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31화 (31/154)

31. 맛보기

* * *

발해와 백제의 거리가 먼 만큼, 나는 수시로 발해의 소식을 전해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가독부가 요주를 공격해서 요주자사를 죽이고 거란의 백성들을 붙잡았다 합니다.”

최승우가 은밀히 내게 밀서를 전해줬다. 발해에서 온 것으로 대인선이 후백제와의 동맹에서 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슬슬 일어날 즈음이라 여겼다.

대인선의 요주공격. 이 공격으로 야율아보기는 발해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언젠가 터질 전쟁이었다. 이제 그 때가 이르렀을 뿐.

“드디어 시작되었군요. 수비군을 제외하고 낼 수 있는 백제의 군사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고려, 신라와의 국경의 성들에 있는 병력을 제외하고 2만 5천입니다.”

2만 5천. 의외로 많다.

아마 최승우니까 이것저것 걸릴 만한 것을 다 제외하고 최대한 문제없이 낼만한 병력을 말한 거겠지.

“일본군은요?”

“4만입니다.”

“6만 5천에 발해 수비군까지 더하면.”

나쁘지 않다. 대인선이 서경압록부로 분조까지 해둔 데다가, 상경까지의 길에 여러 성을 쌓았다고 했다.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노상에 대해서는 일단 대인선에게 언질을 뒀으니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고려는 어떻게 되었답니까?”

“예. 동맹은 무산된 모양입니다.”

“왕건 그 사람이 거란과 동맹을 맺을 위인은 아니지만 한 번 떠보기야 했겠죠.”

왕건은 지금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니까.

최소한 뭔가 지푸라기라도 필요했다.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격이 다릅니다. 상대는 이미 북방의 대국을 침범하는 신흥강국. 고작해야 신라 땅의 반 밖에 차지하지 못한 나라가 그들과 손을 잡다니. 쯧쯧쯧.”

통일하고 거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작은 고려가 어떻게 요나라와 동맹을?

웃기지도 않은 소리다. 왕건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구나.

“포병대도 준비가 다 되었겠죠.”

“예. 구포를 개량하고, 주화도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그 신무기로 거란에게 엿을 먹여야한다.

“대인선이 요동의 지도는 보냈습니까?”

“예. 어차피 우리가 보낸 상인들이 요동 쪽을 확실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일찍이 우리와 군사동맹을 맺은 대인선은 현재 요동의 상황을 상세하게 표시한 지도를 보냈다.

언뜻 보면 봉역도 같은 이것은 거란놈들이 점령한 요동을 표시한 것이라, 어디를 공략해야 전쟁이 수월할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요나라 놈들은 우리가 공격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아무리 배를 움직인다 한들 고려를 두고 바다 건너 땅을 공격할 거라 생각지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요는 우리의 군사력을 알지 못한다.

고려도 마찬가지고.

무엇보다도 거란은 지금 자신감이 넘친다. 20만이 넘는 군사력을 지녔는데,

“백제 따위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거란이 발해를 알고 있는 만큼, 우리도 거란을 알아야 합니다.”

“예.”

“그리고 함대도 준비되어있겠지요.”

발해를 돕기 위해 올라가야 하니 대형선 수백척은 필요하다.

이미 준비는 해뒀다. 다타라에서도 힘을 보탰고, 탐라에서도 끌어모았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실 왜선으로만 꾸려서 왜구로 위장하여 요동에 진입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그게 안 되는 것이 현실이지요.”

일본의 대군을 받아내었으니 그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예. 애초에 위장해서 얻는 이익도 없습니다.”

“굳이 지금 변수가 있다면 거란이 고려와 연합하여 남하하는 것 정도인데.”

진짜 그건 말도 안 된다.

일단 동맹을 해야 하는데 야율아보기가 말했다시피 받아들이지 않을 테고.

“지금 거란의 입장에서 그럴 리가 없죠. 상좌평도 알다시피 대인선은 이번에 요주자사까지 죽이는 등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더군다나 직접 친정까지 했어요. 이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거란을 상대로 전면전도 각오했다는 의미입니다. 발해가 작정하고 모으면 병력 10만은 될 것인데, 그 대군을 두고 남하하여 백제를 도모한다? 설령 일부만 뺀다고 해도 발해를 침략할 군세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야율야보기는 지금 제법 긴장했을 것이다.

대인선이 바보가 아닐 테니 노상은 처리했을 것이고, 대인선이 직접 친정을 했다는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더 함부로 고려와 손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장수는 누구로 하시겠습니까?”

“일단 상귀장군을 보내도록 하죠. 병력 1만이면 치고 빠지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허허. 나주도독이 꽤 바쁘겠습니다.”

내 밑에서 꿀 빨았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커흠.

“그렇게 한 번 털어보고 곧바로 6만의 군대를 올립시다.”

“아, 그리고 이것은. 일본에서 온 국서입니다. 왕자님께서 화약국에서 도통나오시지 않으니 폐하께서 신에게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최승우는 대뜸 내게 장인이 보낸 국서를 전달했다.

일본에서? 뭐하러?

“무엇입니까?”

“지원올 4만의 일본군 총사로 금강왕자님이 되었으면 한답니다.”

당장 일본에 4만을 이끌 만한 재목이 없는 건가.

그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아니면 이번 전쟁 때문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고.

“나쁘지 않군요.”

4만을 이끄는데 일개 백제의 장수가 할 수는 없는 일. 그렇다면 왕자인데, 신검은 그 실적이 좋지 못하고, 용검은 논할 가치도 없으며 나는 공도 있고, 천황의 사위가 되는 입장이다. 그럼 내가 가장 만만하지.

“폐하께도 상주할 것이니 곧 상귀장군의 출정명이 내릴 것입니다.”

휴전 기간을 5년으로 뒀는데, 대인선의 요주공격과 함께 후백제 조정은 바삐돌아갔다.

조정은 발해와 거란의 전쟁과 동맹지원문제로 논의가 한차례 오갔으며, 결국 동맹국으로서 지원은 확실시 되었다.

어차피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냥 형식적일 뿐이지.

그럼 앞으로 논의될 것은 전략수립이다.

이번 전략은 오로지 나한테 달려있었다.

실패하면 그냥 탈주할 생각으로 수립하는 전략.

“금강아. 네 계획이 어찌 되느냐?”

“예. 폐하. 우선 상귀장군으로 하여 수군을 동원. 요동을 한차례 타격할 것입니다.”

“괜히 우리가 먼저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능환이 이 노망난 늙은이가 또 괜히 시비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그렇겠지.

“그렇다해도 저들이 어쩌겠습니까? 왕건과 연합해서 남하하려 해도 휴전을 한 상태입니다. 감히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실패하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실패할 리가 없습니다. 빈집을 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거란이 대군을 동원하면 후방이 빌 것은 당연하다.

거란의 유목민족 답게 그 인구수가 중원에 못미친다. 기록상 발해를 20만이 넘는 대군으로 공격한다면 수비군이 어디 많이 남겠는가?

“그 다음에는?”

“아마 그때 즈음에는 발해는 거란의 대군에 침입받을 것입니다. 때에 맞춰 6만 대군을 실은 함대가 압록강을 통해 상륙. 거란군의 뒤를 요격할 것입니다.”

“나쁘지 않구나.”

견훤이 흡족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금 더 밀어붙여야지.

“신무기로 적들을 교란하고, 발해와 함께 포위섬멸하면 어렵지 않게 거란군을 궤멸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은 애들 장난이 아닙니다. 왕자님.”

능환이 저 인간은 지 입으로 저걸 말하는가?

나는 견훤이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뭐라고 했더라 신검이 출정할 때 막사에서 자고 있었다지?

“애들 장난이 아니라서 신검형님이 위급할 때, 막사에서 주무셨습니까?”

“커.커흠.”

할 말이 없으니 헛기침이나 하는 거지.

아마 저 인간은 어떻게든 내 출정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당해줄 내가 아니다. 지금 저 인간이 용검과 꾸미는 짓을 나는 모르지 않다.

“애초에 확신이 있어 이러는 것입니다.”

“거란군의 규모는 어찌 되느냐?”

결국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적들의 규모다.

“20만에서 22만으로 추정중입니다. 그들이 발해를 공격하면 뒤가 비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는데, 거란군의 규모를 듣고 다들 반 즘 정신이 나간 표정이다.

20만. 현재 삼한의 군대를 모두 끌어모은다고 해도 20만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20만이라니. 발해가 그 대군을 상대로 버틸 수 있겠습니까?”

“하여 현재 발해는 서경압록부에 분조도 하였으며, 상경까지의 길에 성들도 여럿 쌓아 우리군이 지원하기까지 버틸 것입니다.”

“아군이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저들이 유목제국인 이상, 기병이 중심일텐데, 우리 백제의 기병이 강하다고 하나 머릿수에서 밀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하나 전부 옳은 말이다.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도박이다.

정 안 될 때는 나 혼자 야율아보기의 목을 따면 된다.

왕자에서 척준경 포지션으로 갈아타지 뭐.

“우리에게는 신무기도 있고, 전장이 발해땅임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사방에서 발해군이 들러붙으면 보급마저 막힌 거란이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어차피 고기방패 역할은 발해가 할 것이다.

“대체 그 신무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미 군부의 장수들과 폐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당장 선보일 것은 되지 못하고 양이 적으니 전쟁에서 선보일 것입니다.”

“허, 이거 참.”

“어쨌든 전쟁이 패배하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뭐가 그리 걱정이십니까?”

“끄응.”

이미 견훤의 명으로 신무기에 관해서는 소수만이 알기로 했는데, 능환은 그 소수에 자신이 안 들어가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나보다.

“마치 우리 백제가 겁먹고 숨죽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얻는 것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삼국통일에 요동의 일부라도 얻는 일입니다. 너무 적다니요? 마치 이겨도 우리 병사가 다 죽을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진짜 능환 이놈은 하나하나 부정적이다.

이럴 거면 견훤 옆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 고려로 갈 것이지.

내 말에 장내의 시선이 능환에게 쏟아졌다.

용검이도 능환에게 편승해 나한테 몇 마디 하려다가 금방 기가 죽었다.

“왕자님. 꼭 그런 것이 아니오라.”

“병관좌평!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자네 실책을 열거해 볼까? 신검이도 반대하지 않는 일을 왜 자네가 굳이 방해하고 그러느냐는 말이야.”

견훤은 들으라는 듯이 혀를 찼다.

진짜 뭔 드라마의 한 장면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내 계책은 그대로 견훤의 왕명과 신검의 묵인하에 시작되었다.

우선 상귀에게 군사 1만을 맡겼다.

“상귀장군. 다녀오시지요. 요동지역을 한바탕 초토화시키고 복귀하세요.”

“좌평어른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 명을 받든다라. 폐하의 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검은. 뭐 아직 태자도 되지 못했으니 불쌍한 처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직 견훤의 마음에 들지 못하였는데.

아마 슬슬 신검이 또 나를 의심할 즈음이 될 것이다.

그 전에 그 두 놈을 처리해야 한다.

이미 그 두 인간에게는 최승우의 수하만이 아니라 내 수하들도 붙였다.

“현재 능환과 용검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예. 화약국에 대해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리도 권력이 탐났나.

그 늙은이는 신검파벌에 처음부터 붙었던 몸이다. 신검을 등에 업고 어떻게든 권력을 휘두르고 싶었겠지.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군. 우선 그대로 내버려 둬라. 일단 화기들은 전부 빼뒀겠지?”

“예. 화약국을 이미 다른 곳으로 이전시켰습니다.”

현재 화약국은 점차 무기개발이 확대되어감에 따라 기존의 화약국은 조금의 화약을 제외하고 남은 것이 거의 없다시피한다.

혹시 모르지. 능환과 용검이 장난질 치는 용도로는 남아있을지도.

북방의 패권이 달린 전쟁을 치르기 전에 미리 저 두 놈을 패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일은 더 빨리 터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