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31화 (131/154)

131. 남당의 사신

원정군의 장수들은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뭔가 찝찝한 것이……."

퍼버벙! 펑!

대만도까지 항해하는 중에 몇 번이나 함대를 만났는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박살을 내고 있으나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장수들은 하나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거 이상한 예감이 들고 있소."

"무슨 말씀이시오?"

"생각해보시오. 왜구가 이렇게 많을 리 없소이다."

상귀의 말에 장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애초에 일본을 연방에 편입시키는 단계에서 왜구들은 전부 축출했다.

그러니 바보도 아니고 산적질을 했으면 했지, 연방의 수군이 지키는 바다에서 어찌 왜구가 돌아다닐 수 있다는 말인가.

무언가 수상하지 않나.

"확실히……."

"게다가 깃발이 각기 다르지 않소? 수상하기 짝이 없소이다."

애초에 왜구들은 제대로 된 깃발도 없는데 말이다. 이놈들은 한문이 적힌 깃발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흠. 과연 그렇소이다."

적선이 멀리 있어서 헷갈린 모양인데, 가까이서 가만히 보니 기존의 왜선과도 많이 다르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것은 왜선이 아니라 중국의 것과 너무 비슷하다.

멀리 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설마 이것이 정말 왜선이 아니라면?

"만일 정말로 저것들이 다른 나라의 함대라면……."

"불안한 말씀 그만하시오."

정말로 다른 나라의 함대라면, 이건 전쟁이 아닌가.

갑자기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아니, 전쟁 자체는 별문제가 없다. 솔직히 지금 당장 전쟁을 선포한다면 응당 저 서토 오랑캐들의 함대는 모조리 박살 낼 수 있다.

애초에 바다를 평정하려면 그래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국의 수장이 거는 선전포고도 아니라 그냥 상부의 명령 없이 한 번 붙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건 우리가 전쟁을 먼저 건 셈이 되는 것이오."

총리의 명 없이 시작된 전쟁이다. 이것을 어떻게 감당한다는 말인가.

패배하면 더 큰 문제지만, 승리한다 해도 확전될 때 목이 떨어질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애초에 먼저 건드린 것은 저놈들인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소이까?"

확실히 먼저 적의를 드러낸 것은 상대였다. 그러니까 이쪽은 당연히 대응한 것뿐이다. 그렇게 나가면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를 총리 각하께서 아시게 된다면."

"빨리 대만도를 점령합시다."

결국 남은 것은 대만도다. 대만도를 먹어야 조금이라도 공을 세우는 것이 될 것이다.

"예?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오?"

그게 맞는 말이지만, 상귀의 생각은 다르다.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수군의 장수로서 이대로 기회를 잃기 싫었다.

대만도를 얻는다면 드넓은 바다가 연방의 것이 된다.

그러니 지금은 함대로 대만도를 얻어야 한다.

"그럼 이대로 돌아가서 각하께. 우리가 바다에서 중원의 함대를 쓸어버렸다고 보고해야 하오? 뭐라도 더 공을 세워야 할 것이 아니오?"

게다가 이렇게 돌아가면 틀림없이 문책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대만도를 확실히 점령한 후에, 뭐라도 보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확실히. 그렇소이다."

"우리는 ‘왜구’를 잡은 것이오. 알겠소이까? 어차피 저 중원과 연방은 떨어져 있으니 전면전을 벌일 수 없을 것이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중원은 지금 분열되어있고, 어느 나라 함대인 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수군이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 것이다.

"그, 그런 것으로 합시다."

굳이 여기서 뱃머리를 돌릴 필요 없이 대만을 점령하고 그 후에 평양에 승전을 보고하면 될 일이다.

그들의 항해는 계속되어 마침내 대만에 도착했다.

이곳이 정말 대만이고 이주라 불리는 섬인지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마침내 섬에 함대를 가까이 댔다.

"이곳이 대만도라는 섬인가? 분명 바로 위에 중원대륙이 있으니 이거 참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있을 것이오."

"그렇소이다. 이곳에 수군 기지를 세워 함대를 운용한다면 감히 누가 우리에게 대항할 수 있겠소?"

위치만 따지면 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

"문제는 저 남쪽의 대식국들이 아니겠소이까?"

"그렇소. 그들에게까지는 무역을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오."

중원을 봉쇄한다고는 해도 무역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총리부의 명만 따르면 될 것이오."

"그렇소이다.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요. 우리가 할 일은 원주민들을 회유하고 이곳을 연방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금릉.

연방이 한참 국운이 날아오르고 있을 때, 중원대륙에선 후진의 남쪽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원 역사와 달리 연방이 요동반도에서 중원과 적극적으로 교역을 한 덕에, 십국의 흥망성쇠는 그 역사가 조금씩 바뀌기도 했다.

그중 남쪽에서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던 남당의 경우에는 연방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지는 않았으나, 상인들끼리 무역을 하여 나름 부를 채우고 있었다.

심지어 남당은 10국 중 가장 세력이 큰 나라로 주변국을 강력한 군사력으로 압박하면서 강력한 군세로 북진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남당의 2대 황제 이경은 동쪽에서 기이한 소식을 들었다.

"동쪽의 알 수 없는 함대에 의해 우리 당의 함대가 궤멸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대당제국의 함대가 궤멸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오월에서 대화재가 났을 때도 공격을 하지 않고 위로의 사신을 보낸 아버지인 이변과 다르게, 이경은 대외확장정책을 펼쳐 아버지가 쌓아둔 국력을 기반으로 국외로 힘을 뻗쳤다.

그런데 감히 어느 누가 대당의 함대를 건드린다는 말인가.

"대체 어떤 놈들인가? 어느 정신 나간 놈들이 내가 다스리는 대당제국의 명성에 금을 만들었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연방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연방이라니? 그 고려와 백제가 합쳐진 나라말인가?"

남당의 이경도 연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대당에 의해 멸망했던 백제와 고려가 다시 부흥하여 연합한 새로운 나라. 부여연방.

그 나라가 감히 당나라에 들고 일어났나?

설마 당나라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러고 보니 연방은 저 북쪽에 있던 또 다른 당나라를 무너뜨리고 석경당을 황제로 책봉하지 않았던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예."

"그럼 이건 오랑캐 놈들의 선전포고가 아닌가?"

최근에 나라가 합쳐져 잘 나간다 하더라니. 감히 주제도 모르고 대당제국을 노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게 상황이 실로 애매한 것이…… 저들의 배가 매우 기이하게 생겨, 처음에는 연방의 배인 줄 모르고 아국의 함대가 적으로 여겨 먼저 공격하려 한 것입니다."

먼저 공격을 해? 이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 그런데 기이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기이하게 생겼다?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지금까지 본 한선과 달리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합니다. 측면에서 쇠 포탄을 던지며 아국의 함대를 털었다고 합니다."

개소리를 하고 있다.

"말도 안 된다. 패배한 놈들의 한심한 변명이겠지. 심지어 먼저 건드리다가 패배? 이런 멍청한 놈들을 보았나! 그럼 그놈들이 쳐들어올 것이 아니냐!"

패배도 문제지만, 먼저 건드렸단다. 이것은 전쟁. 심지어 당나라가 더 크게 당하는 것을 보여줬다. 이대로라면 연방은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항해 방향을 보아하니, 남쪽인 것이……."

"애초에 당을 칠 생각도 없는 놈들에게 괜히 매달리다 패배했다는 말이냐? 이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

용서가 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그다지 상대하고 싶지 않은 나라를 상대로 먼저 건드려 처참하게 패하다니.

"그럼 패배한 장수들은……."

패배한 장수들? 더 말해 무엇할까. 죽여야지.

"당장 책임자들을 잡아 참하라! 그리고 그 연방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느냐?"

당에 오지 않더라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패배한 장수들의 말로는 이주로 향하고 잇다 합니다."

"이주? 이주를 그놈들이 왜? 땅을 조금이라도 넓혀볼 셈인가?"

아니다. 굳이 땅을 넓히기 위해 이주를 점령할 이유가 연방에게 있나?

오히려 저 북쪽의 진나라를 제후로 삼고, 드넓은 초원을 거머쥐며 북방을 전부 취한 연방이 아닌가.

이주를 먹을 이유가 도대체 왜?

‘강력한 함대, 그리고 이주라. 그렇다면 단 하나다.’

연방은 이주를 점령해서 중원의 바다를 평정하려는 것이다.

이주를 점령하면 그 지역에서 수군을 동원해 중원과 다른 나라의 교역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에 함대를 보내야겠다. 당장 수군을 준비해라! 민과 오월에도 사신을 보내야 한다! 연방에도 사신을 보내라! ."

그런 기이한 배를 가지고 있다면, 연합을 해서라도 연방의 함대를 잡아야 한다.

연방에도 사신을 보내 먼저 연방이 공격한 것처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연방이 무슨 명분이라도 못 잡을 테니까.

만일 연방에 바다를 빼앗기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곤란하다.

‘이번에 배상을 받아내도 좋고, 놈들이 이주를 지배하는 것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

* * *

남당의 사신이 평양까지 왔다.

생각해보니 이놈들도 당나라였구나. 이종가와는 달리 남쪽에 세워져서 남당이라 불리는 나라다.

초대 황제 이변은 스스로 당 황실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냥 정통성을 위해 부여한 호칭으로 봐야 한다.

왕건이 당 숙종의 후손이라거나, 뭐 그런 엘리트 혈통을 족보에 넣은 것처럼 말이다.

"당나라의 사신이 이곳에는 왜 왔나?"

남당의 사신은 굉장히 화 난 모습이었다.

언제 봤다고 화를 내고 있는 건가.

"연방의 각하께 대당의 사신이 아룁니다."

"말을 하라."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찾아왔냐.

"얼마 전 귀국의 함대가 훈련을 하고 있는 우리 당의 수군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으니 해명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그게 사실인가?"

"예, 각하. 우리 대당제국으로서는 나라의 위신에 흠집이 나게 되었으니, 조정에서는 연방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해명을 하고 적합한 배상과 이유가 없다면 철저한 보복을 할 것이라 황제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이건 정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철저한 보복이라니, 나는 당나라 놈들에게 보복당할 짓을 한 적이 없다.

"함대가 피해를 입었다고? 연방군이 먼저 공격했다는 말이냐?"

"예, 각하. 350척 이상의 배가 침몰되었습니다."

"350척 이상?"

대체 그 상귀와 장수들은 뭘 하고 다니는 거지?

아니, 대만으로 가라고 했더니, 남당을 침공이라도 한 거야? 설마 내 명령이 잘 못 내려지기라도 한 것인가.

"조속히 내 사람을 보내 알아볼 터이니, 사신은 물러가 있으라."

당나라 사신은 따로 물리고 장관들을 모았다.

설마하니 내 명령이 잘못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귀에게 내 명령을 직접 하달했으니까.

당나라 함대가 공격을 받았고 궤멸했으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전쟁인가.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상귀, 효봉, 명길은 대만 원정군이 아니라 남당 원정군이었나? 왜 대만도로 가다가 갑자기 남당의 함대를 두들기나? 대만이랑 어떻게 중원을 헷갈리나? 설마 상륙한 것은 아니겠지?"

남당은 오대십국의 십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던 국가다. 기왕이면 교역하여 국익을 얻는 편이 더 좋았을 터인데. 아직은 때가 아니거늘, 왜 남당을 쳐서 이 모양을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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