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26화 (126/154)

126. 유지원의 죽음

아무래도 유지원은 지금 현실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쯤 되면 항복할 법한데. 멍청한 자가 뭘 믿고 저러나.

"그럼 단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불과한 건가."

"사실 이미 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만."

"설마."

석경당이 초조한 표정으로 불안한 말을 하는 것이 수상하다.

패배했다는 개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석경당이 그만큼 무능하다는 말인가? 져놓고 잠시 군사를 물려 나를 마중나오기라도 한 걸까?

그럼 최악인데. 이미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만큼 진나라군이 형편없다는 뜻이 아닌가.

"예. 함락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이러니 그놈이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로군.

"그럼 일단 태원부로 가보지."

태원부의 성은 유지원이 증축은 확실히 해놓은 모양인지 꽤 커다랬다.

그래도 그렇지, 이거 하나 함락하지 못하고 뭐 하는 짓인가. 성이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데. 병사도 적은 마당에 성의 면적이 넓으면 그만큼 틈이 생기지 않나.

하여간 답이 없다.

그래서 일단은 항복을 시키는 쪽이 좋을 것 같아 직접 사람을 보내봤다.

"이미 네놈은 포위당했다! 항복하라!"

요동에서 출진한 병력은 12만. 연운 16주의 2만에 석경당이 끌고 내려온 병력이 다시 12만이니 총합 26만의 군대가 태원을 포위하였다.

이미 유지원의 주력군은 태원까지 쫓기면서 계속 갉아 먹혔다.

남은 군대는 끽해야 수만도 안 된다.

그리고 태원성에서는 유지원이 아주 우리를 비웃고 있었다.

"크하하하핫! 연방의 오랑캐들이로구나! 오랑캐 놈에게 항복 따위 할 성싶으냐! 보아라! 석경당은 이 태원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저자는 황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저놈은 아무리 봐도 황제의 자격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지원이 황제의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마 자기는 황제의 자격이 있다는 개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서 네가 우리를 이길 수 있다 그리 말하는 것인가?"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한심한 놈. 드디어 실성한 것이 틀림없구나. 신무기의 위력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낙양에서 겪을 만큼 겪었을 테니까.

그럼 바라는 대로 해줘야겠지.

"그 말 후회하지 말 것이다! 관흔 장군. 화포란 화포는 다 끌어모으게! 아주 작살을 낼 것이니!"

"예!"

연운 16주에서 방어를 위해 준비해둔 화포들까지 죄 끌어와 태원을 포위했다.

아마 오늘 사용하는 화약 때문에 당분간은 포병대들이 쉬게 될 것이다.

콰과아아앙!

화포가 끊임없이 태원성을 향해 불을 뿜었다.

쇠 포탄과 함께 투석기도 계속해서 태원을 향해 돌을 던졌다.

마치 연방의 국력을 과시하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커헉!"

성벽 위에서 지금까지 석경당을 잘 막던 유지원의 병사들은 계속되는 포격에 성 밖으로 떨어지거나 지거나 포탄에 직격당해 죽었다.

병사들은 성을 포위해서는 오로지 성문과 성벽만 쉴새 없이 두드렸다.

"화약을 모조리 쏟아부어라!"

콰아앙! 콰과앙!

태원성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성벽이 무너졌다.

어쩔 수 없다. 증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으니. 이게 정상이겠지.

가만히 보니 무너져가는 성을 바라보며 석경당이 부르르 떨고 있다.

슬슬 겁을 줄까?

"황제, 잘 보시게. 저것이 연방을 거스른 자의 최후네. 일본도 그렇고, 요나라도 그렇고, 태봉과 신라도 저렇게 당했지."

"그, 그렇습니까."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꽤 겁이 많은 석경당은 내 말에 침을 삼켰다.

"심지어 태봉의 왕은 온갖 굴욕을 당했네. 후궁들은 전부 고려의 고관대작들에게 첩으로 팔려나갔지. 그리고 자식들을 낳아 유배지에 있는 왕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그때는 정말 경악했지.

설마하니 고구려계 귀족들이 그럴 줄은 몰랐지. 지금도 뜨악하다.

물론 살짝 과장이 있으나 석경당 들려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이야긴 없다.

"그, 그렇습니까."

석경당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자네는 다행이네. 진은 중원 최초로 삼한과 우호관계인 국가가 될 테니 말이야."

사실 과거에도 우호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는 많았지만, 대부분이 중국 쪽이 갑인 우호 관계였었다.

그나마 고구려가 잘 나갔지만, 중원은 그런 고구려에도 멋대로 왕을 책봉했지. 하지만 연방은 다르다. 2 황제가 존재하는 나라이며, 감히 중원은 황제를 책봉하지 못했다.

원 역사에서는 결국 견훤이 월에서 책봉을 받는 모양인데. 지금은 다르다. 고려와 백제가 칭제하여 대외적으로 천자라 칭해도 중국은 감히 뭐라 태클하지 못한다.

심지어 가장 강력하다 볼 수 있는 진조차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예. 저희 진은 양국의 우호를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연방도 마찬가지일세."

겁 좀 주니 알아서 설설 기는 것 봐라. 중원의 모든 나라가 진나라만 같아도 얼마나 좋겠는가.

한참 쏟아진 포격은 이제 슬슬 그 효과를 보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보수한 듯한 성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쿠르르르륵!

성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금 밀고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놈들이 방어선을 갖추기 전에 들여보내 잡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성벽이 완전히 허물어졌군. 가라! 연방의 군사들이여! 감히 연방을 오랑캐라 무시한 놈들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다!"

와아아아아!

내 명령에 군사들이 태원성으로 밀고 들어갔다.

유지원의 군사들은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알고 끝까지 막았다.

"맞서 싸워라! 오랑캐들을 막아라!"

유지원의 군사들은 필사적으로 우리를 막으려고 했으나, 그게 그리 쉬울 리 없었다.

탕 탕탕탕!

조총수가 들어와 적들을 사격하고 그 뒤를 이어 궁수들이 화살을 날리고, 포병대가 진천뢰를 날려대니 유지원의 군사들은 그 힘을 잃었다.

무차별적인 사격이 떨어지니 어쩌겠나.

"히익! 도망쳐!"

"나는 더 싸우기 싫어!"

"맞서라! 싸워라! 물러서지 마라!"

기어이 병사들은 이탈하기 시작했다.

나 같아도 이탈한다. 이런 무지막지한 걸 어떻게 버티나. 게다가 누가 봐도 개죽음으로 보이는 전투를 굳이 치를 리가 없겠지.

"슬슬 전투의 끝이 보입니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싸움이기는 했지요."

콰앙! 콰아앙!

유지원을 따르는 백성들 역시 처참한 주검으로 변해간다.

이쯤에서 그만둘까 싶었지만, 석경당이 유독 열심이었다.

"유지원을 따른 태원의 백성들을 모조리 잡아라! 감히 대진에 저항한 무리들을 단 한 놈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저렇게 본인이 중국의 인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열심인데, 내가 굳이 나설 이유가 있는가.

진나라 낙양 조정을 거스른 유지원과 그 백성들에 대한 진군의 보복은 매서웠다. 연방군보다 더 악착같이 백성들을 죽였다.

오히려 연방은 할 일이 없이 가만히 있다가 탈주하는 놈들을 향해 사격을 하는 것이 전부다.

"사, 살려줘어! 항복합니다!"

"반란군에게 들러붙은 놈들을 죽어라!"

태원은 그야말로 피의 축제였다.

백성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석경당의 의지도 강하고, 낙양의 군대는 석경당의 밑에서 유지원과 싸웠기 때문에 분노가 극에 달했다.

결국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 것이다.

"참으로 끔찍하군."

"그래도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대세를 거스르고 우리에게 끝까지 반항한 왕건과 같은 꼴이 아니겠습니까?"

관흔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참 안타까운 꼴이다. 이게 야율배와 관계를 맺은 놈의 최후란 거지.

유지원이 정리되었고, 석경당은 이제 원 역사와 달리 황제로서 진나라를 더 다스릴 것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그 자식인 석중귀가 거란에 강경책을 하다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앞으로 석경당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석경당이 죽고 나서 석중귀가 황위에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연방에 강경책을 보일 것인가?

그렇게 되면 나야 진을 두들겨 잡을 수 있으니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 태원의 백성들이 학살될 때쯤, 한 소식이 전해졌다.

"유지원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바로 유지원이 도망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유지원이?"

"예. 병사들을 방패로 삼아……."

병사들을 방패로 삼는다라. 어지간히도 다급한 모양이다.

그러게 왜 이런 일을 벌여서는, 쯧쯧.

"내가 잡지."

"각하께서 친히 말씀이십니까?"

"유지원 그놈이 야율배를 선동했네. 이 정도는 해야 내 속이 풀려."

"예."

저놈이 아니었으면 야율배 미친놈이 감히 연방에 반항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덕에 연방은 요를 먹을 수 있었다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지. 어쨌든 유지원을 확실히 죽여야 뒤가 덜 찝찝하다.

부여군들을 이끌고 그대로 유지원을 추격했다.

"유지원이 놈을 잡아라!"

한참 추격하다 보니 유지원을 지키고자 매달리는 병사들과 그들을 상대하던 부여군이 멀리 떨어져 결국 단신으로 유지원을 추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도망치는 백성들 사이로 수십의 군사가 나와 사방에서 나를 포위하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함정인가?

"어리석은 놈. 나 혼자 갈 줄 아느냐?"

"호오라, 나 하나 죽이려고 이렇게 깔아둔 건가."

마지막 가는 길 나 하나라도 잡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양이다만. 차라리 석경당을 이렇게 잡았으면 모를까. 나를 상대로는 안 되지.

부여군과 떨어진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

나는 버티지만, 부여군들은 다르거든.

"쏴라!"

화살이 쏟아진다.

참 기가 차게도 기세등등하게 쏘아대길래 일단 맞아줬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몸에 닿자마자 팅팅 소리를 내더니 밑으로 화살들이 떨어졌다.

이제는 거의 치트 급이라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하여간 나를 상대하던 놈들은 다 너처럼 놀라더라."

"저게 대체 무슨……!"

"미안하지만 나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몸이라 죽지 않거든."

화살이 튕겨 나가는 게 그 증거가 아니겠냐.

"젠장, 저놈을 죽여라!"

어차피 금방 부여군들도 몰려오겠지만. 유지원 저놈이 감히 누구를 적대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유지원의 병사들이 창칼을 들고 달려들었으나, 나는 가볍게 그 병사들의 창칼을 잡아 그대로 휘둘러 놈들을 넘어뜨렸다.

이 한 번만으로도 병사들의 기세가 꺾였다.

"각하!"

그때 부여군들도 지원을 왔다. 모습이 피 칠갑인 것이 오는 중에 유지원의 병사들을 정말 많이도 죽인 것 같다.

이쯤 되니, 유지원도 두 눈을 크게 떴다.

자기가 겪는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도 가지 않을 것이다.

부여군들이 다시 수십 명의 반군을 죽이자 유지원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금강! 나에게 대체 무슨 원수가 졌다고!"

원수라니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자기가 선택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래놓고 남 탓을 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다.

"시끄럽다! 조총!"

"젠장, 이렇게 죽을 수는 없……."

탕!

놈은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말 위에서 총탄을 맞은 유지원은 그 자리에서 풀썩 낙마해버렸다.

"오 제대로 맞췄는데."

뒤통수에 박힌 것이, 이거 확실하게 죽은 것 같다.

이걸 또 들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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