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어를 낚자
* * *
금강이라는 인물탓에 두통이 가실 줄 몰랐던 야율아보기는 눈썹을 찡그렸다.
“아니야, 지금이라도 고려와 동맹을 고려해야 하는 건가.”
그래야 저 백제를 어떻게 견제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미 전쟁을 말아먹었다면, 최소한 고려가 백제를 견제해주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폐하, 그리 하다 또 백제군이 쳐들어올 수 있습니다.”
“끄응. 저 금강이란 놈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이오?”
그 어린 놈의 눈치를 봐야 한다니.
“차라리 저 금강을 회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요동을 주고 회유한다고 해서 그 자가 이끄는 대군이 우리를 돕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정말로 그렇다면 요동을 못 줄 것도 없다. 그런데 그 금강이란 자가 그럴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적어도 발해는 견제해주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잃는 것이 너무 많은데. 끄응.”
술율평은 고개를 저었다.
금강이란 자의 눈빛을 보니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먹잇감을 내놓으라는 포식 자의 눈이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 남편은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술율평은 요의 국력을 잘 안다. 현실적으로 타협해서 금강이 무슨 묘수를 쓴 것이라 죽지 않은 것이라 하나 결국 6만의 군대는 무시할 수 없고, 금강은 최소한 요동은 내놔야 태자도 내어주고 퇴로를 열어줄 것이 뻔하다.
그리고 앞으로 발해는 대씨가 아니라 저 바다 건너에서 온 부여씨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고려와 이해관계가 맞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금강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차라리 국혼을 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그리하면 금강은 어쩔 수 없이 발해를 막는 방패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금강왕자에게 국혼을 제안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슨 소리요?”
“우리들이 결사항전을 한다고 해도 결국 피해가 얼마나 커지든 승리하는 것은 백제의 금강이 될 것입니다.”
사방에서 공격하는 발해와 금강이 지휘하는 불패의 백제군. 그들의 협공을 받으면 지는 것은 당연한 일.
요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계속해보시오.”
어차피 금강도 그 군대로 전면전을 치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니 저렇게 대담하게 구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조율을 하는 거지요. 요동을 내어주고 그 대신 공주와 국혼을 치르게 하여 요동군왕이든, 부여왕이든, 요왕이든. 책봉하면 그만입니다. 요동주도독조선왕도 좋겠군요.”
“으음.”
“이래도 안 되시겠다면 금강이 말하는 대로 상경을 점령해서 발해 태자에게 기회를 주고, 금강에게 잘보여 어떻게든 퇴로를 확보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결사항전으로 모두 죽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술율평이 그 이상은 안 될거라고 중간에서 딱 끊어버리니, 야율아보기도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금강의 뜻대로 하기도 싫고, 요동도 쉽게 내어줄 수 없으며, 태자도 되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술율평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형편에 좋을 것이다.
* * *
어째 운수가 좋은 날이다.
“거란에서도 러브콜이 올 줄이야.”
설마 백제로 돌아갔을 때, 마누라가 눈을 뜨지 못하는 대참사가 벌어지지는 않겠지.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자와 퇴로를 열어준다면 더는 발해를 잡지 않고 요하를 다시 넘겠다는군요.”
한마디로 전쟁을 끝내겠다. 이 말이다.
딱히 많이 한 것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전쟁을 끝내는 건가?
그런데 요동을 관리하고자 하면 확실히 안전이 확보되어야 한다. 6만 중 4만이 일본군이다.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할 군대란 말이다.
“허, 고작 그 정도입니까? 우리는 이미 상경이 점령당해도 괜찮다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의 공주와 혼인을 시킬 테니, 부마로서 요동이라는 영지를 다스리고 왕의 지위를 주겠다는데.”
심히 고민이 되는 일이다.
“그리하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백제인인데 말입니다.”
“형식적인 관직을 받아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이건 조금 고민해볼 일이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제법 구미가 당긴다.
다만, 이 경우에는 거란의 주력군이 그대로 보존된다. 후일 다시 요동을 넘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말했듯이 백제의 왕자 입장이니, 견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한 번 더 야율아보기를 만나보는 것이 좋은가?
“아국의 폐하께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폐하께서도 전쟁을 끝내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으니 만족할 것입니다. 심지어 소고구려의 땅을 그대로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멀리 보면 우리에게 이득이로군요.”
고려와 싸울 병력도 보존할 수 있으니까.
“음, 조금 생각을 해볼 테니, 상애장군은 막힐부와 장령부에서 발해군과 함께 돌아온 유금필과 관흔 장군을 데려와 주십시오.”
“예. 왕자님.”
자, 자 행복한 고민 좀 해보자.
이건 내 선택에 따라 전쟁을 바로 끝낼 수 있다.
“피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으면 이보다 좋은 것도 없겠지.”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이렇게 협상을 방아 들이는 척하면서 기습하여 궤멸시키는 것이다.
요나라 황족들을 전부 잡아들이고 지금 남은 군대로 그대로 거란본토로 밀고 들어간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땅을 관리할 수 없게 되면 괜히 병력만 말아먹게 되겠지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건가.”
결국 무엇을 선택하든 사후보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요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대인선과 대광현이 굉장히 섭섭해할 수 있다.
발해 내에서 쌓고 있는 나에 대한 민심도 떨어질 수도 있고.
일단 거란은 발해의 철천지 원수니까.
“게다가 대인선은 야율아보기의 목이라도 가지고 싶겠지.”
요동땅을 최소한의 피해로 얻기 위해서 거란의 제안을 수락하나?
아니야. 그럼 신검의 문제가 생긴다.
거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치자, 일단 물도 위, 아래가 있는 법이다. 신검이 본래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애초에 처음 출병했을 때, 신검의 목표가 요동, 내 목표가 거란군을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거란의 제안을 받게 되면 이도 저도 아닌 나만의 승리가 되어버린다.
“일본도 문제야.”
우리는 지원군만 받는 입장이라 사정을 모르지만 지금 일본에서 4만의 지원군을 냈다는 것은 아마 상당히 무리한 것이겠지.
적어도 일본이 정말 전국시대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수만이상의 규모를 내는 것은 무리니까.
아마 이번 결정을 내린 천황을 원망하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천황이 실각하면 백제와 일본의 사이는 미묘해질 것이다.
약속했던 신라땅도 언제 받을지 모르니까 더 그렇겠지.
“역시 그 방법 밖에 없는 것인가.”
슬슬 독립할 때가 아닌가. 후백제라는 깃발을 요동에 세우고 후백제의 삼국통일을 돕는다. 그런데 그러려면 아내를 또 이곳에 데려와야 한다.
이번 일을 해결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 군대로 잡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거란군을 우리 군대로만 잡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다.
백제와 일본연합군의 깃발을 백제것으로만 해서 다행이다.
막힐부와 장령부에서 수비군을 제외하고 지원할 군대가 2만.
여기에 백제군을 뺀 일본군을 더하면 다시 6만이 된다. 부여부의 패잔병까지하면 더 늘어나지.
“아, 유금필 장군과, 관흔 장군이 오셨군.”
“이 몸은 백제인이 아니니, 왕자님께 어떤 충언도 올리지 못합니다.”
“내 그걸 모르지는 않으니 걱정마시오.”
이번에는 유금필이 필요없다. 어디까지나 백제의 일이니까.
“왕자님. 무엇을 그리 고민하십니까?”
“상애장군에 들어 알고 있을 것이오.”
“예. 이곳에서 완산주까지 다시 사람을 보내기 힘듭니다. 하여 이곳에서 결정을 해야겠지요.”
나도 같은 생각이다.
여기서 다시 압록강으로 사람을 보내고 그놈이 완산주까지 다시 갔다가 견훤의 답서를 가지고 오려면 한참 걸린다.
“관흔장군은 어찌 생각하시오?”
“확실히 피해를 생각하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하니 요나라(거란)의 제안을 수락하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국혼이든 왕이든, 폐하께서도 이번 전쟁을 오래 끌지 말라하셨으니 적당선에서 납득하시겠지요.”
“네.”
그래. 그건 안다. 이미 나는 결정한 것이 있다.
“이미 결정하신 것입니까?”
“거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겁니다. 하지만 야율아보기의 본대는 살려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앞과 뒤가 다른 말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금필도 제정신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야율아보기는 백제국 왕자 ‘부여금강’과 타협한 것이지 일본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설마.”
“애당초 삼국동맹입니다. 일본군이 단순히 제 휘하로 들어오는 것보다는 역사에 이 전쟁에 참전했다고 기록은 남겨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일본군은 따로 빼서 일본군인 척을 하게 해야지. 안 그런가?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일본군의 숫자도 줄여놔야 한다.
“내 직접 왜장인 척을 해야겠습니다.”
일본 장수들이 입는 갑옷도 가지고 왔으니 이걸로 얼굴도 가리면 나를 알아볼자들은 없을 것이다.
이중에서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도 나 뿐인 것 같고.
포병들에게도 일본갑옷을 입혀두자.
“적들도 바보가 아닌데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떡하니 우리가 데려왔는데.”
“솔직히 전쟁에서 일본군이 활약한 전투가 얼마나 됩니까? 다 우리 군사가 솔선수범 한 것이지. 더군다나 우리와 전투를 치른 놈들이면 모를까. 야율아보기는 우리 쪽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요와의 약조를 지키면서 적들을 칠 수 있겠습니다.”
완벽한 계략이다.
“그럼 아군은 두 분이 인솔해주십시오. 적들은 상경에서 부여부 쪽으로 올라오고 있으니 요동으로 보낸다는 명분 하에 우리 백제군을 뒤로 빼야 합니다.”
“예.”
일본군이 얼마나 강할지가 우려스러운데, 그래도 매복공격에 방심한 요나라군을 치는 거다. 제 몫은 하겠지.
“관흔장군은 나를 따르고, 말했듯이 상애장군과 유금필 장군은 군사를 인솔하여 패퇴한 요군들이 오면 퇴로를 열어주어 맞이해주시오.”
“예.”
원 역사에서는 야율아보기가 부여성 전투에서 발해군이 쏜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리고 발해를 멸망시킨 후, 야율아보기는 죽었다고 하니 분명 전투에서 입은 그 부상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멀쩡하다.
그러니 원 역사대로 다치게는 해야지. 안 그런가? 놈이 살아있으면 여러모로 발해나 백제에 근심거리다.
“매복지점은 어디가 좋겠습니까?”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상경과 이 부여성으로 올라오는 길목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용천부에서 서쪽으로막힐부와 부여부 사이가 되겠군요.”
놈들도 그 쪽으로 오는 것 같다.
막힐부와 장령부는 타격도 못 준 지역이고, 저 남쪽으로 우회하기에는 서경의 군사가 걸릴 것이다.
그럼 남은 곳은 부여성을 함락 직전까지 몰고 가 발해군의 영향력이 적고, 그 대신 협상을 한 백제군이 점령하다시피 한 부여부일 것이다.
“확실히 양쪽에서 군사를 준비하여 주화와 구포를 쏘면 꽤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 거란과의 협상도 진척시키고, 2만의 발해군과 4만의 일본군을 요군이 들어올 길목에 배치했다.
이 길을 중간 쯤 가로 질러 부여부로 향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일본군이 양쪽에서 공격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2만의 발해군은 마지막에 작살내는 용도다.
“요군이 어디까지 왔습니까?”
“이미 상경의 포위를 풀고 서쪽으로 이동 중이라 합니다.”
“가독부에게도 알리셨겠지요.”
대인선에게는 오해할까봐 이번에는 일본군이 공을 세운다는 이유로 일본군으로 요군을 친다고 했다.
완벽범죄라는 거다.
“예.”
“전쟁의 끝을 봅시다. 장군.”
“예. 왕자님.”
일본군은 정예군이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기습전에서 적들에게 타격줄 만큼의 전투력은 보유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최소한 물귀신 작전으로 서로 동귀어진 할 만큼의 전투력은 가지고 있어야 이번 전쟁이 끝나고 거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