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남당의 민심
나라가 커지고 영토가 넓어져 저 한참 먼 서역과 교류하게 되니 다양한 나라의 사람과 접하게 된다.
"각하. 서역의 상인들이 저 먼 서쪽의 대국에서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이들이 얼마 전 평양에 왔다가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몰라 총리부에 직접 서찰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가?"
"로마 제국이라는 곳이라 합니다."
이 당시 서역의 최강이라 하면 결국 로마 제국이겠지.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이라면 서방에 있는 대제국이 아닌가."
설마 여기서 로마 제국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로 연방이 커지니 여기저기서 달라붙는구나. 반도에 갇혀 있으면 정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통일된 중원만 한 것입니까?"
장관들은 모르는구나.
"아마 그것보다 더 클 것이네."
로마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하니까.
당장 분할 이후의 로마만 해도 태평성대를 꽤 유지했다.
물론 몰락의 길을 계속 걷다가 오스만에게 패권을 넘겨주지만, 아직 이 시기의 로마는 꽤 대단한 국가일 것이다.
"그런 나라가 존재한다면 무시할 수 없겠군요."
"그렇지. 로마가 저 멀리 있어서 그렇지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우리와 필연적으로 맞붙었겠지."
그리고 로마를 상대로 우리는 승리를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학자라고 하는데, 연방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합니다."
"음. 그렇다면 좀 대단한 곳을 보여 줘야겠군. 평양에 도서관이 있던가?"
평양에는 삼한의 역사를 보관하기 위해 기록을 보관해 둔 도서관이 있다.
당장에는 도서관이라는 사실 때문에 불손한 무리가 끼어들 수 있으니 출입증이 필요하지만, 로마의 학자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혹여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은 아닐는지요."
"그건 아닐 것이네. 멀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런 식으로 로마 제국과 연결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어쨌든 중국을 대신해서 저 먼 유럽과도 교역을 하게 되었으니까.
적당히 잘 대해 주고 로마로부터 얻을 것은 얻는 게 좋겠지. 이제부터 연방은 동방의 로마가 될 것이니까.
"외교로는 로마 제국과의 연결도 꾀하면서 이주와 당에 집중할 것이니, 그리 알라."
"예, 각하."
무려 로마다. 로마. 그들로부터 선진적인 것을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 *
금릉.
남당의 황제 이경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반란 소식에 인상을 찌푸렸다.
역병 하나 가지고 어떻게 이 지경이 된다는 말인가. 이게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철저하게 나라가 망가진다는 말인가.
"대체 무슨 반군이 이렇게 자꾸 들고일어난다는 말인가? 반란이 안 나는 지역이 없지 않은가!"
반란을 제압하면 그 두 배로 들고일어난다.
심지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보낸 군사 중에서도 병자가 나왔으니, 갈수록 곤란한 상황이었다.
물론 역병으로 군대가 전멸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것이 계속 누적되면 그 군대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역병 창궐에 따른 백성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저번에 회유하지 않고 무조건 힘으로 제압한 것이 큰 타격인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역병만이 아니라 전쟁도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회유할 시간도 없고, 회유가 통하지 않으면 저들이 적들과 내통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백성들은 왜 그걸 모른다는 말인가.
민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왜구들은 사라졌다고 해도 대체 이 역병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제는 남쪽에도 퍼지고 있지 않은가?"
남쪽에서도 이미 널리 퍼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위험하다.
"폐하, 역병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 합니다. 왜구가 점령했던 초주 인근에서는 이제 역병이 끊겼습니다."
"뭐라고! 어떻게?"
병 걸린 자들은 성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격리 조치라 해 봐야 실제로는 백성들을 버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방의 함대가 남는 약재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미 각 주에 전해진 것으로 압니다."
"약재라니, 약재로 풀릴 일이었으면 왜 진작 해결되지 않았단 말인가!"
설마 약재가 없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아국의 약재는 대부분 전쟁 물자로 쓰여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정녕 약재로 잡히는 역병이었다는 말인가?"
"지금까지로 보았을 때. 그런 듯합니다."
고작 약재로 잡힌다고? 역병이?
그래. 그거면 되었다. 조금 안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조금 화가 난다.
"헌데 짐과 상의도 없이 연방이 멋대로 약재를 보낸다는 말이냐? 절도사들은 무엇을 하고?"
먼저 사신을 보내 상의할 일이 아닌가? 사신도 보내지 않고 냅다 약재를 보내는 경우가 어디 있다는 건가.
만일 그 약재가 독약이라도 된다면 어찌하나.
"지금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절도사들도 그 약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놈들이 지금 무슨 수작이란 말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원을 해 준다는 걸까.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의심만 하였으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번에도 연방이 약을 보냈다는군."
"참으로 고마운 나라가 아닌가."
백성들 사이에서 묘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그 소문은 주로 연방을 칭송하는 소문이었다.
사실 약재 자체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로서는 연방에 호감을 가지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황제를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폐하, 백성들 사이에서 연방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합니다."
"연방은 이것을 노리고 있었군."
그런데 연방이 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런 식으로 당나라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 무엇을 시도하려는 것인가.
기이하다. 굳이 바다 건너에 있는 자들이 뭣 하러?
"대체 저들의 의도가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아국과의 우호가 아니겠습니까?"
과연 그런 단순한 이유일까. 지금까지 연방의 행보로 보았을 때 굳이 당을 상대로 그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딱히 정식으로 사신을 보낸 것도 아니다.
그저 사무역처럼 남당에 약재를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연방과 거래를 하는 상인이 그렇게 말했다.
설마하니 자기 나라 민심은 이미 꽉 잡고 있으니 남당의 민심도 얻어 자신이 천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할 셈일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연방에서 들여오는 약재를 막아라."
"폐하, 그리하면 역병은……."
"이제 역병도 거의 잡히지 않았는가."
실제로 약재 자체에는 큰 효과가 없었지만, 역병이 줄어들 시기와 맞물려서 그것이 마치 약재의 효능처럼 보였다. 그리고 고스란히 그 공은 연방으로 돌아갔다.
무지한 백성들은 남당의 황제가 아닌 연방의 총리를 칭송할 것이다.
"백성들의 입에서 연방을 칭송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니 단속해야 합니다."
"내 말이 그 말이네. 최대한 우리도 남은 약재들을 풀어야 한다."
"예."
계속 백성들의 마음을 놓치다가는 이 나라는 당나라가 아니라 연방의 일부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래서 이경은 남당으로 흘러들어오는 연방의 약재들을 모조리 금하였다.
당연히 그 탓에 백성들의 황실에 대한 불만은 더 커졌다.
성 밖에서 역병으로 의심받은 백성들에게 약이 도착하자 역병이 퍼진 지역 중 하나인 수주의 백성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 약을 받은 이 백성들은 성 밖에 격리된 처지였는데, 이제 와 관리들이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제 와 약재를 주는 것은 무슨 심보요?"
"연방에서 더는 약재가 오지 않는 것으로 들었는데, 조정이 막은 것이 아니오?"
백성들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이미 역병에 호되게 당한 사람들은 절대로 황실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뭐하고 왜 이제 와 약재를 푼다는 말인가.
이것은 충분히 불만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그건… 우리도 준비 중이었네!"
각 지역을 맡은 관리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조정에서 약재를 푸는 것보다는 격리에 초점을 두었는데 어찌하나. 심지어 약재도 이제 막 금릉에서 지원받은 것이다.
"뭐야, 이게? 이것도 약재라고 보냈나? 이것 보시오. 양이 이게 뭐요?"
연방에 피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
애초에 지금 역병은 거의 사라졌다. 성 밖의 백성들 역시 격리되었다고 하여 역병에 걸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연방이 힘내라고 주는 약재는 나라에서 버림받다시피 한 백성들에게 살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 연방을 막아 서며 쥐꼬리만큼 약재를 돌린다고?
"서서히 늘어날 걸세. 걱정하지 말게."
"연방에서 온 것은?"
"연방에서는 더 오지 않을 것이네."
관리들은 손을 저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까지 연방이 보낸 약재로 살고 있었는데, 뭐? 더는 오지 않아?"
이미 백성들은 연방이 내어 준 약에 길들어 있었다. 그런 판국에 이제 와 조정에서 주는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결국 백성들은 무기를 하나둘 들었다.
약을 전하러 온 관리들은 몹시나 당황했다. 설마 백성들이 저리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자, 잠시, 너희들 무엇이냐. 지금 그 무기들 내려놓지 못해?"
"자식이고 남편이고 전쟁에 싹 끌고 간 주제에!"
"그뿐인가! 쌀도 싹 다 뜯어가지 않았나!"
"죽어라, 이 자식들아!"
수주의 백성들도 독기가 가득 차고 있었다.
관리들은 백성들의 행동에 당황했으나, 체면이 있지, 밀릴 수는 없다.
"이, 이놈들이. 그만두지 못할까!"
"닥쳐라! 이 개만도 못한 놈아!"
퍼억!
"끄어어억!"
흥분한 백성들은 기어이 관리를 때려죽였다.
어차피 이판사판이 아닌가.
"관리들을 죽이면 어찌하나?"
"관리들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지금까지 우리를 가지고 놀던 황제와 조정인데 우리가 왜 따라야 하나?"
달라는 대로 다 내어 주고 나가라면 성에서 나갔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왜 매번 피해를 보는 것은 백성들이어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당할 바에는, 죽을 바에는 들고 일어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놈들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자고?"
"이미 선주나 승주도 난리가 난 거 같은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참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잘하는 거 하나 없는 황제에게 뭘 해 줘야 하나.
"관리들을 죽였으니 이제 이, 이 일을 어쩌나?"
몇몇 백성들은 당군에 의해 학살이라도 당할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들고 일어나야 한다.
관리들을 죽인 자들은 오히려 눈에 광기가 있었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도 나른 군사들로 지내봐서 싸울 수 있습니다!"
싸울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무기도 없다. 버틸 군량도 없는 처지에 어떻게 할까.
특히 군사들은 강하다.
"우리가 무슨 수로! 반란을 진압하는 군대는 강력하네. 우리는 무기 하나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싸우나?"
막상 저지르고 보니 그것이 문제였다.
반란을 일으켜도 병력도 부족하고 무기도 부족하다. 당연히 식량도 없다.
성 밖에 있는 자들은 끽해야 피죽을 먹는 것이 전부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무껍질을 끓여 먹기도 했다.
싸울 힘도 없는데 어떻게 싸운다는 말인가?