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65화 (65/154)

65. 대광현을 잡아라.

* * *

“부여금강 죽어랏!”

작정하고 나한테 덤비는 두 놈을 잡았다.

“너희들에게는 딱히 별 원한은 없다만. 세상이 이러니 어쩌겠냐.”

“어?”

푸부부부부부북!!

두 명의 병사를 들어 쏟아지는 화살을 막았다.

“어이쿠 이런. 전우들을 죽이다니. 참 댁들도 어지간하오?”

“그러고도 인간인가?”

고슴도치가 된 병사들을 내던지자, 다른 병사들이 함부로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화살을 날린 건 너희지. 내가 아니다? 자, 그럼. 대광현. 내 너를 잡아 이전쟁의 종지부를 찍어야겠구나.”

“안 되겠다. 병사들은 무얼 하느냐 나를 지켜라!”

나를 상대로 자기 몸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부터 대광현을 지키겠다는 놈은 먼저 죽여줄 것이다!”

“히.히익!”

몇 명의 병사가 자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대광현을 위해 죽을 놈들은 없는 모양이다.

죽는 것도 보람이 있어야 죽지. 저런 찌질한 놈은 지킬 가치조차 없으니까.

어지간하면 도망친 병사들부터 족칠 텐데. 이번 만큼은 아니다.

나 같아도 저런 건 지키기 싫을 것 같다.

여기서 시일을 끌 수는 없다. 지금 즘, 왕건의 군대도 부여성에 왔을 텐데.

나는 시험용으로 가지고 온 조총을 꺼냈다.

“전하! 얼른 고려의 왕건에게 도망치십시오! 이곳은 신들이 맡겠습니다!”

“큭! 고맙소!”

“반드시 대업을 이루소서.”

대광현과 오흥은 눈물의 촌극을 찍더니, 도망칠 준비를 서둘렀다.

그렇다해도 이미 늦었다. 내 총은 대광현을 겨냥하고 있었다.

바보들은 조총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이 활이 아니니 딱히 병사들이 대광현을 호위한다기보다 신속히 떠날 준비를 했다.

어차피 나와 맞서서 호위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안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사망플래그인 줄도 모르겠지.

“지랄을 해요. 지랄을.”

좀 얍삽한 것 같지만, 전쟁을 수월하게 이끌어서 고려를 외교적으로 비난하려면 대광현은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놈의 옆구리를 맞췄다.

탕!

“크흑!?”

사람을 상대로는 처음 쏴보는 건데. 아주 제대로 맞았다.

여기서 놈은 죽인다. 반드시 죽여서 왕건이 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 의미가 없어지도록 만들 것이다.

“전하! 전하!”

“내가 살려 보낼 거 같았냐?”

장전은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준비는 끝내 놓았다.

대광현이 다시 일어설 무렵. 감을 잡은 나는 대광현을 노렸다.

주변의 병사들이 뭔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당황한 지금이 기회다.

탕!

이번에는 머리통에 맞추자 대광현은 더 말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아, 그러니까 도망치지 말았어야지.

아마 대인선이 사살을 주저했다면 나는 여기서 대광현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대광현은 잡았으니, 문제는 다른 놈들이다.

“저.저런. 찢어 죽일 놈!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오흥이 미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자기 주인이 죽었으니 저럴 만도 하지만. 이제 반란의 중심인 대광현이 죽었으니, 서경과 남경의 군대는 구심점도, 명분도 없는 반란무리에 불과하다.

하늘이 두렵냐고? 그 하늘이 나에게 이런 걸 바라고 있다.

“그 하늘이 두렵지 않아 반란을 일으킨 놈이 헛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이전처럼 발해의 병사들은 놈들은 나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서경과 남경의 병사들아! 너희는 이대로 반란군으로 찍히고 싶냐?”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내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나는 저놈을 잡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 스스로 하극상을 벌여 오흥을 끌고 온다면. 살려주도록 하지.”

굳이 죽여서 무엇하냐.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병사들이 오흥을 배신하고 나에게 붙겠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믿지 마라! 저놈은 우리를 모두 죽일 것이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기회를 얻기도 전에 죽을 거다. 그래도 될까? 저놈을 잡고 발해의 천명을 받들어라.”

아직 대인선의 천명은 끝나지 않았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크윽. 발해의 천명이 왜 백제인의 손에 가 있느냐!”

“너같은 덜떨어진 놈의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이런. 뭣들 하느냐! 금강이 저놈을 죽여라!”

하지만 오흥의 명령을 들을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죽이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왜 말을 듣지 않느냐니.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미 전세는 기울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오흥과의 의리를 지키느냐. 그도 아니면 이대로 나에게 맞서느냐.

이놈들은 바보가 아니다. 최소한 지금 오흥과 나 중, 누가 이기는지는 뻔히 알 것이다. 이미 대광현까지 죽어버린 마당에 오흥 혼자 무엇을 할까. 심지어 온갖 무기가 통하지 않는 괴물을 상대로 일개 관료따위와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이.이놈들!”

결국 반란군은 나를 따르기로 했다.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따른 죄밖에 없지 않습니까!”

오흥 입장에서 보면 배신감이 넘쳐흐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나라도 살기 위해서 오흥을 배신했지. 원래 사람은 살고 볼 일이다. 특히나 지금 무의미하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는더더욱.

“그렇다고 이 어찌!”

“태자가 죽은 이상, 우리가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오흥은 반란군 손에 그대로 잡혔다.

“요왕 전하! 부디 청합니다. 우리들을 살려주십시오!”

“내 너희들의 뜻을 왜 모르겠느냐.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겠지.

원래 무능한 지휘관 아래에서는 병사들이 더 고생하는 법이다.”

제 아무리 대군을 가지고 있어도, 백전불패의 군대를 가지고 있어도 지휘관이 무능하면 그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이놈들은 원래 오합지졸이다. 서경과 남경의 지방군일 뿐이다.

“이제 저희들을 살려주시는 겁니까?”

“살려줄 뿐인가. 설령 가독부께서 용서치 않으신다면, 내 너희들에게 요동성에서 살 수 있도록 할 테니, 나를 믿고 따라라.”

대인선이 용서하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나만 좋지. 이 시대에는 인구가 곧 힘. 내가 다스리는 영지가 나라꼴까지 갖추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전하를 따르겠습니다!”

이건 뭐 마인드 컨트롤도 아니고.

* * *

부여부 왕건의 본진

대광현이 사라진 그 시각. 왕건의 고려군 본진도 난리가 났다.

“대광현이 사라져?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그것이. 알아보니 부여성으로 먼저 갔다고 합니다.”

동맹을 맺고 있는 군대의 총사란 자가 멋대로 뛰어나간 것이다.

공격 직전에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대광현. 그 자는 일을 망칠 셈인가.

“그런 정신나간 인사가 있나! 그럼 왜 군대를 나눴다는 말인가? 왜 소수의 군대만 끌고 간 것이야?”

“폐하. 소장의 생각으로는 대광현이 우리에게 공을 다 빼앗길까 우려한 것입니다.”

지금껏 진격 중에 대광현의 군대는 번번이 상경의 군대에 패하기만 했다. 왕건의 고

“그럴 만합니다. 상경도 다 우리가 점령하지 않았습니까? 대광현의 오합지졸군사로는 성벽 하나 넘지 못했습니다.”

대광현은 군대다운 군대가 없었다.

확실히 고려에 모든 것을 의탁했지.

“확실히 이 전쟁의 주도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발해는 우리에게 끌려다니게 될 것입니다. 대광현도 그 정도는 인지하고 있던 것이지요.”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인간이었나.

“그렇다면, 그 군대로 무엇을 하려고 먼저 출발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대인선을 암살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인선만 죽이면 사실상이 전쟁은 끝입니다.”

“흐음.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가 보군.”

대인선을 죽이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미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상경도 초토화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발해를 지키고자 하면 대인선을 죽이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그래서 고려군보다 먼저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광현입니다.”

“무슨 말인가?”

“대인선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소수의 군대를 끌고 갔다면.”

그 군사로 부여성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경과 남경의 군대는 하나같이 그 질이 떨어집니다. 지금 발해의 정예는 부여부를 비롯해서 지난 전쟁에서 살아남은 병력뿐이지요. 그런 마당에 대광현이 정예를 골라 뽑았어도 과연 대인선을 암살하는 것은.”

성으로 몰래 들어가 암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도박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겠지.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

“그렇습니까?”

“생각해 보라. 대인선은 요왕 부여금강에게 지원을 요청할 것이네. 당연히 부여부가 위급하면 요동으로 도망치려 하겠지.”

부여성이 지금의 고려군을 막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니 대인선이 지원을 요청한다는 소리겠지.

“그 길목에서.”

“그렇네. 부여성에서 금강이 있는 요동성까지 가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네. 우리가 부여성을 공략할 동안 대광현은 그리하겠지.”

일부러 남경과 서경의 군대의 주력을 남긴 이유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되겠습니까?”

“대광현이 금강이라면 가능하겠지.”

다만 대광현이 금강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 자는 금강도. 그렇다고 지도자의 자질도 없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대광현이 대인선을 잡게 된다면 어쨌든 그것으로 전쟁은 끝이 나네. 우리는 서경과 남경의 땅을 얻겠지.”

어차피 원래 목표는 이룰 것이다.

발해의 서경과 남경의 땅을 얻는다. 그것만으로도 고려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행보를 또 달리할 수 있습니다. 폐하.”

행보를 달리한다라, 그건 또 무슨 뜻인가.

여기서 대인선이 잡히면 남경과 서경으로 만족해야 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문제는 없지만 이후에 또 욕심낼 것이 있는 건가?

“말해보아라.”

“이참에 대광현도 잡아 우리가 발해를 병합하는 것입니다.”

“으음.”

대광현을 잡아 발해를 병합시킨다고?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 발해는 바람 앞의 등불. 대인선과 대광현까지 제거하면 발해를 집어삼킬수도 있다.

‘확실히 그것도 좋은 방법일 거 같기는 한데.’

부여부만 격파하면 사실상, 발해 북부까지 평정이 끝난다. 막힐부와 장령부도 알아서 굴러들어올 테니까.

말갈군이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지만, 들어보니 그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농기구를 잡았다는 것 같고. 일부는 요동성으로 갔다는 거 같다.

그렇다면 한 번 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발해의 천명을 고려가 쥘 수 있다. 옛고구려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다.

“문제는 금강이 아니겠습니까? 그리되면 금강역시 발해를 먹고자 할 것입니다. 아마 한 번 큰 전투가 있을 것입니다.”

역시 그놈의 금강이 문제인가.

“일이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괜히 남부전선에 군대를 나눈 터라.”

“그렇다고 해서 신라를 그냥 둘 수도 없던 노릇이다.”

그때였다.

피칠갑을 한 병사들이 막사로 들어왔다.

“폐하, 대광현 휘하의 군사들이 도망쳐왔습니다!”

그놈들이 왜 도망을 친다는 말인가?

“도망치다니? 무엇으로부터? 네놈들이 직접 말해봐라!”

“그것이. 그 금강왕자에게 태자께서 살해당하셨습니다!”

패잔병들이 고개를 떨궜다.

청천벽력같은 소리. 전쟁의 향방이 걸린 아주 중요한 소리.

“뭐.뭐라고!”

“오흥 어르신도 이미 배신자들에게 잡혔습니다!”

배신자들에게 잡혔다니. 아니, 대광현이 죽은 이상 더는 의미가 없다.

“젠장.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는구나!”

“대광현의 수하들은 듣거라. 금강의 군대가 얼마나 되느냐?”

대광현의 군대를 잡고 대광현까지 죽였다면 상당한 병력을 끌고 왔을 것이다.

심지어 부여성에도 아직 백제군 5천도 있지 않은가.

“고작 호위병 십여명이 전부였습니다.”

고작 십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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