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변방의 왜구 2
금릉.
당 황제 이경은 최근 몹시도 심경이 좋지 못했다.
매일 금릉으로 올라오는 보고가 있었는데. 해안가 주요 지역들이 왜구들에게 약탈을 당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을 격퇴하지 못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최근에는 왜구가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정말 한심해도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대체 왜구들을 왜 이리 못 잡는 것인가!"
그까짓 약탈을 왜 그리 못 잡는 건가.
고작해야 왜구들이다. 정규군을 풀면 잡을 수 있다, 이 말이다.
황제의 말에 신하들은 서로 눈치 보다가 한 명이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게 워낙 신출귀몰하여서……."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지껄이느냐! 놈들이 우리를 희롱하고 있지 않은가! 수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면서 주변은 남김없이 약탈하고 있단 말이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수도는 오지 않고 당 조정을 놀리듯 인근만 불태우며 백성들을 약탈해간다.
인구는 곧 국력이다. 그 미쳐버린 왜구 놈들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당은 저 왜구들에게 백성들을 전부 잃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원통일은 고사하고 진나라에 당할 수도 있다.
그 전에 뭔가 조처를 해야 한다.
"이렇게 계속된다면 놈들이 언제 금릉을 노릴지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냐? 애초에 그놈들이 왜 우리 땅에 있고?"
설마하니 그놈들이 금릉을 노리지는 못하겠지만, 정작 금릉이 왜구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군사를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연방에서 흘러온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연방 놈들인가?"
"듣자 하니, 연방은 아예 왜구들을 근절시켰답니다. 다만 예전에 연방에 반발했던 귀족들이 몰락했는데, 그들이 왜구가 된 것이라 합니다."
허, 한마디로 연방을 피해 온 것이 당이란 말인가.
그래. 생각해보니 그럴듯하다. 지금 연방의 수군이 이주에 가 있으니, 그 틈을 노린 것이겠지.
빌어먹을 연방 놈들은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다고 매번 이렇게 방해만 하는 것인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군사를 회군시켜 왜구를 대비해야 합니다."
"대체 우리 함대는 어디에 있고?"
전에 연방군에 의해 함대가 궤멸했다고는 하나 왜구에게 바다를 내어줄 만큼은 아니었다.
그럼 그 많은 함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배를 놈들이 다 불태우는 바람에……."
"그것을 말이라고 해!"
수군이 지금 그만큼 답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해도 배를 못 탈 뿐 수군들은 남아있을 텐데. 그놈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하긴, 당장 연방군을 상대로 전멸한 놈들이다. 배가 없다고 해서 그놈들이 왜구들을 격퇴할 수 있을까.
"오월과 민은 어떻게 되었나?"
"고전하고 있습니다."
허, 고작 작은 두 나라에게 대당의 군대가 밀릴 수 있다는 말인가.
"오월과 민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오래다! 그런데 그조차도 잡지 못한다는 말인가?"
오월과 민은 지금 당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두 나라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인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남벌은 할 것이다. 오월과 민을 얻겠지. 그러나 피해가 너무 커진다는 사실이다.
"젠장! 남벌을 할 때인데! 어쩔 수 없다. 회군하라! 회군하여 왜구를 대비하라!"
"예!"
남벌을 떠난 남당의 군대가 올라왔다.
그 결과 왜구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졌다.
기존에 내륙까지 노렸던 일들도 못 하고 해안가를 약탈하는 것에 그쳤다.
그 덕에 금릉의 당나라 조정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처음에는 그렇게만 보였다.
* * *
다시 바다로 물러난 상귀는 효봉과 명길의 왜구까지 모두 합류시켰다.
이제는 좀 무리를 하더라도 회군을 하든 약탈을 하든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남벌군이 회군을 했으니, 우리도 뭔가 결정을 해야 할 때요."
"이제 어쩝니까?"
사실 일본 출신들을 이용한 공격은 한계가 있었다.
아니, 왜구답게 지금까지 훌륭하게 싸워왔으나, 그래도 정규군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무기 면에서 특히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 왜구니, 왜구인 척 연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할 만큼 하지 않았나? 꽤 잘했으니 이쯤에서 물러나도 될 것이다.
"슬슬 그만둘 때가 되었나."
"그러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습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당군의 주력이 왜구들이 주로 공격했던 지역에 주둔하여 왜구를 방비해놓았다.
"그러면 더 해보자는 것인가?"
"그래야 하지 않겠소?"
"싸우는 건 조금 이르다고 생각하오. 저들의 병력을 생각해보시오."
지금 왜구의 숫자는 1만. 반면에 작정하고 상륙하려면 초주에 있는 6만이 넘는 당군을 잡아야 한다.
다른 곳으로 우회해도 되지만 어느 곳이든 당의 대군과 마주해야 한다. 그렇다면 몇 번 털었던 초주의 당군을 잡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왜구 짓을 더 한다는 가정 아래에 취할 행동이다.
"무려 우리의 6배나 달하니, 전투를 하면 이롭지 못할 것이오."
"으으음. 그래도 이대로는 좀 아쉽지 않소?"
어느새 효봉과 명길은 왜구 짓에 흠뻑 심취하고 있었다.
단순히 해적질에서 오는 만족감이 아니다.
자신들이 키워야 할 이주에 백성들을 들이고 점차 세력이 커지게 되었으니, 이왕이면 될 때까지 끝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밑에 두게 된 일본 출신 부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당군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장은 무슨 말을 하는가?"
"그게. 그렇지 않습니까? 대군을 다시 회군시켰다면 왜구들을 잡겠다고 돌아다녀야 할 텐데, 한곳에 머무르고 있고."
그건 그렇다. 왜구들이 사방팔방 돌아다녔는데, 주둔만 하고 있다니. 당군의 규모를 생각하면 군을 나눈다고 해도 왜구가 힘들 것이다.
"놈들이 겁이 난 건가?"
"음, 민과 오월에서 고전했다고 하니,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잘 먹은 오월과 민나라에 막혔으니 사기가 떨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저들이 왜구가 무서워서?"
"그간 우리가 불태운 것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도 무서운 것은 아니겠지."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지 않을까.
"차라리, 이참에 화포를 동원해서 공격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화포를? 사용할 수 있으면 진작에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 화포를 사용하면 남당은 왜구를 왜구가 아닌 연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우리가 연방군이라고 아주 선전을 하고 다니란 말이냐?"
"일본은 연방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니 왜구가 보복으로 연방군으로부터 화포를 노획했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생각해보니, 그게 좀 그럴듯하다.
"그간 좀 그럴듯한데."
"어차피 군사 재량권도 있지 않습니까?"
화포를 사용하지 말라는 명은 없었다. 그러니 들키지만 않으면 될 것이다.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어차피 잡아떼면 될 문제 아닙니까?"
만일을 대비해 총리께서 말을 맞춰야 할 일이지만 분명 먹힐 작전이기는 하다.
"화포로 계속 공격해보고 놈들이 튀어나오면 그때 잡으면 될 것이오."
"좋소이다. 한 번 해봅시다!"
말이 나온 김에 곧바로 다시 상륙하여 당군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당군은 초주에 머무르고 있었다. 먼저 화포로 선제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상귀 휘하 왜구들은 초주로 신속하게 진격했다.
왜구에 피해를 입었던 초주 인근은 이미 인간이 씨가 말라 진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가까이서 본 초주는 야습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초주의 상황을 보니, 지금 공격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좋다. 화포를 쏴라!"
상귀의 명에 왜구가 화포를 준비했다.
펑! 펑펑펑!
왜구들이 쏘는 화포의 공격이 초주에 떨어진 것이다.
당연히 포격은 초주의 당군을 동요시키기 충분했다.
초주에 주둔한 당군은 방심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것이 왜구들은 수천 단위로,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약탈하고 빠진다 하나 초주에는 병력만 6만이 있다.
당연히 오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뭐야, 오밤중에 이게 무슨 일이야?"
"장군! 거대한 쇠로 만든 구체가 성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가만! 뭐라 했느냐, 쇠로 만든 구체?"
당순의 수뇌부는 난리가 났다.
쇠로 만든 구체라면 뭔지 알 것 같다.
"그, 그렇습니다."
"여, 연방군이다. 연방 놈들이 공격해온 것이야!"
"예?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공격해온 것은 맞지만, 지금 배상 문제가 걸려있는 연방일 리가 없지 않나?
부장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저었다.
저건 분명히 말해 연방의 무기다.
"내가 연방 놈들과 싸워봐서 아네! 해전에서 놈들은 천지를 진동하는 무기를 사용했어! 아국에 있는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기들이지!"
정말 무서운 무기들이다. 멀리서 배를 부수는 건 그렇다 쳐도, 일반 병사들까지 기이한 무기를 사용한다.
"젠장. 초주의 병사들도 다수가 연방군과 싸운 경험이 있다. 다들 저 소리만 들으면 겁에 질려있을 텐데!"
실제로 초주는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일부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던 것이다.
"히이이익! 연방군이다! 싸우면 죽는다!"
"놈들이 육지까지 몰려들었다! 모두 도망쳐야 해!"
초주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왜구만이면 모르겠는데, 연방의 함대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 무기는 두렵기 짝이 없다.
"이놈들아 맞서 싸워야지 뭣들 하는 거냐!"
"네놈들이 상대해라! 우리는 살아야겠다!"
"그래! 놈들이 기이한 기구로 사람을 죽이는데 우리가 버티겠냐!"
초주의 병사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특히 연방과의 해전을 자들이 더욱 그러했다.
처음에는 싸우고자 했던 병사들조차 그 광경에 싸울 의지를 잃고 도망쳐버렸다.
6만이었던 병력은 그 절반으로 줄었고, 그 절반조차도 지휘관의 부재로 싸울 의미를 잃어버렸다.
해전에서 보았던 연방군의 모습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거 굳이 남아서 싸울 필요가 있나?"
"그러게 말이야. 장수들도 도망쳤는데."
결국 남은 병사들도 싸울 의지를 잃고 초주에서 퇴각했다.
하나둘 떠나고 있으니, 초주는 거의 텅 빈 상태가 되었다. 그 광경은 실로 죽은 자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방의 왜구들은 너무도 쉽게 무혈입성을 했다.
상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곳이 초주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무슨 일인가? 이렇게 어이없이 초주를 얻다니."
"도망치는 당병들을 잡아 물어보니 글쎄 우리를 연방군인 줄 알고 도망쳤다합니다."
부관이 상귀의 대답했다.
"그 무기 때문에?"
"예."
해전의 영향이 확실히 큰 거 같다. 아마도 당시에 참전했던 병사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다 다함께 떠난 것이겠지.
그때 그 해전이 아니라면 아마 지금 한바탕 크게 부딪쳤을 것이다.
다만 상대가 그냥 도망가 버렸기에 전투를 예상했던 왜구들은 곤란해졌다.
"그렇다면, 이건 뭔 제대로 싸우지도 못 했구만."
상귀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한바탕 붙는 것이 나을 텐데 말이다. 병력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약탈하는데 편할 텐데 말이다.
"이렇게 되면 땅을 점령하니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닙니까?"
그래. 언뜻 보면 그렇겠지. 다만 당군이 멀쩡하다는 것이 문제다.
왜구들이 초주에서 격파한 당군은 수천도 되지 않고 대부분은 항복으로 잡은 병사들이다.
"적의 병력을 줄여야 하는데 도망친 것이 끝이잖나."
이렇게 되면 당병들이 뒤에서 노릴 수도 있다.
"총사, 주변에 잔당들이 있을 테니 그들을 잡으시지요."
"음, 좋소이다. 잔당소탕이라도 합시다."
초주를 점령한 왜구들은 도망치는 당군들을 섬멸하고 주변을 약탈하며 기승을 부렸다.
중국 남부에서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던 남당의 피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