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52화 (52/154)

52. 흑수말갈

* * *

상경

“폐하! 요왕 부여금강이 장계를 올렸습니다.”

“무슨 장계인가?”

요왕이 상경 인근까지 군사를 몰고 왔다는 소식을 들은지는 오래였다. 설마 패전이라도 한 것일까.

그런데 정작 그 내용은 다른 것이었다.

-폐하. 서경유수가 새롭게 부임한 이후, 서경에서 이탈한 장군 신덕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본디 말갈은 반란에 뜻이 없었고, 지난 날의 상경의 군대와 있던 전투도 신덕이 주도하였던 일이니, 이것은 말갈과 상경사이를 이간질시키려는 신덕의 계략이었습니다. 반군 수장 신덕은 전투 중에 전사하였으니 그 목을 잘라 가독부께 바치고, 본래 진짜 반란을 일으킨 흑수부토벌을 말갈족과 하려 합니다. 부디 폐하께서는 흑수부토벌을 천명하시어 요왕인 신에게 흑수부토벌을 명하여 주십시오.

“허, 이 모든 것이 신덕이라는 놈의 뜻이었다고?”

심지어 말갈과 상경을 이간질시키려 했고, 전투 역시 신덕탓에 벌어진 일이었다?뭐 이런 쳐죽일놈이다 있나.

‘그러고 보니 요왕이 인물이라면 인물이로군.’

솔직히 꽤 걱정을 했다. 당장 상경까지 압박해오고 있기 때문에 급하게 장령부의 성들에 명을 내려 지방군을 상경으로 지원오게 할 생각이었는데. 요왕이 단숨에 신덕의 반군을 해체해버리고 말갈의 오해도 풀었다.

심지어 흑수부가 진짜 반란군이었다.

그래. 이왕이면 그들도 처리하게 만드는 것이 좋겠지. 지금 요왕이 끌고 온 군대와 말갈군이라면 흑수부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폐하. 그럼 문제는 태자전하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다 서경의 분조가 원인 아니겠습니까?”

신하들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서경의 분조가 진작에 상경 조정의 말을 듣고 해체했다면 신덕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리도 없고, 흑수부가 날뛸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어차피 나올 답은 뻔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반대를 하면대광현을 잡기는 곤란하다.

이제 아들에게 많은 기대를 할 수가 없다.

나라를 수습하기에는 신하들에게 너무 휘둘리니, 이참에 깎아내야 한다.

“나라의 분열을 초래하는 황자가 태자의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 될 일입니다.”

“폐하. 이미 여러 차례 폐하께서 자비를 내리셨는데, 태자께서는 요지부동이 시니 이것은 장차 나라를 좀먹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신하들의 뜻은 이미 굳어진 듯 보였다.

분조는 어쩔 수 없었으나, 지금 태자는 너무 무모한 짓에 나라를 갉아먹고 서 경의 귀족들만 움직이니 신료들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리 없다.

“““태자를 폐하시옵소서!”””

모두가 만장일치였다.

폐한 태자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뻔하다.

“경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도 더는 어쩔 수 없겠군. 요왕이 흑수부 토벌을 마치는 대로 태자를 폐하고 새 태자를 결정하겠다.”

“폐하! 요왕의 진의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요왕?”

부여금강의 진의라.

확실히 최근 요왕이 많이 커지기는 했다. 거의 독립적인 국가 수준으로 요동을 경영하고 있다고 하니 말은 다한 셈이다.

요동의 금강이 적으로 돌아서면 근심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금 1만의 군대를 보낸 것만으로도 그들의 군사동원력도 짐작할 수 있을 일이었다.

“예. 요왕은 스스로 신하라 칭하고 있으나 본래 백제의 왕자입니다. 이렇게 공만 세운다면 머지 않아 발해가 백제에 먹힐까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요왕이 가진 군세만 수만입니다. 요왕은 요의 조선왕까지 겸하고 있으니 만일 거란과 동맹하여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그랬으면 야율아보기가 물러날 때, 6만의 군대로 작정하고 발해를 점령하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적어도 거란과는 야합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란과 힘을 합치게 되면 거란에 땅을 줘야 할 텐데. 부여의 강역을 바라는 놈이 굳이?'

“설령 거란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백제 본국으로부터 북벌군을 지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왕이 이번에 아국을 지원한 까닭도 부여의 강역을 지키겠다는 명분입니다.”

“요왕은 일본 천황의 사위기도 합니다. 일본의 지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듣기에 따라서 요왕은 확실히 위험천만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들고 일어난 말갈군을 상대로 발해군은 패배했으나, 요왕은 바로 반군을 격퇴했다.

심지어 20만이 넘는 거란군도 요왕이 잡았다.

설령 발해의 위험인물로 부상한다고 해도 답이 없다. 그만큼 지금 국난을 수습하기가 어려우니까.’

“지금은 일단 두고보지.”

요왕이 가진 군대도 강군이다. 요왕을 트집잡아 토벌하려해도 3만의 강군이 요동에서 버티면 어렵다.

실제로 백제나 요가 도운다면 큰일이지.

그런 주제에 요왕이 위험인물이라고 하면 뭘 어쩌라는 말인가.

대인선은 답없는 신료들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 * *

완산주

“뭣이 어쩌고 저째! 일본의 천황이 감히 요동을 일본땅으로 정해! 금강이를 연왕으로 임명했다고!”

견훤은 요동에서 내려온 서신을 보고 까무러칠 뻔 했다.

“폐하! 고정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것이 고정해야 할 일인가! 그래! 군사를 지원받았지. 솔직히 그 덕에 요동을 얻기야했어. 그런데! 그건 신라땅으로 거래하기로 하지 않았나! 이 썩을 천황이 되지도 않을 욕심을 내! 아이고!”

견훤이 뒷 목을 잡았다.

그간 금강 덕에 백제가 커졌다고 하나 견훤도 이제 나이가 있다. 그저 막무가 내로 화를 냈다가는 껌벅 뒤로 넘어갈 처지였다.

최근 들어 생긴 등창의 영향도 견훤의 건강을 약화시키는데 한몫하였다.

“폐.폐하!”

신검은 쓰러지는 견훤을 붙들어세웠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할 거같은 견훤은 몸을 추스르면서 입을 열었다.

“태자야. 당장 일본에 사신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은 엄중히 항의해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예, 폐하!”

신검은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막상 견훤이 위급하니 사신을 보내겠다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일본과의 외교는 넷째왕자인 금강의 몫이었다.

그런 마당에 일본과의 외교를 홀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사신을 보내도 금강이 보내야 할 일이다.

“이거 참 큰일이로군. 금강이는 지금 말갈의 반군을 토벌하러 간다고 하였는 데,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신검이란 사내는 지금껏 금강을 의지해왔다.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여 옛 마한의 강역을 회복하였으나, 당장 금강이 요동까지 나아가 땅을 회복했다.

그 모든 것이 금강의 공이었고, 신검은 금강의 후광으로 동생의 공을 함께 나눠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막상 금강이 없는 이곳에서 전부 혼자 해결하려 하니 힘들었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상원부인도 살이 마르는 심정이었다.

태자가 된 신검은 이전보다 더 불안해 보였던 것이다.

“태자. 부왕의 뜻대로 하세요.”

“이러다 일본과 외교문제가 벌어지면 어쩝니까?”

일본과 친한 것은 결국 금강이다.

금강이라면 모를까 외교를 이대로 말아먹으면 큰일이다.

“이미 금강의 아내인 그 요시코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항의해도 된다고.”

요동에서 보내온 금강의 서신으로는 금강의 아내인 요시코도 일본에 항의하는 것이 맞다고 적혀있다.

생각보다 신검은 태자로서의 제대로 능력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견훤의 명은 착실히 수행은 있으나, 강단이 없다. 어미인 자신이 없으면 아마 진작에 용검이나 능환을 불렀을 거다.

역시 용검과 능환을 처단하길 잘했다.

그 둘이 있으면 후일 국정이 어떻게 돌아갈지 뻔한 뻔자였다.

‘정말 신검이 보다 금강이 왕으로서의 그릇이던가.’

제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다음 왕에 올리기 위해 태자가 되기를 바랬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보니 정말로 금강이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되면 완산주로 불러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상원부인은 뒤늦은 후회를 했다.

결국 일본으로 항의사신이 떠난 것은 신검의 느려터진 행동에 견훤이 격분한 후에나 가능했다.

* * *

동평부

흑수말갈의 세력권은 회원부에서 동평부까지였다.

동평부는 원역사에서 거란에게 함락되는 지역인데. 이번에는 흑수말갈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한심하군. 고구려의 뒤를 이었다는 발해가 말갈을 이렇게까지 제어하지 못하다니.

동평부로 올라가는 중에 수많은 백성들의 행렬을 보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백성들이 동평부의 백성들이었던 건가?”

“예. 전하. 그들은 피난민인 듯합니다.”

“동평부가 끝났다면, 우리 군대로 아주 끝장을 내야겠군. 이판사판이야.”

여기서 제압하지 못하면 흑수말갈들은 더 기세를 떨칠 것이다.

그러면 곤란하지. 지금 내 밑에 있는 말갈족들에게 충성맹세를 받지 못했다면 아마 동평부의 흑수말갈들이 나라를 세웠을 수도 있다.

“흑수부의 병력은 얼마나 있나.”

“흑수부에는 지금 조정에 반란을 일으킨 발해군까지 합하여 3만의 장정이 우리와 대치 중입니다.”

“3만이라.”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상경이든 신덕이든 둘 중 하나가 살아남아도 피해는 클 것이다. 그때 흑수부가 어부지리라도 하겠다 뭐 이런 생각이겠지.

“우리도 해볼 만합니다. 3만의 병력입니다. 정면에서 승부를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흑수부 추장과 담판을 해봐야겠네.”

“예. 전하.”

내가 이끌고 온 백제군에 합류한 말갈군이 2만. 도합 3만이다.

흑수말갈도 3만에 달한다면, 서로 군세는 비슷하며 회전에서 양측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겠지.

솔직히 우리 병사가 더 잘먹고 잘싸울 것 같지만 그래도 전면에서 싸우면 꽤 큰 피해가 날 것이다.

“제 아무리 못배워먹은 반란군이라 하나. 예의라는 것을 갖추고 있겠지. 흑수부 추장은 앞으로 나와 요왕전하를 알현해야 할 것이다!”

전장을 뒤흔드는 우렁찬 목소리에 흑수말갈쪽에서 지위가 높아보이는 놈들이 말을 타고 나왔다.

“우리들이 추장이오!”

그래. 이름없는 놈이로군.

굳이 알 필요도 없다. 흑수부를 잡고, 말갈을 온전히 백제의 백성으로 만들어 금나라를 세울 완안부라는 놈들이 나오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말갈의 반란을 선동한 이유가 무엇인가?”

“본래 우리 흑수부는 독립적인 부족이었소. 그런데 발해의 대무예가 우리를 무력으로 압박하여 세력권으로 편입시켰으니 그것만으로도 이유가 되지 않겠소?”

“궤변이로군.”

그야말로 궤변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무왕이 흑수말갈을 토벌하려 했으니까. 세력권에 넣으려 시도를 했고. 분하기는 하겠지.

그런데 토벌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저건 단순한 궤변일 뿐이다.

저걸 인정하는 순간 이 반란은 발해의 핍박을 받는 흑수부가 독립하기 위해 들고 일어난 것이 될 테니까.

“뭐요?”

“그래도 지금까지 발해 밑에서 잘먹고 잘살았지. 그래놓고 이제 와 독립을 하겠다?”

그저 내 눈에는 반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흑수말갈이 독종인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결국 흑수부는 아예 없애야 하는 건가. 생각 같으면 내 밑으로 두고 싶은데.

추장들의 얼굴을 보니 결심이 확고한 것 같다.

흑수말갈은 지금이 들고 일어날 절호의 기회다.

발해도 지금은 조금의 반군도 허용해서는 안 될 정도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그렇다면 양보할 수 없다.

“우리도 언제까지 부족으로만 살기 싫소이다! 조정에 빌붙어 가독부가 은혜를 내려줄 때까지 애타게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요! 우리가 왜 그런 처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오? 하여 나는 말갈의 나라를 세우고자 들고 일어났소이다!”

지금 막지 못하면 끝이다.

기세를 타고 세력을 확장하여 상경을 노리겠지. 당장 흑수 말갈들이 다른 수도에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지금 발해는 상경파와 서경파로 갈라졌고, 흑수말갈을 토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 토벌 명분을 가진 내가 막아야 발해의 민심도 얻고 흑수말갈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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