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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43화 (143/154)

143. 패권

관흔은 석중귀의 수하들에게 항복을 종용하기로 했다.

"항복하라! 최소한 편히 죽게는 해 줄 테니!"

"흥! 헛소리하지 말아라! 우리는 너희 오랑캐에게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

오랑캐라. 아직도 저런 헛소리가 나온다는 말인가.

어차피 형식적이었으니 항복을 굳이 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총리의 명은 저들을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처리하는 것. 그리해서 연방에 조금이라도 적대하려는 불손한 세력들을 없애 버리는 것.

"끝내라."

"예, 장군!"

화총수들이 석중귀, 안중영, 경원광들을 겨눴다.

안중영과 경원광 등은 석중귀를 지키고자 애를 썼으나, 총탄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탕! 탕! 탕!

총성과 함께 반군 수괴인 석경당과 그 수하 안중영, 경원광 등이 총살당하니, 마침내 반란이 종지부를 찍었다.

불바다가 된 태원성 앞에 세운 본진에서는 진나라 관군이 붙잡은 반군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데, 연방 측은 그게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런데 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 먹었길래 태원에서만 반란이 터진다는 말입니까?"

어이가 없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나라기에 이 모양인가.

이전의 분열된 백제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신라가 조금 걸리기는 했으나 반란도 없었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쯧쯧. 한심한 국가 같으니라고."

장수들은 진나라의 상황에 혀를 찼다.

연방은 이제 크게 국력을 일으킨 대제국이라 이런 반란을 걱정할 염려가 없으니 웃긴 노릇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합니까?"

"진나라가 안정될 때까지겠지."

안정이 가장 최우선 문제였다.

두 번의 난을 통해 후진의 군사력은 거의 처참한 수준이었다.

지금 당장 남쪽의 나라들이 연합하거나 공격해 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곳에서 연방군은 진이 안정을 되찾고 국방을 든든히 할 때까지 버텨 줘야 한다.

"우리가 이건 뭐, 상국도, 보호국도 아니라 부모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닙니까?"

확실히 지금 꼴을 보니 그런 느낌도 든다.

그야말로 자식을 구하려고 달려 온 모양새가 아닌가.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건 대가가 있다고 해도 이미 표면적으로도 대등한 관계는 깨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소이다."

"그래. 어떻게 되었소이까? 그 잡은 반군들은 어찌하기로 하셨소?"

그렇게 잡아댄 덕에 많은 포로가 생겼다. 중원은 인구가 많으니 그럴 것도 같지만, 연방으로서는 거추장스러웠다.

그들을 풀어주면 또 귀찮아질 테니까.

"그들은 전부 처형할 것이오."

"음, 당연하겠지."

그래도 상유한이 지금 실권을 잡으니 진행이 빠르다. 아마 황제라면 자비를 베풀겠다고 살려 줬겠지.

황제로서의 권위를 세우려 할 테고 자비를 베풀어 충성을 받고 민심을 얻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연방에 좋지 못하다.

끝까지 진이 연방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산둥반도 문제도 해결할 것인데. 문제는."

"귀국의 황제라는 것이오?"

"예."

황제가 아직까지 의식 없는 상황이 아닌가.

황제가 깨어나기를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흠, 그래서 무슨 좋은 묘수라도 있소?"

"연방군이 산둥에 주둔해 주시오."

예상외의 발언에 연방군의 수뇌부는 어안이 벙벙했다.

산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저 지경이 되었으니, 깨어날 때까지만 미루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제법 머리가 좋군. 현실을 파악하고 스스로 숙이는 모습이야.’

관흔은 감탄했다.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는 산둥에 연방군이 주둔하여 관리하게 되는 것이니 약속의 절반은 지키는 격이다.

만일에 황제를 핑계로 아직은 지킬 수 없다 하면 그때는 끝이지만.

"음. 그 정도야 우리는 상관없는데."

"주둔에 필요한 군량도 전부 지원할 것이오. 부탁이오."

"부탁이랄 것까지 있나. 응당 해 줄 수 있는 일이오."

오히려 이쪽으로는 나쁘지 않다. 황제가 영원히 일어나지 못한다면 후진은 결국 새 왕조 개창이든 뭔가 생각을 할 테고 그리하지 않더라도 산동은 넘어올 것이다.

사실상 중원에서 연방이 값지다고 여기는 것은 전부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다들 당황하시는 것 같소?"

"실은 황제께서 의식을 차리실 때까지 약조를 미루자면 어쩌나 싶었소. 이는 결국 황제께서 의식이 불명이니 반이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 아니오?"

참으로 연방에 충실한 친연방의 수장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상유한 만큼은 어떻게든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앞으로 연방이 중국에 영향을 끼치는 데 좋을 것이다.

"이 사람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셨구려."

"이 사람이 상주 절도사와 같은 위치에 있었더라면 황제께서 지금 옥체를 상하셨다는 이유로 약조를 뒤로하였을 것이오."

그것이 제 나라를 위한 일이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상유한은 매국노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무슨 이유가 있든 간에 결국에 상유한은 제 나라의 땅을 판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뭔가 달랐다.

"하하하, 소장도 이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연방은 초원과 저 요동, 삼한, 왜, 바다에 이르는 대제국이오. 어찌 그런 나라와 척을 지기 위해 약조를 어긴다는 말이오? 내 훗날 황제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약조는 이행할 것이오."

과연 현실을 보고 대처를 할 줄 아는 위인이다.

분명 상유한이라는 자가 기회주의자는 맞지만, 그래도 제법 제 나라를 생각할 줄 아는 위인이다.

아마 이번에 부탁한 연방의 출병도 어떻게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함이겠지.

이렇게 된다면 진의 뒤에는 연방이 있다는 것을 아래의 왕조들도 알게 될 것이고.

"뭐 죽을 일이야 있겠소?"

진과 연방의 관계가 몇 년인데. 설마 그럴 거 같은가.

오히려 황제가 되살아난 이후에도 앞으로를 위해서 상유한에게 재상의 자리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각하께 잘 보고해야겠소이다."

"하하, 그래 주신다면 고맙소."

연방으로서는 절대 잃지 말아야 할 인사가 상유한이다.

반연방파가 이번 전쟁에서 다 죽었다지만, 상유한 밑에 있는 자들도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족속들일 터. 어떻게든 상유한의 권력을 유지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관흔은 평양으로 승전보를 보냈다.

* * *

진에서 별다른 소식이 없어 발을 동동 굴리는데. 때마침 진에서 승전보가 도착했다.

아주 태원에서 석중귀를 잡아 죽이고 승리를 했다고 하더라.

"역시 관흔 장군입니다."

"암요. 암요. 연방의 명장입니다."

장관들이 관흔을 크게 칭찬했다.

"뭐, 그 병력으로 다 죽어가는 석중귀를 잡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

이미 거의 다 잡은 거였단다. 못 잡은 진나라 관군이 이상한 거라고 했지.

그 마당에 관흔 장군이 갔으니,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겠지.

태원성은 이전과는 달리 완전히 파괴되었다는데. 반란이 두 번이나 일어났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장관들은 어째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황제가 깨어나지 않은 것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황제가 깨어나야 산둥반도를 온전히 받지 않겠습니까?"

음, 그런 문제인가.

그게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안 준다는 이야기도 아니지 않는가.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 준다는 말도 아니지."

"예?"

"상유한이 제 목을 걸겠다고 했네. 심지어, 상유한의 제한으로 이미 연방군이 산둥반도에 주둔하기로 했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일 황제가 후일 불만을 품으면 어쩌겠습니까?"

"감히 그놈이? 가능하겠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그놈은 결국 친연방파다. 그러니 석중귀도 잡은 것이지. 놈의 목표는 일단 진나라의 국권을 보존하고 황제의 자리를 유지하여 연방의 큰 힘을 믿고 천자국으로서 군림하는 것이다.

설령 통일하지 못하더라도 만족하겠지.

"물론 그러지는 않겠습니다만. 바다를 잃지 않았습니까? 석경당이 아무리 친연방이라 하여도 바닷길이 막히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그거야 우리가 길을 터 주면 되는 일이고, 석경당이라는 자는 단순히 나라의 자존심보다는 나라의 명맥을 잇는 것에 중점을 둔 인물이야."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딱히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럼 당면한 문제는 남당이로군요."

"남당이 제법 역병에 대한 대책을 잘 세운 같지만 결국 거기까지가 아니겠나."

남당은 사정이 좋지 못하다.

황제 이경이 열심히 힘을 쓰고 있으나 그게 오히려 문제다.

병에 대해서는 이 시대 치고는 제대로 대처하고 있으나 그 병을 막는 데만 급급해서 백성들을 나 몰라라 했다.

그 결과 사방에서 민란이 터졌다.

민과 오월은 남당의 역병이 전국에 퍼져 남당을 공격하지 못한다.

관군을 풀어 민란을 제압하고 있다지만, 결국 저 스스로 국력을 깎아 먹는 일이다.

"참으로 남당의 사정이 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산둥반도를 얻었으니 언제 역병이 올라올지 모른다. 남당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들을 차단하라."

"예."

어차피 시간의 문제다.

지금은 굳이 서두를 건 없겠지. 남당은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오월과 민에 대한 약탈은 어떻게 되었나?"

"오월과 민은 연방의 왜구가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월과 민은 작은 나라다. 함대를 잃은 마당에 아마 왜구를 두고 주력군을 남당에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상인으로 식량을 지원하면서 한쪽에서는 왜구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지."

"설마 왜구에 그렇게 쉽게 휘둘릴 줄은 몰랐습니다."

남당으로 진격하던 오월과 민은 남당에서 퍼지는 역병으로 퇴각한 것도 있으나, 왜구의 탓이 컸다.

정확히 남당으로 진격할 쯤에 왜구들이 약탈을 시작했으니 당연하다.

"오와 민에는 적당히 하라 이르게. 작은 나라들이 아닌가."

"예. 각하."

오월과 민이 또 필요 이상으로 약해지면 곤란하다.

남당이 그 기세를 타고 병합해 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남당말고도 십국의 정세 변화가 심해질 것이다. 중원의 판도가 바뀐다.

"각하 남쪽의 오씨 왕조에서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오씨 왕조라면? 베트남을 말하는 것인가. 안남이로군."

슬슬 올 때라고 생각은 했다.

내가 바닷길을 막았는데, 뭔가 오기는 올 거라 생각했다.

나는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안남국 사신의 인사가 끝나자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음, 오씨 왕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 그래서 안남에서 무슨 일인가?"

"각하. 어찌하여 바닷길을 막는 것입니까?"

예상은 했다.

"바닷길을 막다니?"

"우리는 중원과의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만."

"연방에서 우리를 막고 계시기 때문에. 교역길이 막혔습니다."

그거 일부러 막은 건데. 꼬우면 알아서 해야 하지 않나.

"안남은 본래 중국의 식민지가 아닌가?"

"저희는 한나라군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한나라라, 고작 남한이 아닌가.

음, 들은 것 같다. 베트남이 남한군을 깨트리고 베트남인만의 왕조를 만들었다고 말이지.

생각해보면 21세기의 베트남은 천하의 내로라하는 강국들을 꽤 이기기는 했다.

뭐, 지금 우리를 상대로 이길지는 알 수 없겠다만.

의외로 독립국이라고 기고만장하는 모양인데. 남한이 중국의 분열된 일부라고 생각하면 그거 몰아낸 걸로 유세 떠는 것이 웃기지 않는가.

"고작해야 남쪽의 작은 한나라를 무찌른 것이 전부인 주제에 감히 우리 연방을 상대로 그따위 말을 하는 건가?"

남한군을 무찌르고 이겼다고 참 기고만장했다.

일단 이 안남에게는 연방의 힘을 보여 줘야겠다.

"각하! 우리는 엄연히 자주독립국으로……!"

"중국과의 교역은 우리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

슬슬 힘을 좀 과시해도 되겠지?

언제까지 지역 강국으로서가 아니라 패권국이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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