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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40화 (140/154)

140. 남당과 후진의 요청

남당의 황제 이경이 사신을 보냈다.

혹시나 우리보고 왜구 아니냐며 따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배상은 되었으니 왜구를 토벌해달라?"

"예, 각하."

최근 남당에 왜구가 출몰하였으니 왜구를 토벌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물어보기로 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아국은 지난 해전과 왜구로 인해 지금 쓸 군선이 많지가 않습니다. 하여 바다로 도망친 왜구를 잡기에는 힘이 듭니다."

하긴 왜구의 숫자가 1만이다. 남당의 입장에서는 정말 최악일 것이다.

일단 나는 왜구에 대해 최대한 모른 척했다.

"저런. 이거 참 안 되었구나."

바보들. 그 왜구가 연방군인지도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 조금 의심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지금 연방을 의심할 여유조차 없는 걸까?

상귀의 보고만 들으면 남당의 해안가는 이미 우리 왜구로 인해 아주 작살이 났다고 하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디 청합니다. 왜군을 무찔러주시옵소서."

"뭔가 다른 문제라도 있는가? 상당히 처절한데."

문제가 왜구만이라면 저렇게 눈이 처절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그저 왜구만 토벌해주시면 됩니다."

"음. 알겠네. 내 장관들과 논의를 할 것이니 일단 물러가 있게."

이놈이 하지 않은 말이 있을 거 같은데.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관흔을 쳐다봤다.

"남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단순히 왜구만이면 저리도 절박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상귀 장군의 보고를 관흔 장군이 받기로 되어있을 텐데?"

"예. 지금 금릉에 역병이 돌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금릉에 무슨 이유로?"

내가 아는 역사로는 금릉에 뭔가 터지지는 않았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우리 쪽 놈들이 뭔 짓을 한 것인가.

"상귀 장군이 역병에 걸린 시신을 금릉에 던져버렸는데, 그것이 그만 퍼진 듯합니다."

"상귀 장군이 금릉을 못 공격한다고 그런 식으로 나간 건가."

전쟁이 확대되는 것은 막아야 하고, 그렇다고 금릉을 그냥 두기에는 아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노렸던 거겠지.

"예. 그런 거 같습니다."

"수도가 역병이 창궐했다면, 이경 그놈도 고생이 많겠군."

안 그래도 왜구 일로 머리 아플 텐데 역병이라니. 십국 중에 잘 나가던 국가인 남당이 저런 식으로 쇠퇴할 줄 누가 알았을까.

"뭐 그래도 명색이 황제가 있는 수도인데 큰일이 있겠습니까?"

"알아채면 무슨 수라도 쓰겠지. 하지만, 황제가 있는 수도에서 역병이 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백성들이 동요하겠지. 황도에서 벌어진 일이니 다른 곳보다 반응이 더할 것이다.

"역병에 걸리는 자는 끊임없이 속출할 것이고, 백성들이 동요하면…… 이거 참, 확실히 난리가 나겠습니다."

관흔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른 장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남당은 원 역사에서는 겪지 못한 최악의 일을 경험하고 있다.

"조금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으니, 사신은 왜구라도 하루빨리 처리하고 싶어 그리 말한 것이겠지."

"설마 남당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계시는지요."

"아니, 굳이 연장이 피를 흘릴 필요는 없겠지. 침공을 받은 오월과 민나라가 가만히 있겠는가?"

아마 보복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삼국은 치열하게 다투겠지.

꽤 재밌을 것이다. 굳이 연방이 건드리지 않아도 충분하다.

"상귀에게 전하게. 앞으로는 산둥반도도 약탈하라고."

그 지역은 석중귀가 장악하고 있으니 마음껏 털어먹어야지.

아마 왜구인 상귀도 상당히 좋아하지 않을까.

"각하. 지금 진의 상황이 좋지 못한 모양입니다."

"진의 상황이? 그건 무슨 말인가?"

"태원으로 진격했던 석경당이 제왕 석중귀에 고전하고 있으며, 그 탓에 지금 민심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석경당 그놈은 패배밖에 모르나? 도대체 몇 번이나 지는 거야?

"한 번 패배했다고 그 정도라는 말인가."

역시 석경당에게는 황제의 자질이 없었다.

하기야 외부의 도움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자가 오죽하겠는가.

"그럼 역시 지원을 가야 하는 건가."

그런 안일한 놈이 황제라면 굳이 석중귀가 아니라도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결국 지원을 가야 한다는 소리인데, 석중귀를 무너뜨리고 나면 그 이후에는?

석경당을 황제로서 취급할 필요가 있나?

"일단 석경당이 진 황제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나?"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의 의미야. 후진은 지금 나라로서 너무 불안해."

지금의 진나라는 계속 내치를 다지면서도 영 불안했다.

원인은 바로 우리 연방 때문이겠지. 황제는 친연방 정책으로 연방에 대해 알지 못하는 지방관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세폐를 매년 꼬박꼬박 받으니 오죽할까.

"애초에 석경당은 우리의 힘을 빌어 황위에 올랐으니 말입니다."

"그럼 뭐 다른 생각이 있으신지요?"

음, 없는 건 아니다.

"이종가로 다시 당나라를 복원한다던가."

"예?"

"재밌지 않나? 중원대륙에 당나라가 둘이 되는 것이네."

"하온데 이종가가 제 역할을 하겠습니까?"

당나라와 당나라가 서로 패권을 위해 싸우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이종가는 어떻게 되었는가? 자결을 시도했다던데."

이종가는 원 역사처럼 자결을 택하려 했다.

일이 틀어지니 개복치인가 싶을 정도로 자살을 시도했다.

"예. 일단 황자를 언급하니 조용해졌습니다만, 지금은 감시 중입니다."

"흐음. 진에게서 얻어먹을 만큼 얻어먹었지?"

"예. 애초에 그자들의 세폐 없이도 이 나라는 이미 대국입니다."

그래. 그건 당연하다. 누가 다스리는 누구의 나라인가. 응당 대국이어야 하지.

"이종가를 잘 감시하게, 석경당이 황제의 자리를 보전한다면 생각해보겠지만, 석중귀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예, 각하."

"석경당의 세력이 친연방 세력이고 석중귀가 반연방 세력이라."

석경당이 죽으면 이종가를 거기 박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이종가는 자식들을 인질로 삼거나, 황후를 인질로 삼거나 하면 될 것이다.

물론 석경당이 죽을 경우의 이야기다. 석경당은 아직 멀쩡하니 괜찮겠지.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후진에서 밀서가 도착했다.

"흠 이거 참."

읽어보니 가관도 아니다.

석경당 이놈은 연방이 준 무기를 빼앗긴 것만이 아니라 기어이 석중귀의 총탄에 상처를 입어 의식이 없다고 한다.

일이 곤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거 후진에 대한 전략을 전면수정할 때가 아닌가.

후진은 원 역사와 달리 수도를 개봉이 아닌 낙양으로 정했다.

낙양보다는 개봉이 경제 물류의 요충지이자 제정에서도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역사가 바뀌어 북방에 연방이 들어섰으니, 연방과의 교류를 위해 낙양이 좋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친연방이라 할 수 있는 석경당이 이리 되었으니 태원에 갇혀있어도 석중귀에게는 기회가 생긴다.

황제가 쓰러진 이상, 황제의 군대는 동요할 것이 뻔하다.

"남당의 일도 잘되어가고 있는데 하필 석경당이 문제로군."

남당은 조금 있으면 이경에게 코를 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후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밀서의 내용은 지원을 제발 해달라는 거다. 일단 석중귀를 잡고 나라만 안정시킨다면 이후에는 그 값을 낼 것이라고 한다.

장관들에게도 이 서신을 돌려서 보여주었다.

"상주 절도사 상유한이 이만한 권리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황제가 친연방파라고는 하나 일이 다 끝난 후, 의식을 차리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만한 권리는 없겠지."

상유한은 그만한 권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 황제 석경당도 말을 달리할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조금 생각해볼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석중귀가 이대로 남아도 괜찮기는 한데."

"그렇기는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석경당입니다."

"그렇지. 이미 이종가의 후당을 다시 부흥시킬지 생각하고 있다만. 막상 이렇게 되니 이종가를 다시 올리기 전에 나라가 작살이 날 거 같다는 말이지."

이종가를 다시 당 황제로 임명한다 쳐도, 그 땅이 사분오열되거나 석중귀가 가지게 된 상태라면 난감해질 뿐이다.

게다가 지금 시대의 군벌들은 충성을 바치기보단 그저 눈치를 보는 자들이 더 많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원을 해야 합니까?"

"석경당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면 차라리 지원을 가는 것이 어떨까."

이대로 후진을 버려두는 것도 아깝다.

석경당이 쓰러졌다고는 해도, 지금 석경당 밑에는 오로지 친연방파만 남아있을 것이다. 석경당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들이라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한다.

그냥 내버려 두면 결국 반연방파로 갈아탈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우리가 강하다고 해도 후진에 개입 못 한다 여기면 배신할 수도 있다는 소리.

"지원군을 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다 저들이 약조를 지키지 않으면 어쩝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상유한은 그럴 만한 위치는 아닐 텐데요."

분명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개입하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후진이 너무 쉽게 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확실히 개입하는 것이 좋다.

"석경당이 약조를 안 지키려고 한다면 그때 가서 문제 삼으면 될 일이네. 반란 하나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는 진이 과연 어쩔 것인가?"

"그건 또 그렇습니다."

"한 번 해본다면 차라리 산둥반도를 내어달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래. 그쪽이 낫겠지. 산둥반도는 반연방파가 있는 곳으로 내가 갖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산둥반도라면 석경당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

"다른 지역이라면 석경당도 고민이 많겠지만, 반연방에 반란 호응지역인 산둥반도라면 내어줄 만합니다."

나 같아도 그 지역은 넘길 것 같다.

그 지역은 몇 번이나 반란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그냥 연방에 넘기는 것이 편하겠지. 바다를 잃는다는 단점이 있으나, 연방이 있는 이상 괜찮다고 여길 것이고.

"그런데 애초에 이 중대사를 상유한이 오지 않고, 그 수하가 밀서로 전달하다니요. 건방지지 않습니까?"

언뜻 보면 건방지기는 하다. 상유한은 사신으로 왔던 처지다. 그런 마당에 그 수하를 시켜 밀서만 보낸다는 것.

뭐 쉽게 말하면 그만큼 지금 사태가 급박하다는 의미다.

"그만큼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간다는 뜻이겠지요. 상유한은 친연방파의 수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심지어 전쟁 중이니, 지금 급변하는 사태를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상유한도 전쟁이 끝나면 나라를 바치는 것만 제외하고 황제를 설득해서 우리 요구 조건을 들어주겠다는군."

밀서의 내용을 보면 그렇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안 좋다는 뜻. 군사적으로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황제가 쓰러졌으니 정치적인 문제가 걸려있다.

"음, 그렇습니까?"

"저쪽도 우리가 전쟁하는 건 알고 있으니 말이네. 그러니 우리 처지 생각해서라도 비싼 걸 내놓겠다는 뜻이겠지."

황제가 쓰러진 이상 공세만으로는 조금 힘에 부칠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는 석중귀를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우리에게 이권을 넘기면서까지 지원받을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언젠가는 할 수도 있겠지. 지금 당장 공세만 밀어붙여도 간당간당할 테니. 문제는 지금 당장 진의 안정화네."

결국 전쟁도 백성들이 치르는 것이다.

윗사람들의 정치 때문에 아랫사람들인 백성들이 목숨을 내놔야 하고, 군사가 되지 않는 백성들도 군량을 대야 한다.

전쟁 자체가 끔찍한 것이다. 그러니 군대를 보내 하루빨리 진을 안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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