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발해-요 전쟁2
* * *
요동이 어떤 땅인가. 조선의 땅이었고, 고구려의 성지요. 지금은 거란에게 빼앗겨 반드시 수복해야 할 땅이다.
당연히 백제입장에서도 반드시 수복해야 할 땅이다.
“예. 이번 전쟁에서 우리의 지분을 늘릴 수 있습니다. 슬슬 지금 저들도 보급에 차질이 생긴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속전속결로 해야 한다는 소리로군.”
“대군이 빠졌으니, 요동에 우리를 상대할 병력은 없을 겁니다. 즉, 지금이라면 요동을 점령해서 전후에 발해에 우리의 입장을 더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요동을 우리가 점령해서 거란의 후방을 위협하고, 그것만이 아니라 요동을 탈환하지 못한 발해를 대신해서 피땀흘려 되찾았으니 콧대를 높일 수 있다.
“요동의 일부라도 얻자는 그 말이로구나.”
“예.”
“옛 고려의 천리장성들을 모조리 공략하자는 의미로구나. 우리가 가능하겠느냐?”
“이미 상귀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 요동은 비어있습니다. 즉, 중과부적이란 뜻입니다. 최소한의 수비군으로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군의 훈련도가 걱정이기는 하지만, 뭣하면 고기방패로 써도 되고 머릿수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군은 어떻게 나누자는 거냐?”
“형님은 상귀 장군과 합류하여 3만 5천의 병사를 이끄십시오. 이 아우는 3만의 군대를 이끌고 부여부로 가 대문진을 지원할 것입니다. 상애장군도 신검형님을 잘 보필해야 합니다.”
“예. 왕자님!”
이 전투는 오히려 빨리 끝날 수도 있다.
부여부에 야율아보기가 있으니, 그 뒤를 치면 어떨까.
심지어 놈들은 22만의 군대를 3군으로 나누었다. 아마 부여부의 군대는 야율아보기의 군대에 한참 못미치겠지.
“고작 3만인데? 괜찮으냐?”
“예. 가능합니다.”
“알겠다. 내 이번에 대백제의 왕자로서 공을 세우겠다.”
“네. 형님.”
이 멍청이는 오히려 나에게 제 공을 증명하려고 한다.
어째 나한테 길들여지는 거 아닌가.
벌써부터 태자의 자리는 글렀다고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내가 권력을 잡아야 하나? 왕이 되기에는 묘하고.
“유금필, 관흔장군. 함께 갑시다.”
“예. 왕자님.”
“공을 세우면 고려로 보내주는 것입니까?”
“그야 유금필 장군이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구포와 주화의 존재를 아는 이상 돌려보낼 생각은 없다.
돌려보낸다 하더라도 구포와 주화에 의해 고려 왕궁이 박살난 이후에 보내야지.
나는 관흔, 유금필과 함께 3만의 군대를 이끌었다.
솔직히 신검이 그 많은 군사를 말아먹지는 않을지.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짬밥이란 걸 먹은 놈이다.
비어있는 성들 따위 쉽게 먹을 수 있겠지.
“구포와 주화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야습을 할 생각입니다.”
부여부의 싸움은 꽤 혈전이 될 것이다.
당장 대문진이 빠졌을 때, 야율아보기는 부여부의 병사가 쏜 화살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그런데 대문진이 있는 부여부는 어떨까?
더 힘들겠지. 야율아보기는 대문진을 뚫기 힘들 것이다.
굳이 가능성이 있다면 군대 일부로 부여부를 포위시키고 상경으로 진격하는것. 야율아보기는 거란을 통합하고 요를 세운 위인이니 그 정도 머리는 있을 것이다.
발해의 사정을 생각하면 포위한 거란군을 격퇴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상귀가 보급로를 끊었으면 무언가 저놈들도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미 대군을 움직였으니 발을 뺄리는 없고, 더 속도를 높인다던가. 상귀의 군대를 물리친다던가.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있다.
군사의 일부를 빼낸다는 것은 발해군에게 자신들의 허점을 보인다는 의미다.
그 순간을 대문진이나 다른 발해군이 놓칠 리 없다.
일단 지금은 정찰병을 수시로 파견해봐야 겠다.
* * *
부여부
거란군 본진은 야율아보기의 진노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대문진이 잘도 버틴다.
고작 부여성이다. 고구려시절에도 그다지 존재감이 없던 그 성이다. 요동에 즐비한 철옹성과는 달리 못 뚫을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저리도 잘 버티고 있다니.
아니, 뚫으라면 뚫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보급이 문제다.
여기서 시간을 얼마나 끌 것인가. 부여부를 지키고 있다는 대문진도 그렇고, 대인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곧 무너질 것 같은 놈들이 잘도 버티는 군. 그래. 우리의 보급을 건드리는 정신나간 놈들이 누군지 아직도 모르는가?”
“그.그것이. 워낙에 신출귀몰하여서.”
아직도 잡지 못했다.
하필이면 대군을 끌고 온 탓에 후방이 이렇게 피해를 보고 있다. 이것이 한 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누적되면 이 전쟁은 어려워진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당장 알아보라는 말이야! 발해의 패잔병인지! 말갈놈들인지! 뭐라도 잡아오라는 말이야!”
“저, 폐하. 상인들과 병사들의 소문으로는 백제의 깃발이었다고 합니다.”
백제의 깃발?
“백제? 그럼 백제가 지원을?”
“하지만,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뒤를 건드리지 않고, 보급만 친다는 것은 백제도 성의상 동맹으로서 할 도리를 했다. 이런 수준에서 소수의 군사를 보낸 것이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뒤에 본대가 올 가능성도 있다. 그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 게다가 군량을 건드렸으면 우리는 이 전쟁을 오래 치를 수 없다.”
“그렇다면 군사를 빼서.”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안 그래도 속전속결을 하고 있는데, 군량마저 제때 보급되지 못한다면 그때는 정말 끝이다. 막힐부와 장령부 쪽으로 보낸 2군, 3군도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필시 전쟁이 생각과 달리 쉽게 돌아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폐하.”
“황후. 말씀하시오.”
“차라리 군대를 일부 두고 2군과 합류하여 상경으로 향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그게 나은가. 만일 백제의 군대가 뒤에 더 있다면, 전황은 거란에 불리하게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발해가 지금 청야전술을 펼치고 있어 약탈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발해의 군대가 있는 성들에 군을 남기고 가독부가 있는 상경으로 곧바로 가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그게 가장 곤란했다.
발해는 지금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으로 논밭을 모조리 불태우고 거란이 가져갈 만한 것들은 모조리 성으로 들이거나 안 되는 것은 불태웠다.
“황후가 보기에 가능하겠소?”
“상경은 공격을 하면 방어하기 어려운 성인데다가, 대부분의 정예 병졸들이 부여부를 비롯한 막힐부, 장령부에 있으니 상경은 비어있을 것입니다.”
“음.”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당장 3군의 진격을 막는 군대들도 뚫으려면 시일이 좀 걸릴 것이다. 그런데 상경에도 병사가 있다면 차라리 그 병력으로 먼저 요동을 탈환했을 터.
그것이 답인가.
그때 문득 야율아보기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부여부를 지금 당장 점령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대문진의 병력을 끌어내어 적어도 후방을 안전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네?”
“지금 당장 퇴각 준비를 하지. 놈들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몰래 퇴각을 할 것이다.”
갈 때는 가더라도 대문진의 군대라도 섬멸하여 발해군의 사기를 떨어트릴 것이다.
* * *
정찰병을 수시로 보냈다.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은 없다.
그나마 적당한 시기에 발해에 상륙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대로 야율아보기의 뒤를 후려쳐도 되겠지.
“이대로 야율아보기의 뒤를 쳐 부여부의 발해군과 협공할 수 있으면 그보다 완벽한 승리는 없을 텐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수성전이라면 모를까. 직접 야전에서 대규모 전투를 치르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전에 부여부를 포위했을 야율아보기가 과연 부여부를 함락했는지.
그러지 않았다면 여전히 공성전인지. 그도 아니면 군을 나누어 상경으로 향하고 있을지에 관해 곰곰이 따져본 후에 적을 칠 때를 골라야 할 것입니다.”
유금필은 말을 참 힘들게 한다.
“음, 소장 역시 유금필 장군과 뜻이 같습니다. 상귀장군이 보급을 끊었으니, 거란군은 뭔가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최소한 상귀장군을 잡기 위해 군사를 추린다던가. 그도 아니면 잠시 퇴각하여 길을 모색한다던가.”
분명 정찰병을 수시로 보냈지.
“정찰병이 별소식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 여전히 야율아보기는 퇴각하지 않고 남아있다는 뜻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뒤를 내가 푹 쑤시는 거지.”
“네?”
“아닙니다. 자, 갑시다.”
괜히 정찰병을 보내도 야율아보기에게 꼬리가 밟힐 수도 있는 일. 야율아보기의 행보를 주시하면서 부여부로 진격하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쟁은 쉽게 돌아갈 거라 여겼다.
“동맹군 총사께 급보입니다!”
몸에 피칠갑을 한 발해병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슨 소리냐? 네 놈은 발해군이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정찰병과 함께 온 것이냐?”
“동맹군 총사께 아룁니다. 부여부 도독께서 상경으로 향하는 야율아보기의 군대를 추격하다 그만 매복에 걸려 대패하셨습니다!”
“뭐라고?”
뭐? 대문진이 패배를? 그럼 부여부가 위험한 것이 아닌가.
대체 어쩌다 패배를 하였다는 말인가. 매복이라고? 대문진이 어쩌다 그런 얕은수에 걸려 넘어갔다는 말인가?
“총사! 부여성을 구원해주십시오! 함락위기입니다!”
“대도독은?”
“대문진 도독께서는 겨우 패잔병을 수습하시어 부여성으로 퇴각하셨으나, 사방이 포위되었습니다!”
살아남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부여부에서 계속 항전은 할 수 있겠지. 얼마나 버티냐가 관건이지만.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관흔 말대로 분명 어려운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건 발해에나 해당되지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왜? 발해가 전쟁에서 말아먹을수록. 발해의 군사적 능력은 이번 전쟁에서 한없이 실추될 것이다.
반대로 이번 전쟁의 주역은 우리 백제가 될 수도 있는 것.
발해는 요동을 관리할 역량이 사라진다.
좋아, 그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유금필 장군. 나와 함께 기병 1만을 끌고 갑시다. 적들의 후방을 쳐 놈들을 혼란하게 만들어야겠습니다.”
“백제의 패왕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관흔장군. 우리가 기병들로 적진을 헤집으면 도착하자마자 2만의 보병을 지휘하여 화약무기를 쓰셔야 할 것입니다. 만일 놈들이 도망치면 퇴로를 막아야 할 것입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관흔에게 보병 2만을 맡기고, 유금필과 함께 기병 1만을 이끌고 부여부까지 달렸다.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흠, 언제든 부여부를 함락시킬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과연 그뿐일까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문진의 정예병력을 집어삼키고도 지금 성을 계속 공격하지 않는다?
가설을 만들 수 있다.
성을 함락시키지 못할 정도로 병력을 조금 남겨두고 대문진의 발을 묶기 위해 서라던가.
그도 아니면 혹시라도 또 대문진의 강력한 저항을 생각해 일부러 포위만한다던가.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대문진의 병력이 전멸했다면 거란군이 아주 일부만 포위해도 대문진이 뚫을 수 없다.
“유금필 장군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란군의 행보가 참으로 이상합니다. 야율아보기라면 그대로 부여부를 넘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요.”
"흐음."
“최악 야율아보기가 군대만 남겨두고 상경으로 진격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수도 직공이라. 원 역사대로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왜 부여부를 내버려 뒀겠습니까?”
“대문진의 부여부 정예군은 발해군 중에서도 최정예라 들었습니다. 그 조금 남은 것에 또 발목이 잡힐까 우려한 것이겠지요.”
한마디로 변수라는 건가.
하기야 원 역사에서 치명상을 입는 야율아보기다. 그럴 만도 하지.
“쯧.”
“정작 대문진의 군대도 나올 생각도 못하고 있겠지만.”
생각보다도 피해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그럼 대문진을 포위한 거란군을 섬멸하는 정도가 끝인가.
이거 너무 늦게 왔다. 이러다가 야율아보기가 상경으로 가버릴 수도 있겠다.
그 전에 뒤를 쳐서 뜨끈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