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48화 (48/154)

48. 마한황제와 천황

* * *

서경압록부

서경에 분조를 이끌던 태자 대광현은 찝찝한 마음에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정말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전하.”

“폐하께서도 지금 심중에 반란을 의심하고 계실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상경에서는 가독부가 분조 명령을 거두었다. 그러나 서경의 분조는 결코 그 명을 따르지 않았다.

왕명을 거슬렀으니 사실상 이는 역모나 다름이 없다. 더군다나 군대도 서경에 만명이나 넘게 존재하니 이건 반란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하자는 것입니까? 기어이?”

“반드시 전하를 황위에 올릴 것이니, 염려놓으시옵소서.”

전쟁도 끝난 마당에 황위라니.

“말갈군은 우리 말을 듣겠습니까?”

“예. 우리가 지원한다고 하니, 한 번 해보겠답니다.”

장군 신덕은 오랫동안 말갈과 접촉했다.

그것도 제법 강력한 세력인 흑수말갈들이었다. 그리고 서경을 중심으로 거사를 돕는다면 말갈을 반독립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심지어 백제와의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식량도 지원한다 했으니 흑수말갈 입장에서는 나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각오하셔야지요.”

“각오하라니. 그게 대체.”

설마 아버지를 죽이는 것까지 각오하라는 소린가.

“상경을 말갈군이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끝입니다. 전하. 발해천하가, 말갈과 고려인 모두가 전하를 따를 것입니다.”

그것이 천명이라면 받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 이미 많은 신하들이 자신을 따르고 있다.

반역임을 각오하고 자신을 따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전하. 신덕장군의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이미 상경의 해는 기울어진지 오래입니다. 지금의 가독부는 요동을 잃었고, 거란족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맞다. 그것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

지금의 가독부는 결코 성군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다툼을 빨리 끝내지 못하고 거란의 침공을 초래하였으며 말갈의 분열을 만들었다.

그런 자를 어찌 군주라 할 수 있을까.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나마 백제가 요동에서 거란을 막아주고 있는 지금이 발해의 하늘을 바꿀 기회다.

“내가 가독부가 된 후에 말갈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말갈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5경의 지원군을 모아 말갈을 일제히 토벌하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발해인만을 위한 나라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신덕도 아무 생각없이 일을 저지르려 하지 않았다.

일단 말갈을 선동하고, 반란군들을 규합해서 상경을 점령한 후에 그들을 발해의 역도로 규정하고 5경의 군사를 모아 토벌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제 아무리 요왕이라고 해도 대인선과의 의리만 지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서경을 정통으로 인정하고 교역을 할 것이다.

“내 신덕장군만 믿겠습니다.”

“예. 전하. 신명을 다할 것입니다.”

* * *

일본에서 국서가 날아왔다.

처음에는 왜 이런 국서가 날아왔는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일본요동군연왕. 허.”

이런 이상한 지위는 처음 들어보는군. 일본 천황이 미친 건가.

그 속을 모르는 건 아니다. 아마 일본쪽은 난리가 났을 거다.

자기들이 기껏 준비해서 보낸 군사가 절반이나 상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화는 천황에게 향했을 것이다.

백제나 나한테 화내기에는 천황이 직접 약조해버린 것이 있으니, 따지지도 못하고 발해까지 연관되어있다.

전쟁도 끝났으니 발해나 후백제에 직접 따지다가는 양국이 연합하여 일본을 깔 수도 있는 노릇이니 귀족들은 아예 만만한 천황을 까는 거겠지.

“일단 급한대로 이번 전쟁에서 사위가 요동을 얻었으니 일본땅이라고 선언하기 위해서 연왕이라는 간직을 내려놨을 테고.”

뭐 이런 미친 짓이 다 있나.

그래. 일본이 내 땅이라고 하면 그 정도는 참아줄 수도 있다. 그런데 보아하니 천황도 갈 곳이 없으니 마지막 수단으로 저런 지위를 내린 것이 아닐까.

“그런 것 같습니다. 일본 천황이 참으로 안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중앙집권이 박살나고 있는 시긴데. 이것으로 천황은 최악 전국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

막부가 보다 일찍 등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백제 본국에서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선 넘은 짓이다.

요와 발해라면 그래도 완충지대로 삼고 협상이라는 이유가 있으니 형식적인 관직은 받을 수 있다.

어쨌든 그 둘은 북방의 대국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일본? 일본은 신라땅 넘겨주는 조건으로 바로 끝낸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어떤 사정이든 간에 감히 나에게 천황이 관직을 내렸으니, 백제가 이 일로 일본을 어떻게 압력을 넣을까 궁금하다.

“일본이 군사를 빌려줬다고 너무 오만하게 구는 것 같습니다.”

“상애 장군이 생각하기에도 그런가?”

“그렇습니다. 이미 거래는 신라땅으로 끝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감히 이 요동의 주인행세를 하겠다니요. 이것은 말도 안 됩니다.”

장수들이 격분했다.

심지어 본래 요군에 속하다가 내 밑으로 들어온 몇몇 거란족 장수들도 화를 냈다.

“말갈군 토벌을 앞두고 아주 제대로 재수가 없군.”

“차라리 일본을 먼저 응징하시지요.”

“지금 요동과 백제 본국의 힘으로 일본 정도야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분열되면 가능은 하겠지. 그런데 그럴 바에는 고려를 먼저 공격할 것이다.

한 번 전국시대가 열리면 한동안은 불이 붙어서 끝나지 않을 텐데. 굳이 지금 건드릴 이유가 없다.

“이거 마누라한테는 알리는 것이 좋겠지?”

“팔은 안으로 굽지 않겠습니까?”

“괜찮네. 아내는 이미 이런 일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

상식적으로 내 마누라가 이제 와 일본의 편을 든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이 망하든 말든 아내는 자기 오락거리로 즐길 사람이다.

“전하. 이렇게 되면 우리에게 유리하겠습니다. 일본이 먼저 무례를 저질렀으니, 신라땅을 내어놓지 않고 끝날 것 같습니다.”

잠시 장수들의 대화를 듣던 최승우가 문득 떠오른 듯, 그렇게 말했다.

그래. 이참에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아직은 조금 시기상조같다.

“그 전에 통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일본이 지금 멀쩡하면 모르겠는데, 지금 당장 외국원정도 힘든 마당에 우리가 항의하면 저들이 어쩌겠습니까? 심지어 우리는 요동이 있으며 군사 수만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완산주의 폐하께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흑수말갈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본도 그렇지만. 그쪽도 문제가 있다.

“여전히 흑수말갈을 진압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도와야 하는 것은 확실 합니다.”

“관흔은요?”

“관흔 장군이 군사 1만을 모아 출정준비를 마쳤습니다. 전하의 명만을 기다리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일본의 문제는 일단 백제 본국에 맡기기로 하고, 지금은 말갈을 토벌하는데 우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준비합시다. 그 전에 나는 아내를 만나봐야겠습니다.”

“그리 하시지요.”

일본 본국의 일을 당사자가 몰라서 쓸까.

* * *

막상 전하려고 하니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나는 어쩔 수없이 한숨을 쉬며 아내에게

“부인. 이것이 일본에서 내게 보낸 국서요. 일단 완산주의 조정에도 올릴 생각인데 부인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풉!”

아내가 보기 좋게 웃었다.

“웃음이 나오십니까?”

“아니, 이거 보세요. 오히려 일본을 망가트리려고 작정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저 흐름에 맡기면 되는 것을 굳이 주워 담으려 하니 이 모양이지요. 일본의 중앙집권화는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언제는 중앙집권을 바라지 않았던가.

“애초에 지원군을 보내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 지원군이 없었으면 거란군을 격퇴하기는 힘들었겠죠.”

“그런데 부인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부인은 천황께서 중앙집권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는데.”

내 아내는 붕괴되어가고 있는 일본의 중앙집권을 되돌리고 싶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방식이 달랐다는 거지요. 오히려 백제에 은혜를 입혀서 백제군을 지원받아 귀족들을 처단하는 나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늦었다.

나를 왕으로 봉한 이상 일본과 백제와의 관계가 무너질 것은 확실하다. 힘의 균형은 무너질 것이고 귀족들도 백제와 일본의 관계 파탄에 들고 일어나겠지.

우리 후백제는 문제 없지만 일본도 분열할 수 있다는 瀆甄?

정말 사방이 다 분열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전하의 속은 어떻습니까?”

속이라. 솔직히 선을 너무 넘지 않았나?

“솔직히 선을 너무 넘지 않았습니까? 이걸로 신라땅을 주겠다는 약조를 우리가 지우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부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넘어도 심하게 넘었지. 단순히 내가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으로 일본만세. 일본형님 신라땅가져가세요 이런다해도.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소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천황께서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전하께서 싫다하면 그만인데 무엇하러 백제와의 관계를 깰 수도 있는 행위를 하다니.”

문득 느낀 건데. 내 아내는 먼 훗날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완용이 아니었을까.

대놓고 나라를 팔아먹을 것 같은 말을 잘도 하는데.

“장인이 귀족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가능할까요?”

“그걸 제게 물으시면 어쩝니까.”

문제가 많다. 말갈도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못할 겁니다. 이번에 신라약탈로 이득을 본 귀족들이 있다고 하나. 그건 그 거고 피해는 피해니까요. 더군다나 이번 4만의 지원은 정말 일본 입장에서는 국운을 건 지원군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만일 장인이 패한다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장인이 군대는 가지고 있나?

“뭐 아버님은 폐위되겠지만 천황가는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렇겠지. 일본은 죽어도 천황가는 유지되었다. 이 시기의 일본도 그럴지는 모르겠는데, 천황이 폐위될 것도 확실하다.

가만있자, 내 아내를 천황으로 만들 수는 없나?

백제라는 든든한 후원세력도 있지 않나.

“무엇을 노리십니까? 음습한 남편님.”

“그래 보입니까?”

“네. 너무 그래 보입니다.”

“무슨 말을 화내지 않는다고 하면 대답해드리리다.”

그냥 생각만 하는 거니까 뭐.

“해보시지요.”

“내 아내를 천황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내 말에 아내의 얼굴이 씁쓸하게 웃었다.

“참이십니까. 아니면 농이십니까?”

“일본 역사에 여왕도 존재하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하는데.”

“제 형제들을 한참이나 죽여야 할 텐데요?”

아, 그러고 보니 자식들이 많던가?

“뭐 내가 내 힘으로 내 아내를 천황으로 삼겠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 다음에는 설마 저에게 양위받는 식으로 천황이 되시겠다는?”

“이 남편보고 섬에 갇혀있으라는 말입니까?”

“그런 소녀는 갇혀있어도 좋구요? 왜. 저 맹량한 꼬맹이랑 살림차리고 싶으십니까?”

저 꼬맹이와? 설마.

“내게는 부인 밖에 없으니 혹시라도 그런 위험한 발언은 하지 마십시오. 다만 천황이 된다고 한들 완산주에 수도를 두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병합을 이르시는 겁니까?”

“백제-일본 연방이지요.”

결국 그렇게 가다가 한 나라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기는 하다.

다만 신검이 어떻게 되는지가 문제다. 황제로도 만들고 천황으로도 만들어줘야 하나?

천황과 마한황제가 공존하는 나라라. 아니, 그거 나쁘지는 않겠는데?

“무얼 그리 귀찮게 하십니까? 제 아이를 천황으로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어?”

“그동안 잠시 제 형제들에게 황위를 잇게 했다가 제 아이로 잇게 하면 일본이 백제와 연방을 이루고 장차 하나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음. 그렇구려.”

내 생각이 짧았다.

그렇게 하면 나쁘지 않다. 내 자식이 백제의 황제가 되고 일본의 천황이 된다면 그때는 온전히 일본을 백제에 귀속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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