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25화 (25/154)

25. 업적 달성에 대한 보상

* * *

내 말에 능환만이 아니라 견훤의 얼굴도 경악에 물들었다.

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설마 이렇게 확신에 찬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이 자리에 있는 신하들은 예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받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발해 내부는 지금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계속된 전쟁으로 군력도 많이 소모되었고, 흑수말갈은 대놓고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호오라.”

“지금은 거란을 상대해야 하니 군사를 그리로 돌릴 수 없으나, 결국 거란을 물리치고 나면 내부를 결속하고 흑수말갈을 치지 않겠습니까.”

흑수말갈은 발해에게 골칫거리 족속이다.

당장 무왕 때만 하더라도 신생국 발해가 약하니 당나라와 연락하여 발해와 대항할 생각을 하였다.

“음.”

“아마 요동을 돌볼 틈이 없을 겁니다. 우리의 힘으로 발해와 전쟁을 치르는 건 무리지만, 거란을 대신해 우리가 관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호오라.”

아니면 거란의 땅을 노리는 것도 좋다.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이, 어차피 야율아 보기가 대군을 끌고 왔다가 발해에서 패하고 죽기라도 한다면 거란은 다시 붕괴될 것이다.

발해는 내부를 돌봐야 하고 중원은 또 저들끼리 싸우고 있다.

그 와중에 후백제 정예군이 들어간다면?

한 번 해볼 만하다.

“신검이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금강이의 계책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폐하.”

신검이 돕는다면 완벽하지.

“백제는 부여의 명맥을 이은 나랍니다. 당연히 요동도 우리 땅이 아닙니까?

폐하. 우리는 요동의 땅을 기반으로 발해와 함께 고려를 칠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위 아래로 샌드위치 공격이라는 뜻이다.

견훤은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마냥 발해에 기대지 말고, 요동에서 우리도 힘을 모아 위, 아래로 고려가 정신을 못 차리게 두들기면 될 것이다. 우리 금강이가 아주 기특해. 신검아, 앞으로는 너와 금강이의 시대다. 형제들끼리 잘 어울려 삼국통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알겠느냐?”

“예. 폐하.”

신검은 견훤이 내 칭찬을 해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제 목숨을 구해줬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폐하. 고려와 신라군이 철군하고 있습니다.”

고려군의 철군은 당연하지만, 신라군은 대야성 되찾으려다 불쌍한 꼴이 되었다. 고려탓에 어쩔 수 없었겠지.

“그렇다는 말이지. 애술장군은 하던 대로 대야성을 맡게. 자, 장수들은 각 휘하부대를 이끌고 철군할 준비를 서두르게. 금강이도 나주의 군대를 돌리도록 하거라.”

“예, 폐하!”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났다.

이를 악물고 고려에 인질로 떠나던 양검은 자기랑 열심히 듀오를 이루었던 용검마저 까대면서 그렇게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결국 고려와 다시 전쟁이 터지면 죽게 되겠지.

고려 측에서는 왕건의 생질 왕신이 오게 되었다.

인질을 교환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철군이 시작되었다.

고려군이 먼저 철군하고 신라도 어쩔 수 없이 철군하게 되었다.

결국 가장 불쌍하게 된 것은 신라다. 저놈들은 서라벌까지 털린 데다가, 대야 성마저 되찾지 못하였으니 죽을 맛이겠지.

심지어 쓸 만한 백성들도 상귀가 빼 왔다.

사실상, 외교적, 전술적 승리로 개선한 후, 완산주에서는 나주도독인 나와 상귀에 대한 논공행상이 열렸다.

“금강아, 이번에 네 공이 매우 컸다. 특히 유금필의 눈을 속여 나주에서 고려 군을 잡은 것이나, 배를 늘려 없는 군사들을 대군으로 보이게 한 점도 아주 대단했다. 그 덕에 신라는 지금 난리가 났다지.”

“예.”

“그런데 너의 전략이 왕건을 고구려의 광개토처럼 만들었더구나.”

“예?”

내가 왕건을 광개토로 만들었다고?

“아니, 그렇지 않느냐. 곧 신라는 왜구들이 약탈하게 될 것인데, 그때마다 고려가 도와줄 것이 아니냐? 고구려의 영락태왕이 신라를 그리도 돕지 않았냐는 말이야. 하하하하핫!”

광개토태왕. 한국사 제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군주.

광개토태왕의 실책은 신라에게 상국행세만 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고려왕인 왕건은 신라를 집어삼키기 위해 판을 짜두고 있는 거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신라가 고려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폐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지금 신라는 고려의 보호국입니다. 앞으로 왜 구의 약탈이 끊이지 않을 것이니 그때마다 고려는 신라를 도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신라를 그렇게 구원했었지.”

아, 그런 의미였다.

확실히 그런 의미에서 볼 때는 왕건은 광개토가 맞다.

전 고려라면 이해는 가다만 지금의 왕건이라면 신라를 구원하는 바보같은 왕이 되겠지.

솔직히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이번 전투로 신라 호족들 다수가 백제로 붙었다. 원 역사에서 경애왕 시해하던 때와는 달리 빈집털이라 신라호족들이 마냥 백제에 대한 반발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왕자의 군대가 좀 손실을 보았으나, 나주와 서라벌의 피해만큼 더 하겠는가.

오히려 고려가 어이없이 물러났고 후백제의 군사력을 증명한 전투이다. 박쥐같은 호족들이 붙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 금강이에게 어떤 상을 내리면 되겠는가?”

“폐하. 소자는 그저 백제를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애초에 내릴 상이 있나?

굳이 있다면 좌평직인데, 그도 아니면 태자의 자리다.

그런데 견훤도 알 것이다. 내가 지금 태자의 지위를 거절할 것이라는 걸.

“그러고 보니 옛백제의 의자대왕께서는 40명이 넘는 자식들에게 좌평의 직위를 내렸다고 들었다. 비록 그 탓에 귀족들의 반발을 샀으나, 금강이에게 좌평의 지위는 결코 과하다 볼 수 없다. 안 그런가?”

“예, 폐하. 금강왕자께서는 나주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고려의 장수 유금필을 잡았습니다. 또 상귀장군을 서라벌로 보내 서라벌의 금은보화와 많은 백성들을 끌고 왔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공이 큰데, 대야성까지 구원하여 적들의 포로가 된 두 왕자님을 협상으로 구하였으니, 공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이 듭니다.”

최승우가 쓸데없이 내 공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대놓고 후백제 조정에 파장을 몰고 왔다.

이미 내 활약을 지켜본 장수들은 아무런 불만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능환의 얼굴만 일그러졌다.

자네는 너무 늙었어. 물러날 때가 되었지.

“금강아 들었느냐. 내 너에게 나주 좌평의 지위를 내릴 것이니라.”

심지어 신종 좌평직이다.

“황공할 따름입니다.”

왕자의 신분으로 나주도독에 이어 좌평이라.

이 정도라면 내 파벌이 생길 만하겠군. 이미 조정에서도 제법 나를 보는 시선들이 호의적으로 변했다.

신검이 변했으니 그 파벌도 변화했을 터.

“상귀장군도 듣게. 자네의 공도 아주 커. 장군이 없었다면 어찌 금강이가 서 라벌을 도모할 수 있었겠는가?”

맞다. 솔직히 서라벌은 나도 몰랐다. 상귀가 너무 완벽하게 털어버렸으니, 솔직히 역사에서 후백제가 통일했으면 상귀가 제법 이름 좀 날리지 않았을까.

“소장 역시 백제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아니야. 내 상귀장군에게는 나주도독의 자리를 내릴 것이야.”

상귀도 내 덕에 아주 크게 출세했다.

그래. 이게 다 내가 잘 난 덕이다. 어쨌든 대야성을 신라와의 국경으로 사실 상 확정시켰으니, 언제든 고려가 엿같이 행동하면 주둥이를 찢어버릴 수 있다.

“한동안은 휴전이지만, 백제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쥐게 되겠군.”

문제는 이제부터다.

내가 발해를 고집하다 삼한의 분열일 고착시킨 것은 아닌가.

차라리 원 역사처럼 가는 것은 어땠을까. 그러니까. 백제가 통일하는 것 뿐.

위는 요가 가져가서 그대로 역사가 이어진다면?

아니다. 이미 바뀐 역사다.

잡아온 신라인들은 억지로 나주땅에 정착시켰고. 지금은 백제의 농업생산량에 이바지하게 할 생각이다.

그 무렵. 허공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후백제의 위기를 극복하다! 업적달성!]

설마 대야성 싸움이 삼한의 패권이 달린 일이었나?

[천년왕도의 빈집털이! 업적달성!]

[당신의 업적에 신들의 가슴이 웅장해졌습니다. 콧대가 높아진 여신이 당신에게 선물을 내립니다.!]

“선물?”

역시 신인가? 업적을 달성하니 소정의 상품이라도 주는 구나.

하긴, 휴가 3일을 위해 안달 난 신이다. 그 정도는 해주겠지.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상귀에게 도독의 자리를 넘겨줄 겸. 나주에 들른 날. 꿈에서 어떤 여인이 나타났다. 여신과는 다르게 생겨 먹은 위인이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주 관아의 뒤뜰의 흙 깊숙한 곳에 네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니라.

업적 달성 이후 그런 꿈을 꾼 것이다.

연기는 그럴 듯하게 했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여신의 것이라고 대충 예상했다.

다음 날, 나는 힘 좀 쓴다는 장정들을 모았다.

최승우는 그런 내 행동이 기이한지 잔인하게 파헤쳐지는 나주 관아 뒷마당을 쳐다보면서 내게 말했다.

“갑자기 어인 일로 장정을 모아 관아 뒤뜰을 파내는 것입니까?”

“지난밤 꿈에 소서노께서 나타나셔서 내게 나주관아 뒤뜰을 보라 하셨습니다.”

이 정도 핑계면 되겠지.

아마 여신도 그런 설정을 바랄 것이다.

정말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번에 내게 큰 거 하나는 주겠지.

“왕자님! 서책이 발견되었습니다!”

수군에 소속된 병사가 흙이 묻은 책 몇 권을 들고 왔다.

“이건?”

척봐도 수백년은 된 것 같은 고서다.

책의 앞부분을 읽어보니 저자의 사정이 있었다.

저자는 660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이 공격할 때, 피난한 인물로 본래는 사비에서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의자왕이 그의 말을 물리치고 어쩔 수 없이 이곳까지 내려왔다가 여의치 않아 이것을 묻었다고.

물론 설정이지. 그 여신이 보낸 것이 뻔하다.

“시발. 사랑합니다. 여신님! 내가 만반도 해준다!”

내 앞에 여신이 있었으면 키스라도 했을 것이다.

좋아, 여기까지 온 이상, 최대한 저질러 보자.

탈주는 만반도를 이룬 후에 하면 그만이다.

* * *

금강이 여신에게 열렬히 구애의 말을 아끼지 않을 무렵.

천계에서는 신들이 최근 핫플로 올라오는 금강의 스트리밍 방송을 관람하고 있었다.

금강을 대리자로 선택했던 여신은 고개를 저었다.

“에휴. 이럴 때만 저러지.”

“킬킬킬. 쟤 니한테 고백하는데?”

“그런데 괜찮겠냐? 원래 조금 더 업적세우면 아예 큰 거 하나 준다며?”

한 신의 말에 여신은 한숨을 쉬었다.

그랬다. 원래 조금 더 업적을 세우면 무기고 전부 퍼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신의 위엄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보다보니 너무 가슴이 철렁이게 만든다. 하는 일 하나하나마다 여신을 곤란하게 만든다.

비록 물리적으로 죽지 않는 몸이라도 정도가 있지. 저러다 뭔가 일이 터지면 곤란하다.

“냅둬. 지 남자 챙기겠다는데. 내기 규칙에 위반되지만 않으면 되지.”

대리자가 업적을 달성할 때마다 신들은 대리자에게 상을 내릴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었다.

그래서 어긴 것은 아니다. 다만 여신은 이왕이면 나중에 잔뜩 모아서 한 번에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볼 때마다 금강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크하하하핫! 사랑노름이라니. 아주 배지가 불렀구나. 그래서야 나를 넘을 수 있을까?”

바로 얼마 전까지 조선이 망했다며 주둥이에서 술냄새가 가시지 않던 신 하나가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설마 선조가 여진족을 통합하고 후금을 세울 줄 누가 알았겠냐고! 푸하하핫!”

바로 얼마 전까지 질질짜던 저놈은 대리자가 갑자기 누르하치 대신 여진족을 통합하더니 압록강을 넘은 왜군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러니 기세등등할 수밖에.

여신은 다짐했다.

‘그래. 휴가고 뭐고 삼국통일이라도 해. 뭐든지 해줄 테니까.’

이참에 이것들 몰래 하계로 내려가 참견질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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