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24화 (124/154)

124. 야율배의 몰락

낙양성 밖 야율배의 막사에서는 야율배가 회군의 뜻을 굳혔다.

"유지원도 믿을 수 없는 놈이다. 낙양을 점령하고 말이 바뀔지 어떻게 아는가? 차라리 돌아가서 내 백성들을 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황제다. 황제가 백성들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낙양이 진작에 함락되었다면 몰라도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힘들어졌다.

야율배는 밤중에 몰래 군을 회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낙양성의 석경당에게도 전해졌다.

"야율배 그놈이 군사를 돌렸다 이 말인가?"

"예, 폐하."

그러고 보면 최근에 최승우라는 자가 들르지 않았던가.

낙양에서 계속 버티라고 했다. 야율배가 회군할 때까지 말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말인가 싶었는데, 마침내 그때가 이른 것이다.

"아무래도 임황부에서 사단이 난 모양이로군."

"네. 불길이 치솟았다 합니다."

불길이라. 역시 연방의 총리다. 물불 안 가리고 화려하게 오랑캐의 성이라고 불태운 것이겠지. 그래서 연방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묵사발 날 것이 뻔하니까. 심지어 군사력도 절대 중원에 뒤지지 않으니 천자국이라 하여 동이를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제법 좋아졌다.

"지금 각지에서 지방군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지?"

유지원과 진 조정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관망하던 놈들이 지원군을 보내기 시작한 것을 보면 북방에서 총리가 요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지원군이 끊길 일이 없겠지.

"예. 연운의 연방군들이 유지원이 점령한 성들을 탈환하고 낙양으로 진군하고 있다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유지원의 군대만 남았겠군."

"예, 폐하."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유지원을 잡고 말 것이다.

"이 찢어 죽일 놈은 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지원군도 온다 하니 우리가 이곳에 마냥 숙이고 있을 이유가 없다. 군사를 준비하라. 내 직접 야습을 하여 놈들에게 일격을 먹일 것이야!"

야율배의 요나라군이 회군하자, 진나라의 석경당은 밤에 군대를 이끌고 직접 낙양 밖으로 나가 유지원의 반란군 진영에 공격을 가했다.

다음 공격에서 낙양을 끝내려 했던 유지원은 병사들을 모두 쉬게 하였는데, 하필 그것이 문제였다.

유지원의 군대는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적들을 막기에는 준비를 하지 못했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석경당의 군대가 야습을 해왔습니다!"

석경당의 진나라군이? 대체 무슨 생각인가.

"그자가 어찌! 야율배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요나라군은 무엇을 하고 있어? 이참에 요군이 후미를 찌르면 능히 이길 수 있지 않나!"

지금 야율배의 군대가 후미를 공격한다면 이길 수 있다.

오히려 석경당을 끝내고 새로운 하늘을 열 절호의 기회다. 이 말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야율배의 군대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야율배가 도망을 쳤다고? 다 왔는데 이걸 도망을 쳤다고? 젠장! 크게 될 인물이 아니었어!"

어떻게 진나라 도모를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이럴 수 있는가.

"이미 대오가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퇴각하라!"

그래도 아직 수는 이쪽이 더 많다. 물러나서 군사를 정비하고 다시 싸우면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유지원은 생각이 너무 얕았다.

각지에서 올라오는 진군은 유지원에게 너무 위협적이었다.

"유지원을 죽여라! 감히 부여연방에 대항한 대가를 치르게 해줘라!"

"진군은 진격하라! 역적놈의 목을 베라!"

연방과 진군의 위협. 낙양에서는 석경당이 복수의 칼을 휘두르고 있으니 유지원은 다 점령한 낙양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각지에서 몰려드는 진나라군에 밀려 유지원은 자신의 본거지인 태원부로 퇴각해야만 했다.

* * *

임황부를 점령하고 며칠이 지났다.

연방에 저항하는 거란과 한족들을 싹 제거했다.

그리고 야율배가 회군하는 시점에도 계속해서 거란족 놈들을 요동으로 보냈다.

그러자 이 야율배라는 놈이 참 뒤늦게 사신을 보냈다.

"야율배의 사신은 어디 지껄여 보아라."

과연 사신이라는 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각하, 이번 일은 서로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래. 네놈들 입에서 그런 말이 아니면 달리 무슨 변명이 나올까.

우리보다 힘이 강한 것도 아니다. 거란족의 군세를 어떻게든 전부 끌어모으면 모르지만 지금 요나라로는 무리겠지.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고. 이렇게 숙일 걸 왜 이리 깝칠까?

이왕 저질렀으면 낙양을 무너뜨리는 기염이라도 토했어야지.

그리고 그 낙양을 먹은 상태로 유지원도 잡고 진나라를 장악하던가.

돌아오는 시점에서 이미 야율배는 끝이 난 것이다.

그래. 얼마나 어떻게 지껄이는지 들어보자.

"오해가 있었다고? 말해보아라."

"먼저 아국의 폐하께서는 요의 황권에 심각하게 반발하는 백제인들을 처단한 것뿐입니다. 물론 미리 연방에 사람을 보내지 못한 것은 아국의 실책이나……."

사신은 내가 예상한 말들을 아낌없이 토해냈다.

이미 연방은 거란을 용서할 생각이 없는데 말이지.

아주 말이면 단 줄 알지.

"그것만으로 전쟁 명분이 되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너희들이 진나라를 공격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테냐."

"진나라의 경우에는 저희는 절대 진이 연방의 제후인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일단 임황부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임황부에서 물러난다라. 그 협상이 진행되기에는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글쎄. 진의 여러 지역을 공격하고 수많은 병사들도 죽였다지? 게다가 낙양을 공격하지 말라고 했더니 최후통첩을 어겨 이 사단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야율배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야율배가 회군하지 않을 것도 알았고, 설사 회군한다 해도 조질 계획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봐줄 이유가 조금도 없다.

"각하,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시고 뭐고 없어! 이미 아군의 기병대가 요나라 각지를 점령하고 있다. 그런데 야율배 따위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미 5만이 넘는 기병대가 전국각지를 들쑤시고 있다. 그런데 감히 야율배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네놈이 해야 할 일은 야율배의 항복 서신을 가지고 오는 일이야!"

멍청한 놈들. 아직도 동등하게 뭔가 해보고 싶다는 건가.

"항복이라뇨,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각하와 아국의 폐하께서는 그간 얼마나……."

"그 관계를 깨 먹은 것은 바로 네놈들이야! 이번에도 유지원이라는 놈의 말에 놀아나 우리를 척진 주제에 앞으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각하,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당분간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배신도 능력이 있는 놈이 하지. 이번에 털릴 만큼 털린 놈들이 과연 연방을 다시 배신할 수 있을까?

결국 약해지면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저자세로 들어가겠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키우면 다시 들고 일어날 것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아니, 그렇다 해도 너희들이 할 일은 우리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신의를 지키지 않고, 탐욕에 눈이 먼 자는 결코 천자의 그릇이 되지 못한다. 황제의 호칭은 어울리지 않으니, 본래 북방의 군주를 아우르는 칸의 지위가 옳다."

어딜 감히 그런 소인배 같은 놈이 대칸과 천자를 칭한다는 말인가. 이미 원 역사와 달리 요나라는 발해 공략도 실패하고 나약한 국가가 된 지 오래였다.

"그건 너무 무례합니다! 어찌 우리 황제께서 대칸도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무례라 하였는가? 어찌하여 네놈의 주인이 대칸의 자격이 있다 말하는 것인가?"

"우리 황제께서 북방의 거란족을 통일하였으니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웃기고 있네.

"그런 의미라면 거란과 말갈을 아우르는 고려의 가독부께서 대칸이 아닌가? 제국이라 칭하고 대칸이라 칭할 정도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가?"

"너무 무례하십니다!"

무례는 이쪽이 더 무례하다고 느꼈지. 그저 말단 사신 따위를 보내어 협상을 걸고 앉았다.

내가 왜 봐줘야 해?

"더는 요에 베풀 자비는 없다. 그건 사신도 이곳에 오면서 봤으니 잘 알겠지. 안 그런가?"

아마 그라면 알 것이다.

"설마 그 시신들은……."

"그래. 정말로 거란족들의 것이네. 설마 한족들로 알았는가?"

저항하는 거란족들로 나는 임황부 밖에 경관을 만들어 놓았다.

야만스럽다? 신의를 저버린 놈들의 최후가 어떤 꼴을 맞이하는지 철저히 보여준 것이다.

조금의 싹이라도 뿌리 뽑기 위한 방법이다.

"아국의 폐하께서도 연방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초원의 촌놈이 어쩌게? 우리와 싸울 군사가 충분한가 군량이 충분한가? 사기는 높고? 용서는 말이다, 힘이 있을 때나 하는 거야. 가서 똑바로 전해라. 다시 칸이 될 것. 조공을 바칠 것. 직접 와서 항복의식을 치를 것."

"좋습니다. 전해는 드리지요."

거란의 사신은 얼굴이 잔뜩 구겨져서 돌아갔다.

아마 야율배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기대한다. 그렇게 해야 야율배를 더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이대로 전쟁을 할 것입니까?"

"해야지. 자, 모두 전투 준비를 하라. 어차피 놈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제 백성들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자살이라도 할 것이다."

아마 죽기 살기로 쥐어박을 것이다.

미친개는 무서운 법이지. 고려 출신 기병들이 10만에 달한다 하나 아마 꽤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낫지 않나?

화약을 이용해 잡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저놈들을 단 한 번에 조질 방법을 써야지.

"각하. 놈들이 임황부으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할 때에 진군을 시작했다면 아슬아슬하게 전략을 써먹을 수 있겠다.

"그래? 일단 내어주거라."

"내어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수도를 안 내놓아줄 것처럼 말했으니까.

"교역 도시로 만들려면 갈아엎을 필요가 있다. 그러니 나가기 전에 남아도는 화약들을 놈들의 군대가 입성하는 대로에 싹 깔아두거라. 수레도 나쁘지 않겠군."

5만 명 이상을 몰살시키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수레에 화약을 실어 놈들이 지날 대로 주변에 깔아두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실 연유가 있습니까? 차라리 한번 시원하게 맞붙는 편이……."

"장수들은 모르는군. 백성이 한 명도 남지 않은 황도로 들어와 잿더미가 된 황궁을 보는 황제의 기분은 어떨까?"

백성이 없고, 황궁은 불타고 있다. 아마 이것은 야율배의 멘탈을 있는 그대로 깨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야율배와 군사들이 산화하겠지.

"아."

"아마 죽을 맛이겠지."

적어도 내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율배는 조금의 자비도 받을 자격이 없다.

야율배가 어떤 반응을 할지. 크게 기대가 된다.

"그렇다면 군사들을 철군시키되 적들의 추격을 조심해야겠습니다."

"아군의 기병대가 있지 않은가."

직점 정면전이라면 모를까. 뒤에서 추격해오는 요군 정도는 우리 기병대가 끊어버릴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요군은 박살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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