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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91화 (91/154)

91화

일본 경략에 앞서 일본 호족들의 수준을 봐야 한다.

"상귀 장군, 적들의 수준은 얼마나 되나?"

"전하의 말씀대로 해적 놈들의 화살은 우리 배에 닿지 못하였으며, 단병접전 역시 시도조차 못하고 침몰해 사라졌습니다. 저들은 전혀 우리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역시 나주의 백제 수군에 부여군만 동원해도 충분할 것 같다.

"수군 5천에 부여군 1천을 동원하는 것이 낫겠군. 우리가 타다라와 연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 호족 놈들이 상륙을 막기 위해 뭔 수작질을 벌일지 모른다. 준비는 신속하게 해야 해."

"다타라로 출정 준비를 하겠습니다, 전하."

다타라를 시작으로 규슈와 혼슈를 점령해나가야 한다.

호족들이 연합하기 전에 타격을 줘야 하겠지.

솔직히 연합한 호족들을 한 번에 잡는 것이 더 이상적이기는 하다. 이왕이면 내가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 알아서 항복해오는 편이 더 좋으니까.

한꺼번에 처리하면 알아서 길지 않을까.

"문제는 이후에 일본을 어찌하느냐인데."

"전하, 백제로 편입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럴 것입니다만, 이 과정에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호족들을 다 처단한다고 하더라도, 일본 열도는 매우 큽니다."

일본 열도는 백제보다 커다랗다. 안 그래도 중앙집권이 붕괴되어 각 지역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지금의 일본이다.

"하긴, 그렇습니다. 편입한다 해도 그대로 방치하면 호족들이 언제고 다시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좋은 안이 없겠습니까?"

"연방정부는 연방의 정책을 주관하지만, 사소한 것은 각 나라의 조정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연방정부 형태를 가져온 이유는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중엔 나라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백제의 수도를 신라의 금성으로 옮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백제 본국과 열도를 통합한다면, 서라벌은 강역에서부터 중앙통제력을 미칠 적당한 수도로 생각됩니다."

백제의 수도를 신라의 금성으로?

"백제의 수도를 말입니까?"

"엣, 한성을 다시 수도로 삼기에는 너무 멀지 않습니까? 자고로 수도란 국가의 중심에서 둬야 전국을 다스리는 데 적합합니다. 심지어 일본은 바다 건너에 있습니다. 차라리 신라의 서라벌을 수도로 둬, 신라인들의 민심도 다독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차피 연방의 총리부는 평양에 따로 있으니 괜찮지 않습니까?"

완산주는 일본에서도 너무 멀다. 신라의 서라벌도 먼 편이지만, 한반도와 열도를 두고 볼 땐 차라리 완산주나 한성지역보다 훨씬 낫다.

"확실히 그렇겠군."

"더군다나 신라의 서라벌은 무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수도로 나쁘지 않습니다."

확실히 쳐들어갔을 때는 여건이 안 되어 그냥 넘겼으나, 사방이 기와집인 것이 딱 봐도 비싸 보이고 품격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심지어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수도. 지형에 의존하면서 대도시로 성장한 서라벌은 당나라의 장안을 본받은 발해나 일본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래도 백제가 철천지원수인 신라의 수도로 천도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백 년을 한 맺혔던 백제다. 그런 백제가 신라의 수도로 천도한다면 과연 세간에선 무슨 의미로 해석해댈까.

"전하, 어차피 통일되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백제인, 신라인을 구분지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전하의 뜻대로라면 소신도 본디 신라인으로 전하의 곁에 있으면 안 되는 인물입니다."

딱히 그런 의미에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냥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내 생각이 짧았습니다. 완산주의 형님께 한 번 건의를 해보지요."

서라벌은 인구밀집도도 나름 높은 편이다. 원 역사에서도 고려 때까지 대도시였다고 하니, 신검이 허락한다면 못해 볼 것도 없다.

* * *

헤이안쿄.

천황이 야반도주하듯 떠난 일본의 헤이안쿄는 일본의 귀족, 호족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천황이 설마하니 일본을 떠날 거라곤 예상도 못 해서 다들 확인하러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다들 침통해했다.

"천황이란 작자가 타국으로 망명을 하다니요!"

어떻게 그러고도 한 나라의 군주라 할 수 있는가.

"이건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완산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완산주라면 백제의 수도다. 아주 작정하고 백제에게 몸을 의탁하려 한 것이다.

"제아무리 백제라도 지금의 백제가 과거의 백제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심지어 본디 그들은 견씨였습니다!"

"제 몸 하나 살고자 직접 백제로 건너가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분명히 백제의 황제로부터 군사를 요청할 셈일 것이다.

귀족과 호족들이 좀 위협했기로서니 작정하고 일본에 스스로 내전의 문을 열었다.

도무지 천황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다.

"그자는 더는 천황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이 땅에 천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합니까?"

"어쩌기는요. 그냥 각자 살아갑시다. 다들 영지는 있지 않소? 굳이 무능력한 천황 밑에 있는 것 보다는 각자 살아가는 게 나쁘지 않을 것이오."

천황 밑에 굳이 있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백제군이 넘어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천황을 잡았어야 합니다."

"그를 잡더라도 금강이 있습니다. 금강이 군대를 몰고 장인을 구하겠다고 달려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백제의 신무기는 보셨습니까?"

신무기에 대한 소식은 호족들도 들었다.

백제 배에서 쇳덩어리가 날아와 배를 박살 냈다고.

솔직히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말이 됩니까? 쇳덩어리를 날리는 족족 배가 부서지다니. 그냥 패배한 놈들의 변명일 뿐입니다. 게다가 백제군이 아무리 강군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우리를 칠 여력이 없어요."

"무슨 말이오?"

"그들이 신라와 태봉을 멸망시켰다고 합니다. 분명 병력이 상했을 텐데, 군대를 또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흡수한 영토를 관리해야 할 테니 백제는 당장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설령 백제군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통일한 삼한 땅을 다스리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들이 굳이 국력을 기울여 일본으로 건너올 리 없다.

"그렇다면 일본 열도는 우리 세상이라는 것이로군."

"문제는 다타라입니다. 다타라는 백제와 교역을 하며 그간 많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다타라를 다 함께 잡든지, 아니면 적절하게 경계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백제와 교역하는 대표적인 일본의 가문이 다타라였다.

다른 지역도 교역을 하긴 하지만, 가문 전체라기보단 상인들끼리의 사무역에 불과했다. 그러니 혹시라도 다타라가 백제를 대신하여 일본을 통일하려 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타다라를 잡을까 하니 문제 되는 것은 그 뒤에 있는 백제였다.

"굳이 건드릴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백제를 자극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지금 백제는 북쪽의 고려와 연합체라고 하니 고려를 이용해 우리를 칠 수도 있습니다."

백제가 직접 넘어오지 않더라도, 다타라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고려군을 파병하려 할지 모른다.

"그럼 좋소이다. 그럼 다타라는 제외하고 우리들은 각자 독립하는 것으로 하지."

일본의 귀족, 호족들은 각자 독립하기로 협의를 보았다.

그러나 아직 처리되지 않은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헤이안쿄는 어떻게 합니까?"

헤이안쿄. 일본의 수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황이 나라를 다스리던 수도. 다른 지역은 몰라도, 헤이안쿄를 취하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천황이 도망갔다고는 하나 오랫동안 천황이 머물던 곳이었다. 당연히 이런 땅을 취하는 것은 찝찝했다.

"헤이안쿄는 중립으로 두는 것이……."

"아니, 일본의 황도를 그대로 비워둘 수는 없는 일."

"그냥 비워두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되면 도적들의 소굴이 되지 않겠습니까?"

헤이안쿄를 두고 호족들의 의견이 갈렸다.

그리고 한참 의견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자, 한 호족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먹는 자가 천황이 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은 조금 전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호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말이 아닌가.

천황이 말 그대로 나라를 버리고 백제로 도주한 이상, 이 나라에는 군주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대륙의 전국시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일단 이 일은 하루 이틀로 결론을 낼 것이 아닌 것으로 봅니다."

"예. 우선 각자 영지로 돌아가지요. 천황이 나라를 버렸다는 소식에 침통하기 그지없는데 새 천황이라뇨."

"그럽시다. 그럼 각자 돌아갑시다."

서로 눈치를 보던 호족들은 마치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사정을 대며 자기들 영지로 돌아갔다.

* * *

일본에 천황의 소문을 흘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상좌평 최승우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늙은 나이에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어쩌겠나. 상좌평이 일본을 전담하고 있으니 다른 자에게 넘기기도 힘들다.

"전하. 일본의 호족들이 헤이안쿄에서 만남을 가졌다 합니다."

천황이 없는 헤이안쿄에서 일본 호족들의 만남이라. 심지어 해상에서 천황을 잡으려고 했다지.

"그렇습니까? 무슨 이야기가 오갔습니까?"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헤이안쿄를 점령하는 자가 천황이 되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럼 답이 나왔군. 이미 장인은 천황의 자격을 잃었다. 전쟁 이후 호족들을 수습하지 못해서 여기까지 끌려왔다.

물론 중간에 상좌평이 천황을 적당히 구워삶아서 나라를 수습하기 어렵게 만든 것도 있다.

심리적으로 천황을 압박해서 천황이 도망가게 만든 것.

그러나 누구의 영향이든 황좌가 빈 것은 맞으니, 당연히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가 나타나겠지. 당장 막부를 만들며 일본의 실권을 잡던 것이 일본의 무가들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지만 그 종특은 어디로 가지 않을 것이다.

아마 천황 자리에 말이 터진 이상, 호족들은 암묵적으로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슬슬 불이 붙고 있겠군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완산주에서는 천황을 잘 잡고 있답니까?"

신검이 천황을 잘 잡아줘야 한다. 아마 내 아내도 있으니 지원군 문제로 재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황제께서 황궁에 처소를 마련하여 천황을 위로하고 있다 합니다."

음, 그래야지.

"일단 군사를 모으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황제께서 황궁에 천황을 가둬놨으니, 나주에 대군을 집결하고 있다는 소문을 흘려도 충분할 것입니다."

신검이 눈치 하나는 빠르다.

이제는 정말 황제로서 뭔가 해볼 셈인 걸까.

"이대로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일본에 전국시대가 열리면 아마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대부인께서 슬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글쎄. 그럴 여자는 아닌 것 같다.

"의외로 야망이 있는 여자입니다. 제 자식을 천황에 올리려 하는데, 그러자면 호족들은 눌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일본을 완전히 정복하려면 호족들은 두들겨 잡아야 합니다. 이 방법이 백제의 피해를 줄이면서 일본 호족들이 자멸하도록 만들 방법입니다."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겠지.

그 결과, 아마 일본 열도는 전국시대로서 꽤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과연 지금 내가 새로 쓰는 역사에서 전국시대는 어떻게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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