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쓰러진 황제
"당의 수군은 배가 없으니 어쩌지 못할 것이다. 있는 대로 다 털어버려라!"
왜구들이 계속해서 당나라의 여러 성을 치고 빠지니 당나라 조정으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초주를 점령 후, 초주를 넘어서 다시 내륙 내부로 들어갔다 빠지는 병력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으니 금릉의 조정은 답답할 지경이었다.
특히나 당을 상대로 패배하던 오월과 민나라는 당의 천하 패권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연방의 왜구들은 꽤 만족스러웠다.
"이거 이 정도면 된 것이 아닙니까? 금릉까지 갈 것이 아니라면 굳이 더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소."
"음. 하긴 이대로라면 당군과 전면전이니."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그 당의 대군과 1만이 서로 싸운다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하니까.
"총사! 역병이 돌고 있습니다."
"역병이라니?"
"아무래도 약탈하던 고을에서 잡은 당병들에게서 퍼진 모양입니다."
하필 역병이 돌았다라. 뭐 예상할 수는 있는 일이다. 매번 약탈만 당했던 마을이 상태가 좋을 리 없다. 당연히 역병이 돌았고 많은 백성들이 죽었다.
"우리 병사들은?"
"괜찮습니다. 다만 이대로 있으면 언제 병사들에게도 퍼질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먹을 만큼 먹었으니 빼는 것이 좋겠지.
"그렇다면 큰 문제는 아니로군. 음?"
문득 상귀의 뇌리에 스치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총사."
"좋은 방책이 생각났소. 금릉에 역병에 걸려 죽은 시체들을 던져둡시다."
직접 금릉을 공략할 수는 없으니 꽤 괜찮은 방법 같다.
"금릉에 전염병을 돌게 만들겠다는 뜻이오?"
"그렇소이다. 역병에 걸린 도구를 이용하든 무엇으로든 모아서 투석기로 던지면 어떻겠소?"
소수의 왜구들이 밤중에 몰래 금릉에 도달했다.
여전히 금릉 근처에도 그다지 백성들의 통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왜구의 피해 때문에 그런 듯싶다.
"그럼 날려라."
"예."
상귀는 역병에 걸려 죽은 시체들을 투석기등을 이용해 금릉으로 던졌다.
야밤에 성으로 날아오는 시신들은 금릉에 곳곳에 떨어졌다.
금릉의 당병들이 시신을 확인할 때까지 역병 시신이란 시신은 전부 날려댄 상귀는 왜구들을 데리고 초주까지 퇴각했다.
* * *
금릉.
시신 금릉에 투척되고 얼마 후, 금릉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갑자기 하늘에서 시신이 떨어졌으니 당연했다.
황제 이경은 조정에서 이번 일을 깊이 논의해야만 했다.
백성들과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으니, 황제로서 수도의 민심을 다스려야만 했다.
"밤중에 금릉에 시체들이 날아왔다는 해괴한 일이 있던데 그건 무엇인가?"
"금릉 주변에 샅같이 살펴보니 투석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고의로 시체들을 던진 것 같습니다."
투석기까지 사용하면서 던졌다는 말인가. 이만한 지극정성도 없다.
"투석기를 가지고 있다면 왜구겠군. 왜구가 탈취해서 사용한 것이야. 멍청한 놈들. 금릉을 노릴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공격해오는 거겠지."
초주에서 6만의 군대가 도망쳤다는 말을 듣고 겨우 안정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지금 당장 토벌하고 싶을 지경이다.
"확실히 초주를 점령한 것이 왜구라고 했지?"
"예."
"그 미련한 놈들은 기어이 그것들을 연방군으로 보고 도망쳤다고? 이런 어리석은 놈들 같으니라고."
명색이 대당제국의 군사가 그럴 수 있는가?
"초주는 지금 왜구가 있으니 이참에 토벌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차피 왜구 놈들이다. 그냥 도망치지 않겠냐?"
바다로 도망치면 잡는 것이 귀찮아진다.
"그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해상으로 왜구가 탈출하면 그때는? 잡을 방법이 있나?"
조정의 중신들은 모두 말을 멈췄다.
별다른 방책이 없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왜구들을 근절하고자 하면 왜구가 바다로 나가기 전 육군으로 소탕하거나 수군으로 바다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남당은 그것이 어려운 처지였다.
수군이 궤멸한 상태기도 하니 더 그렇다.
왜구를 발견하기 이전의 수군을 복구한다면 모를까. 지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황제 이경은 신하들의 반응에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무능해서야 원. 그래서 우리가 저놈들을 못 잡는 거냐는 말일세!"
"수군을 재건하려면 좀 오래 걸릴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설마 왜구를 잡지 못할 정도란 말인가?"
"왜구들이 건조하는 배를 보이는 대로 다 불태우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배를 건조할 때마다 불태우니 수군이 재건되기 힘들다.
왜구들은 그만큼 기세가 높았다. 육지에서 내쫓는다고 해도 남당은 이제 바다를 어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초주에서 쫓아내도 왜구를 근절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대군을 보내면 왜군이 튈 것은 안 봐도 뻔하다.
피해가 갈수록 누적이 되고 있으니, 뭔가 확실히 왜구를 잡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폐하. 차라리 연방에 왜구 토벌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연방의 도움을 받으라고? 그 썩을 놈들을?"
원인이 어떻든 간에 연방에 지원요청을? 자존심이 있지.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을듯합니다."
"폐하, 잠깐의 치욕입니다. 수군만 재건되면 저들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황제도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뿐이다.
이미 이주에 수군을 주둔 중인 연방이 아닌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왜구 하나 못 막느냐며 비웃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은 왜구를 잡을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당 제국이 이 꼴이 되었나.’
그러니 수군을 재건하기 전에는 연방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 잠깐의 치욕이 대수인가. 연방에 사신을 보내라!"
사신을 연방으로 보낸 이경은 이를 갈았으나, 그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하나는 왜구가 연방군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릉에 역병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 * *
태원.
남당이 왜구에 크게 고전하는 사이, 석경당은 석중귀의 주력군을 물리치고 군을 태원까지 몰았다.
문제는 태원까지 몰린 석중귀의 반발이 거세다는 사실이었다.
유지원이 증축하다 그만둔 태원성은 석중귀가 직접 수리하고 증축하면서 이전보다 더 튼튼해졌다.
"태원을 공격하라! 역적 석중귀를 잡아라!"
"연방의 개들을 막아라! 막아라!"
이미 유지원이 한번 반란을 실패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석중귀란 자는 계속해서 싸우고 있으니 문제였다.
"폐하! 제왕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제기랄. 기병으로 여기까지 몰아붙였는데 역시 힘든 것인가."
연방에서 지원해준 군마로 무장한 기병대가 석경당의 주력군을 궤멸시키는데 힘을 보탰지만 결국 농성하는 석중귀를 잡기란 어려웠다.
"하필이면 연운 16주에서 지원받은 무기도 중간에 탈취당했으니 문제입니다."
"일단 계속해서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예."
석경당은 장수들을 시켜 연운에 지원요청을 했다.
"피해는 얼마나 입었는가?"
"지난밤부터 5천 이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끄으응, 독한 놈. 진작에 끝낼 일을 왜 굳이!"
왜 저리 안에서 버티며 나라의 국력을 갉아먹는 것인가.
그냥 항복하고 스스로 자결하면 될 일을 어찌 이렇게 항전하여 진나라의 국력을 소모한다는 말인가.
하필이면 연방이 남당, 오월, 민을 격파하고 있을 때 이럴 수가 있는가.
이 기회를 잘만 이용했다면 연방의 지원을 받아 통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석중귀 저놈이 전부 망치고 있어! 전부!"
멍청한 놈이다. 어차피 때가 되면 나라를 물려받게 될 것이었다.
자신이 연방에 고개를 숙이고 내부를 다스리고 힘을 기르며 욕을 먹으면, 석중귀는 다 끝낸 다음 통일된 땅을 물려받으면 될 일이었다.
어떻게 실망을 시켜도 이렇게 시킬 수 있는 것인가.
왜 그 몇 년을 참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렇게 되면 전부 끝이다. 국력을 키워 점차 연방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나라가 두 쪽이 났는데 가능할 리가 있는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석중귀는 이제 포기하셔야 합니다."
"그래. 천하의 대업을 그르친 놈이다.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다.
빨리 석중귀를 잡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천하통일이 불가능하다면 지금 가진 영역이라도 지키고 다음 대에 대업을 넘겨야 할 것이다.
"공격하라! 계속 공격하라!"
"연방의 개들을 막아라!"
공방전은 밤낮 할 거 없이 계속되었다.
그나마 연운에서 다시 신경을 써 보내준 화포들이 이제 막 태원을 향해 쏘아대고 있으나, 역시 저리 성문을 닫고 버티는 것을 뚫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석경당의 군대는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석중귀를 몰아붙였다.
석경당은 친히 공성전에 나서서 석중귀를 향해 소리를 쳤다.
"네 이놈! 석중귀야! 어찌 내 속을 모르느냐!"
"연방의 개가 속은 무슨 속! 당신은 천하를 삼한 오랑캐들에게 팔아먹은 소인배에 불과하오!"
소인배.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은 나라를 가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놈아! 치욕을 감내하면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그리도 잘못되었다는 말이냐!"
"저기 보아라! 석경당이다! 석경당을 향해 쏴라!"
"뭣?"
석중귀는 석경당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석경당이 가까운 거리로 접근하자 병사들을 시켜 연운의 연방군에게 노획한 화총을 꺼냈다.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석경당의 병사들이 석경당을 지키려고 달려왔으나, 이미 화총은 석경당을 겨누고 불이 붙었다.
탕!
"크헉!"
총탄은 석경당의 가슴에 맞았다.
말에 타고 있던 석경당은 힘없이 낙마해버렸다.
석경당은 이 일로 몸에 큰 부상을 입었다. 이 일로 다 넘어갈 것 같던 태원에 대한 진군의 공세는 위축되었으며, 석경당은 막사에 한동안 머무르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황제가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리자, 상주 절도사인 상유한에게 친연방파인 장수들이 몰려들었다.
"상주 절도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석중귀를 얼른 죽이지 못하면 결국 전선은 이대로 고착되고 말 겁니다."
태원에서 농성하고 있는 석중귀다.
이제 거의 다 끝났는데 기어이 황제의 옥체에 상처를 입혔다.
황제가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석중귀는 이대로 독립해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자신이 석중귀를 잡는 것은 어떨까.
"그렇겠지요."
"어떻게든 연방의 지원을 받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다만 폐하께서 저토록 옥체가 상하셨으니."
연방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연방에게 지원요청을 하는 것은 결국 폐하의 황명이 떨어져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하셔야 합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황명이 있어야 하오."
"어차피 황상께서도 연방에 지원요청은 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 지원요청은 연방에게 국익을 내어주지 않는 선에서 지원을 받으라는 이야기였다.
저번처럼 연운에 지원을 요청해서 초원의 말이나, 약간의 화약 무기 정도.
만일 여기서 작정하고 연방의 도움을 받아 석중귀를 제거해야 한다면, 군사까지 지원을 받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땅이라도 내야 할 것이다.
"음 그러면 어쩔 수 없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석중귀를 지금 잡지 못하면 큰일이니, 절도사께서 결정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목숨을 걸겠습니다. 연방에 좀 국익을 내주더라도 나라가 토막 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으로서는 결국 연방이 답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훗날 황상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석중귀를 잡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럼 장수들은 군사들의 동요를 막고 공세를 계속 유지해주시오. 내 연방에 사람을 보내겠소."
무슨 수단을 사용하든 지금은 석중귀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