려한답시고 네덜란드어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유부녀의 찐한 이야기가 전부 우희의 귀에 꽂히고 있었다는 것. 우희의 네덜란드어 실력이 이토록 뛰어난지는 세자빈도 미처 알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희는 자신도 모르게 붉어지는 얼굴을 싸잡으며 예정에도 없던 성교육을 받아야 했다. 다만 두 유부녀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아주 쓸 데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남편에게 제대로 사랑받는 아내는 정말로 행복하다는 것을 정말,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오가던 핑크빛 연애담은 나랏일을 마친 남편 둘이 방문을 열고서야 끝이 났다. 시끄러운 대화가 방밖까지 들렸던 모양인지, 네덜란드어를 잘 아는 남편 둘 모두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볼 만했다.

“저하!”

“만중 님!”

남편을 맞이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두 아내의 얼굴을 보고, 우희는 확신했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혼인은 분명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 우희는 지금 드는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내일 다른 사람을 찾아가보기로 마음먹었다.

행복한 두 부부를 바라보다보니, 오늘처럼 고민을 털어놓기 적당한 사람이 한 명 더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슷한 이유로 고향을 떠나 조선에 정착한 사람이 있었다.

문제는, 우희 자신이 그 사람을 조금 불편하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

그날, 황제의 뜻을 받들고 조선으로 찾아온 사신이 밤늦게 영의정을 방문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쩔 줄 몰라 할 상황이었지만, 사신을 맞아들이는 정승은 그저 담담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으음. 그건 딸아이의 의사에 맡기려고 했는데. 자가와의 일이 그렇게 되고 나서 카간께서도 국혼 일은 내 뜻에 맡기실 것이라며 따로 약조를 하셨었소.”

“예. 그분께서도 분명 그리 말씀하셨었습니다, 태사님. 하지만 카간께서는 혼인을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따님께서 어떤 분인지 그저 궁금하실 뿐이라 하시더군요.”

“그렇소? 하지만 그게 혼인을 명하시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소. 카간께서는 나와 맺으신 약조를 깨려는 생각이신지?”

정승은 아끼는 외동딸을 먼 청나라로 보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아마 상대가 청나라 사신이 아니었다면, 아니 그의 태도가 정중하고 간곡하지 않았더라면 당장 그를 집밖으로 쫓아냈을 기세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태사님. 카간께서는 태사님의 의견을 절대 존중하여, 직접 고안하신 방식으로 따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일단 이걸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사신도 그런 기미를 알아챘는지, 재빨리 품에서 꺼낸 작은 상자를 정승 앞으로 밀어놓았다.

상대는 황제가 스승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인물,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건……? 이게 어떻게 북경으로 들어간 것입니까?”

“그것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사님.”

“……이걸 보니 카간께서 꽤나 진심이신 듯한데……. 알겠습니다. 어떤 제안인지 일단 들어나 봅시다.”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정승은 꽤나 놀란 것처럼 보였다. 황제는 단순히 정략적인 목적을 위해 딸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우희 본인에게 정말로 관심이 생긴 듯했으니까.

제안 또한 그리 억지를 부리는 내용이 아니었다.

어차피 정승도 경술, 신해년에 닥쳐올 대재앙을 대비하기 위한 교섭을 하러 북경에 방문해야 하는 상황. 이 정도라면 황제의 부탁을 거부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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