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42화 (142/154)

142. 태원성 함락

"역병의 징조가 있는 백성들이나 걸린 백성들을 모조리 성 밖으로 쫓아내고, 죽은 사람들은 성 한참 밖에 깊게 땅을 파묻도록 하라."

남당의 황제 이경은 전국에 역병에 대비할 것을 명했다.

황명을 받은 각지의 절도사 및 지방 수령들은 역병에 대한 대응책을 시행했는데, 표면상으로는 그럴듯하였다.

역병의 징조나 걸린 이들은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시체들은 땅에 깊게 파묻혔다.

역병에 대한 피해를 입은 지역들은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역병 탓에 차별당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겨우 역병을 피해 금릉까지 도착한 이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잠깐, 우리들은 왜 쫓아내는 것입니까?"

"너희들 외지인이 아니냐! 당장 꺼져라!"

"외지인이라고 쫓아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역병을 피해서 온 것입니다!"

비록 역병의 피해가 있으나, 금릉은 이제 많은 백성을 잃고, 역병이 근절되었다. 그러니 금릉에는 더는 들일 수 없었다.

"금릉도 역병이 퍼진 탓에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이 이상 퍼지게 둘 수는 없어! 남쪽으로 내려가라!"

"남쪽은 전쟁 중이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도와주십시오."

"그래도 이놈들이!"

촤악!

몰래 금릉에 들어서려 한 사내가 병사가 휘두르는 칼에 맞았다.

"끄어어억!"

"꺄아아악!"

금릉을 지키는 병사들은 역병에 걸린 채 금릉에 들어오려는 백성들을 무력을 동원해서 막아섰다.

물론 병사들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금릉은 일찍이 역병의 피해를 가장 크게 받은 곳으로, 오히려 행정이 멀쩡히 돌아가는 것이 기적적이었다.

그만큼 대처를 한 것이 다행이었지만, 지금 금릉을 지키는 병사들 중에서도 태반이 가족을 잃었다.

당연히 그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다.

역병의 징조가 있거나 걸린 병자들은 더한 취급을 받았다.

"아이고. 장군님들. 우리 가족 좀 들여 보내주십시오. 하다못해 아이라도……."

"시끄럽다! 너희들은 역병에 걸리지 않았느냐. 폐하의 명이니라! 당장 나가라!"

아예 인간 취급도 안 받는 듯 병사들이 창으로 툭툭 치면서 병자와 징조를 보이는 백성들을 내보낼 뿐이었다.

황제의 명은 역병이 퍼지는 것을 최소한 하였으나, 그만큼 문제가 생겼다.

역병을 피해 온 피난민들은 역병이 의심되어 멸시를 받았고, 역병에 걸린 자나 징조가 있는 자들은 아예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이다.

황명이 떨어진 지역들은 그렇게 역병을 막는 듯하였으나, 살고자 도망치던 유랑민들의 가슴에는 분노가 쌓였다.

"황제가 백성들을 버릴 수 있소!"

"맞습니다! 전쟁하겠다고 세라는 세는 다 거두어가면서 정작 백성들이 위험할 때는 구제해주지 못할망정 이렇게 버리다니!"

유랑민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니 황제에 대한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갔다.

고향을 등지고 왔는데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다.

"우리보고 어쩌라는 겐가? 이게 다 황명인데!"

"정 그렇다면 밖에 있는 천막에서 생활하든가!"

그렇다고 성밖에 황명으로 병사들이 급히 세운 막사는 유랑민들이 생활하기에는 알맞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우리보고 생활하라고?"

"병자들과 섞여 자라니 이게 무슨."

"더는 못 참아!"

유랑민들은 기어이 참고 있던 것들이 터졌다.

결국 백성을 차별하는 황제에 대한 불만으로 민란이 벌어지거나 유랑민 중에서는 도적이 되는 자들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바다를 넘어 연방으로 가려는 백성들도 있었으나, 이들은 연방의 함대에 막혀 연방으로 가지도 못했다.

"역병은 벌써 연방에 알려질 정도인가?"

"대체 나라가 얼마나 망해가는 거야?"

접근하면 공격하겠다는 식으로 불화살을 준비하는 연방의 함대를 보면서 당의 백성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와 불만은 점점 쌓여 칼날이 되어 금릉의 황제에게 향했다.

이경은 각지에서 올라오는 피해 상황과 백성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이 정도라는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인가."

각지에서 터지는 민란들은 어찌 막는다는 말인가.

아직 역병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 제압하였다가는 뭔 꼴을 당할지 모른다.

"민란을 진압해야 합니다. 폐하."

"그러다 역병이 퍼지면 어찌한다는 말이냐?"

"어차피 병자들은 따로 격리하였고 병사들에게도 코와 입을 막으라 지시하였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그걸로는 불안하지 않나.

"그래도 그렇지."

"오히려 저들이 민과 오월에 합류한다면 이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본보기로 민란을 제압하면 누가 감히 황제 폐하께 반기를 들겠습니까?"

만일 불만이 터진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오월과 민에 합류하면 그만큼 위협이 될 것도 없을 것이다.

이참에 민란을 제압하면 백성들이 더는 들고 일어나지 못할 터.

남당의 황제 이경은 결심했다.

"반란은 어디에서 일어났나?"

"승주입니다. 승주에서 백성들이 관리들을 죽이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음, 딱 위험한 지역이로구나."

오월과 민의 침입을 받지는 않은 곳이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들이 호응하면 곤란하겠지.

"지금 안으로는 역병에, 밖으로는 외침이 있으니 승주에 있는 역도의 무리들을 토벌하여 하루 빨리 짐의 근심거리를 털어야 할 것이다."

항복이나 회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오로지 토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역병이 유행처럼 번지고 민과 오월의 침입이 있으니 이런 결정을 내렸으나, 정작 이 무렵에는 오월과 민도 왜구의 약탈에 휩쓸리는 데다가 남당에 역병이 도는 것을 알고 오히려 군을 회군하고 있었다.

당나라 관군은 승주의 백성들을 도륙하였으며, 그 결과 황제에 대한 유랑민들의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 * *

태원.

남당에서 난리가 날 무렵. 요동과 초원의 연방군이 일제히 남하하여 태원에 도착했다.

상유한은 생각보다 많은 연방군의 병력에 경악했다.

설마하니 이만한 병력을 보내다니. 산둥반도를 내어달라는 요구조건을 보기는 했으나, 남당, 오월, 민. 삼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병력이 이만큼 나올 수가 있나?

‘역시 연방은 강력한 국가다. 이런 자들과 전쟁을 치르려 하다니.’

연방을 그 옛날 고려와 백제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유목제국 출신인 초원의 강력한 기병들까지 흡수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국경도 붙어있는 지금으로서는 저들과는 우방으로 지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연방군이 도착했다! 연방군을 맞이하라!"

"연방군이다! 연방군과 함께 역도의 무리들을 잡자!"

친연방파의 병사들은 연방군의 등장을 몹시도 환영했다.

"연방의 관흔이라 하오."

"반갑소. 관흔 장군의 명성은 내 익히 들었소이다. 상주 절도사 상유한이라 하오."

관흔은 상유한과 그가 데리고 온 연방파의 장수들을 일일이 훑었다.

하나같이 연방에 긍정적이다. 이 정도라면 아직은 굳이 이종가를 세워 진의 불만을 꺼낼 때가 아니다.

"반역을 저지른 석중귀는 어찌 되었소?"

아직 군사들이 성을 넘지 못한 것을 보니 끝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혹시 몰라 물어보았다.

석중귀는 잡았을지도 모르니까.

"아직 성이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흠. 그래도 거의 다 떨어졌군."

애초에 이미 한 번 무너졌던 태원성을 이 군세로 잡지 못하는 것이 기이한 일이다.

그때, 성루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상주 절도사 상유한! 이 비겁한 놈! 황명 없이 기어이 연방군을 불러들였냐! 이 매국노야!"

석중귀였다. 반란을 일으킨 석중귀가 상유한을 나무라고 있었다.

상유한은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그 말을 누구한테 하는 것인가.

그래. 반란을 다른 나라의 힘을 빌어 막았으니 이건 온당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 지경을 만든 석중귀에게 만큼은 매국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저런 헛소리를 한다는 말인가.

"애초에 친연방파인 폐하께 먼저 반기를 든 것이 어디의 누구인가! 내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원군을 부른 것이다!"

석중귀와는 다르게 자신은 나라를 구하려고 구원요청을 한 것이다.

애초에 자기가 반란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었을 텐데.

"말은 잘하는구나! 오냐, 연방과 그들의 개들아! 어서 와 보거라! 이 내가 모조리 격퇴해줄 것이니!"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화포를 준비하라!"

관흔은 포병부터 앞세웠다.

투석기는 가져오지도 않았다. 오로지 화포로 적들을 부술 뿐이다.

콰앙! 퍼엉!

포탄들이 일제히 성벽에 쏟아졌다.

그 광경에 상유한은 놀란 표정으로 관흔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너무 매섭게 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진의 일이기도 하지만, 석중귀란 자가 반연방파인 이상 우리의 일이기도 하오. 그러니 저자를 반드시 죽이라는 각하의 명이 계셨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원의 성벽은 화포에 무너져 내렸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성벽이 무너지자 초원의 기병대가 물밀 듯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연방군에게 자비란 없었다.

군사들만 죽은 것이 아니다. 석중귀를 따라 반연방을 하겠다 들고 일어난 기득권층과 관리들도 무참히 살해당했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반연방 세력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태원은 연방군 앞에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석중귀를 찾아라!"

"막아라! 연방군을 막아라!"

"저항하는 자는 한 놈도 살려두지 말아라!"

태원성에 진입한 연방군은 특히나 저항하는 자들에게 무참한 살육을 벌였다.

아예 다시는 연방에 대들 생각이 안 들도록 말이다.

"하. 항복하겠소. 이제 그만하시오!"

"연방에 거역하는 자들을 어찌 살려준다는 말인가?"

태원성은 연방군에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집이란 집은 전부 불타올랐으며, 멀쩡한 건물은 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유지원도 이런 식으로 죽지 않았던가?"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정말 그 당시가 떠오른다.

그때도 태원이 한참 난리가 났었지. 아주 박살이 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 난도 하필이면 태원이다.

진짜 이곳은 땅의 터가 좋지 않은 건이 왠지는 모르겠으나, 그다지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그렇지요. 뭐 당시에는 태원이 이 정도로 박살 나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상유한이 불타는 태원성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관흔은 그 모습이 몹시도 허탈해 보였다. 혹시 연방을 원망이라도 하는 것일까.

"설마 우리를 원망하시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태원은 결국 반군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그렇소이다. 어쩔 수 없소.

벌써 두 번이나 반란의 거점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땅이길래 반란만 일어나는지는 모르겠다만. 이참에 태원을 불태워 아예 반군의 지역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다.

꼴에 석중귀는 결사적으로 항전하고 있었는지 석중귀와 남은 수하들이 관군과 연방군을 상대로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결국 나중에는 지쳤는지 머리가 산발한 석중귀가 외쳤다.

"네 이놈들! 너희들은 진나라 사람이 아니더냐! 어찌 연방이 아닌 나를 잡으려는 것이냐!"

그 말에 석중귀의 반군과 싸우던 병사들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윗사람들이 시키는데, 낸들 어쩌겠습니까?"

"그러게 누가 반란 일으키라고 했습니까?"

이미 석중귀는 진군에 포위되어있었다.

맞는 말이지. 그러게 왜 반란을 일으키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젠장, 이 비열한 연방 놈들!"

"제왕께서는 어서 피신하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아주 반란군들이 가지가지 한다.

어차피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슬슬 이 지겹고 지루한 반란을 끝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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