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50화 (50/154)

50. 금강무쌍

* * *

신덕은 더는 태자의 신하라고 아니라 열심히 부정했다.

그런데 그것을 쉽게 믿을 수 있어야지.

말하면서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그러나 태자께서는 나약하고 배포가 없으니, 실로 소인배가 아니겠소? 도무지 왕의 재목이라고 할 수는 없어 서경에서 나와 내 군대를 모은 것이오.”

서경의 군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놀라운데.

“서경의 군대가 아니란 말인가?”

“서경에 가보시면 알 것이오. 하여 나는 말갈군들과 함께 했지.”

거짓말이다.

지금 당장 이놈을 잡아 반군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지금 신덕 이놈이 저지르는 짓은 혹시 자신이 죽게 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대광현이 반역의 수장으로서 끝나지 않도록,

대광현에 대한 충성심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하다. 누가 봐도 이놈은 대광현의 신하다.

“그런가?”

“오히려 나는 요왕께 도움을 바라오.”

그래. 나와 협상에 나서보시겠다? 그 판단 나쁘지 않아.

일단 이놈말을 들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나는 상경을 점령하는 것을 지켜볼 생각은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가만둘 수 없지.

다만 이놈이 나를 만족시킬 협상안을 가지고 있을까?

“계속해보게.”

“요왕께서는 상경의 조정을 지키러 오신 것이 아니오?”

당연하지. 일단 명분상은 그렇다만.

“그런데?”

“우리를 도와 발해의 새로운 하늘을 열어주신다면, 우리 발해는 요동을 온전히 백제의 땅으로 인정할 것이며 교역도 백제와 할 것이오.”

참으로 궁색하기 짝이 없다.

요동은 이미 우리가 지배하고 있고, 교역의 경우에는 일본과의 교역은 지금 힘이 드니, 당연히 우리 밖에 없다.

그냥 듣기좋은 소리로 끝내려는 수작이다.

하긴 고작 그 정도 머리만 있으니 이런 뭐같은 반란을 시작한 거겠지.

“고작 그 정도인가?”

“전하. 고작이라뇨. 아국은 요동을 침범하지 않고 오로지 백제의 영토로 인정하겠다는 뜻인데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 아니겠소?”

“말 뿐이면 나는 벌써 중원대륙을 정복했네. 결국 실질적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내가 더 나은 것을 제시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자, 신덕은 인상을 멋쩍게 웃었다.

저 새끼가 누구 앞이라고 저리 웃는 건가.

아무래도 내가 좀 무시당하는 입장인 것 같다.

나를 그저 소문으로만 들어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서경에서 틀어박혀 있어서 소식에 어두운 건가?

“그렇다면 우리 발해의 황녀와.”

“이미 일본의 황녀가 내 정실이고, 요의 어린 황녀를 내 첩으로 삼았네. 그런 마당에 발해의 공주까지 들이라니.”

내가 혀를 차자 신덕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빡치냐? 나도 빡친다. 쓸데없이 말갈군을 늘린 탓에 나는 개고생을 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지만 참고 있다.

“아무래도 이 협상은 틀린 것 같군.”

“그럼 이대로 가실 참이시오?”

“협상은 없으니 그냥 가야지. 어쩌겠나?”

날로 처먹으려 하네. 괘씸해서라도 가야 한다.

날 설득하려면 부여부, 장령부, 막힐부, 3부를 다 내놓을 생각은 했어야지.

하여간 이래서 반군놈의 말을 넙죽 들어주면 곤란하다.

“에잇! 뭣들 하느냐! 요왕을 잡아라!”

“잡혀줄 줄 알고?”

사방에서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나마 무기를 들지 않는 모습을 보니 나를 생포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하긴 나를 죽일 수는 없겠지. 요동의 왕이기도 하고 심지어 나를 죽였다가는 뒤에 있는 백제군과 싸워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를 생포해서 어떻게든 협상을 타결을 할 생각이었겠지.

좋아, 그럼. 간만에 무쌍이다!

콰지직!

일단 막사의 기둥을 통째로 부서트렸다.

“다들 뭐해! 요왕을 잡아라!”

“내가 바로 백제의 금강이다!”

덤벼드는 발해군들을 휘어잡아하늘 높이 들어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신덕을 향해 휙! 하고 내던졌다.

우당탕탕! 소리를 내더니 신덕은 한 번 뒤로 굴렀으나, 꼴에 장수라고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체 저 몸집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줄을 던져라! 요왕을 포박하여 탈출을 저지해라!”

병사들이 던진 밧줄이 내 몸을 칭칭 감았다.

훗, 고작 이 정도로 어떻게 될 거라 여긴 것인가?

나는 금강같은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줄을 꽉 쥐고 있던 병사들이 반대로 끌려나왔다.

“우와아아악!”

“네이놈들! 우리 한번 오늘 놀아보자꾸나!”

쉬이익-쉬익 쉬익.

줄을 붙잡고 늘어지는 병사들을 위해서 내 직접 고대식 놀이기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양손에 줄을 붙들고 흔들기 시작하니 병사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넘어지는 모습이 제법 보기가 좋았다.

“저.저럴 수가. 어찌 인간이 저런 힘이. 마치 항우를 보는 것 같구나!”

항우시대에 살지더 않던 새끼가 혼자 감탄하기는.

아무튼 저렇게 흥분하는 것을 보니 더 보고 싶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쓰러진 병사들을 양손으로 붙잡고 들어 여기저기 내던졌다.

진작에 이런 힘을 부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진지하게 고민이 든다.

쿠당탕! 콰앙!

“장군!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 이 무슨.”

“어.어쩔 수 없군. 이러다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게 될 터. 궁병들을 불러라! 어서 요왕에게 화살을 쏴!”

좋은 판단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금 이 이상 병사들이 나에게 끌려다니면 반란이고 나발이고 그 전에 사기가 꺾인다.

심지어 나는 죽일 생각도 안하고 그저 병사들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 군대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저놈 입장에서는 요왕이든 나발이든 쳐내야 했다.

내가 한참 병사들을 가지고 놀 무렵. 드디어 궁수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포진했다.

어, 근데 여기서 쏘겠다고?

너희들 부하들까지 있는데? 애들 재밌게 노는데 함께 팀킬을?

“궁병들은 요왕을 향해 화살을 쏴라!”

푸부부부북!

화살이 사방에 쏟아졌다. 나야 별문제가 없으니 쏠 테면 쏘라는 식으로 몸을 내밀었다.

“끄아악! 사람살려!”

“살려주십시오! 장군님!”

내 덕에 실컷 놀던 병사들은 고슴도치가 되었다.

당연히 나는 멀쩡하다.

그리고 신덕이 놈의 얼굴이 아주 보기좋게 일그러졌다.

그 수많은 화살을 맞고도 왜 내가 살아있을까.

놈은 두 눈을 비비적거리더니 다시 나를 쳐다봤다.

믿기 힘든 거다. 그래서 내가 몸에 붙은 화살을 다 떨어트리며 비웃자 신덕은 두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아.아니, 어.어.어떻게 화살을 맞고도!”

“그야 바로 내가 패왕 항우의 환생이기 때문이지!”

당당하게 내뱉은 말에 신덕이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이.이럴수가.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봅니다!”

“무.무슨 소리인가?”

“저 마한땅에 패왕이 강림하였다고 했는데. 그것이 설마.”

오, 여기까지 소문은 다 난 모양이군.

그렇다면 더 봐줄 필요가 있나? 그냥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신덕이놈의 먹을 베어가는 것은 어떨까.

“요왕이라고? 이런 젠장!”

“이것이 끝인가?”

피식 한 번 웃자 신덕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지더니,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나를 포위했다.

“아무리 패왕이라고 해도 이만한 대군을 상대로 단신으로 뚫지는 못할 터! 발해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자는 살려둘 수 없다!”

와아아아아아!

원래 수가 많으면 용감해진다했던가. 아주 작정하고 달려드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와 씨. 이제는 아주 단체로 덤비네. 그래. 이렇게 나온다 그거지?”

오늘 날 잡았다. 아주 맨손으로 이것들을 다 쓸어주지.

사방에서 창칼이 쇄도해온다.

나는 절대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를 향하고 있는 창 중 하나를 잡아 있는 힘껏 끌어당겨 병사를 끄집어냈다.

놈이 멍청하게 창을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창을 휘둘렀다.

퍽!

“끄아아아아악!”

창을 붙들고 있던 병사가 그대로 날아가 병사들의 대오를 무너트렸다.

여기서 나는 아예 내 몸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 병삳즐을 향해 어깨빵을 날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놈이 나가 떨어지자, 달려오던 놈들도 도미노 마냥 엮여서 넘어졌다.

“후우. 후우. 그래. 이게 끝이냐? 북방을 호령하던 대국 발해의 사내들이 고작 이 정도라는 말이냐?”

내 말에 분한 표정을 짓는 병사들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은 내 무식한 힘에 다들 진저리치는 듯 보였다.

그래. 바로 저런 표정이지. 패왕 앞에 저런 표정을 지어야지.

애초에 이제 저놈들에게 나??인간으로 인식은 되어있을까?

“자신있는 사람만 덤비고 아닌 사람들은 조용히 꺼지는 것이 어떤가? 괜찮아.

이 정도 되었으니 덤빌 용기는 없을 테니까.”

“뭣들 하느냐! 너희들은 저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이냐! 발해인의 힘을 요왕에게 보여주거라!”

다굴 치는 주제에 발해인의 힘을 보여준다만다해도 말이다.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나에게 덤비는 놈은 찾기 힘들다.

사람이란 그렇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고 나면 두려움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말기 마련이다.

그래도 국가의 자존심은 있는지 몇 놈은 나한테 달려들다가 던져졌다.

“귀.귀신이다!”

한 사람이 나를 귀신취급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반란군 일부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 같아도 죽지 않는 놈과 굳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저.저런 야차같은 인물이 다 있나! 젠장! 말갈놈들도 불러! 이판사판이다!”

확실히 나는 적일 경우 발해 최대의 위협이 될 테니까. 신덕의 말이 일리가 있다.

반군이든 정규군이든 상관없이, 오로지 발해라는 조국의 위협이 될 자를 알아보고 있다.

역사에 남지 않아서 그렇지. 저 자도 나름 생각이 있는 위인. 그렇다면 여기서 좀 힘으로 제압을 해둘까.

이참에 아군을 아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신사답게 해결하려 했는데, 저놈이 저렇게 나오는 이상 어쩔 수 없다.

“네 이놈 신덕아!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어느새 멀찌감치 떨어져서 나를 노려보는 신덕이를 향해 비릿하게 웃었다.

“뭐하나! 막아! 저 자를 막아!”

신덕이 병사들을 앞세웠으나, 이미 그의 측근들도 내 힘을 본 덕에 덜빌 만한 용기를 가진 병사가 없다.

“이런. 좋아. 덤비시오 요왕! 내 여기서 아주 결단을 낼 것이오!”

“흥. 뒤에서 쫑알거리지 말고 덤비기나 해라.”

“나는 대발해의 신덕이다! 발해의 병사들은 똑똑히 보라! 이야아아압!”

지금은 한참 오래된 과거. 정확히 이 빌어먹을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보았던 레슬링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 기분으로 나는 맨몸으로 달려들었다.

신덕도 내게 활, 창, 검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무식하게 달려들었다.

실성한 건지 아니면 신에게 빈 건지 몰라도 저 달려드는 모습은 흡사 불나방같았다.

내게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누가 보도 이것은 내가 피해자니까. 정당방위에 불과하다.

깡!

나를 향해 매섭게 돌진한 신덕의 검은 처참하게 부러지고, 그대로 신덕의 목을 한손으로 들어 그대로 내려찍었다.

“쿠허어어억!”

아마 뼈가 박살이 났을 거다.

당연히 이 광경은 모든 반군들이 보았고, 이제 이것으로 놈들의 전의는 완전히 상실했을 것이다.

“듣거라! 반군들아! 너희들의 장군이 내게 쓰러졌다! 아직도 계속 할 참이냐!

너희들에게 승산은 없으니, 지금이라도 모두 해산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라! 만일 내 말을 가벼이 여긴다면! 백제의 전사들이 너희들을 친히 벌할 것이다!”

결국 다들 무기를 내던졌다.

“자, 신덕. 이것이 장군과 나의 차이네.”

“유구무언이오.”

“반란군을 부렸으니 살려줄 수는 없지.”

“그럴 것이오.”

벌써 체념한 것 같다. 나에게 돌격할 때부터 생각없이 들이받는다 했더니, 생각대로였다.

“어쨌든 그대는 대광현의 수하. 이대로 상경조정에 올려 요왕으로서 대역죄인 대광현을 잡을 것이다.”

일단 나는 발해의 요왕이기도 하다. 반란은 용납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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