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검이 너무 친화적이다.
* * *
그 날 밤. 어머니가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어머니.”
“앉거라.”
“예.”
분위기를 잡는 이유가 무엇인가?
“금강아. 네 정녕 왕위를 넘보지 않을 생각이냐?”
누가 좋다고 왕위를 넘봐?
설마 이 어머니란 여인은 나를 죽게 만들고 싶은가?
나중에 나 죽고 금산사에 들어가봐야 정신차리지.
“네. 백제가 다시 이 마한땅에 세워진지 백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안으로 형제간의 왕위다툼이 있어서도 안 되며 장자가 아닌 소자가 다음 왕위에 거론된다면 조정은 큰 혼란에 휩싸일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하여도 다음 왕위는 신검형님의 것입니다.”
“으음.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왕위를 부추길 생각은 아니었나?
“어머님. 아버님과 상주의 할아버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버님께서는 상주에 계신 형제분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검, 양검, 용검 형님과 소자 역시 상주에 가기 어렵지 않습니까.”
“네가 지금의 대왕처럼 신검, 양검, 용검 형제와 좋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만 해도 좋지 못하다.
기억에 따르면 당장 양검, 용검 형제만 해도 언제나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으니 어지 그렇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알았다. 네가 그렇게 까지 말하니, 이 어미도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제법 현실적인 여인이었다.
분명히 내가 왕위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녀도 견훤에게 입김을 넣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신검의 백제가 될 것이고, 박술희, 유금필 등 치트 무장들을 들고 있는 왕건에게 패배할 것이다.
때가 되면 원 역사대로 등창 때문에 견훤은 죽거나, 금강이 생존하는 역사가 될 테니 백제에서 탈주하지 않고 그 전에 왕건과 승부내겠다며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다 죽을 수 있다.
어머니를 처소로 보내고 결심했다.
“그때가 되면 내가 탈주해야지.”
왕건이란 위인은 내가 항복하면 결코 나를 버리지 못한다.
건국 초기고 호족들의 힘이 큰 상황에서 견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왕자의 귀부는 왕건과 고려의 사기를 하늘 높이 올려줄 것이다.
그리고 신검은 어이가 털리겠지.
그간 숨죽여있던 내가 대뜸 고려로 귀부해버렸으니까.
“즉, 뒤통수 작전이라는 거지.”
아주 세게 배신을 때리는 것. 이른바 배신엔딩이라는 거다. 실제 역사대로 고려가 삼국통일을 하고 그 역사에서 금강이라는 이름의 내가 생존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하면 제대로 된 활약도 아니다.
필시 그 여신은 웃음거리가 되겠지.
“문제는 보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그 실제 역사에서는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의 귀부를 받아줬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는 삼국통일을 위해서였다.
아마 내가 견훤의 대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인데, 이 경우 좋은 취급을 받는다 쳐도 결국 망국의 왕자. 백제 멸망 이후에도 백제인들의 구심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절대로 권력과는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
특히 왕위후보로 거론되기라도 한다면 그 조차도 구심점의 이력이 될 수 있는 거다. 신라야 원래 다 기울어져가는 해라 경순왕이 나라를 갖다바쳐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소리다.
“역시 권력에서 멀어지는 것이 좋은 건가. 멀리 떠나는 것이 좋은가. 예를 들면 탐라라던가. 아니면 일본이라던가. 쥐죽은 듯이 살면, 권력에서 멀어질 수 있겠지.”
‘금강’
닉값을 하니 물리적으로 죽을 일은 없으니, 그 점은 다행이 아닐까?
문제는 따로 있다.
물리적으로 죽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죽는다는 소리지. 전굿 곳곳에 방을 붙여 나 수배하면 묻히는 건 순식간이다. 오히려 닉값하는 몸 때문에 백제인들이 더욱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고.
“아니면 왕자의 신분을 벗어버리는 건? 제 아무리 아버지라도 아들이 온갖 패륜을 저지르면 폐서인으로 만들겠지. 그리고 어디 조용한 곳에 내려가는 거야.”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가는 법. 팔만한 재물들을 모아서 몰래 밖으로 빼돌리고 나중에 내쫓긴 후에 내 멋대로 살면 그만이다.
“형제들은 나를 믿지 못하고 있으니 역시 떠나는 것이 답. 백제를 떠나면 어디서 상단이라도 꾸려볼까?”
쿵!
뭐야, 누가 문이라도 부섰냐?
슬쩍 고개를 돌리자 눈에 보인 것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들어온 신검이었다.
“아우야!”
“음? 시.신검형님?”
“금강아. 내 아우야!”
“네?”
“내 그동안 너를 의심하고 경계하였는데. 너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최종빌런 신검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다.
아, 이거 잔소리 각인가?
“???”
“네 비록 어머니가 다르다고는 하나. 대 백제국 대왕폐하의 피를 이은 자식이 거늘. 어찌 그리 쉽게 왕궁을 떠난다는 말을 할 수 있느냐?”
뭐? 갑자기 영문모를 소리를 하고 있다.
“내 그간 너를 오해하고 있었다.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내 미처 몰랐구나. 아우야. 우리 한 번 달려보자꾸나! 저 고려의 왕건을 꺾고, 우리 함께 삼한일통의 축배를 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거 뭔가 아주 대어를 낚은 모양이다.
나를 껴안고 악어의 눈물 같은 것을 뚝뚝 흘리고 있는 이 빌어먹을 놈은 아무 래도 내 혼잣말을 듣고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순간 욕이 사발로 나올 뻔했다.
뭐야, 이놈 갑자기 왜 이리 친화적이야? 바로 며칠 전에만 해도 금강을 못 갈궈서 입안에 가시가 돋는 놈이었는데?
“어, 저기 형님.”
“아무 말 말거라. 금강아. 내가 네 형이다. 형으로써 내 동생을 의심하고 경계하였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너와 나 둘이서 술을 마시자꾸나.”
아무래도 역사가 제대로 비틀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 * *
금강이 검이 아닌 서책을 손에 쥐겠다고 선언한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기절초풍할 소식은 금강의 형제들인 신검, 양검, 용검에게도 전해졌다.
“신검형님. 아무래도 금강이 그 자식이 잔꾀를 부리는 모양입니다.”
금강이가?
“그건 무슨 소리냐?”
“아니, 글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을 휘두르던 그놈의 자식이 이제는 책을 읽겠다면서.”
책을 읽는다니. 그건 무슨 듣도보도 못한 소리인가.
틈만 나면 검을 휘두르며 제 잘 난 척은 혼자 다 하던 놈이다.
아버지의 자식들 중, 가장 뛰어나고 외모도 좋아 궁의 여심을 독차지 하는 그놈이 처소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는다?
어리석은 동생들이 하는 말이라 인상이 절로 찡그려진다.
“책을 읽겠다고? 즉, 문관이 되겠다. 그 말이냐?”
“예. 하여튼 수상한 놈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옵니다.”
“자세히 얘기 해보거라.”
동생들이 자기만 못하다 해도 생각이란 건 있는 놈들이다. 어디서 증거도 없는 말을 가볍게 뇌까릴 녀석들이 아니다.
그래서 일단 들어보니 그렇다
동생들이 술을 마셨나 할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실망할 말들을 아낌없이 하다니.
“확실히 이상한 놈이로군.”
“그놈 이상한 거 하루이틀이지만, 그 덕에 아버님이 좀 실망하신 듯 보였습니다.”
“우리 형제를 무시하면서 아버님에게 총애받던 녀석이 아주 보기 좋게 되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형님?”
금강이가 실수를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런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입조심해라. 아무리 그래도 같은 아버지의 핏줄을 타고 난 형제다. 그렇게 말하면 못 쓴다.”
신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아버님을 실망시켰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 장남으로써 아우를 위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너희는 따라오지 말거라.”
신검의 말에 양검과 용검은 히죽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참 꼴이 좋게 되었어.”
동생들인 양검과 용검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신검은 고려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속이 뻥 뚫렸다.
그럴 만도 했다. 얼마간 그 배다른 동생이 아버님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던가.
그래서 왕위에 욕심을 내지 않을까. 걱정되던 차였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문관이 되겠다고 하고 자신을 보필하겠다고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래도 듣기는 좋았다.
물론. 그 말들이 정말 진실일 경우라면 말이다.
금강은 자신이 보기에도 뛰어난 무장의 기질을 타고 났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책을 읽는다고 하니 그 저의를 의심해볼 필요성이 있었다.
“시.신검 왕자님이 아니십니까?”
“안에 금강이 있느냐.”
그 여우같은 놈을 오늘은 제대로 약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예. 그럼 왕자님께.”
“······.”
어디 한 번 들어가볼까 하는데, 문득 금강의 처소에서 무슨 소리가 들렀다.
금강의 목소리인 것 같아 신검은 처소를 지키는 병사에게 손짓을 하여 금강을 부르는 것을 멈췄다.
“잠깐, 안에서 뭐라 하는지 들어야겠다.”
어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역시 권력에서 멀어지는 것이 좋은 건가. 멀리 떠나는 것이 좋은가. 예를 들면 탐라라던가. 아니면 일본이라던가. 쥐죽은 듯이 살면, 권력에서 멀어질 수 있겠지.”
저게 무슨 말인가. 권력에서 멀어지다니?
왕위에 관심이 없었다는 건가?
“아니면 왕자의 신분을 벗어버리는 건? 제 아무리 아버지라도 아들이 온갖 패륜을 저지르면 폐서인으로 만들겠지. 그리고 어디 조용한 곳에 내려가는 거야.”
패륜까지 저질러 왕자의 자리를 내놓겠다? 그리하면 왕권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
설마. 정말로 금강이는 욕심이 없었다는 말인가?
장남으로써 동생이 배가 다르다고 하여 경계하고 의심하였던 건가?
‘이럴 수가. 나는 대체 뭐하는 놈이란 말인가! 저런 기특한 동생을 시기하고 있었다니!’
신검은 절규했다.
그동안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선보이며 젊은 나이에 전장에서 활약한 금강이었다.
형인 저보다 백제의 대왕인 아버지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당연히 왕위를 넘볼 수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전투에서 몇 번 고전한 자신보다 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녀석이 저런 생각을. 나는 얼마나 못난 형이었다는 말인가!’
신검은 깨달았다. 자신의 시기가 금강을 이토록 몰아붙이고 있었고, 정작 금강은 왕위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물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금강이 싫다고 해도 상황은 시시각각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금강이 저런 생각을 품고 있는데, 과연 형으로써 견제하는 것이 옳은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검은 결정했다.
자신은 신검이다. 대 백제국 대왕 견훤의 장자이다. 후일 차기 왕좌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동생 하나를 핍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검은 형제간의 이 소원한 관계를 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아우야!”
* * *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내 그간 너무 오해를 했다. 미안하다. 금강아.”
신검이 이 정신 나간 작자가 대뜸 미안하다면서 술판을 벌였다.
진짜 저녁밥에 누가 약이라도 넣었나?
이 양반이 이럴 놈이 아닌데. 일단 분위기는 맞추자. 그래야 내가 앞으로가 평탄하다.
이 모든 것이 시험일 수 있으니까.
“형님. 이 아우는 진심입니다. 청컨대 형님께서는 부디 제게 고개를 숙이지 말아 주십시오.”
“하기야. 네가 무슨 죄가 있느냐. 다 아들들을 차별하는 아버님께서 너무한 것이 아니냐.”
견훤 그 양반은 자식농사를 망쳤다.
아마 아자개한테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성격이겠지.
“결국 할아버님과 같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냐?”
“할아버님은 유독 아버님을 미워하였다고 들었사옵니다. 자식들을 차별한 것으로 압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자개의 경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음. 맞지. 하기야. 아버님이 아주 꽉 막힌 분이 아니더냐.”
“예. 하여 우리 형제라도 좋게 지내려면 제가 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대가 이어질 정도로 형제끼리나 부자관계가 소원하다.
상주에 있는 아자개가 견훤을 못 마땅해 하는 것처럼 견훤은 신검을 못 마땅해 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아자개는 자신의 뒤를 이어줄 줄 안 견훤이 배신때리고 대뜸 백제왕이 되고, 성씨를 견으로 바꿨으니 화가 날 만하다.
견훤은 슬슬 늙어가면서 왕건을 상대하기 벅차고, 삼한통일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자라고 있는 신검은 고려와의 전투에서 그다지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금강의 기억을 보면 신검이 못나기만 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나쁘지는 않는데, 묻히는 타입? 상대가 왕건의 고려기 때문에 견훤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어 실력이 좀 죽어보이는 것이다.
적어도 본래의 금강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지 말거라. 아우야. 내 너를 믿을 것이다.”
“형님?”
“너는 그저 나를 보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검이 되어 내 시대에 함께 달려가야 하지 않겠느냐.”
이 인간이 누구를 전장으로 보내려고?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건 이전의 금강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단편적인 지식과 기억이지 원주인인 금강의 군사적 능력까지 가지고 있지는 않다.
“형님. 지금부터 형님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도 있는 말을 해도 되겠사옵니까?”
“음. 한 번 들어보자꾸나.”
신검은 술잔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봤다.
“차기 왕은 형님의 것입니다. 형님 결코 이 아우를 의심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설령 형님께서 왕이 되신다 한들 결국 변수는 고려가 될 것입니다.”
“왕건을 말하는 것이냐.”
왕건은 불새출의 영웅이다. 분명히 말해 신검이 백제의 주인이 된다면 원 역사처럼 한판 싸움에서 질 수도 있다.
“예. 형님. 아버님께서는 백제천하를 호령하는 위대한 대왕이시지만, 고려의 왕건 이야기가 내심 주눅드는 분이십니다.”
분명 견훤은 그럴 거다.
내가 사극보고 그러는 게 아니다. 분명히 말해서 금강의 기억 중 하나로 견훤이 자주 왕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금강아, 이 아비가 왕건과 싸워 고전을 면치 못하나, 너는 고려의 태자에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까지 했으니, 이번 내 선택에 상당히 서운해 했을 거다.
“음. 그렇지.”
“결국 고려의 왕건을 격퇴하는 자가 왕위를 잇지 않겠습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신검은 내 말이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도 알고 있다. 견훤이라는 인물이 왕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고려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알고 있다.
“형님. 이 아우는 형님의 칼이 될 생각은 차고도 넘치지만, 아버님의 모습을 보면 형님이 공을 세우시더라도 제게 넘어올까 그 점이 염려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견훤이 내게 실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계속 해보거라.”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란의 시대에는 문치의 왕이 아닌 무치의 왕이 올라야 합니다. 그리고 무치의 왕은 좋은 문치를 다루는 신하들이 필요하지요”
“네 말은 즉, 네가 후일 그 문치를 하겠다?”
그럴 리가. 나는 반드시 백제에서 탈주하고 말 것이다.
내 말을 어떻게 알아처먹은 건지 모르지만,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는 신검의 모습은 참 비열하게 생겨먹은 관상이었다.
이런 놈에게는 아첨이나 열심히 해야지.
“예. 형님의 치세에 저는 형님이 밑에서 신하로서 백제의 내부를 돌보고 싶사옵니다.”
“내 너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아우의 군사적 재능을 잘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네가 뛰어난 것은 군부의 장수들도 다 아는 일.”
아니, 나 진짜 모르는데.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21세기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전장에 나갈 수 없다. 억지로 나가란다면 나가겠지만 모처럼 왕자다. 나는 뒤에서 멀뚱히 말뚝 박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신검이란 놈. 이상하게 친화적인 것이 수상하다.
그래. 이건 하나의 시험이다.
-네놈이 정말 왕위에 관심이 없는지 다음 전투에서 두고 보겠다.
뭐 이런 뜻이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곧 죽어도 전장에 나가는 것이 신검을 안심시키는데 좋을 것이다.
아니면, 나를 죽이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내 휘하에서 전투를 치러보거라.”
아, 결국 피할 수 없는 수순인가. 빌어먹을 신검. 나를 기어이 전장으로 보내 죽이려는 것이다.
“형님. 저는.”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네가 아버님의 눈 밖에 난다면 후일 내가 대왕의 지위에 오른다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내 옆에서 나를 보좌하려면 지금부터 실력을 쌓아둬야지.”
심드렁하게 말하면서 신검은 내 술잔에 술을 따랐다.
“설령 눈 밖에 난다고 해도.”
“어허. 그만하거라. 내가 너를 옆에 두겠다고 하지 않느냐.”
내 보기에는 훗날 신검에게 참살당하지 않아도. 신검은 내 금강인생의 트롤링할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